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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487화 (487/621)

487. 천재와 노력파 (2)

장유중은 표정을 수습하기 위해 일단 물을 들이켰다.

잠시 숨을 고른 장유중은 유생들을 하나씩 살폈다.

지금 장유중은 살짝 혼란스러웠다.

정답 근처에라도 간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유생은 바로 하북팽가에서 온 팽한빈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유생은 손을 들지 않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밤새도록 호롱불을 밝혔던 유생까지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 나머지를 제외한 모두가 자신 있게 손을 드는 모습은, 천재 학사라 칭송받던 그로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장유중은 일단 진실을 파악해 보기로 했다.

“자네가 한번 말해 보게.”

그가 가리킨 유생은 다름 아닌 최유지였다.

최유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소를 지었다.

“제가 찾은 정답에 대한 단서는 ‘습(習)’입니다.”

“오호, 그럼 그다음 단서도 찾았느냐?”

“다음에 찾은 것은 ‘학(學)’이라는 글자였습니다.”

“대단하구나.”

“아닙니다. 다른 유생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흠, 그럼 너 혼자 찾은 것이 아니더냐?”

“혼자 정답을 찾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혼자 정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넓은 유림 서원에서 정답에 대한 단서를 찾는다는 것은 넓디넓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생들의 힘을 모았습니다.”

“오호, 내가 문제를 낸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구나. 그래서 나머지 단서도 찾았느냐?”

“네, 찾았습니다.”

“다른 유생들도 너와 뜻을 같이했다고 하니 내 편히 물어보마. 나머지 글귀는 어떻게 되더냐?”

“모든 글자를 조합해 보면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라는 글자가 나옵니다.”

“그럼 해석도 마저 해 보는 게 좋겠군.”

“학이편에 나오는 문구로, ‘배우고 때에 막게 익히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공자님의 말씀입니다.”

“그래, 정답이다.”

“감사합니다.”

최유지가 살짝 고개를 숙이자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최유지와 같은 배를 탄 유생들의 탄성이었다.

“와.”

“장유중 학장님의 시험을 통과한 유생은 없다던데…….”

그들의 탄성을 뒤로한 채 장유중이 말을 이었다.

“내가 왜 이 문제를 냈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은 저희의 마음가짐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유지가 작게 고개를 숙이자 장유중이 말을 이었다.

“기특하구나. 그럼 풀이 과정을 말해 보아라.”

“푸, 풀이 과정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문제를 풀었으면 단서를 어떻게 찾았으며, 그 단서를 어떻게 조합했는지를 밝혀야 하지 않느냐?”

“…….”

최유지는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는 단서를 찾은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샀다.

이 때문에 그 단서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최유지는 고개를 돌려 양석봉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다급하게 눈짓했다.

물론 양석봉도 그 단서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순간 최유지의 머리가 치열하게 돌아갔다.

“그 단서를 어디에서 찾았는지는 여기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느냐?”

“그 단서는 모두가 같이 찾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유생들과 상의한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흠.”

장유중은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최유지를 바라봤다.

그 눈빛이 얼마나 강렬한지, 최유지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장유중은 강의실 내부를 쓱 둘러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문제의 단서를 같이 모은 유생들은 모두 손을 들어 보아라. 풀이 과정이 옳다면 내 모두에게 최고 점수를 줄 것이다.”

순간 최유지에게 동조했던 유생들은 모두 손을 들었다.

정확히 두 명의 유생을 제외하고 모두가 손을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장유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시 나가 있을 테니 그동안 상의하도록 해라.”

“네, 감사합니다.”

최유지가 작게 고개를 숙이자 장유중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 두거라.”

“…….”

“만약에 네가 풀이 과정을 밝히지 못하면 부정행위로 간주하겠다. 지금 손을 들었던 유생들도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말을 마친 장유중은 자리에서 나갔다.

순간 강의실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모두가 최유지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편한 표정을 한 양석봉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실 손을 들까 말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한빈과 계약 관계에 있던 그는 차마 손을 들 수 없었다.

양석봉은 조용히 아수라장의 중심에 있는 최유지를 바라봤다.

정답에 대한 단서를 어떻게 모았는지를 설명하라고?

이건 최유지가 알 수 없었다.

정답을 판 자신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때 주변에 몰려든 유생을 물리치고 최유지가 양석봉 쪽으로 걸어왔다.

콧김을 내뿜으면서 걸어온 최유지는 양석봉의 앞에 멈췄다.

“말해 보게.”

“무엇을 말인가?”

양석봉이 고개를 갸웃하자, 최유지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단서를 어디서 찾았는지 말해 보게. 자네가 내게 정답을 팔지 않았나?”

최유지의 한마디는 제법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주변이 웅성대며 모두 최유지와 양석봉을 둘러쌌다.

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석봉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허허,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분명히 정답이 아니면 돈을 물어주기로 하지 않았나?”

최유지의 말에,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정답이 아닐 때의 이야기지.”

그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빈이 활짝 웃고 있었다.

최유지는 갑자기 끼어든 한빈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네가 왜 끼어드는가?”

“단서를 찾은 자가 바로 나라네.”

“허허, 자네가 단서를 찾았다고? 나와 내기를 하고 있는 자네가 단서를 내게 줬다고?”

“맞네.”

“그럼 이 참사는 자네가 책임져야 하겠군.”

“내가 책임지지.”

“그럼 어디에서 단서를 얻었는지 말해 보게.”

