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433화 (433/621)

433. 칼을 가는 공자님 (3)

병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병영에서나 쓰는 나팔을 부는 상인이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다.

급기야는 이곳에 책임자인 동창의 서 태감이 달려왔다.

따가닥.

따가닥.

말을 타고 단숨에 달려온 서 태감은 병사를 바라봤다.

“무슨 일인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자들이 실성했는지 갑자기 나팔을 불었습니다.”

“왜 그랬다고 하느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당장 내치겠습니다. 그러니 태감님은 그냥 계십시오.”

“그렇게 하…….”

서 태감은 말을 멈췄다.

조호가 들고 있는 나팔이 눈에 익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성안에서 바람처럼 달려 나왔다.

휘릭.

마치 구름을 걷는 듯한, 신선 같은 걸음걸이.

그것은 화산의 보법 매화삼보였다.

매화 세 잎을 밟으면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매화삼보.

서 태감은 그가 앞에 오기도 전에 외쳤다.

“여기는 어쩐 일이시오? 강 교두!”

그의 말이 끝나자 사내는 서 태감의 앞에 섰다.

그는 다름 아닌 금의위의 강유찬이었다.

“서 태감도 잘 지내셨소? 저는 하북성주님과 함께 민생을 보살피기 위해 나와 있소.”

“민생이라……. 나와 같은 임무를 수행 중이시군.”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저 짐은 하북성주의 명을 받고 들어온 짐입니다.”

“흠.”

“저는 황제 폐하의 명을 받고 하북성주를 돕기 위해 온 것인데, 그것을 방해하시면…….”

“됐소. 하지만, 저 짐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살펴야겠소.”

“마음대로 하시지요.”

강유찬이 수레를 가리키자 서 태감은 씩 웃었다.

그는 금의위의 강유찬이 자신을 너무 쉽게 봤다고 생각했다.

저 중에 하나라도 자신의 눈 밖에 나는 물건이 있으면 통과를 시키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중에는 곡물도 포함되었다.

거기에 나라에서 금지하는 품목은 예상외로 많았다.

그중에 하나라도 걸리면 눈앞에 있는 행렬은 모두 돌려보낼 작정이었다.

서 태감이 턱짓하자, 뒤쪽에서 병사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열 명이 한 조가 된 병사들 앞에는 병영에서 쓰는 군견까지 있었다.

한편 그 모습에 강유찬은 혀를 찼다.

얼마 전 한빈은 전서구를 통해 몇 가지 부탁을 해 왔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지금의 상황이었다.

강유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군견까지 동원한 것을 보면 절대 이 수레를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분명히 한빈이 말한 대로였다.

한빈은 이곳을 막는 자들은 누군가와 연관되어 있다고 했다.

그 누군가는 나라를 좀먹는 이들이고 말이다.

강유찬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라와 황제를 생각하자 가슴이 꿈틀대는 그였다.

그때 병사들이 군견을 이끌고 수레 앞에 당도했다.

병사 중 수장으로 보이는 이가 외쳤다.

“태감 나으리! 지금 덮개가 수레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습니다. 이건 찢어야 할 듯싶습니다!”

병사는 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수레에 걸친 천을 잡았다.

그는 서 태감을 조용히 바라본다.

훈련이 잘된 병사들은 오직 태감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 태감이 고개를 돌려 강유찬을 보더니 씩 웃었다.

“무슨 물건을 숨겼기에 저렇게 꽁꽁 싸맸을까 모르겠습니다, 강 교두.”

“그건 저도 모르지요.”

강유찬이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 수레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서 태감이 묘한 웃음을 지었다.

웃음도 잠시, 서 태감은 말없이 손을 좌에서 우로 그었다.

휙.

그게 신호였는지 병사들은 그들의 검으로 수레에 덮인 천을 사정없이 썰었다.

부욱.

쭈욱.

그러고는 걸레 조각이 된 덮개를 걷어 냈다.

순간 상인으로 위장한 적혈맹호대 대원들이 황급히 코와 입을 가렸다.

그 모습에 동창의 병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코와 입을 가리는 행동이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다.

동시에 군견들이 먼저 반응했다.

깨갱.

