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최철수: 얘 대체 정체가 뭐지.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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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2005년까지는 애플에서, 애플에서 독립한 2005년에서 2010년까지는 자신의 제작사인 ‘좋은 친구들’에서.
강산은 10여 년 동안, 에로영화를 직접 만들거나 제작에 참여하면서 수백여 편을 만들었다.
2010년 이후에는 강산은 극장용 성인영화에 주력했다.
회사 ‘좋은 친구들’은 강산의 성인영화뿐만 아니라 IPTV용으로 수백편의 에로영화를 제작했다.
아무튼 20여 년간 에로영화를 만들면서 배운 노하우가 있다.
첫째, 에로영화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먼저, 에로영화는 시작해서 15분 이내에 첫 번째 베드신이 등장한다.
우스갯소리로 영화가 에로영화인가, 아닌가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영화를 시작하고 15분 이내에 베드신이 나오면 에로영화, 나오지 않으면 에로영화가 아니란 말도 있다.
그리고 편당 70분 기준으로 보면 5번에서 7번의 베드신이 나온다.
전성기인 2000년대의 에로비디오에는 10회 정도의 베드신이 나왔다.
2010년대부터는 편당 제작비가 줄어들면서 출연하는 여배우들과 베드씬이 줄어드는 대신 베드씬 시간이 늘어났다.
대신 가벼운 노출 장면은 영화 내내 나온다.
둘째, 영화에 나오는 배경이나 촬영 장소가 많지 않다.
매니아, 아니 매니아가 아니라도 몇 작품을 시청해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 알게 될 것이다.
한 편의 에로영화에서 나오는 배경이나 촬영 장소는 별로 많지 않다.
지방 모텔이나 펜션을 빌려,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베드씬을 촬영한다.
나머지 야외 촬영 부분이나 실내 촬영한 부분을 편집으로 붙여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어떤 감독은 무작정 배우들의 정사장면을 먼저 찍은 후, 배우들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만큼 이야기 구조가 허술하다.
셋째, 편당 제작비를 산정하기 어렵다.
2,000년도 기준, 한 편의 에로영화를 제작하는 비용은 편당 2,000에서 2,500 정도 들어간다.
불황기에는 500만원으로 하루에 영화 한 편을 다 찍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제작비 중에 가장 큰 부분은 여배우의 출연료다.
여배우는 등급에 따라 일당 40~70만원을 받고, 특 A급은 일당 100만원도 받았다.
남자배우들은 일당 30~40만원을 받았다.
보통 3, 4일 정도 촬영하므로 여배우의 편당 출연료는 120만원에서 300만원이 나온다.
따라서 제작비에 따라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 특히 여배우들의 숫자가 달라진다.
* * *
“나. 이덕배야! 이덕배!”
이덕배는 계약서를 요구하는 강산에게 자신을 못 믿느냐고 위협했다.
사장실 분위기가 다시 험악해졌다.
“강산이... 사장님이 이렇게 말하는데, 한 번만 믿어보지 그래. 내가 사장님 대신 보증하겠네.”
최철수가 자신이 보증한다고 하면서, 살벌한 분위기를 무마하려고 나섰지만 강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최철수가 보증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지난번 생에서는 정확한 계약서를 쓰지 않고, 알아서 챙겨주겠다는 이덕배의 말만 믿고 먼저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이덕배의 능수능란한 당근과 채찍에 눌려 오년이나 지나서야 애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잠시 후, 강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사장님, 최감독님, 제가 어려서 사회 물정을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저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계약서를 믿습니다. 사장님이 먼저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저는 절대로 감독을 하지 않겠습니다. 애플에서 잡일이나 하다가 열 달 후에 자유의 몸이 되는 것도 저는 괜찮습니다.”
강산의 말을 듣고 있던 이덕배는 막무가내로 자신에게 도발하는 강산이 이해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기세에 눌려, 자기주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수그리든가 꽁무니를 뺀다.
그런데 이 자식은 아예 배 째라는 식으로 대든다.
보통내기 아이가 아니다.
최감독 말대로 예술가 기질이 있다는데 똘아이 중에 상똘아이다.
강산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덕배의 눈은 마주보지는 못했다.
자신이 유리한 패를 쥐고 있다고, 아니 유리한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버티고 있지만 이 미친놈(이덕배)이 어떻게 날뛸지 몰라 조심스러웠다.
이덕배도 겉으로 화를 내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복잡한 계산기를 돌리고 있었다.
강산, 다루기 까다로운 이 자식 말고 다른 감독에게 부탁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돈을 대입해보면 이 자식 말고는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은 자신이 아니라 저 자식 편이다.
시간이 갈수록 불리해지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이덕배, 자신이었다.
“끄응... 김양! 계약서 좀 만들어와. 강산! 열흘 이내에 두 편을 완성하지 못하면 계약서는 아무 의미가 없어.”
“알겠습니다.”
* * *
2주 안에 두 편의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강산은 오늘 저녁까지 내일부터 시작할 영화의 촬영을 준비해야 한다.
최대한 빨리 두 편의 시나리오를 만들고, 출연하는 배우들과 스텝들을 섭외하고, 그리고 촬영하는 장소를 결정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2주라는 시간제한이 내일부터 적용된다는 점이다.
강산은 이덕배와 계약서를 쓴 후, 먼저 받은 선금 100만원을 가지고 먼저 남대문 시장 안경점으로 가서 검은색 레이벤 선글라스를 하나 샀다.
회귀 전의 삶에서 선글라스가 익숙해져서인지, 선글라스를 쓰지 않으면 벌거벗고 돌아다니는 느낌이다.
