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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406화 (406/621)

406. 보이지 않는 위협 (3)

[무림 칠대기보 보유 목록 : 용린, 만월]

[용린의 주인에 대한 책임과 권한에 대해…….]

[강호에 흩어진 무학을 찾는 방법이 추가됩니다.]

오늘따라 많은 정보를 뱉어 내는 비급이었다.

글귀를 확인한 한빈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비급은 자신에게 끝없는 수련을 원하고 있었다.

한빈이 원하는 강함은 상대적인 힘이었다.

강호에서 자신의 뒤통수를 칠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면 그것이 힘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용린은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용린이 가진 무학의 정수를 끝없이 흡수하라 채찍질하고 있었다.

한빈은 그 이유에 대해서 잠시 고민해 봤다.

끝없이 강해져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순간 한빈은 눈매를 좁혔다.

용린이 강해지라 자신을 채찍질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적이 있다는 것이다.

흑룡단주인 암제 말고 다른 적이 있다면?

그 단체의 잔당일 수도 있고 다른 흑막일 수도 있었다.

한빈은 잠시 눈을 감고 전생을 더듬어 봤다.

현생과 전생을 나란히 비교해 보자, 이상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전생에는 마교가 정파에게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강호의 실권을 잡는 것은 정파.

전생의 기억을 더듬던 한빈이 표정을 굳혔다.

다른 흑막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것도 잠시, 한빈은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뒤통수를 치려는 흑막이 있다면 그 판에 기꺼이 어울려 줄 의향이 있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한빈의 표정에 심미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군, 괜찮으세요?”

“난 괜찮아.”

한빈이 손을 아무렇지 않게 내저었다.

잠시 심미호가 앞에 있었다는 것도 잊고 상념에 잠겼다는 점에 묘하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심미호를 믿고 있다는 것이다.

전생의 귀검대만큼 지금의 적혈맹호대가 믿음직스럽다는 이야기.

그때 심미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군, 이게 다 저희를 위한 안배인가요? 아니면…….”

말끝을 흐리는 심미호의 모습에 한빈이 갸웃했다.

“그냥 편하게 말해 봐, 심 부대주.”

“그게 그러니까…….”

다시 말끝을 흐리는 심미호.

한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이건 부탁이 아니고 명령이야. 지금도 앞으로도 내 앞에서는 숨기는 일이 없도록 해!”

“주군, 죄송해요.”

“그럼 말해 봐.”

“저희에게 기술을 터득하게 해 주신 거요.”

“기술이라…….”

“저희를 목공의 대가이자 석공의 대가로 만들어 주셨잖아요. 사실 아까는 진짜 감격했어요. 주군이 저희에게 먹고살 길을 열어 주셨다고 생각했거든요.”

“흠.”

한빈은 팔짱을 꼈다.

심미호의 다음 말이 궁금해서였다.

한빈의 표정을 확인한 심미호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상하잖아요. 저희는 뼛속까지 무인. 무공이 아닌 돌과 나무를 다루는 기술이 일취월장했다는 게…….”

심미호는 살짝 한빈의 눈치를 봤다.

그 모습에 한빈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무인으로 인정받은 게 아니라 목수과 석공으로 인정받은 게 이상하다는 말이잖아. 그러니까 혹시 적혈맹호대가 내 전력에서 벗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고…….”

“아, 아니에요. 그런 의심은 아니에요.”

“에이, 뭐가 아니야. 얼굴에 다 나와 있는데.”

“…….”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

“네. 경청할게요, 주군.”

“옛날에 양수라는 사람이 살았지.”

“주군, 양수요? 저는 처음 들어 보는데요.”

“아마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야. 양수는 석공이었으니까.”

“석공이라고요?”

“지금부터 삼백 년도 더 된 이야기지. 그러니까…….”

한빈의 설명이 이어지자 심미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딱 벌렸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황궁의 공사에 불려 간 양수는 초일류 석공이었다.

그냥 말만 초일류가 아니라 그는 집채만 한 돌도 마치 두부처럼 힘들이지 않고 다듬을 수 있었다.

