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 사람을 남기는 장사 (6)
강유찬은 군견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수레에 실려 있는 춘약은 그 효력이 대단합니다. 아마도 이 춘약의 이름은 춘동환(春冬丸)일 겁니다.”
강유찬의 말은 사실이었다.
‘춘’ 자가 들어가서 사내에게 좋은 약으로 보이지만, 춘동환은 그 약효가 너무 강력했다.
봄을 잠시 유지시키다 깊은 겨울잠에 빠지게 만드는 약이었다.
그런 관계로 관과 무림 양측 다 이 춘동환을 금지시키게 된 것이다.
인구를 늘려 주는 것이 아닌 백성들의 수를 줄여 주는 춘약이 바로 춘동환이었다.
춘약의 정체가 밝혀지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동창의 병사들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휴. 그 냄새만으로도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고 전해지는 춘약이 아닌가?”
“군견들이 저리 미쳐 날뛰는 이유가 있었어.”
“그러게 말이야. 군견들은 사람보다 몇십 배 더 후각이 예민하지.”
그들은 수레 속에 누런 종이를 바라봤다.
춘약을 감싼 누런 종이는 바로 유지였다.
기름을 먹인 종이인 유지는 원천적으로 습기와 공기를 차단시킨다.
덕분에 냄새가 새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후각이 예민한 군견은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춘약을 찾아냈고.
통제에서 벗어난 군견은 춘약을 먹기까지 했다.
자세히 보면 군견이 먹은 것은 한 알이 아니었다.
뜯어져 있는 유지만 몇십 개였다.
군견이 춘약을 먹은 것은 어찌 보면 동물의 본능이었다.
모두는 해롱대며 게거품을 문 군견을 바라봤다.
그들 중 몇은 춘동환의 모양이 궁금한지 수레에 고개를 내밀었다.
그때였다.
수레 가까이 있던 동창의 병사 하나가 눈이 풀린 채 비틀거렸다.
그러고는 동료 병사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모두는 수레에서 떨어졌다.
향기를 맡은 것만으로도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동창의 병사들마저 군견을 보며 혀를 찼다.
갑작스러운 난장판에 병사들은 입과 코를 급히 막고 춘약에 중독된 병사들을 제압했다.
한마디로 개판이 된 상황.
위상호가 결심했다는 듯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이건 모함이오.”
“모함이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강유찬이 무표정한 얼굴로 묻자, 위상호가 답했다.
“이 물건은 모두 장운현의 어느 상인에게서 사 온 것이오.”
“얼마에 사셨습니까?”
“금화 이백 냥의 값어치를 주고 산 곡식이오.”
“이백 냥이라……. 그렇게 비싼 가격을 줬단 말씀입니까?”
“그렇소. 우리 위씨 가문을 의심하는 것이오?”
그의 목소리에는 중후한 내공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에 강유찬은 기가 찼다.
잘못을 하고도 저리 당당할 수 있는 자는 중원에 그렇게 많지 않았다.
자신은 황제의 명을 수행하는 사람.
그런데 자신의 앞에서 어찌 이리 당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때 다시 깃발이 글자를 그렸다.
평(平).
마음을 다스리라는 말이었다.
강유찬은 일단 표정을 수습하고 물었다.
“곡식 가격치고는 너무 높지 않습니까?”
“요즘 곡식값이 올랐소. 나는 하북성의 백성을 구휼하기 위해 이 곡식을 사서 방문한 것이오.”
위상호는 당당하게 줄줄이 늘어선 수레를 가리켰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당당하게 나가야 함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분명 모함이 맞았다.
거기에 거래할 당시 증인들도 많았다.
수레에 불까지 났던 그 아수라장을 그곳 상인들이 기억 못 할 리 없었다.
위상호의 표정에 옆에 있던 서 태감도 안도한 듯 평정을 찾았다.
그들의 모습에 강유찬이 말을 이었다.
“그 말이 증거가 될 수는 없소.”
“그럼 물어보시오.”
위상호가 맞받아칠 때였다.
금의위 무사가 외쳤다.
