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571화 (553/621)

571.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3)

눈을 가늘게 뜬 한빈의 모습에 현무각주 담천호가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표정을 보니 조금 수상하기도 하고…….”

“공자님 얘기를 한 건 제가 아니라…….”

담천호가 힐끔 장자명을 바라봤다.

순간 장자명이 미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담천호가 재빨리 말을 바꿨다.

“얘기는 했지만, 공자님에 대한 칭송이었습니다.”

“아, 칭찬이라…….”

한빈이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담천호를 바라봤다.

그때 장자명이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그거 칭찬 맞습니다, 팽 공자.”

“네, 당연히 칭찬이지요. 전 공자님에 대해서 들었던 칭찬 때문에 귀가 다 닳았습니다. 천수장에서도 그렇고 장 의원에게도 그렇고요.”

평소 말이 많지 않았던 담천호답지 않게 말이 길어졌다.

한빈은 알았다는 듯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담천호를 바라봤다.

“제 칭찬을 하셨다니, 제가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그다지 신경 안 써 주셔도…….”

담천호가 말끝을 흐렸다.

뒤쪽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기침 소리를 낸 이는 다름 아닌 현문이었다.

그 옆에는 팽혁빈이 서 있었다.

팽혁빈은 한 발 앞으로 나오더니 한빈에게 슬쩍 눈짓했다.

할 말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한빈은 조용히 구석으로 걸어갔다.

일행으로부터 멀어진 한빈이 입을 열었다.

“그러지 않아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무리해서 말하지 않아도 된다.”

“아닙니다. 이제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곳에 태극검제를 치료할 약초가 있습니다.”

“약초라면 삼황초를 말함인가? 팽 공자.”

“네, 맞습니다.”

“삼황초는 백독곡으로 가서 구하는 것이 아니었는가? 그런데 갑자기 이곳에서 삼황초를 구한다니!”

무슨 일인지 감도 잡지 못하겠다는 듯 현문이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웃었다.

이제는 계획을 말해 줄 때가 된 것이다.

추룡산맥에 들어서기 전에 말했다면 성격이 급한 현문이 추룡산맥을 헤집고 다녔을 수도 있었다.

사실 한빈이 지금에서야 계획을 털어놓으려고 하는 것은 현문의 영향이 컸다.

오늘 안에 추룡산맥에서의 일은 모두 끝내야 했기에 이제부터는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오늘이 아니면 추룡산맥에 온 이유가 없었다.

그때 팽혁빈이 끼어들었다.

“이곳에 삼황초가 있다니, 빨리 출발하자꾸나.”

“형님은 삼황초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한빈이 눈을 가늘게 뜨며 팽혁빈을 바라봤다.

“삼황인 셋의 기운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전해지는 풀이 아니더냐?”

“형님이 아시는 삼황의 기운이라면 무엇입니까?”

“각각 화(火), 빙(氷), 뇌(雷)라고 알고 있다.”

“그게 문제입니다, 형님.”

“그게 무슨 말이냐?”

“어찌하여 풀 하나가 불과 얼음, 번개의 기운을 다 담고 있겠습니까?”

“그러니 사람들이 전설이라 하는 것이지. 나는 네가 삼황초를 구한다고 할 때도 그게 실제 있는 것인지 믿기 힘들었다.”

“맞습니다. 어떻게 풀 하나에 세 가지 기운이 모두 들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한빈의 말에 깜짝 놀란 현문이 끼어들었다.

“자, 잠시만……. 지금 무어라 했나? 지금까지 나를 놀린 것인가? 팽 공자!”

“어르신,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가 있는가? 태극검제, 아니 우리 사형의 목숨이 걸린 일일세.”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삼황초는 하나의 풀이 아닙니다. 그래서 전설 속의 풀이라고만 사람들이 생각한 겁니다.”

“하나의 풀이 아니라면…….”

