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고용철 : 추천하는 여배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포기할 수 없다.
강산은 새 영화의 투자자를 구하지 못했다.
강산은 마지막으로 남은 전 재산을 이 영화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면 살아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숨만 쉬고 있을 뿐이지.
강산은 신용불량 문제가 회생 절차를 거쳐 해결되자,
15여 년간 <좋은 친구들>에서 제작했던 500여 편의 에로비디오영화들의 저작권을 담보로 사채업자들에게 5억을 빌리고, 지인들에게 2억을 투자(?) 받아서 총 7억을 모았다.
그러나 7억으로는 아무리 저예산 영화라도 강산이 만드는 영화의 제작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강산의 영화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제자리만 맴돌고 있었다.
‘이 영화는 안 되는 걸까?’
포기해야 하는 건지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TY필름 제작 이사인 고용철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 * *
“강산입니다.”
“고용철입니다.”
강산은 사무실로 빌려서 쓰고 있는 비즈니스용 사무실이 너무 초라해서, 사무실 근처에 있는 탐앤탐스 커피숍에서 만났다.
170cm 초반에 100kg가 넘어 보이는 고용철은 강산에게 금박이 씌워진 명함을 건네주었다.
“죄송합니다. 제 명함이 없어서 드릴게 없네요.”
“무슨 별말씀은요. 강산 감독님이야 얼굴이 명함이지요. 명함이라는 건 저 같은 사람이나 필요하지요. 명함이 없으면 제가 누군지 누가 알겠습니까?”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는지요?”
“제작사에서 감독님을 만나자고 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투자하려고 만나자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강산은 고용철 이사를 보았다. 고용철 이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TY필름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TY필름은 ‘돌다리 투자’라고 몇 번이나 두드려보고 투자한다고 투자에 인색하다고 알고 있다.
“이사님. 제가 만들려고 하는 영화는 아시고 투자하신다는 것인지요. 한번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라면 그런데요. 제가 지금 바빠서 시간이 없습니다.”
“당연히 그러시겠죠. 감독님처럼 바쁘신 분을 제가 시간을 빼앗아서는 안 되죠. 그래서 말입니다. 필요하신 투자금이 얼마나 되는 가요?”
“10억 정도가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투자 후, 6개월 내 완성 조건으로 10억을 투자하도록 하지요. 투자 후 지분 등 자세한 내역들은 계약서를 작성할 때 논의하지요. 계약서를 작성할 때 5억, 촬영에 들어갈 때 5억을 지급하지요.”
무슨 귀인이 이제야 나타나셨나?
고용철이 선선이 투자하겠다고 하자, 강산은 좀 더 부를 걸 하는 후회가 남았다.
보통 극장용 영화 한 편을 제작하려면 저예산 영화라도 20억 원에서 30억 원 정도가 들어간다.
블록버스터라면 몇 백 억이 넘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기도 한다.
강산이 준비한 7억과 TY필름의 10억을 더하면 총 17억이다.
홍보비를 나중에 집행하기로 하고 뒤로 돌린다고 해도 17억은 여유가 있는 금액은 아니다.
영화를 제작하다 보면 예상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산은 이 분야의 베테랑이다.
제작비 절감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어느 감독들보다 노하우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강산은 커피를 천천히 내려놓으며 고용철에게 말했다.
“좀 더 투자하실 의향은 없으신가요. 10억을 조금 빠듯해서요.”
“솔직히 10억 이상은 어렵습니다. 저는 다른 감독은 어려울지 모르지만 강산 감독님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사님은 저를 잘 아시는군요. 다른 조건은요?”
“다른 조건요?”
“다른 조건이 있으니까 저를 찾지 않았을까 생각해서요. 제 생각이 틀린 가요?”
강산은 고용철 이사에게 투자에 다른 조건이 붙어 있는 가를 물었다.
갑자기 TY필름이 찾아와서 ‘강산에게 영화 제작 자금을 투자하겠다.’ 라고 하는 것은 순수하게 강산의 영화를 보고 투자하겠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른 조건이 없다면 강산에게 투자하려고 하지 않을 테고, 굳이 강산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TY필름은 어떤 조건을 걸어도 강산이 거절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상황을 잘 알고 왔을 것이다.
“역시... 강산 감독님입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이 있었는데, 덕분에 시름 하나 덜었습니다. 그럼 제가 좀 더 편하게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저희들이 추천하는...”
“......”
“저희들이 추천하는 여배우를 이번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해 주셨으면 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고용철 이사의 주연 여배우 추천은 강산이 생각하지 못한 의외의 제안이었다.
강산은 허를 찔린 것 같아서 바로 대답하기 어려웠다.
