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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449화 (449/621)

449. 만근교 위의 고수들 (5)

상대를 바라보던 위상호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심검이라면 왜 굳이 허벅지를 노렸는가 하는 점이었다.

자신의 심장을 노렸으면 이 승부는 끝났을 터.

여러 의문을 떠올리던 위상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약속 장소로 가야 할 때였다.

이곳에서 너무 시간을 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적룡의 존재가 여간 귀찮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가 심검을 사용한다면 거기에 맞설 무공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는 마지막 극의를 쓰기로 했다.

이것은 그가 아직 완성하지 못한 무공이었다.

위상호는 어릴 적 자신을 구해 주었던 신선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었다.

어떻게 신선님처럼 걸을 수 있냐는 질문이었다.

그때 신선은 위상호에게 몇 마디 선문답 같은 구결을 전해 줬다.

위상호는 그 구결을 평생 쫓았었다.

신선의 발끝을 쫓다 보니 얻게 된 극의의 무공.

문제는 이 무공을 펼치려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무공의 이름은 천라신선보(天羅神仙步).

위상호는 조용히 상대를 바라봤다.

신선의 일보(一步)는 세상이요.

신선의 이보(二步)는 하늘이니, 그 걸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담는다.

이것이 바로 천라신선보의 요결이었다.

위상호가 고민하던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였다.

그의 발끝이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허공을 바라봤다.

방금 획득했던 구결이 허공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천급 구결 목(目)을 획득하셨습니다.]

[천급 – 일(一), 요(瞭), 목(目)]

이제 하나만 획득하게 되면 천급 초식 하나를 더 얻게 되는 상황이었다.

한빈이 구결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그의 눈앞에 위상호가 나타났다.

한빈은 재빨리 고개를 돌리는 동시에 월아를 들었다.

캉!

굉음과 함께 둘 사이에 섬광이 번쩍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한빈과 위상호의 두 번째 격돌이 시작되었다.

챙. 챙.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는 악사가 연주한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일정한 간격으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아미백선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간격이 점점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챙!

챙!

점점 빨라지던 소리가 급기야는 하나의 소리로 이어졌다.

채-앵!

검을 나누는 그들의 속도가 너무 빨라 만들어진 결과였다.

너무 빠르게 격돌하다 보니 소리를 나눌 수도 없는 것이다.

아미백선의 눈에는 누가 공격하는 것이고 누가 막는 것인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화경의 고수들이 검을 나눈다고 해도 그녀의 눈이 좇지 못할 리 없었다.

아미백선이 보기에 둘의 무공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사실 가장 놀란 것은 한빈이었다.

지금 위상호에게는 내공이 느껴지지 않았다.

위상호는 기세마저도 피워 내지 않고 있었다.

그의 검은 잔잔한 호수의 물과도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위상호의 검은 갑자기 빨라졌다.

한빈은 속도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것은 조금 전까지의 일이었다.

지금 위상호의 검은 자신의 속도를 능가하고 있었으니까.

위상호의 검은 처음과 비교해 두 배가 빨라졌다.

한빈은 그의 검을 막기에 급급했다.

챙!

둘의 검날이 잔잔한 악곡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뒤쪽으로 밀리는 한빈.

위상호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사삭.

동시에 위상호의 검이 더 빨라졌다.

정확한 속도는 모르겠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두 배 정도 빨라진 것 같았다.

그러니 처음과 비교하면 거의 네 배가 빨라진 것이다.

그가 쓰는 검술은 똑같은데 속도만 바뀐 것에 한빈은 적잖게 놀랐다.

이런 상황은 한빈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 승부에서 이기려 한다면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한빈은 위상호의 눈을 보았다.

위상호의 눈에는 살기가 없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모든 것이 방금 일어난 격돌부터 바뀌었다.

그때였다.

위상호가 무심한 눈길로 한빈을 바라봤다.

“대단하구나.”

“…….”

한빈은 답하지 못했다. 잠시라도 틈을 보이면 상대의 칼날이 목을 꿰뚫을 것만 같았다.

그때는 기사회생을 사용해도 회복할 수 없을 터였다.

한빈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봤다.

순간 한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대로 나가면 승산이 없었다. 이제는 승부수를 던져야 했다.

한빈은 재빨리 용린의 힘을 얹은 월아로 위상호의 단전을 노렸다.

픽!

위상호의 검이 한빈을 뚫었다.

하지만 한빈의 검은 위상호의 단전 한 치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단전에 꿰뚫리기 전 위상호가 급하게 한빈의 검을 쳐 냈다.

챙.

하지만 한빈은 계속 아래를 찔러 들어갔다.

비릿한 혈향 속 한빈은 무지막지한 속도로 위상호의 단전을 노렸다.

속도에서 밀리다 보니 한빈의 상체가 자연스럽게 열렸다.

순간 위상호가 그윽한 눈으로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의 검을 막은 위상호의 검이 원을 그리면서 한빈의 상체로 향했다.

그가 노린 것은 정확히 한빈의 목이었다.

위상호도 한빈의 무공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빈의 무공은 마치 어릴 적 봤던 신선이 쓰던 무공과 같았다.

하지만 신선에 비하면 깊이가 얕았다.

위상호는 최근 깨달음이 없었다면 한빈에게 밀릴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쓰러질 것이라면 벌써 쓰러졌어야 할 상대는 오뚝이처럼 일어나고 있다.

상대를 죽이려면 일 검에 목을 베어야 한다는 것을 위상호는 알고 있었다.

물론 시간문제였다.

그가 지금 천라신선보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천라신선보는 단순한 보법이 아니었다.

신선의 일보는 시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시간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바로 속도였다.

위상호가 내디디는 일보마다 그가 펼치는 초식의 속도가 배로 증가한다.

