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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342화 (342/621)

342. 용혈의 주인 (3)

설화의 물음에 한빈은 양예신과 함께 온 마차를 가리켰다.

“저기 누가 있는 확인해야 할 것 같아서.”

설화는 한빈이 그 마차에 호기심을 가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본래 신창양가의 기본은 검소함이었다.

평상시에 재정을 아껴 나라가 힘들 때 보태는 것도 그들이었으며.

가문으로 백성이 굶주릴 때 구휼미를 내놓는 것도 그들이었다.

그런데 한빈이 가리킨 마차는 신창양가답지 않게 제법 화려했다, 양예신도 걸어왔는데 과연 마차에는 누가 타고 있을까?

고개를 갸웃하던 설화의 귓가에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챙, 챙.

설화가 다급하게 한빈을 불렀다.

“공자님, 저 싸움 말리셔야 하지 않을까요?”

“흠, 아무래도 그게 좋겠네.”

“그렇죠, 공자님?”

“설화가 가서 말려.”

“제 말을 들을까요?”

“둘 다 왕년에 간식값 좀 털린 친구들이잖아.”

“아, 왜 이상한 건 기억하시고…….”

설화가 말끝을 흐리며 마른세수를 했다.

신창양가의 양예신이나 편육랑아 모두, 설화에게 당과값을 대 주던 이력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물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말이다.

챙! 챙!

그들의 싸움이 격렬해지자 설화는 하얀 무복의 소매를 걷어붙이고 그들에게 걸어갔다.

설화의 눈이 빛났다.

그것은 한빈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돈줄은 지키라는 한빈의 명언이 있었다.

설화가 보기에 양예신이나 편육랑아 모두 돈줄이었다.

설화는 나루터의 중앙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침 삼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대결은 그만큼 다른 이들을 긴장하게 했다.

눈 한 번 깜박일 순간에도 목이나 팔 한쪽이 떨어져 나갈 수 있는 속도와, 계속 울려 퍼지는 파공성.

팡, 팡.

챙! 챙!

모든 것이 이 승부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물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선주는 그들에게는 하나의 배경으로 인식될 뿐이었다.

모두가 숨을 참고 대결을 바라볼 때, 양예신이 창으로 다가오는 낭아봉을 흘리며 말했다.

“나는 시간이 없습니다. 이쯤 해서 그만하시죠.”

“나도 시간이 없다. 네놈을 꺾고 내 실력을 증명해 보이겠다.”

“누구에게 증명해 보인다는 말입니까?”

“한 사람에게 증명해야 한다.”

“나도 어떤 분과의 약속 때문에 빨리 자리를 떠나야 하오.”

“네 약속보다 그 사람에게 내 실력을 증명받는 것이 중요하다.”

말을 마친 편육랑아가 낭아봉으로 작은 원을 그리며 휘둘렀다.

붕, 붕.

낭아봉이 만드는 회오리에 양예신이 눈을 가늘게 떴다.

동시에 창대를 빠른 속도로 돌리기 시작했다.

편육랑아가 만드는 반대 방향으로 말이다.

둘이 점점 가까워지자 그들 사이에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그 소용돌이에 나루터의 바닥이 바스러졌다.

누가 봐도 둘은 자신의 내공을 모두 짜내어 마지막 한 수로 승부를 내려는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부딪치면 둘 중 하나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둘 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컸다.

구경꾼이 된 정의맹과 사도련의 무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저런!”

“저대로 가면 둘 다…….”

“앗, 누가 좀!”

그때였다.

돌풍을 일으키며 좁혀지는 간격 사이로 흰색 빛줄기가 들어왔다.

스윽.

돌풍 사이에 불어오는 산들바람처럼 끼어든 흰색 빛줄기에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그때 사도련의 무사가 손가락으로 양예신과 편육랑아의 사이를 기다렸다.

“저, 저게 뭐지?”

“헉, 진짜 뭐가 있어.”

대답한 이는 정의맹의 무사였다.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던 그들에게는 지금 적군과 아군의 구별이 없었다.

그때 다른 무사가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뭐가 있다고 그래?”