“이곳 추룡산맥에서만 서식하는 백년열화초가 그중 하나입니다. 바로 불의 기운을 품고 있는 영초이지요.”

“백년열화초라면……. 이름을 그럴듯하지만, 독초가 아니던가?”

“네, 맞습니다. 독초라고도 알려져 있긴 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찾아야 할 삼황초 중 하나가 맞습니다.”

“그럼 독초를 찾으면 되겠는가? 그렇다면 내가 돕겠네. 그런데…….”

현문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 모습에 한빈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백년열화초는 남쪽에서 자란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특히 남만 쪽에서 자라서, 사천당가 같은 독문에서 남만으로 채집하러 간다는 그 영초가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백년열화초는 조건만 맞으면 어디서든 자라는 풀입니다. 특히 북쪽에서는 유일하게 추룡산맥에서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온 이유가…….”

“네, 맞습니다. 백년열화초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허, 그렇게 깊은 뜻이 있을 줄은 몰랐네. 나는 왜 추룡산맥을 지나는 생고생을 하나 했더니 모두가 우리 무당을 위해서…….”

“괜찮습니다, 어르신.”

“지금 찾아야 할 영초가 셋이라고 하지 않았나? 내가 이곳에서 백년열화초을 찾아서 들고 무당으로 갈 테니 걱정하지 말고 먼저 떠나게.”

“이곳에서 자라나는 백년열화초는 남만에서 자라는 영초와 모양이 다르다고 합니다. 어르신은 추룡산맥에서 자라는 백년열화초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십니까?”

“그건……. 이런 낭패가 있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오늘 밤 안으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오늘 밤이라고?”

“사실, 저도 백년열화초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릅니다.”

“자네도 모른다면서 어떻게 그 독초를 찾는다는 말인가?”

“남만의 백년열화초나 이곳의 백년열화초나 똑같이 보름달에 반응한다고만 알고 있습니다. 오늘 못 찾게 된다면 또 한 달을 기다려야 하지요.”

“아.”

현문은 눈을 크게 떴다.

한빈의 말대로였다.

백년열화초는 양기를 품은 약초였다.

그 양기가 과하기 때문에 그냥 복용하면 오장육부를 다 녹이기에 독초라고 하는 풀이었다.

그 때문일까?

백년열화초는 음을 나타내는 달빛에 반응한다고 전해진다.

그것도 보름달에 말이다.

희미했던 자신의 기억을 떠올린 현문의 눈빛이 깊어졌다.

“자네 말대로라면 보름달이 지고 나면 그 풀을 찾기 힘들다는 말이 아닌가?”

“네, 맞습니다. 오늘 밤에 백년열화초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내가 돕겠네, 팽 공자.”

“도울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팽 공자.”

“그러니까…….”

한빈의 설명에 팽혁빈과 현문의 눈이 커졌다.

설명은 간단했다.

백년열화초를 찾으려면 영물 하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산삼의 씨를 새가 옮기듯 백년열화초의 씨를 옮기는 것이 어떤 영물이라고 했다.

그 영물을 자극하면 백년열화초를 찾는 데 수월하다는 것이 바로 한빈의 계획이었다.

그 계획을 듣고 난 현문에 미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들에게 그런 짐을 지워도 괜찮겠나?”

“괜찮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임무에 상응하는 보상을 줄 예정입니다. 어르신이 도와주시는 그들의 수련도 그 보상에 포함됩니다.”

한빈이 현문을 안심시켰다.

현문이 말했다.

“내 조금 더 신경을 쓰겠네.”

진지한 현문의 눈빛에 팽혁빈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팽혁빈은 각주들과 현문의 대련을 말리고 싶었다.

팽혁빈은 각주들을 식솔이자 하북팽가의 자산으로 보고 있었다.

지금의 대련은 하북팽가의 자산을 단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깨뜨리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팽혁빈은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그런데 현문의 눈빛을 보면 더욱더 강도를 높이겠다는 것 같았다.