“나머지 수레가 조금 이상합니다!”
수하의 외침에 강유찬은 재빨리 달려갔다.
강유찬을 따라서 서 태감과 위상호도 달려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금의위 무사는 수레 하나를 가리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사가 가리키는 수레 안에는 누가 봐도 평범한 흙이 들어 있었다.
곡식이 들어 있거나 춘약이 들어 있어야 할 수레에 아무런 가치 없는 흙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강유찬이 말을 이었다.
“위 대협께서는 이 흙을 이백 냥의 값어치를 주고 샀다는 말씀입니까? 누가 봐도 춘약을 들여오기 위해 나머지 수레에는 흙을 실어 놓고는 위장한 것이 아닙니까?”
강유찬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그 모습에 위상호가 다급하게 외쳤다.
“보시오. 장운현에 있는 상인들에게 물어보시오! 저 수레를 우리가 언제 샀는지 말이오!”
“음.”
강유찬은 악을 쓰는 위상호를 보며 침음을 삼켰다.
지금 그의 죄목은 너무 악랄했다.
인간에게 한순간의 쾌락을 선사하고 영원히 골로 보낸다는 독보다도 무서운 춘동환을 유통한 것은 내란죄에 준한다.
위상호는 이 포위망을 뚫고 달아날 수 있는 고수였다.
하지만 가문 자체를 두고 숨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일단은 그에게 죄를 물어야 했다.
강유찬이 금의위에 지시를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위상호가 외쳤다.
“저기를 보시오, 저기!”
그의 외침은 사자후와도 같아서 모두의 시선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인 시선은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그곳에는 상인으로 보이는 사람 하나가 성문을 지나기 위해 금의위에 부탁하고 있었다.
모두는 갑자기 낯선 상인을 보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위상호가 다시 외쳤다.
“저자는 장운현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증명해 줄 자요.”
“저자가 증인이란 말입니까?”
“그렇소. 그는 내가 묵었던 객잔의 주인이오. 그리고 위씨세가가 사기를 당하는 광경도 목격했소이다. 저자에게 물어보시오.”
어찌나 힘차게 상인을 가리키는지 그의 검지에서는 지풍이라도 나갈 것 같았다.
그 모습에 강유찬은 신호를 내렸다.
강유찬의 신호를 받은 상인이 앞으로 끌려왔다.
상인은 겁에 질린 채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그 상인을 본 위상호는 사람 좋은 얼굴로 물었다.
“나를 알아보시겠소?”
“저희 객잔에서 묵었던 무림세가분 중 한 분이 아니십니까?”
“알아보는구려. 그럼 내가 어떤 젊은 사기꾼에게 당했다는 것을 좀 말해 주시구려.”
“네?”
“젊은 상인이 수레에 불을 지르면서 나와 거래하지 않았소? 그 얘기를 여기서 해 주면 된다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때 나를 따라 나와 보지 않았소?”
“급하게 나가시는 건 봤습죠. 돈도 안 내고 가셨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돈을 받으러 온 것뿐입니다요.”
“…….”
“어서 셈을 치르시지요.”
상인은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위상호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의 객잔 주인은 분명 젊은 행수와 자신의 거래를 봤을 것이었다.
저잣거리에서 난리가 났는데 그 광경을 보지 못할 자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돈을 내지 않고 왔다는 것은 맞을 수도 있었다.
철혈검대를 급히 불러 이곳으로 온 것이 맞으니 말이다.
그때 금의위 무사가 성문 앞에서 기다리던 백성 몇을 추가로 데려왔다.
“여기 이자들도 장운현에서 장사하는 상인이라 합니다.”
“흠, 그렇군. 그럼 그들에게 위상호 대협의 말이 맞는지 물어보아라.”
강유찬의 말에 금의위 무사는 다른 상인들에게 위상호가 설명했던 일이 있었는지를 몰아봤다.
질문을 이어 가던 금의위 무사들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 일이 없었단 말이오?”
“저잣거리에서 그런 큰일이 났으면 저희가 왜 못 보았겠습니까요? 그리고 수레를 태우는 상인이 어디 있습니까?”