“답답하게, 저길 보라니까?”

“사, 사람이다!”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들은 떨리는 눈빛으로 태극처럼 뒤엉킨 편육랑아와 양예신의 병장기를 바라봤다.

두 병장기가 일으킨 돌풍 때문인지 그들은 먼지에 휩싸여 있었다.

나무가 갈려 생긴 가루에 강가의 모래가 섞인 갈색 먼지가 그들을 덮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병장기와 사람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의 병장기 사이에 누군가가 끼어 있었다.

서서히 걷히는 갈색 먼지.

드디어 그들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사 중 하나가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선녀다, 선녀!”

누군가가 흥분한 듯 외쳤다.

다른 이도 흥분한 목소리로 그곳을 가리켰다.

“선녀가 아니라 신선이, 신선.”

“아니, 선녀라니까!”

모두가 흥분한 듯한 목소리로 외치며 가리킨 곳에서는 설화가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나 선녀 아닌데. 헤헤.”

설화의 웃음소리에 양예신이 눈을 크게 떴다.

“너, 너는…….”

“잘 지내셨어요, 신창양가 아저씨.”

“그, 그야 잘 지냈지.”

떨리는 목소리로 답한 양예신은 주변을 둘러봤다.

마치 누군가를 찾는 듯이 말이다.

그 모습에 설화가 물었다.

“뭘 그렇게 찾으세요?”

“그분은 어디 있냐?”

“우리 공자님이요? 우리 공자님은 잠시 자리를 비우셨어요.”

설화가 활짝 웃을 때 양예신의 반대쪽에 있던 편육랑아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너는 설, 설…….”

“네, 설화 맞아요. 편육 아저씨도 잘 지내셨지요?”

“나야 잘 지냈지. 그런데 그, 그분은…….”

“우리 공자님 말씀이에요?”

“그, 그렇다.”

“잠시 자리를 비우셨어요.”

“그, 그렇구나.”

편육랑아의 목소리를 양예신보다 조금 더 떨렸다.

설화는 양쪽을 번갈아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아저씨들, 다 큰 사람이 이렇게 싸우면 어떻게 해요?”

“그건, 이자가…….”

편육랑아가 양예신을 가리켰다.

설화가 양예신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시선을 받은 양예신이 손을 내저었다.

“나는 저 대협이 다짜고짜 달려들기에 할 수 없이 손을 쓴 것뿐이다.”

“아니, 그쪽이 먼저 우리 일에 끼어들었지 않소?”

편육랑아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선주를 가리켰다.

설화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선주를 바라볼 때였다.

그들 옆에 검은색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삭.

그 그림자에 양예신과 편육랑아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림자의 주인공을 본 편육랑아가 외쳤다.

“아, 형님! 갑자기 그렇게 나타나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림자의 주인공은 흑의살풍이었다.

그는 편육랑아의 질문은 못 들은 척하고 설화에게 한 발 다가갔다.

“잘 지냈느냐?”

“흑의 아저씨도 잘 지셨죠?”

“그래, 잘 지냈다. 지금 이 대결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니 공자께 신경 쓰지 말라 전해 드리거라.”

“저희도 다 보고 있어서 알고 있어요. 공자님이 싸움 좀 말리라고 해서 나선 것뿐이에요.”

“아, 그렇구나. 그나저나 지금 네가 보여 준 한 수가 놀랍구나.”

“이거요?”

설화는 씩 웃으며 우혈랑검을 가리켰다.

설화가 이 싸움을 말린 수법은 한빈에게 배운 파혼검의 팔 성 공력이 들어가 있던 수법이었다.

파혼검은 단계가 올라갈수록 같은 동작에도 다른 변화가 숨겨져 있었다.

팔 성의 공력을 넣게 되면 상대의 기세를 무력화한다.

한빈은 이것에 진혼(鎭魂)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진혼이라는 말 그대로, 상대의 혼신의 힘이 들어간 초식을 단번에 잠들게 했다.

흑의살풍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병기가 아니라 초식을 말한 것이었다.”