“맨입으로 되겠나? 내가 그걸 이야기해 주면 자네가 이 승부에서 이길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보고 얘기하라고? 그리고 정답이 아니라면 열 배를 물어주기로 했지만, 정답이라면 양 유생과 자네의 거래는 정당한 것일세.”

“…….”

최유지는 말없이 한빈을 바라봤다.

기분이 나쁘지만 한빈의 말에는 허점이 없었다.

한빈이 말한 대로 자신은 정답을 맞혔다.

정답은 맞혔지만, 풀이 과정을 밝히지 못한 관계로 덤터기를 쓸 위기에 놓인 것이다.

그때 한빈이 말을 이었다.

“내가 여기에 공부하기 위해 온 유생처럼 보이나?”

“…….”

“나는 여기에서 조용히 머물다 갈 나그네일세.”

“그럼 왜 나와 내기까지 했나?”

“자네가 먼저 내기를 걸지 않았나. 그리고 나는 푼돈이나 벌자고 이런 내기를 벌인 것이 아니네.”

“돈이 필요 없다는 말인가? 그런 어서 단서를 어디서 얻었는지 가르쳐 주게.”

“내 말을 오해했군.”

“그게 무슨 말인지? 지금 나와 장난하자는 건가?”

“푼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거금을 벌기 위함이라네.”

말을 마친 한빈은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에 하얀 바람이 불어왔다.

휙.

그것은 바람이 아니라 설화였다.

순식간에 빽빽한 유생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설화가 당연하다는 보따리를 펼쳤다.

그곳에는 꽤 많은 양의 종이가 탑을 쌓고 있었다.

모두는 그 모습에 아연실색했다.

한빈은 지전을 세듯 쫘르륵 넘기며 종이에 적힌 내용을 확인했다.

내용을 확인한 한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없으니 아까 손을 든 자는 어서 서명을 하게.”

“…….”

유생들은 황당함에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한빈이 말하는 바가 뭔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한빈이 다시 외쳤다.

“여기에 서명을 하면 내가 그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말해 주겠네!”

“…….”

하지만 반응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모습에 한빈은 씩 웃으며 종이를 한 장 들었다.

그러고는 망설이지 않고 종이를 찢었다.

쫘악.

순간 최유지가 다급히 나섰다.

“지금 우리에게 왜 그러는 것인가?”

최유지의 미간에는 깊은 골이 생겨났다.

뭔가 상황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듯했다.

장유중 학장의 시험에서 부정행위라?

그것은 앞으로 중앙 정계로 나아가는 길이 막혔음을 뜻한다.

결과가 왜 이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악의 상황만은 막아야 했다.

그때 한빈이 사람 좋은 얼굴로 답했다.

“나도 땅 파서 장사하는 건 아니지 않나. 얻어 가는 것이 있어야지.”

“서명하면 알려 줄 텐가?”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그럼 서명하겠네.”

“자네만 해서는 안 되네, 손을 든 자 모두가 함께해야 하네.”

“흠.”

최유지는 침음을 삼켰다.

탑처럼 높게 쌓인 계약서를 보니, 이건 미리 준비해 온 것이 분명했다.

최유지는 뒤를 돌아봤다.

순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계약서에 서명한다는 것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붓을 든 최유지는 다시 한번 물었다.

“서명을 하면 확실히 알려 주겠는가?”

“언제부터 이렇게 사람을 못 믿게 됐나?”

한빈은 씩 웃으며 계약서를 가리켰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던 양석봉은 기가 찼다.

이건 열흘 전 자신의 모습과 너무 판박이였다.

양석봉도 이렇게 엮여서 끌려다니고 있었다.

양석봉은 지금 가득 쌓인 계약서를 보며 입을 벌렸다.

이곳에 올 때만 해도 이번 입학생의 수장은 자신이나 최유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피보다도 진하다는 계약 관계로 모두가 하나로 묶이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먼저 계약한 자신이 위라 생각했다.

문제는 이곳에 온 지 일주일 만에 단 한 명이 서원을 장악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를 생각하자 양석봉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 * *

잠시 후.

정답을 확인한 장유중은 고개를 갸웃했다.

다시 돌아와 물어보니 최유지가 단서를 얻게 된 경위를 정확하게 밝힌 것이다.

“약속은 약속이니 먼저 황궁에서 하사한 족자를 자네에게 내리겠다. 그리고 아까 손을 든 자들에게는 모두 이번 학기 수업에 통(通)을 주겠다.”

말을 마친 장유중은 족자 하나를 꺼내 최유지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허허.”

장유중은 허탈하게 웃었다.

약속은 지켰지만, 그들이 문제를 푸는 과정이 꽤 복잡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장유중은 밖에서 그들의 행동을 모두 봤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행동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장유중이 보기에 최유지와 나머지 유생들은 누군가를 협박했다.

첫 번째로 협박한 것이 양석봉이었고 이를 말리러 온 팽한빈까지 협박했다.

그들이 둘을 협박한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상황을 미루어 보면 정답을 알아낸 이가 바로 팽한빈과 양석봉이라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부정행위였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장유중이 약속을 지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는 네 글자 때문이었다.

이것은 장유중의 교육 철학이었다.

장유중은 자신이 눈여겨본 몇몇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문제 풀이에 대한 검증이 끝나자, 장유중은 나지막이 모두에게 외쳤다.

“모두 이만 나가도 좋다. 다만!”

“…….”

일어나려던 유생들이 멈칫하자 장유중이 다시 말을 이었다.

“팽한빈 유생과 양석봉 유생은 잠시 남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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