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360화 (360/621)

360. 사천대국(四川大局) (3)

암선을 찾는 것은 시간문제. 이 일이 끝나면 다음은 그 배를 찾는 것이 금선의 계획이었다.

물론 금선은 암선이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있으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계획을 떠올리자 온몸을 덮쳐 왔던 고통이 눈 녹듯 사라졌다.

고통을 씻는 방법으로 희망만큼 좋은 마취약은 없었다.

그때 그의 귓가에 내공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다녀왔습니다.”

금선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자신과 같이 금빛 장포를 펄럭이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금선의 그림자 무사였다.

자신의 그림자 무사를 본 금선이 입을 열었다.

“그래, 일은 잘되었느냐?”

“확인은 못 했지만, 일부는 한 줌의 피떡이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 그 정도면 되었다.”

“그런데 뒤쪽에 불꽃은 주군이 쏘아 올리신 겁니까?”

“아니다.”

“그럼 혹시 적이…….”

“색을 보니 저 너머 마을에서 축제라도 벌어지는 듯싶구나. 그건 신경 쓰지 말고 너는 다음 시위를 당겨라.”

“존명.”

금빛 장포의 사내는 포권한 뒤 겉옷을 벗었다.

그 안에는 흑색의 무복이 드러났다.

그 무복보다 더 검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사내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한편, 사천당가의 비무대 근처에는 무림세가의 후기지수들이 모여 있었다.

용봉지회가 펼쳐지는 연무장 주변에는 커다란 공터가 있었는데 후기지수 대부분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그들을 이끄는 자는 다름 아닌 팽혁빈이었다.

팽혁빈의 주변에는 무림세가의 후기지수들이 웅성대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팽혁빈에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이 걱정됩니다. 저희는 가 봐야겠습니다.”

“일단 기다려 보시오. 절대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팽혁빈은 내공까지 담아 답했다.

내공이 담긴 팽혁빈의 목소리에 상대는 움찔했다.

사실 팽혁빈이 지금의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 수 없었다.

동생인 한빈에게서 날아온 전서대로 이곳에 모인 것뿐이었다.

첫 번째 폭발음이 들리면 후기지수를 이리로 모으라 했다.

팽혁빈과 연배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후기지수를 제외하고는 설득하지 말라 했다.

팽혁빈은 이 부분에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위험에 대비하자면 후기지수가 아닌 위부터 설득을 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한빈은 철저히 후기지수만을 통솔하라 부탁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금와 상단이 가져다 놓은 물건에서는 멀리 떨어지는 것이라 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멀리서 굉음이 들려오자 팽혁빈은 그것이 첫 번째 신호임을 깨닫고 무림세가의 후기지수들을 이곳으로 모은 것이다.

그때 저 멀리서 다시 폭음이 들려왔고 후기지수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지금 처소로 돌아가 가문의 어르신들을 데려오고 싶은 마음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광동진가의 후기지수 하나가 콧김을 내뿜으며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더는 못 기다리겠소! 가서 어르신들과 합류해서 이 사태를 헤쳐 나가겠소!”

“맞소. 우리는 그만 가 보겠소. 하북팽가가 우리 광동진가를 막을 권한은 없소.”

다른 광동진가의 무사도 몸을 돌렸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팽혁빈과 친분이 있다는 모용세가의 후기지수도 외쳤다.

“우리도 가 보겠소!”

“우리도 가문의 어르신들과 합류해야겠소.”

불만 섞인 그들의 목소리가 공터를 뒤덮었다.

그들의 모습에 팽혁빈이 외쳤다.

“여기서 흩어지면 위험하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기다릴 만큼 기다렸소.”

광동진가의 후기지수를 콧방귀를 끼더니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비무대가 설치된 연무장을 지나치려 할 때였다.

쿵!

심후한 내공이 담긴 진각 밟는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발길을 옮기던 후기지수들이 멈췄다.

그들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장창을 잡고 있는 거한의 사내가 있었다.

