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501화 (501/621)

501. 전호후랑(前虎後狼) (8)

중요한 것은 천리신광이 내는 신호를 누가 확인하는가였다.

이 폭죽이 터지면 봉화를 관찰하던 병사들이 상부에 보고한다.

그러면 가장 가까운 곳에 주둔해 있는 병사들이 움직이게 된다.

반란과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용되는 것이 바로 천리신광.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란에 사용한다.’라는 말이다.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병사가 필요할까?

먼저 일만이 넘는 군사가 이곳으로 달려올 것이다.

만약 일만이 넘는 군사를 보냈는데, 그 후 연락이 없으면 십만의 군대를 조성한다.

어쨌든 천리신광을 터뜨리면 최소 일만이 넘는 군사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비록 유림 서원의 안전을 위해 황제가 내린 물건이긴 했지만, 사용할 때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천리신광은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터뜨려서는 안 되었다.

“오라버니기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터뜨리세요.”

“그래, 알았다.”

말을 마친 장유중은 그대로 폭죽을 들고 줄을 당겼다.

순간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폭죽이 하늘 위로 치솟았다.

슝!

그 소리와 함께 하늘 위에서는 불꽃이 수놓아졌다.

하늘에서 잠시 멈춘 오색의 불꽃은 하늘 위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그 모습에 장혜화가 놀라 외쳤다.

“지금 터뜨리시면 어떻게 해요? 적위 규모라도 확인하고…….”

“적의 규모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래도 이걸 터뜨리면 대규모의 병력이 이동하잖아요.”

“괜찮다. 하나가 됐든 열이 됐든 우리를 위협하는 적은 맞지 않느냐? 중요한 건 백의 병졸보다 여포 같은 한 명의 장수가 무서운 법이다. 그리고 저기 내 제자가 쓰러져 있다. 그것 말고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장유중은 말끝을 흐렸다.

갑자기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껄껄.

소리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때 한빈이 달래듯 말했다.

“저만 믿으십시오.”

“…….”

장유중은 조용히 한빈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믿었지만, 웃음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그 믿음에는 금이 갔다.

한빈을 못 믿어서라기보다는 상대의 무위가 고강했기 때문이다.

학자로서만 평생 학문을 갈고닦은 장유중이 상대의 경지에 대해서 어떻게 알까?

그것은 바로 호위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는 호위들이 긴장하며 경계할 때만 해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한빈도 기막을 펼칠 정도의 무위를 보여 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호위들의 어깨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아마 그들은 자신이 떨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있지만, 그들의 신체가 반응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장유중도 이젠 상대의 경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상태로는 달걀로 바위 치기였다.

장유중은 강호에 나가도 누구에게 지지 않는다고 자신하던 절정의 호위들이 저렇게 떠는 것을 처음 봤다.

장유중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제갈공려가 나타났다.

“걱정하지 마세요, 학장님.”

“제갈공려 학사는 걱정이 안 됩니까?”

“저야 강호에서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장유중의 눈이 커졌다.

제갈공려가 무림인이라는 것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그 눈빛을 본 제갈공려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그때도 팽한빈 유생의 도움을 받았지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갈세가 모두가 그에게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니 학장님도 마음을 내려놓으세요.”

“하지만 저리 젊은 유생이……. 물론 기막을 펼칠 정도로 무위가 높다는 건 알고 있소. 하지만 상대는 절정의 경지에 있는 우리 호위들이 저리 겁을 먹을 정도입니다.”

“아마도…….”

제갈공려는 살짝 말끝을 흐렸다.

지금의 적이 사천당가에서 마주했던 암제와 금선만큼 강할까?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공의 경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이곳에 어찌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것은 적이 아니라 아군이었다.

제갈공려도 한빈의 의도한 바를 완벽히 알고 있지는 못했다.

그녀는 한빈이 정확한 의도를 전달하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마도 적을 속이라면 자신부터 속이라는 손자병법의 구절 때문일 것이다.

생각을 이어 가던 제갈공려는 고개를 갸웃하며 코끝을 매만졌다.

갑자기 어디선가 이상한 향기가 났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음식 냄새였다.

동시에 장유중도 두리번거렸다.

그도 냄새를 맡은 것이다.

냄새의 원인을 찾던 장유중은 눈을 크게 떴다.

냄새가 나는 쪽은 모닥불을 피워 놓은 곳이었다.

모닥불 위에서는 꼬치가 익고 있었다.

꼬치에서 흘러내리는 기름 때문에 모닥불의 불꽃이 갑자기 확 일어난다.

꼬치를 굽는 것은 설화와 청화 그리고 소군이었다.

저절로 군침이 돌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이 순간에 꼬치를 굽는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장유중은 근엄한 표정으로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는 걸어가면서 유생들의 표정을 살폈다.

지글지글 익는 고기 꼬치를 바라보던 유생들은 평상시처럼 안정을 찾았다.

그때 제갈공려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셨죠? 일단 유생들이 안심하고 있잖아요.”

“흠.”

“아마 적도 안심할 거예요.”

“과연 그럴까요?”

“뭐, 적이 방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의문은 가지겠죠. 그러면서 우리는 시간을 벌 수 있고요.”

“알겠소이다, 제갈공려 학사.”

장유중은 마음을 바꿔 모든 것을 한빈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때 다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껄껄!

이번에는 조금 더 소리가 가까워졌다.

모두가 흠칫할 때 한빈이 손을 내밀었다.

“일단 이것부터 드시죠.”

한빈이 내민 것은 고기 꼬치였다.

