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465화 (465/621)

465. 지나가다 줍다 (4)

소군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 봤다.

한빈의 기억 속에 없다는 것은 강호의 역사에 그리 중요한 인물을 아니라는 얘기였다.

중요하지도 않은 인물이 아수라장에서 홀로 생존했다?

그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소군이라는 아이의 눈빛은 분명 진심이라는 점이었다.

거기에 내공 한 톨 없는 몸은 동네 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소군을 보던 한빈이 손을 내저었다.

“그만 됐다. 일단 날이 저물기 전에 노숙할 만한 장소를 찾아보자.”

자리에서 일어난 한빈은 천천히 걸어갔다.

* * *

두 시진 후.

산속에 한적한 공터가 나오자 일행은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리 고수라도 어두운 밤에 산길로 다닐 수는 없는 법이었다.

거기에 더해 지금은 걸음을 재촉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유림 서원에 도착해야 할 시간은 아직도 한 달 이상 남았다.

모닥불 위에서는 고기 꼬치가 이글이글 소리를 내며 익어 갔다.

청화가 꼬치가 타지 않게 쉬지 않고 뒤집고 있다.

설화는 광개에게 배운 대로 고기를 손질한 다음 양념을 바르고 있다.

설화와 청화는 노숙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능숙하게 자리를 꾸리고 끼니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런 모습을 본 소군은 안심한 듯 표정이 풀어졌다.

긴장이 풀린 듯 계속 침을 삼키는 소군을 본 청화가 말했다.

“너 지금 배고픈 거야?”

“배 안 고파요, 언니.”

“앗, 언니가 아니라 누이라고 해야지.”

“아까 둘이서는 언니라고 했잖아요.”

“우리는 언니라고 해야 하지만, 너는 아니야. 사내아이가 왜 우리한테 언니라고 해?”

“음……. 기억이 안 나요.”

“알았어. 편할 대로 부르고 일단 이거부터 먹어.”

청화는 소군에게 꼬치를 건넸다.

소군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청화가 뭔가 기억났는지 자신의 머리를 딱 때렸다.

그러고는 입을 딱 벌리며 한빈을 바라봤다.

“공자님, 죄송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청화야.”

“찬물도 아래위가 있다는 게 강호의 법도인데 제가 얘부터…….”

“알았으니 신경 쓰지 마. 환자부터 주는 게 당연하지. 나는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 청화 너는 그 아이부터 챙겨.”

“알았어요, 공자님.”

청화는 미안한 표정으로 다시 꼬치를 뒤집기 시작했다.

청화에게 꼬치를 받은 소군은 바람에 게눈 감추듯 고기를 다 먹어 치웠다.

그러고는 올망졸망한 눈으로 청화를 바라보고 있다.

청화는 그런 소군이 안타까웠는지 꼬치 한 개를 더 내밀었다.

청화는 소군이 꼬치를 다 먹어 치우는 동시에 새로 구운 꼬치를 내밀었다.

흐뭇한 눈으로 소군을 바라보는 청화.

독인으로 자라면서 감정마저 철저히 제거된 청화였다.

하지만 한빈과 만나면 가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녀의 친가족까지 찾게 되었다.

완전히 감정이 돌아온 지금, 그녀는 자신보다 어린 소군에게 측은지심이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이제까지 없었던 동생이 생긴 기분이었다.

항상 챙겨 받아야 할 존재에서 누군가를 챙겨 줘야 할 위치로 바뀐 듯한 착각이 들었다.

청화는 자신의 감정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니, 흐뭇하기까지 했다.

어찌 보면 이것은 소꿉놀이에 가까웠다.

쓱.

청화는 다시 꼬치를 내밀었다.

급하게 꼬치 두 개를 먹은 소군은 본능적으로 꼬치를 받아 들었다.

하지만 그저 보기만 하는 소군.

그 모습에 청화가 턱짓했다.

“빨리 먹어.”

“아, 알았어요. 언, 아니 청화 누님.”

“그래, 잘 먹어야 착한 아이지.”