그는 산동악가의 악비광이었다.

그는 눈을 부라리며 모두를 쏘아봤다.

“내 의형이 내린 명이니 따를 테면 따르고 말 테면 말아라. 다만 내 의형의 명을 따르는 자는 살 터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신경도 안 쓸 것이다.”

악비광의 얼굴은 진지했다.

다소 험악하게 보이긴 했지만, 후기지수들은 악비광이 싸움에 미쳐서 조금 과격할 뿐 거짓말을 할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광동진가의 후기지수가 물었다.

“의형이란 자가 대체 누구요?”

“…….”

악비광이 입을 달싹이자 팽혁빈이 그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악비광이 입을 여는 순간 이곳은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된다.

한빈의 진면목을 아는 자는 일부분일 뿐, 아직도 하북의 겁쟁이로 알고 있는 무림세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때 악비광이 입을 열었다.

“그분이시오.”

순간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분이라는 단어는 너무 추상적이었다.

때에 따라서 올려다볼 수 없는 존재를 떠올리는 것도 가능했으며, 가까운 선배일 수도 있었다.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분?”

“그분이 누구야?”

“혹시 백대고수 중 한 분인가?”

그것도 잠시 그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에이, 설마…….”

“저 말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일단 빨리 가문의 어르신이 있는 곳으로 합류하세.”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발길을 옮겼다.

그때였다.

귀청을 찢어 놓은 듯한 굉음이 울렸다.

꾸아앙!

동시에 그들의 눈앞에 환해졌다.

눈앞에는 온통 정오의 햇볕보다 더 환한 불빛밖에 없었다.

그것도 잠시 그 불빛 사이로 파편이 날아온다.

돌덩이인지 나뭇조각인지 쇳조각인지 구별은 안 되지만 그 파편들이 그들을 덮쳐 왔다.

그 파편들은 눈앞을 가득 채웠다.

광동진가의 후기지수는 눈을 찔끔 감았다.

이제 눈 한번 깜빡일 시간이면 자신은 고깃덩이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코끝에 청아한 향기가 느껴졌다.

그는 슬쩍 눈을 떴다.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파편과 그들 사이에 두 개의 형체가 나타났다.

휘 휙.

그것은 분명 바람이었다.

산들바람처럼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태풍처럼 강한 기세를 담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더니 시간이 멈췄다.

순간 광동진가의 후기지수가 나지막이 외쳤다.

“허공섭물!”

그가 말한 대로 사물이 공중에서 멈춰 있었다.

광동진가의 후기지수는 그제야 그 파편들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연무장 앞에 있던 불상이었다.

자신의 몸집만 한 불상의 머리가 지금 공중에 떠 있었다.

그것도 잠시, 날아오던 파편들이 공중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투두둑.

그제야 광동진가의 후기지수는 눈앞에 두 소녀를 보았다.

둘은 반로환동의 고수가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날아오던 집채만 한 파편들을 손도 안 대고 막을 수는 없었다.

광동진가의 후기지수는 떨어진 불상의 머리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보지 못했다.

불상의 머리는 푸른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것은 허공섭물이 아니었다.

독공으로 공간을 장악한 것이다.

덕분에 그 공간 안에 있던 사물에는 모두 독 기운이 스며들었다.

청화는 천천히 불상의 조각에 다가가 손을 대었다.

순간 불상의 조각에 맺혀 있던 푸른 기운이 사라졌다.

사사삭.

그 모습에 옆에 있던 설화가 말했다.

“몰라보게 늘었는데? 축하해, 청화야.”

“에이, 뭘요. 언니 따라가려면 멀었죠. 언니 아니었으면 제시간에 오지 못했는데요.”

“경공은 너도 배우면 되지 뭐, 그런데 네가 지금 한 건 난 할 수 없어.”

“좋은 것도 아닌데요, 뭐.”

둘의 대화에 광동진가의 후기지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입을 떡 하니 벌렸다.

그들이 막 설화와 청화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였다.

그들을 동작을 멈췄다.