강산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선글라스를 쓰자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는 안정감을 느꼈다.
“무슨 선글라스야?”
“최감독님, 어때요?”
“잘 어울리는데, 그런데 너무 나이가 들어 보이는 거 아니야”
“감독님도 참, 이럴 땐 멋있다고 하는 거예요.”
강산이 애플로 돌아오자 최철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최철수는 강산이 시간이 별로 없을 텐데도 굳이 밖에 나갔다 오겠다고 하더니,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났다.
신세대라서 그런가?
2주안에 두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면 이덕배 사장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목숨이 걸린 일이 될지도 모르는데 걱정도 되지 않는가?
대체 무슨 베짱이지.
분명히 말하지만 2주 안에 두 작품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경력 있는 감독들도 쉽지 않은 미션이다.
그런데 강산은 에로영화계에서는 초짜 중에 초짜다.
현장관리야 자신이 도와준다고 해도 감독이 준비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들이 적지 않다.
최철수가 본 강산의 독립영화 <길을 걷는 아이들>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청소년이 홀로서는 과정 중에서 드러나는 우리나라 사회의 문제를 진지하게 그린 작품이었다.
세 달이지만 강산을 지켜보면서, 나름 성실하고 진지한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난 강산을 보자 헷갈리기 시작한다.
‘얘 대체 정체가 뭐지? 내가 잘못 소개한 거 아냐!’
* * *
“강감독. 미리 써놓은 시나리오가 있는가?”
“생각해 놓은 것이야 많지요. 에로가 아니라서 쓸 수가 없지만요,”
“그럼, 내가 쓸 만한 시나리오 좀 구해올까?”
“아뇨. 감독님. 저는 다른 사람이 쓴 것은 못 찍어요. 지금부터 고민하려고요.”
“그럼 마음에 둔 배우들은 있는가?”
“모든 게 갑작스러워서요. 그것도 지금부터 고민해 보지요.”
최철수는 강산에게 ‘아니, 그런 사람이 선글라스나 사려고 밖에 나가고 있어.’ 하고 면박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에로영화지만 입봉하게 돼서 선글라스를 사고 온 신인감독에게 처음부터 기를 죽이는 것은 너무 심한 것 같아서 참기로 했다.
“그럼, 내가 배우들을 소개해줄까? 강감독이 원하는 캐릭터를 말하면 내가 맞는 배우를 소개시켜 줄게.”
“으음... 고마우신 말씀인데요. 제가 시나리오 구상이 아직 완전하지 않아서요. 배우는 제가 정할게요.”
최철수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지나갔다.
그동안 박두철 감독이 단독으로 시나리오를 사고, 배우를 섭외해서 아쉬움이 많았다.
그런데 초짜 감독인 강산도 최철수의 도움을 거절했다.
최철수는 선의로 강철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강산은 캐스팅은 감독의 권한이라고 개입하지 못하게 한다.
“감독님. 죄송해요. 그동안 에로영화 일을 하면서 마음에 둔 배우들이 있어서요. 서운한 거 아니죠?”
“서운하기는 뭘?”
“제가 잠시 후에 캐스팅할 배우들을 선정해 드리면, 섭외는 감독님이 도와주세요.”
최철수는 순수한(?) 마음으로 캐스팅을 도와주려고 했다.
강산은 이미 생각해 둔 배우들이 있다고 거절한다. 방금까지만 해도 지금부터 고민하겠다고 해놓고 말이다.
강산은 에로배우들의 프로필이 들어있는 프로필 북을 넘기고 있었다.
에로영화 세계의 배우들은 인력풀이 많지도 않지만 데뷔한 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은퇴하거나 그만두는 배우들이 많기 때문에 배우들을 섭외하기 쉽지 않다.
그나마 프로필 북은 배우 캐스팅을 위한 기본서나 다름없다.
“감독님, 이 분들 좀 섭외해주세요.”
강산은 최철수에게 배우들의 이름을 메모한 쪽지를 전달해 주었다.
최철수는 강산이 전해 준 쪽지를 살펴보았다.
쪽지에는 아는 사람들 이름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 이름도 있었다.
“그러지. 섭외가 안 되면 어떡하지.”
“제가 드린 배역별 순서가 우선순위지만 배우들이 출연할 시간이 되는지가 우선이죠.”
“그건 그렇지.”
“스텝들은 최감독님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지”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시나리오가 바빠서 그만 일어서겠습니다.”
강산은 이 말을 남기고는 가버렸다.
정말 가 버렸다.
최철수는 손에 든 쪽지를 보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세대차이인지는 모르지만 얄밉게도 자기 할 말만 하고는 가버렸다.
그냥 가버렸다.
자기 할 말을 다하고 일어서는 것이 뭐가 딱 잘못했다고 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뭔가 얄미운 생각이 들었다.
최철수는 강산이 자신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고 상의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기 말만 하고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명색이 강산을 감독으로 추천한 후원자나 다름없는데 말이다.
묘한 감정을 뒤로 하고 강산이 준 명단을 보니, 많지 않은 에로배우들 중에서 제법 연기를 한다는 배우들이다.
강산이 ‘까막눈은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다.
강산이 선택한 배우들은 장민호, 선우혜, 안정민, 이규리, 박미혜 배우다.
강산은 회귀 전에 자신이 발굴해서 영화에 데뷔시킨 강소영, 이하나, 조민서, 이성은, 박하루, 차이서 등의 배우들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영화에 데뷔하기 전이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캐스팅이 가능한 배우들 중에서 최선의 조합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