지금 위상호는 천라신선보를 이용해 단 두 걸음을 걸었을 뿐이었다.

한 걸음에 두 배라면 두 걸음이면 그는 평소의 네 배 속도를 내는 것이었다.

그 말인즉 천라신선보를 무한히 펼칠 수 있다면 신선의 한계조차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천라신선보의 한 걸음에 혈맥을 통해 흐르는 진기의 속도가 두 배 빨라진다.

지금은 두 걸음을 걸었으니 정확히 네 배 빨라져 있었다.

보통 무인의 혈맥에서 진기가 네 배 더 빨리 흘러 들어간다면 아마도 내부는 바로 걸레가 될 것이었다.

위상호는 천라신선보 중 세 걸음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가 세 걸음을 걸을 수 있었던 것도 부단히 혈맥을 강화했기 때문이었다.

단전이면 몰라도 혈맥에 신경을 쓸 수 있는 자가 있을까?

물론 아무도 없었다.

즉, 천라신선보를 펼칠 수 있는 자는 천하에 위상호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네 걸음을 걷게 된다면 혈맥은 갈가리 찢어져 그의 내부는 터지고 만다.

위상호에게도 세 걸음이 한계였다.

사실 두 걸음에서 이 승부가 끝나면 위상호도 여유 있게 이곳을 떠날 수 있었다.

상대가 힘이 조급했는지 중심이 아래쪽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모든 공격과 방어가 가슴을 기준으로 아래쪽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위상호는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러고는 아래쪽에서 공방을 주고받았다.

그곳도 잠시, 위상호의 검이 가볍게 위쪽으로 튀어 올랐다.

동시에 그의 검이 눈 깜짝할 사이에 한빈의 목을 그었다.

이제 길었던 승부에 종지부를 찍을 때였다.

캉!

이상한 소리에 위상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의 육체를 그었다는 느낌보다는 마치 상대의 병기와 부딪친 느낌이었다.

순간 자신의 목이 뜨끔했다.

자신의 몸을 만지며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갑자기 허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위상호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통증이 느껴졌던 목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허리에서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다.

위상호는 재빨리 진기로 상처를 감쌌다.

그러고는 상대를 바라봤다.

사실 고통은 그리 크지 않았다.

천라신선보에는 호신강기를 피워 내는 능력도 있었다.

혈맥을 따라 기운이 네 배로 달리는데 진기가 새어 나가지 않을 수 있을까?

새어 나간 기운은 자연스레 신체를 옅게 감싸기 마련이었다.

자연스럽게 몸을 감싸는 호신강기와 믿을 수 없는 검의 속도.

이것이면 천하제일인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통보다는 짜증이 스멀스멀 가슴속에서 피어났다.

묘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상대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고민했다.

자신의 한계인 세 걸음을 펼쳐야 하는지를…….

한빈은 물러난 상대 대신 허공을 바라봤다.

한빈이 쓴 초식은 두 가지였다.

그것은 바로 ‘금상첨화’와 ‘역지사지’였다.

금상첨화는 신체 강화 수법이었다.

목을 베었는데 상대가 멀쩡하다면 아마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무인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역지사지가 주는 반탄력을 이용한다면?

상대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한빈은 상대가 당황한 틈을 노리기로 했다.

하지만 구결을 얻기에는 상처가 조금 얕았던 것도 같았다.

구결을 획득했다는 문구가 안 보이니 한빈의 걱정은 당연했다.

하지만 한빈은 다른 글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역지사지 속에 있는 상대의 초식 분석 효과였다.

때마침 새로운 글귀가 나타났다.

[역지사지로는 상대의 초식을 분석할 수 없습니다. 분석을 위해서는 새로운 초식이 필요합니다.]

한빈이 쓴 입맛을 다시려 할 때였다.

다시 글귀가 이어졌다.

[천급 구결 연(然)을 획득하셨습니다.]

순한 한빈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한빈은 이 글귀가 늦게 나타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그만큼 상대가 강하기 때문이다.

낚시할 때도 강한 놈을 낚을 때는 시간이 걸리는 법 아니겠는가.

그때 다시 글귀가 이어졌다.

[천급 – 일(一), 요(瞭), 목(目), 연(然)]

[천급 초식 일목요연(一目瞭然)을 획득하셨습니다. 일목요연은…….]

한빈은 허공에 떠 있는 설명을 읽지 못했다.

위상호가 한 발 앞으로 나오며 자신을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이상한 것은 그의 검이 이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휙. 휙.

그의 검이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속도 때문이었다.

주변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그의 검에 따라붙는다.

속도 때문에 만들어지는 검기의 파동이 한빈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빈은 재빨리 새로운 초식을 떠올렸다.

‘일목요연.’

이 초식이 뭘 뜻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은 설명을 읽은 시간도 없었다.

일목요연을 펼치자 눈앞에 환영이 나타났다.

그것은 위상호의 몸에서부터 시작해서 위상호의 검 끝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마치 무한하게 실타래를 푸는 것처럼 선은 계속 이어져 나갔다.

그때 선이 쪽 어딘가로 날아온다.

그것은 자신의 가슴 쪽이었다.

한빈은 재빨리 검을 대각선으로 그었다.

챙!

가슴을 향해 날아오던 검을 튕겨 냈다.

한빈은 이제야 그 선의 의미를 알았다.

선은 다름 아닌 그가 펼치는 초식의 경로이고 진기의 흐름이었다.

순간 새로운 글귀가 나타났다.

[천라신선보를 관찰 중입니다. 관찰이 끝나면 일각 동안 천라신선보를 펼칠 수 있습니다.]

한빈은 눈을 크게 떴다.

일목요연이란 상대의 무공을 분석하는 초식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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