생각지도 못한 강력한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다.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 후기지수들의 눈이 커졌다.

십대세가의 대표들이 그들 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다시 폭음이 울려 퍼졌다.

꾸아앙! 쾅!

전각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에도 십대세가 대표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걸어왔다.

십대세가의 대표들이 나타나자 우왕좌왕하던 후기지수들이 안정을 찾았다.

십대세가의 대표들은 각자의 가문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차 한 모금 마실 시간이 지나고 남궁장천이 팽혁빈을 찾아왔다.

“어떻게 된 것인가? 왜 후기지수만 모은 것이지? 나머지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그냥 둔 것인가?”

“그러니까…….”

팽혁빈이 말끝을 흐렸다.

이것은 자신도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옆에 있던 한빈이 끼어들었다.

“남궁 가주님.”

“자네도 있었군. 내게 할 말이 있는가?”

“후기지수가 아닌 원로들에게 대피하라는 말이 먹혔을까요?”

“그게 무슨 말인가?”

“어르신들이야 저 아수라장에서도 살아남을 능력이 되지만 저 친구들은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흠.”

“만약 저 친구들을 놔뒀다면 고수들에게는 짐이 되겠지요.”

“짐이 된다니…….”

“전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전투력을 상실한 동료입니다.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지금부터 시작될 싸움에는 버려야 할 패는 과감히 버릴 겁니다.”

그때였다.

멀리서 들리는 폭음이 점점 가까워졌다.

한빈은 혀를 찼다.

“쯧, 시작했나 보군요.”

“자네가 말한 저들의 수법이 저것인가?”

남궁장천이 눈매를 좁혔다.

보이는 적이라면 일 검에 목을 떨어뜨릴 수 있지만, 이것은 적이 없는 상황이었다.

절벽에서도.

지금 이곳에서도 적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처음 자신을 유인하던 고수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우르릉, 쾅!

천둥이 치는 듯한 굉음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남궁장천이 시름에 잠긴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을 때, 제갈공민이 나타났다.

“꼭 사냥감을 모는 듯한 느낌이군요.”

“그럼 우리가 사냥감이란 말인가?”

남궁장천이 사천당가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봤다.

그때 한빈이 끼어들었다.

“사냥감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일단 척은 해 줘야 할 것 같네요.”

“몰리는 척을 하자는 건가?”

제갈공민이 눈매를 좁히자 한빈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야 적도 안심하고 숨겨 둔 수를 쓸 게 아닙니까?”

“숨겨 둔 수가 더 있단 말인가?”

“아마도요. 저희를 궁지에 몬 다음 보여 주겠지요. 원래 사냥이라는 게 사냥개와 몰이꾼을 이용해 사냥감을 구석에 몰아넣는 것부터 시작이죠.”

“끝은 사냥꾼이 나와 활시위를 당기는 것이고?”

“아니지요. 사냥감의 숨통을 끊는 것이 끝입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나머지 가문들의 고수들도 이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희뿌옇게 피어오른 먼지 속에서 폭발을 피해 한빈이 있는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먼지 때문인지 입가를 소매로 막고 아수라장을 뚫고 오고 있었다.

다만, 그들의 상태가 그리 녹록해 보이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상처도 보였고 무복도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러나 걸음걸이를 봐서는 기세가 조금도 꺾이지 않은 듯했다.

그 모습에 남궁장천과 제갈공민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한빈이 말한 대로였다.

만약 후기지수를 여기에 모아 놓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후기지수들이 저들에게는 짐이 되었을 것이었다.

남궁장천이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뱉었다.

“두 번이나 신세를 졌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갈공민이 맞장구치자 남궁장천이 고개를 기울였다.

자신이 두 번 신세를 진 것은 맞지만 제갈공민도 똑같이 두 번이나 신세를 졌다 하니 이상했다.

그때 한빈의 목소리가 둘의 귓전에 울렸다.

“이제 가시지요. 누가 사냥꾼인지를 보여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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