“아, 그건…… 공자님이 가르쳐 주신 초식이에요. 이름은 비밀이고요.”

“하, 역시 그랬구나.”

흑의살풍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파혼검의 진혼이 지운 것은 그들의 초식만이 아니었다.

정의맹과 사도련의 무사들의 혼도 쏙 빼놓았다.

갑자기 싸움이 멈추고 대화가 진행되자 그들은 다시 숨을 멈추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러다가 싸움이 멈춘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되자 넋이 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백색 무복을 입은 소녀가 단검 하나로 고수 둘을 막아섰다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가 않았다.

그런데 더 의아한 것은 그 소녀가 신창양가의 대공자와 사도련의 산서삼살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그들의 대화 중 공통점이 나왔다.

둘 다 ‘그분’이라는 사람을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그 소녀는 그분이라 지칭한 사람을 공자라 불렀다.

사람들은 도저히 이 상황을 조금도 추측할 수 없었다.

고수 둘의 싸움을 단검 하나로 막은 소녀가 공자라 부를 만한 사람은 강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무림삼존밖에는 없을 것이었다.

무림삼존은 각각 소림과 무당, 그리고 마교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흰색 무복의 소녀는 그 어느 곳의 소속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사람들은 요즘 강호에 떠도는 두 인물에 대해서 떠올렸다.

그때 정의맹의 무사 중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청운사신?”

“아니, 적룡대협일지도…….”

사도련 소속의 무사가 맞받아쳤다.

하지만 자신이 없는지 말끝을 흐렸다.

그때였다.

그들의 시야에 갑자기 붉은 물결이 휘몰아쳤다.

자세히 보면 그것은 물결이 아니라 장포였다.

그와 함께 갑자기 광풍이 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모두는 붉은 장포를 휘날리며 다가오는 고수에 집중했다.

그를 바라보던 무사들 대부분은 고개를 갸웃했다.

광풍이 몰아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주변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기세만으로 이런 느낌을…….”

“마치 공간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는 착각이 드는군.”

“착각이 아닌 것 같네.”

무사는 붉은 장포를 가리켰다.

바람은 불지 않으나 장포를 펄럭이고 있었다.

“헉.”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물론, 붉은 장포를 펄럭이며 걸어오는 이는 한빈이었다.

한빈이 그들 사이로 다가오자 양예신과 편육랑아 그리고 흑의살풍이 긴장한 듯 한 걸음씩 물러났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양예신이었다.

“어르신은 누구십니까?”

“…….”

한빈은 고개를 갸웃하며 양예신을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수염을 어루만졌다.

턱수염까지 붙여 놓은 것이 기억난 것이다.

한빈의 진득한 웃음에 양예신은 마른침을 삼켰다.

흑의살풍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구신지 정체를 밝히…….”

그는 말을 맺지 못했다.

한빈이 갑자기 흑의살풍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흑의살풍의 코앞까지 간 한빈이 얼굴을 불쑥 들이밀더니 그만 볼 수 있게 수염을 살짝 내렸다.

순간 흑의살풍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당신은 팽 공…….”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빈이 그의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댔기 때문이다.

그의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댄 한빈이 속삭이듯 말했다.

“쉿, 일단 장단 좀 맞춰 주시죠.”

“아.”

흑의살풍은 낮은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한빈은 조용히 어디론가 걸어갔다.

터벅터벅.

한빈의 걸음에는 내공이 실려 있었다.

한빈의 한 걸음에 나루터가 미세하게 흔들릴 정도였다.

모두는 한빈이 향하는 곳을 바라봤다.

한빈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선주를 향해 다가갔다.

천천히 걸어가던 한빈은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고는 재빨리 붉은 검신을 잡았다.

순간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대결에 집중하고 있다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붉은 검신을 보자, 자신들이 왜 이곳에서 검을 뽑았는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붉은 검신을 잡았다.”

“그러게, 누군데 남의 물건을…….”

모두가 웅성거리자 한빈은 붉은 검신을 높이 들며 말했다.

“이게 자네들 것이라고 했나? 이 물건의 주인이 있으면 나와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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