청하는 이제 완벽하게 소꿉놀이에 빠져든 듯 보였다.

꼬치를 한 입 베어 문 소군은 물끄러미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때 청화가 활짝 웃으며 손짓했다.

“소군이랬지?”

“네, 누님.”

“괜찮으니까, 사양 말고 먹어.”

“아, 알겠어요. 가, 감사해요.”

“그렇게 감격하지 않아도 돼. 여기 꼬치는 많으니까 얼마든지 먹어.”

“…….”

하지만 소군은 꼬치를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청화는 꼬치 한 개를 더 들었다.

그때보다 못한 설화가 청화를 말렸다.

“청화야, 소군이 배 터지겠다.”

“언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쟤 배를 봐. 그리고 정도껏 먹여야지.”

“꼬치 여덟 개밖에 안 먹었는데요.”

청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기준에서는 한참 모자라는 양이었다.

공독지체는 독뿐만 아니라 뱃속도 허하게 만드는지, 평소에도 남들의 예닐곱 배는 먹는 설화였다.

어찌 보면 평소에 떡으로 배를 채우는 것도 공독지체 때문인지도 몰랐다.

설화가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아니, 그건 네 기준이고. 소군이는 한계 같아. 잘 봐 봐.”

“더 먹고 싶은 것 같은데요, 언니.”

고개를 갸웃하는 청화의 모습에 설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 소군아. 배불러서 못 먹겠다고 그냥 말을 해.”

말을 마친 설화는 소군을 쏘아봤다.

시선이 마주친 소군이 본능적으로 답했다.

“배, 배부른 거 같아요. 그, 그만요.”

놀란 청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소군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게 무슨 말이야? 배부르면 배불러서 못 먹겠다고 말하면 되지, 왜 말을 못 해?”

“무서워서요.”

소군의 눈이 촉촉해졌다.

그 모습에 설화가 웃었다.

“거봐, 무섭다잖아.”

“아, 내가 뭐가 무섭다고…….”

청화는 울 듯한 표정으로 한빈 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한빈은 고개를 돌린 채 꼬치를 한 입 베어 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 갔다.

한빈은 조용히 하늘을 바라봤다.

* * *

천산산맥의 깊은 골짜기.

그 골짜기의 중간에 살짝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불빛은 한 개의 호롱불이었다.

호롱불은 흑의인 둘을 비추고 있었다.

밖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호롱불이 비추는 흑의인들의 그림자가 기괴하게 흔들렸다.

그들은 생각할 수도 없는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마기가 어찌나 지독한지 그림자에까지 영향을 줄 정도였다.

그들은 흑의에 복면을 쓴 것도 모자라 가면까지 쓰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말한다.

“교의 장악 계획은?”

“다 끝났습니다.”

“소마군의 처리는?”

“소마군의 처리도 제가 보낸 아이들이 처리할 것입니다.”

“하하, 모든 것이 계획대로군.”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혹시라도 소마군의 마령지체가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자칫 마령지체가 깨어나게 된다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전쟁이 앞당겨지게 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아라. 만약 마령지체를 각성했다고 한다면 보름 안에 그 명을 다할 것이다. 부족한 공력에 마령지체를 각성하게 된다면 한 줌 핏물이 될 수밖에 없을 터.”

“흠, 그것도 그렇겠군요. 마령지체에 도전한 수많은 마인의 최후처럼요.”

“신교 밖의 일은 모두 내가 통제할 테니, 너는 신교 내부의 일이나 단속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성화의 불꽃 속에 진한 혈향이 담길 때까지!”

“그 혈향이 중원을 지배할 때까지!”

그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의미심장한 단어를 주고받았다.

지시를 내린 흑의인은 탁자 위에 호리병을 하나 올려놨다.

다른 흑의인은 그 호리병을 보며 깊숙이 포권했다.

순간 다른 흑의인의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남은 흑의인은 조그만 탁자 위에 놓은 호리병을 들었다.

그러고는 입으로 가져갔다.

그곳도 잠시, 그는 손을 멈췄다.