깽.

그것은 처절한 울부짖음.

놀란 군견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동창의 병사들도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갑자기 올라오는 퀴퀴한 냄새 때문이었다.

그들이 수레에 덮인 천을 찢자 냄새가 새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다들 조심……. 헉.”

“모두 경계 태세를…… 헉!”

병사들은 숨을 쉬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 태감이 말했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오!”

“무슨 짓이라니요? 태감님이 직접 저 상인에게 확인해 보시죠.”

강유찬은 모른 척 앞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상인으로 위장한 소대섭이 있었다.

강유찬이 턱짓하자 소대섭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태감 나리께서 직접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저건 약초입니다.”

“약초라니…….”

서 태감은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소대섭이 말을 이었다.

“소양초라고, 들어 보셨나요? 개똥 냄새가 난다고 해서 개똥풀이라고도 불리죠.”

“음.”

“이곳에 약재가 부족할 것 같아 강유찬 어르신이 직접 주문한 약재들입니다.”

소대섭의 대답에 서 태감은 고개를 돌렸다.

“그게 사실입니까?”

“뭐, 사실입니다. 제가 그래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하북성의 민생에 꼭 필요한 거라고 말입니다. 이곳 하북성에서는 강호인들이 언제 난동을 피울지 모르지 않습니까? 일이라도 터지면 약재가 부족할 테고…….”

강유찬은 쉬지 않고 설명을 이었다.

그 모습에 소대섭도 놀랐다.

금의위의 수장이라 하는 사람이 이렇게 입을 잘 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지금 보니 그도 자신의 주군인 한빈과 같은 부류라 생각이 들었다.

소대섭이 놀라고 있을 때, 서 태감이 눈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주변을 바라봤다.

서 태감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개똥풀이라 불리는 소양초는 그도 들어 봤다.

배앓이와 상처에 효과가 좋아 백성들이 주로 쓰는 약초였다.

약초라고는 하지만, 재배할 필요 없이 하남 지역에서는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면 이렇게 상인이 옮길 필요도 없는 물건이었다.

“진작 말을 해 주시…….”

서 태감은 눈을 찡그리며 다급하게 코를 막았다.

그는 재빨리 손은 들어 하북성의 입구를 가리켰다.

통과시키라는 신호였다.

하지만 수레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병사 중 수장이 소리쳤다.

“어서 통과하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

“죄, 죄송합니다. 이대로 성안으로 들어가면 냄새 때문에 난리가 날 것이라 여기에서 다시 정비를 좀 하고…….”

그 말에 병사들은 서 태감을 바라봤다.

서 태감은 깊게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보기 싫으니 빨리 통과시켜라.”

그 말에 상인으로 위장한 적혈맹호대는 떠밀리다시피 해서 성문을 통과했다.

성문에서 한참을 가서야 소대섭은 강유찬에게 포권했다.

“대인, 감사합니다.”

“괜찮네. 이 모든 게 팽 공자의 부탁이며 황제 폐하의 명이네.”

“명이라니요?”

“흠. 그건 비밀이네.”

“아, 대인까지 저희 공자님을 따라 하시면…….”

소대섭은 슬쩍 말끝을 흐렸다.

말하다 보니 자신이 금의위의 강유찬을 놀리는 것 같아서였다.

그와 자신의 신분은 천양지차.

평상시 교분이 없다면 목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 모습에 강유찬이 말했다.

“그리 긴장하지 않아도 되네.”

말을 마친 강유찬은 남쪽을 슬그머니 바라봤다.

그러고는 다시 동쪽을 바라봤다.

남쪽은 한빈이 있는 쪽이고 서쪽은 황제가 있는 쪽이었다.

강유찬이 받은 한빈의 전언은 황제에게도 보고되었다.

황제는 흔쾌히 강유찬에게 하북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명했다.

거기에 황제는 한 가지 부탁을 했었다.

강유찬은 품속에 고이 넣어 놓은 황제의 전언을 확인했다.

황제가 일개 무인에게 하는 부탁이라…….

강유찬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피워 냈다.

* * *

사흘 후.