지나가다가 그 모습을 본 황제는 그를 불렀다.

물론 그 기술이 신기해서였다.

양수가 말하길, 처음에는 주먹만 한 돌도 다듬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십 년이 지나자 돌의 홈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후 또 십 년이 지나자 결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또다시 십 년이 지나자 망치와 정이 저절로 움직이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했다.

쉴 틈 없이 설명을 이어 가던 한빈이 조용히 창밖을 바라봤다.

마치 호흡을 가다듬는 듯한 한빈의 모습.

심미호는 재촉하듯 물었다.

“그럼 저희에게 양수라는 석공의 깨달음을 내려 주기 위함이었나요?”

“그 양수가 지금 양가장의 시조인 양무극이야.”

“네?”

“황제는 돌을 쪼개는 그의 솜씨는 높이 사서 그를 석공이 아닌 병사로 고용했지. 그것도 백인장으로 말이야. 돌을 쪼개는 솜씨로 적을 쪼개라면서…….”

“헉.”

“그리고 그때 그가 쓰던 징이 바로 무림 칠대기보인 양극창의 창날이지.”

“들어 봤어요.”

“당연히 들어 봤겠지. 본 사람은 없어도 말이야.”

한빈이 씩 웃었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무림 칠대기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강호, 아니 중원 전체를 통틀어 아무도 없었다.

물론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아는 이는 극소수.

무림 칠대기보가 왜 유명해졌는지에 대해서도 아는 이는 없다.

본 사람도 없는 보물을 한빈은 그중 두 개를 손에 넣었다.

거기에 앞으로 다섯 개를 찾아야 한다.

그때 심미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감사해요. 이제야 주군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만류귀종이라는 말씀이죠?”

“뭐, 굳이 말하자면…….”

“주군, 진짜 충성을 다할게요.”

심미호가 깊숙이 포권했다.

그때 문밖에서 울리는 묵직한 함성.

주군.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심미호는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의문을 떠올린 것은 그녀만이 아니라 적혈맹호대 전체였다.

그들은 심미호를 뒤따라왔으나 조용히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한빈이 그들의 기척을 눈치재치 못할 리 없었다.

한빈은 어색하게 웃었다.

의문을 해소한 심미호는 재빨리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제는 풀벌레 소리와 바람이 나뭇가지를 훑고 지나가는 소리만 간간이 울렸다.

한빈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외쳤다.

“어서 나오시지요!”

한빈의 말에 창밖에서 낙엽 밟는 소리가 울렸다.

사삭.

동시에 가느다란 한 줄기 빛이 창을 타고 넘어왔다.

그 모습에 한빈이 눈매를 좁혔다.

상대는 평범한 외모의 노인이었다.

그냥 보기에는 어디에나 흔히 있는 농부와 같은 복장을 한 노인.

소매는 다 해어져 손을 대면 바스러질 것만 같았고 옷깃은 이미 흔적이 없었다.

다만 그가 피워 내는 현기만이 그가 무림인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무림인도 그냥 무림인이 아니었다.

암제와 동급.

그렇다면?

한빈은 그의 옷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소매 쪽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무늬.

그것은 분명히 태극이었다.

태극이라?

혹시?

의문이 연달아 한빈의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동안에도 노인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 미소에 한빈이 물었다.

“혹시 태극검존 어르신입니까?”

“어찌 알아봤는가?”

“제가 경지를 예측 못 할 분은 그리 많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니 혹시나 하고 추측해 봤을 뿐입니다.”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하지만 속은 그렇지 못했다.

무림삼존의 하나인 무당의 태극검존이 눈앞에 있다.

강호인 중 누가 무림삼존 중 하나인 태극검존과 이리 독대할 수 있단 말인가?

재미있는 것은 전생에도 무림삼존의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그때 태극검존이 그윽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잠시 나와 보겠는가?”

“네, 알겠습니다.”

한빈이 고개를 끄덕이자, 태극검존은 몸을 돌려 밖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마치 자기 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 * *

한빈의 처소 앞 연무장.

연무장 한가운데에서 달빛을 받고 서 있는 태극검존.

