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421화 (421/621)

421. 오비이락(烏飛梨落) (8)

위상호의 앞에 있는 자들은 위씨세가가 키운 가문의 검인 강남사호였다.

강남에서는 네 마리의 호랑이라 불리며 후기지수 중에는 대적할 자가 없다고 소문이 퍼진 이들.

그들은 음지와 양지를 오가면서 위상호의 근지러운 부분을 긁어 주는, 그의 왼팔이었다.

위상호의 손에는 쪽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위상호는 그 쪽지를 보더니 몇 배 더 강한 기세를 피워 냈다.

“은혜를 모르는 놈 같으니!”

가주전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사자후가 울려 퍼졌다.

그는 쪽지를 꽉 쥐고 내공을 불어 넣었다.

그가 손을 폈을 때는 그 쪽지는 재가 되어 있었다.

손을 말아 쥔 상태로 삼매진화의 수법을 펼쳤다.

누가 봤다고 하면 놀라 자빠질 정도의 수법.

하지만 강남사호는 그 수법에 감탄할 수가 없었다.

일호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호는 강남사호의 우두머리였다.

위씨 성을 쓰지만, 방계인 덕분에 성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강남사호라 불리며 그는 직계 못지않은 대우를 가문에서 받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위일호.

나머지 세 명도 각각 이호. 삼호, 사호라 불리고 있다.

셋은 위씨 가문의 사람은 아니지만, 위씨 성을 받은 고수들이었다.

일호는 포권한 채 조심스럽게 가주 위상호를 바라봤다.

“가주님, 일단 진정하십시오.”

“너희는 알고 있었느냐?”

“절대 몰랐습니다. 어떻게든 저희가 잡아 오겠습니다.”

“잡아 오지 말아라.”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냥 죽여라.”

말을 마친 위상호가 맨손으로 허공을 그었다.

휙!

순간 멀리 벽에 있던 족자가 반으로 갈라진다.

일호는 순간 입을 딱 벌렸다.

저것은 말로만 듣던 무형지기였다.

일호는 숨을 멈췄다.

저 한 수가 자신의 목에 들어오게 된다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일호는 몇 시진 전 날아온 전서구 몇 마리를 떠올렸다.

위상호가 열이 받은 것은 바로 그 전서구를 통해 전해 온 내용 때문이었다.

내용에 따르면, 일이 너무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강남사호가 양지와 음지를 오가며 일한다면, 음지에서만 일하는 강남사호의 선배가 하나 있었다.

그가 바로 영호였다.

그런데 영호가 전서구를 통해 자신은 이제 위씨세가와 연을 끊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일호는 조용히 가주의 눈치를 살폈다.

영호의 배신만 가지고 저리 화를 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예상대로 위상호는 지금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일들이 하나둘 벌어지고 있었다.

가문의 비자금을 맡겨 놓은 만금 전장 호북 지부에 영호를 보내 놨더니, 전서구를 보내 놓고 행방을 감췄다.

거기에 더해 그곳은 관군이 감싸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하북에 벌여 놓은 이간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위상호는 천리 표국과 몇몇 무림세가가 하북팽가를 공격하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하북팽가의 현재 전력과 천리 표국을 비롯한 무림세가의 전력을 저울질해서 만든 이간계였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사파까지 끼어들어 버렸다.

지금 하북은 서로 물고 물리는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하북팽가를 치려고 하던 천리 표국은 사파인 청사파의 견제를 받고 있었다. 거기에 청사파를 노리는 것은 요즘 떠오르는 무씨검가였다.

물론 무씨검가를 노리는 또 다른 세력이 있었다.

이것이 그냥 소문인지 아니면 실제로 일어나는지는 모른다.

계속 떠도는 이야기 덕분에 모든 무림세가와 문파들이 긴장하는 상태였다.

본래대로라면 지금쯤 싸움이 벌어졌어야 정상이었지만, 이런 상황 때문에 서로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위상호의 예상과는 달리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연달아 나타나고 있었다.

분명히 작은 조약돌을 하나 던졌는데 큰 파도가 일고 있다.

이것이 우연일까?