장유중은 말없이 한빈을 바라봤다.

“…….”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닙니까? 일단 드시죠. 긴 밤이 될지도 모릅니다, 학장님.”

“음, 알았네.”

장유중은 꼬치를 건네받았다.

그러고는 한 입 베어 물었다.

순간 장유중의 눈이 커졌다.

태어나서 처음 맛본 진미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황궁의 진수성찬보다도 더 입에 맞았다.

장유중은 꼬치 덕분에 잠시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그때 장혜화가 꼬치를 굽고 있는 한빈의 곁으로 다가왔다.

한빈은 재빨리 그녀에게 꼬치를 내밀었다.

“이거 드십시오. 그런데 얼마나 버틸 것 같습니까?”

“아무래도 두 시진 정도밖에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그 말에 옆에 있던 장유중은 목이 멘 듯 기침을 해 댔다.

“컥, 그럼 두 시진 뒤에는 어떻게 된단 말인가?”

“저들이 죽든 우리가 죽든 생사가 갈리겠죠. 아니면, 천리신광을 본 병사들이 이곳으로 도착하든가요.”

“그건 불가능하네. 최소한 하루는 걸릴 걸세.”

“염려하지 마세요. 두 번째 대비책도 있으니까요?”

“자네에게도 세 개의 비단 주머니가 있다는 건가?”

비단 주머니는 제갈량이 조자룡에게 전해 준 비단 주머니를 빗대어 말한 것이었다.

앞일을 예견하고 건넨 제갈량의 비단 주머니 덕분에 조자룡과 유비는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이것은 자네가 제갈량이냐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말에 한빈은 빙긋 웃었다.

“세 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옆에서 꼬치를 굽고 있던 소군이 말했다.

“우리 공자님은 뭐든 알고 계시거든요!”

설화와 청화에게 전염된 소군은 자신 있게 외쳤다.

그때 소군의 옆에 있던 유생 하나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팽한빈 유생은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그 말에 한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보는 유생이었다.

상당히 왜소한 체격의 유생은 강의실에서 본 적이 없었다.

의문도 잠시, 한빈은 일단 넘어갔다.

한빈이 모든 강의를 들은 것도 아니고, 유생 중 몇몇은 얼굴을 모르는 자도 있었다.

거기에 소군과는 약간 안면이 있는 듯 보였다.

한빈은 장유중의 표정을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왜소한 체격의 유생을 바라보는 장유중의 눈빛이 살짝 떨렸기 때문이다.

장유중은 더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조용히 하늘을 바라봤다.

그때 장혜화가 관심 가득한 눈으로 한빈을 바라봤다.

“소군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는 한 가지를 묻고 싶어요.”

“어떤 점이 궁금하십니까?”

“적은 진법에도 조예가 깊은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제가 본 적은 적어도 스물이 넘어요. 그 많은 적이 여기에 들어오려면 제가 짠 진법을 뚫어야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기척도 없이 이곳에 들어왔어요.”

“적은 아마 진법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헉,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들은 밖에서 들어온 자가 아니라는 얘기죠.”

“대체 어떻게…….”

“이곳의 일꾼은 어떻게 관리하십니까?”

그때 장유중이 나섰다.

“우리는 일꾼을 들일 때 철저하게 신분을 조사한다네. 그리고 이곳의 일꾼은 나라에서 뽑은 자들일세. 만약에 그들을 의심한다면 그건 자네의 오판일세. 이 년마다 한 번씩 필요한 일꾼을 충당하면서도 관의 추천을 받아 채용한다네.”

“아마 그들 중 몇몇은 신분을 위장한 자들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말했다시피 몇몇을 제외하면 일꾼들은 이 년마다 바뀌네. 남아 있는 자는 그렇게 많지가 않지.”

“혹시 말입니다. 이곳에 들일 때 말고 나갈 때는 살피셨습니까?”

“나갈 때라면…….”

“서원의 휴식 기간에는 모든 유생과 일꾼을 밖으로 내보낸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사실이네.”

“그때 서원에 남아 있는 자가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오랜만의 휴가인데 남아 있을 자가 누가…….”

장유중은 말끝을 흐렸다.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것이었다.

만약에 나쁜 뜻을 품고 들어온 자가 있다면 휴가 따위를 신경 쓰겠는가?

한빈이 말을 이었다.

“아마 이 년마다 바뀐 일꾼 중 이곳에 남은 자가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장유중은 한빈의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적이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에 남아 그 수를 늘릴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자들은 서원의 어딘가에 숨어서 지냈겠죠. 그리고 수가 늘어나자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느낀 것이겠죠. 아니면 목표로 한 자가 이곳에 들어왔든가요.”

한빈은 슬쩍 고개를 돌려 유생들을 바라봤다.

유생 중 하나가 목표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때였다.

주변에서 바위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쿠아앙!

그 소리에 장혜화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반 시진도 못 갈 것 같아요.”

“그럼 슬슬 준비를 해야겠군요.”

말을 마친 한빈은 조용히 뒤돌아섰다.

그러고는 만월경을 향해 걸어갔다.

만월경을 향해 걷던 한빈이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 절대로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알았네. 그런데 어디로 간단 말인가? 말이라도 해 주고…….”

장유중은 입을 벌렸다.

한빈이 눈앞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더욱 놀란 것은 장혜화였다.

“어?”

그 소리에 장유중이 물었다.

“팽 유생이 사라졌어요.”

“그건 나도 보았다.”

“그, 그게 아니라 진법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이럴 수는 없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