절대 여기서 더 이상 강도를 높이면 안 되었다.

* * *

잠시 후,

한빈이 돌아오자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담천호가 반갑게 맞았다.

그는 무공이 높은 관계로 다른 각주들에 비해서 회복이 빨랐다.

“가셨던 일은 잘됐습니까?”

“네, 잘됐습니다. 현무각주는 나머지 두 명의 각주들을 모아 주세요.”

“모을 필요가…….”

담천호는 말끝을 흐리며 힐끔 옆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먼저 대련을 끝낸 가기군과 악필승이 누워 있었다.

벌써 회복한 담천호와는 달리, 무공이 뒤처지는 둘은 아직도 누워 있는 것이다.

담천호는 재빨리 그들을 깨웠다.

그들이 일어나자 한빈은 그들과 조용히 야영지를 떠났다.

한빈의 뒤를 따르는 가기군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주변을 살폈다.

갑자기 야밤에 각주들을 부르는 모습이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달이 밝아도 험하기 그지없는 추룡산맥의 중턱에서 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빈이 이끄는 곳에는 묘하게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정적이 가기군을 숨도 쉬지 못할 만큼 압박했다.

어느 정도 야영지에서 멀어지자 한빈이 걸음을 멈췄다.

돌아선 한빈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가기군도 의문은 뒤로한 채 일단 각을 잡고 정렬했다.

다른 각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제법 큰 상처였으나 그들은 무인답게 한빈의 앞에 당당히 섰다.

정렬한 세 명의 각주를 본 한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구걸십팔보의 구결을 전하겠습니다.”

“…….”

세 명의 각주들은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구걸십팔보를 전수하겠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것은 무공에 대한 열망이 강한 담천호였다.

그는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한빈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한빈이 물었다.

“싫으십니까?”

“아, 아닙니다. 그런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놀랐습니다. 구걸십팔보면 개방의 상승 무공 아닙니까? 그런데 그걸 우리에게 알려 주셔도 괜찮으신 겁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홍칠개 사부님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결과 사부님은 흔쾌히, 아니 흔쾌히는 아니군요. 그 대가로 제 피 같은…….”

“피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일단 그렇게만 알고 계십시오.”

한빈은 진지한 표정으로 세 명의 각주를 바라봤다.

그의 말 중에 반 정도는 사실이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피 같은 돈을 들여서 하북 지역의 거지를 위해 잔치를 벌여 주기로 했으니까.

중요한 것은 구걸십팔보는 구결이 있다고 해서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런 이유로 홍칠개는 한빈이 다른 이에게 구걸십팔보를 전하는 것을 허락했다.

물론 전에 설화가 구걸십팔보를 익힌 것은 타고난 오성 탓이었다.

지금 각주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정 수준의 오성과 절실함이었다.

그때 가기군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희가 진짜 익혀도 되는 겁니까? 공자님.”

“익혀도 됩니다.”

“개방이라고 하면 구파일방의 일원인데, 저희가 익히고 나서 혹시…….”

가기군은 뒷말을 흐렸다.

한빈은 그의 걱정을 알고 있었다.

타 파의 무공을 훔친 자에게는 가혹한 형벌이 따르는 것이 강호의 법칙이었다.

가혹한 형벌이란, 훔친 무공을 못 쓰게 만드는 것이었다.

어떻게 훔친 무공만을 못 쓰게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즉 그 형벌의 진정한 의미는 아예 단전을 깨뜨려 모든 무공을 못 쓰게 막는 것이다.

구걸십팔보를 익혔는데 갑자기 개방에서 따지고 든다면?

구파일방의 힘 앞에서 일개 무인은 백사장의 모래 한 알과 같았다.

상대가 우긴다면 자신의 단전을 내놓아야 했다.

이것은 가기군만의 걱정은 아니었다.

한빈은 그들의 표정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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