아무리 계산해도 우연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상황은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는 말과 딱 맞아떨어졌다.

우연이라고 해도 이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 계획은 살짝 하북팽가라는 몸통을 흔들어 하북의 무림세가와 문파들이 뱉어 낼 맛있는 열매를 그냥 주워 먹는 것이었다.

몸통을 흔들었는데 난데없이 들이닥친 태풍이라니!

지금은 그 열매가 아예 못 먹을 정도로 망가지게 되었다.

위상호는 눈을 크게 뜨며 강남사호를 향해 외쳤다.

“철혈검대를 대기시켜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강남사호의 수장인 일호가 포권하며 재빨리 가주전을 빠져나갔다.

* * *

그날 새벽.

한빈이 묵고 있는 객잔 주변은 정신없이 바빴다.

사람이 바쁜 것이 아니라 소식을 전하는 전서구들로 객잔 주변이 붐비고 있었다.

푸드덕.

푸드덕.

비둘기의 날갯짓 덕분에 객잔에 묵고 있던 일반 손님들까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덕분에 객잔의 아침은 일찍 시작했다.

모든 전서구를 확인하고 답을 보낸 한빈은 잠들어 있는 영호를 바라봤다.

“정신없이 자고 있네.”

“어제 피웠던 향이 너무 독했나 봐요, 공자님.”

그녀의 말에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영호가 이렇게 곤히 자는 이유는 한빈이 그가 모르는 사이에 수혈을 눌러 놨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향이라니?

한비은 재빨리 물었다.

“향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기 저 향초요.”

흑미랑은 방구석 탁자 위에 있는 작은 향로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거의 타들어 간 향의 잔재가 남아 있었다.

한빈은 코끝을 실룩였다.

순간 저 향로의 정체가 뭔지 알 것만 같았다.

저 향로에 담긴 향초는 북해빙궁의 특산물인 숙향초로 만든 것이 분명했다.

숙향초는 소량의 향기만으로도 안정을 가져다준다고 전해지는 물건이었다.

그 안정감 덕분에 저 향을 맡은 자는 숙면을 취하게 된다.

한빈은 지금 영호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수혈을 눌러 놓은 데다 숙향초가 섞인 향을 맡았으니, 아마 두 시진은 더 자야 일어날 것이었다.

그런데 왜 숙향초를 피워 놨을까?

한빈은 흑미랑을 조용히 바라봤다.

아마 흑미랑은 자신을 시험해 본 것이 분명했다.

독은 아니지만, 향에 반응하는지를 살펴본 것 같았다.

백미랑에게 하오문의 주인 될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지만, 한빈이 바로 그 인물이라는 건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유는 간단했다.

백미랑이 소식을 전했을 당시와 지금의 외모는 묘하게 달랐으니까.

한빈의 표정을 본 백미랑이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죄송해요. 하오문의 주인이 될 분은 만독불침에 가깝다고 들어서요.”

“괜찮습니다. 저는 하오문의 이런 신중함이 좋습니다.”

“이해해 주시는군요.”

“이해라기보다는 당연한 절차라 봅니다.”

“그런데 전혀 반응을 안 하시는군요.”

“…….”

한빈은 말없이 웃었다.

그러고는 영호가 누워 있는 침상으로 걸어가서 그의 수혈을 눌렀다.

* * *

한빈 일행은 오후가 되어서야 객잔을 떠났다.

아무 말 없이 앞장서서 걷는 한빈.

그리고 그 옆을 보좌하는 흑미랑.

묘하게도 한빈을 호위하겠다고 장담하던 영호가 가장 뒤쪽에 섰다.

한참을 가던 영호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기, 흑미랑 무사님.”

“왜 그러세요?”

흑미랑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하자, 영호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왜 제가 뒤를 맡아야 합니까?”

“원래 강호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게 뭐죠?”

“가장 조심해야 할 게 어디 있습니까? 강호에 나오면 모든 것을 조심해야죠.”

“그게 아니죠. 힘의 분배라는 게 있잖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뒤통수예요.”