호리병에 든 내용물을 먹으려면 가면을 벗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면을 벗을까 고민하다가 이내 손을 거뒀다.

그는 대신 호리병을 그대로 품속에 넣었다.

이제 이곳을 벗어나 다시 신교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막 자리를 떠나려던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매가 먹이를 노려보듯, 다급히 주변을 살폈다.

한참 동안 주위를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손가락에서 한 줄기 바람이 날아갔다.

쉭!

바람은 정확히 호롱불을 껐다.

순식간에 석굴의 내부는 어둠에 휩싸였다.

흑의인은 조용히 석굴을 나왔다.

맞은편에도 절벽이 있었다.

두 절벽 간의 거리는 못해도 오백 걸음.

순간 구름이 걷히고 달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달빛을 받은 절벽에는 수백, 아니 수천 개의 점이 찍혀 있었다.

정확히는 점이 아니었다.

그것은 애묘(崖墓)라 불리는 무덤이었다.

이것은 신교가 있는 천산의 특성 때문이었다.

흙이 귀한 천산의 특성상 땅을 파서 사람을 묻는 것은 힘들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마교인들은 절벽에 석굴을 파고 사람을 묻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전해지는 바가 없었다.

그저 관습처럼 절벽에 무덤을 만들고 안장하던 것이 지금처럼 이런 애묘를 만들어 냈다.

이곳 천산의 절벽에 나 있는 석굴을 다 더한다면 못해도 수만 개가 될 터였다.

어찌 보면 적은 숫자였다.

하지만 이것은 당연하기도 했다.

석굴에 묻힌 이는 모두 신교 내에서 명을 다한 자였다.

마교인의 대부분은 신교의 외부에서 칼을 들고 상대와 맞서다 죽은 일이 많았으니 말이다.

흑의인은 주변의 애묘를 바라보다가 몸을 날렸다.

휙!

마치 날다람쥐처럼 애묘의 입구를 발판 삼아 절벽을 올라갔다.

그때였다.

그는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어딘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날아가는 은빛 암기.

한 줄기 섬광이 달빛을 머금고 옆쪽의 애묘 입구에 가서 박힌다.

푹!

순간 애묘의 입구에서 흐릿한 형체가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본 흑의인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뒤통수가 가렵더라니…….”

“누군지 가면을 벗어 봐라.”

상대는 회색 무복을 입은 중년의 무인이었다.

팔 척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체구에 부리부리한 눈.

마치 삼국지 속의 관우가 현신한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가 자신의 검을 뽑아 들고는 외치자, 흑의인은 피식 조소를 흘렸다.

“내가 벗으면 너는 목을 내놔야 할 텐데. 안 그런가? 천애마검.”

“내 별호를 아는 것을 보니 한자리해 먹은 놈이군.”

천애마검이라 불린 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의 가면을 바라봤다.

천애마검이라는 별호는 교주와 원로가 그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일반 신도는 그 별호를 아예 모르고 있었다.

상대가 천애마검이란 별호로 그를 불렀다는 것은, 상대 역시 교에서도 상당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었다.

천애마검이란 별호가 지어진 것은 우연이었다.

그의 성명절기는 일점향(一點香)이라 불렀다.

그의 찌르기에 특화된 무인이었다.

그 찌르기가 어찌나 독특한지, 그가 자신의 무공을 극성까지 펼치면 애묘 하나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만들어진 애묘에는 묘하게 향기가 났다.

그렇게 수련을 하다 보니 절벽에는 천 개가 넘는 애묘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를 본 교주는 그에게 천애마검이란 별호를 하사했다.

천애마검은 마교 서열 십 위에 있는 고수였다.

교주와 몇 명의 장로를 뺀다면 그를 무력으로 누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천애마검은 남들보다 세 뼘은 더 긴 검을 상대에게 겨눴다.

그때 상대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네 별호를 이렇게 편하게 언급했다는 건 네 멱을 딸 힘이 있다는 거겠지.”

말을 마친 그는 천애마검이 있는 애묘로 몸을 날렸다.

이전에 던진 암기보다 더 빠르게 흑의인의 몸이 천애마검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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