강산이 예상한 조건은 고용철 이사가 투자 금액에 대한 리베이트를 요구하거나 돈세탁 같은 것을 제안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요구는 불법으로 당연히 거부해야 하는 것이지만 지금 강산으로서는 찬밥 더운밥을 가릴 여유가 없었다.
강산이 손가락을 이마에 대고 인상을 찡그렸다.
고용철 이사의 말을 그대로 들어주기 어렵다는 강산의 제스쳐다.
“고용철 이사님. 이사님도 아시다시피 야구는 투수놀음, 제 영화는 여배우 놀음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아시잖습니까? 제 영화.”
강산은 성인영화 전문 감독으로 과거형이지만 한 때는 잘 나가던 감독이다.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와 여자 배우의 매력을 가장 잘 표현하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대중들에게는 강산보다 강산의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들이 더 유명해져서, 영화를 만든 강산은 대중들보다는 업계의 관계자나 마니아들에게 알려졌다.
여배우 덕을 많이 본 감독이라 평가 절하도 받고,
이번 영화는 아주 노골적으로 찍을 생각이었다.
아름다운 여성들의 살 냄새, 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영화 말이다.
그래서 나름 거유에 몸매 빵빵한 미녀로 유명한 장윤미를 생각하고 있었고, 사전 미팅도 했다.
“잘 압니다.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작품을 여러 번 부탁 드렸는데 감독님이 모두 거절하셨지요.”
“그때는 너무 바빠서···”
강산이 한창 잘 나갈 때에는 강산에게 연출을 맡아 달라는 제작사들의 제안이 많았다.
당시 강산은 자신이 만든 <좋은 친구들>에서 만드는 작품들을 연출하기에도 바쁜 시절이라, 다른 제작사에서 제안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거절했다.
거절하기 어려운 특별한(?) 제안이라면 받아들였지만.
TY필름의 제안은 그리 특별한 제안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거절했을 것이지만.
고용철 이사는 여자 배우 사진 한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하수연. 나이는 22. 신인 배우지만 임권철 감독님의 <소나기>, 우화 감독의 <비열한 청춘>에 조연으로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신인 배우지만 빼어난 미모와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지요.”
“으음... 시간 좀 주시겠습니까?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이미 말해 둔 배우들이 있어서요.”
“그러시죠. 저희로서는 생각이 너무 길지 않았으면 하는데요.”
“네. 최대한 빨리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용철 이사와 헤어진 후, 소호의 작은 사무실에 온 강산은 천천히 하수연의 사진을 벽에 붙여 놓았다.
며칠 동안 사진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면 결정할 생각이었다.
하수연은 매력이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강산이 영화에서 원하는 스타일, 몸매가 뛰어난 배우는 아니다.
‘거절해야 하는가?’
‘이번 기회가 마지막 기회가 될 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지’
강산은 한참 동안을 하수연의 사진을 보았다.
고용철 이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강산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강산의 영화를 두고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었다.
사람들은 강산의 영화에서 여배우가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여배우보다 중요한 것은 있다.
그것은 바로 강산 자신이다.
주연 여배우의 연기가 수준 이하의 발연기가 아니라면 강산의 연출력이나 카메라 기술로 포장할 수 있다.
대본을 수정해서 여배우의 출연 분량을 조절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다른 조연을 역할을 부각시켜 주연 배우의 역할을 지워버릴 것이다.
일주일 후.
강산은 고용철 이사에게 전화했다.
결심한 뒤 바로 전화하지 않고 일주일이 후에 전화한 것은 그만큼 고민이 많았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한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고 이사님.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감독님, 그럼 결론은요?”
“으음... 고이사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잘 생각 하셨습니다.”
“대신 스텝들은 제가 원하는 스텝들로 구성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저도 화끈하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영화를 만들려면 제작 스텝이 중요하다.
그 동안 강산과 손을 맞춰오던 <좋은 친구들>의 스텝들은 모두 흩어졌다.
강산이 다시 영화를 만든다고 하자, 절친이자 제작 부장 김두호가 다른 일을 모두 재껴두고 돌아왔다.
김두호 외에도 예술 영화로 유명한 홍상순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촬영 감독 박형수, 음향감독 서일기, 조명감독 김석수 등 강산이 알고 있던 영화계 동료들이 기꺼이 참여해 주었다.
시나리오는 강산이 이번 영화를 위해 숨겨 놓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 동안 수차례에 걸쳐 재고를 반복해서 최종고한 시나리오다.
강산은 배우들을 섭외하기 위해 인맥들을 수배하고, 주요 조연이나 단역들을 캐스팅하기 위해 오디션을 진행했다.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