“뒤통수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영호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뒤통수라 들으니 괜히 찔렸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서생과 여자 호위 무사에게 하려는 짓이 바로 뒤통수치기였다.

그때 흑미랑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세요?”

“죄송합니다. 갑자기 이상한 말씀을 하셔서…….”

“제가 말한 것은 후미가 중요하다는 말이에요. 적들의 기습은 항상 뒤쪽에서부터 이뤄지기 마련이지요. 앞에서 나타나는 적은 뭐…….”

흑미랑은 말끝을 흐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 모습에 영호가 반사적으로 물었다.

“앞에서 나타나는 적은 뭔가요? 지금 하시려던 얘기 계속해 보십시오.”

“자신이 있기에 앞에서 나타나는 거죠. 앞에서 나타나는 적을 만난다면 무조건 도망쳐야죠.”

“흠.”

영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흑미랑을 바라봤다.

면사 때문에 외모는 확인을 못 했지만, 분명히 비겁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영호는 하오문의 수준이 그러면 그렇지,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흑미랑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뒤쪽 호위가 제일 중요해요.”

“알겠습니다. 제가 뒤쪽은 확실하게 경계하겠습니다.”

영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빈에게서 열 걸음 정도 떨어져서 걸어갔다.

그들은 그렇게 말없이 두 시진 정도를 걸어갔다.

영호는 그들의 뒤를 따라가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는 이상했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잠이 밀려 들어왔다.

전에 살수의 임무를 수행했을 때, 이틀 정도는 잠을 자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어제는 반 시진도 못 참고 잠이 들었던 것이다.

순간 영호는 어제의 상황이 떠올랐다.

무위가 낮은 여자 호위와 서생 그리고 어딘가 숨어 있을지 모르는 진짜 호위.

영호는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슬쩍 기감을 끌어올려 봤다.

주변에 숨어 있는 호위를 찾기 위해서였다.

천천히 걸어가며 기감을 천천히 끌어올리려 할 때였다.

탁.

자신의 등에서 찰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느껴지는 통증.

영호의 끌어올렸던 감각이 뒤엉켰다.

갑자기 꼬이는 것만 같은 진기.

영호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괜찮으십니까?”

“괘, 괜찮습니다.”

“표정이 괜찮은 게 아닌 것 같은데요.”

“…….”

영호는 한빈을 멍하니 바라봤다.

한빈의 말대로 괜찮지 않은 것은 맞았다.

그런데 그 원인이 한빈이었으니, 이건 병 주고 안부 묻는 꼴이었다.

약이라도 주면 모를까.

저리 모른 척하는 모습에 다시 노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때였다.

한빈이 다시 영호의 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탁. 탁.

순간 기혈이 들끓기 시작했다.

숨이 목까지 차오르며 얼굴이 벌게진 채 고개를 숙인 영호.

한빈은 두드리는 주먹에 더욱 힘을 주었다.

탁. 탁.

영호는 고개를 숙인 채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괜찮으십니까? 무사님.”

“이게 다 너…….”

영호는 말을 급히 멈췄다.

갑자기 속이 편안해지며 들끓던 기혈이 진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한빈이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영호가 손을 내저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서생이 두드린 덕분에 막혔던 기맥이 풀린 것이 분명했다.

그때 한빈이 다시 물었다.

“아까 만두와 소면은 너무 많이 드신 거 아닌가요? 아무래도 체한 것 같은데요.”

“저는 괜찮습니다.”

“에이, 아무래도 저쪽에서 쉬어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무사님.”

한빈은 숲속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제법 큰 공터가 있었다.

“저곳은 노숙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가운데는 저리 뚫려 있고 사방에는 커다란 나무들로 가득 차 있으니, 어디를 경계해야 할지 모르는 곳입니다.”

“무사님이 계신데 무슨 상관입니까?”

“험, 그렇긴 하지만…….”

영호는 영혼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오늘 밤 분명히 기습이 있을 것이었다.

그 기습은 바로 영호가 계획하고 있는 기습이었다.

영호는 오늘 밤 서생의 주머니를 털 계획을 세웠다.

그때 한빈이 손가락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그럼 빨리 준비해 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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