“그건 그렇군.”
“그럼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요.”
“그러시오. 다음 사람에게 물어보겠소.”
그렇게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모두가 고개를 내젓기 바빴다.
질문이 계속될수록 위상호의 눈은 커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모두는 위상호와 젊은 행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른다고 했다.
그 모습에 위상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내가 말한 장소로 가면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오! 그 장소 주변에 있는 상인에게 물어보시오!”
위상호의 말에 강유찬은 수하 하나를 불렀다.
“네가 대협이 말한 장소로 갔다 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존명.”
“잠시만 기다리거라.”
강유찬은 손바닥을 보이며 떠나려는 수하를 멈춰 세웠다.
그는 고개를 돌려 서 태감을 바라봤다.
“서 태감의 병사도 한 명을 보내죠. 이런 일은 한 치의 착오 없이 처리해야 황제 폐하께 누가 되지 않는 법이니까요.”
“좋소.”
고개를 끄덕인 서 태감은 재빨리 수하 한 명을 추려 금의위 무사에게 딸려 보냈다.
무사 둘은 제법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획.
그들이 사라지자 성문 주변은 침묵에 휩싸였다.
지금의 일에 성급하게 입을 여는 자는 누구도 없었다.
이곳에 끌려와 증언을 한 백성들도 두려운 듯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사실, 금의위의 수장인 강유찬도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위상호의 표정을 보면 그의 말이 사실인 듯싶었다.
하지만 백성들의 증언을 보면 그의 말은 모두 허언이었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하북팽가의 사 공자가 보낸 마지막 글자는 정(正)이었다.
자신이 진행한 일이 맞다는 뜻이었다.
강유찬은 하북팽가의 사 공자의 편에 설 생각은 아니었다.
황제 폐하의 편에 설 뿐이었다.
다만 이번 일이 황궁의 안위와 직결되기에, 하북팽가의 사 공자인 한빈의 말을 전적으로 따르고 있는 것이었다.
암제란 작자와 위씨세가의 가주가 관계가 있을까?
일단 죄목이 있으니 잡아들여 캐내면 되었다.
모두가 마른침만 삼키고 있을 때, 강유찬이 보낸 무사가 돌아왔다.
그 무사는 강유찬의 앞에 포권했다.
“다녀왔습니다, 대인.”
“알아본 것은?”
강유찬이 짧게 묻자 무사가 답했다.
“거리에 불에 탄 흔적도 없거니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그런 일은 없다고 합니다.”
그의 말에 위상호가 외쳤다.
“절대 사실이 아니다!”
그의 외침에 멀리 있던 누군가가 뛰어왔다.
그는 위상호의 아들인 위지천이었다.
위지천은 강유찬에게 포권한 뒤 말을 이었다.
“아버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것은 모함입니다.”
뒤를 이어 위지약도 악을 쓰며 외쳤다.
“모함이 맞아요. 저도 똑똑히 봤어요!”
위지약의 얼굴은 불에 달군 것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얼굴만 보면 그들은 억울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수사에 있어서는 증거가 먼저였다.
강유찬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서 태감이 난감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시선이 마주치자 서 태감은 자신이 보낸 병사를 바라봤다.
“너도 증거를 못 찾았느냐?”
“저잣거리에는 그 어떤 증거도 없었습니다. 저 백성들이 증언한 것이 맞습니다.”
그 말에 서 태감의 눈빛이 바뀌었다.
갑자기 깊어진 눈빛.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순간 서 태감은 강유찬을 향해 포권했다.
“제가 실수가 있었습니다. 이자들은 동창에서 처리하겠습니다. 춘동환을 유통한 것은 내란죄에 준하는 만큼 이곳에서 저들의 목을 치겠습니다. 모두 이자들을 잡아라!”
갑자기 돌변한 서 태감의 태도.
그냥 잡아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들의 목을 베겠다는 것이다.
그 모습에 위상호의 표정이 이전보다 더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무서운 기세로 검을 뽑았다.
스릉.
동시에 외쳤다.
“위씨세가는 적들을 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