한빈은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기다리는 것이 맞았다.

그는 적군이 아닌 아군.

한빈이 조용히 바라보고 있을 때, 태극검존은 한빈을 향해 한 발 다가왔다.

사라락.

한빈은 그 모습에 눈매를 좁혔다.

태극검제의 신형이 코앞까지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그는 그저 한 발을 옮겼을 뿐이었다.

압박감은 전혀 없지만, 눈앞에는 태산이 보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피해야 할까?

고민을 떠올리기도 전에 한빈은 미소를 지었다.

한빈은 피하는 대신 안력을 돋워 태극검제의 동작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각인시키려 노력했다.

그때 태극검재의 다시 두 번째 걸음을 내디뎠다.

사라락.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보법.

이번 걸음에 한빈의 눈은 커졌다.

한 걸음이 마치 하나의 무공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빈의 예상대로였다.

태극검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달밤에 자신의 앞에서 춤을 추겠는가?

태극검제의 한 걸음에서 자연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두 번째 걸음을 걷다 멈춘 태극검제가 한빈에게 물었다.

“괜찮겠는가?”

“네?”

“계속 볼 수 있겠냐는 말일세.”

“괜찮습니다.”

“허허. 선재로다, 선재야.”

“…….”

한빈은 아무 말 없이 태극검존을 바라봤다.

태극검존은 흐뭇한 표정으로 수염을 한번 쓸어내린다.

그러고는 가볍게 세 번째 걸음을 뗐다.

사라락.

마치 무희가 춤을 추는 듯한 동작.

하지만 거기에 담긴 신묘함은 분명 상승무공이었다.

보이는 것은 분명 좌로 움직이고 있는데, 마지막에 태극검제가 서 있는 곳은 우측이었다.

뭐지?

한빈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였다.

사라락.

사라락.

태극검제가 쉴 틈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빈은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정확히 일곱 걸음을 걸은 후 멈췄다.

태극검제는 자신의 손바닥을 심장에 대더니 아래로 쓸어내렸다.

그의 손바닥이 단전까지 내려와서는 잠시 머물렀다.

그러고는 길게 호흡을 토해 냈다.

“휴…….”

긴 호흡의 끝에 그는 한빈을 향해 다가왔다.

한빈은 그를 향해 살짝 포권했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무엇을 배웠는가?”

“태산을 배웠고 대해를 배웠습니다.”

“흠.”

태극검제가 수염을 쓸어내린다.

그 모습에 한빈이 물었다.

“왜 그러시는지요?”

한빈이 던진 첫 번째 질문이었다.

태극검제가 한빈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는 이것이 한빈이 던진 첫 번째 질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삼존 중 하나인 자신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이렇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평정심을 유지하더라도 아무 말 없이 지켜만 볼 수 있는 자가 있을까?

태극검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자신의 사제 현문으로부터 서찰 하나를 받고 나서였다.

자신도 어쩌지 못한 현문에게 깨달음을 내린 도인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곳까지 왔던 것이다.

이곳까지 왔을 때는 말도 안 되는 혈겁이 사천당가를 휩쓴 후였다.

커다란 사건을 목격한 태극검제였지만, 그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사건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자에게 깨달음을 준 도인의 정체가 궁금해서였다.

태극검제는 일단 현문에게 깨달음을 준 도인을 찾기 시작했다.

도인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도인의 정체를 안 태극검제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자신의 사제에게 깨달음을 준 도인이 무림세가의 젊은이라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것은 사천당가를 휩쓸고 간 사건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인내심으로 따지면 소림의 승려들보다 한 수 위였다.

지금도 평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한빈이 자신의 일곱 걸음을 거리낌 없이 지켜봤다는 점이었다.

순간 태극검제의 표정이 바뀌었다.

“내가 이 보법을 처음 봤을 때는 그저 뒤뜰의 돌덩이와 우물을 보았다네. 그런데 자네가 태산과 대해를 봤다 하니 놀랄 수밖에 없네. 거기에 나는 딱 세 보만을 보았네.”

말을 마친 태극검제는 기세를 피워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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