장운현과 하북성의 경계에서 상인 무리가 노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노숙하기 위해 피워 놓은 모닥불 주변에서는 쌀 익는 냄새와 고개 타는 냄새가 쉬지 않고 풍겨 나왔다.

그중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역시 토끼구이였다.

광개가 굽는 토끼구이는 몇 날 며칠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 중 하나였다.

백미랑은 자신의 배를 만져 봤다.

요즘 어찌나 잘 먹었는지 이전에는 없던 뱃살이 살짝 잡혔다.

하지만 반대로 피부는 그 어느 때보다 고와졌다.

뱃살을 만지고서는 미간을 좁히던 백미랑이 쓱 얼굴을 만지고서는 화사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설화가 물었다.

“언니, 왜 그렇게 웃어요?”

“아, 그게 비밀이라고…….”

“피부가 고와지셨네요.”

예리하게 치고 들어오는 설화의 말에 백미랑은 흠칫 표정을 굳혔다.

그 표정을 본 설화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맞혔죠? 이것도 드세요.”

설화가 당과를 내밀었다.

백미랑은 본능적으로 당과를 받아 들다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절대 안 돼.”

“왜 안 돼요?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요.”

“그러니까 안 되지. 이것 때문에 뱃살이…….”

“그건 고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고기는 피부에라도 좋지, 당과는…….”

“당과도 피부에 좋아요.”

설화가 다시 당과를 내밀었다.

피부에 좋다는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당과를 받아 든 백미랑.

그때 그들의 뒤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스윽.

순간 백미랑의 등에서 소름이 돋았다.

살기가 아닌 귀기를 느껴 보기는 오랜만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누군가 눈이 휑해서는 백미랑이 든 당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기의 주인은 다름 아닌 앞에 있는 자였다.

자세히 보니 귀기를 내뿜는 이는 여인으로 보였다.

백미랑이 뒤로 물러나며 설화와 청화를 보호하듯 두 팔을 벌렸다.

그때였다.

앞에 선 괴인이 말했다.

“언니.”

“엥?”

백미랑의 눈이 커졌다.

괴인이 갑자기 자신을 언니라 하니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들어 본 목소리였다.

그때 괴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언니. 배, 배가 고파…….”

더듬거리며 말을 잇는 상대를 본 백미랑은 눈을 크게 떴다.

“혹시 그 목소리는 흑미랑?”

“이, 이제야 알아보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언니, 여태껏 한숨도 못 자고 한 끼도 못 먹었어.”

“그게 무슨 말이야. 호북 하오문이 망하기라도 했어?”

“그게 아니라……. 언니가 전서구로 보낸 그 하오문의 귀인을…….”

흑미랑은 힘든지 말을 잇지 못했다.

백미랑은 흑미랑이 누굴 가리키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과 처음 동행했던 하북팽가의 사 공자를 말함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서구도 줄기차게 날아왔었다.

그때 흑미랑이 다시 백미랑이 들고 있는 당과를 가리켰다.

“언니, 그것 좀…….”

“……그래, 여기 있어.”

백미랑이 당과를 건네자 흑미랑은 허겁지겁 받아먹었다.

흑미랑이 당과를 한입에 다 털어 넣었을 때였다.

설화가 다시 당과를 건넸다.

“이것도 드세요.”

“고맙다. 그런데 누구?”

“여기 있는 백미랑 언니 친구예요. 그런데 언니는 왜 백미랑 언니를 언니라고 불러요?”

설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이들도 설화와 똑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백미랑도 마찬가지였다.

본래라면 쌍둥이인 그들의 외모는 누가 봐도 구별하지 못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흑미랑은 위태로울 정도로 말라 있었다.

물론 자신이 생각보다 많이 불었다는 것도 잊고 있는 백미랑이었다.

그 차이가 둘을 쌍둥이로는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한참 동안 동생을 보던 백미랑이 물었다.

“왜 잠을 못 잤는데?”

“밤새 달려왔어. 가끔 잠을 자려고 하면 공자님이 자꾸 칼 갈아서…….”

백미랑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를 가는 것도 아니고 칼을 간다니?

그때였다.

백미랑이 눈을 가늘게 떴다.

흑미랑의 말대로 어디선가 칼을 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스윽.

스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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