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주인부부: 살려주세요. 선생님!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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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좋은 어느 날 오후.
검은색 에쿠스가 숲속의 산길을 돌아 집(힐링하우스 펜션)으로 들어오면서 <다현 이야기>가 시작한다.
아버지 덕수(장민호 분)와 새엄마 영숙(선우혜 분)이 에쿠스에서 내리자, 두 딸인 다현(이규리 분)와 다미(박미혜 분)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민호는 집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여러 번 운전해야 했다.
강산은 에쿠스 안에서 덕수의 시야로 천천히 산길을 돌아 운전하는 ‘컷’을 따고는 대문 입구에서 한 번, 펜션 2층 위에서 에쿠스가 들어오는 장면을 한 번 더 촬영했다.
강산은 이규리에게 아버지 장민호와 새엄마 선우혜에게 인사할 때, 표정을 서로 다르게 하고, 박미혜에게는 언니인 이규리 뒤에 숨으라고 지시했다.
“어서 오세요. 아빠.”
“그래. 잘 있었어?
“네. 아빠.”
“다현아! 다른 일은 없었어?”
“네. 아무 일도 없었어요.”
다현이 덕수에게 웃으면 이야기하자, 새엄마 영숙이 먼저 다현에게 말을 걸었다.
“잘 있었니? 다현아.”
“흥...”
다현은 고개를 돌려 영숙을 무시하면서 다미의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등 뒤로 숨게 했다.
덕수는 잠시 다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표정을 풀고 다현에게 말했다.
“다현아. 김군 좀 불러서, 트렁크에 있는 짐 좀 옮겨 달라고 해라.”
“네. 아빠. 몰디브는 어땠어요?”
“아름다운 곳이 더구나.”
“저희들 선물은요?”
“조금만 기다리렴.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 하자.”
덕수와 가족들이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강산은 현관문이 닫히는 것을 기다렸다가 바로 ‘컷, OK’를 했다.
“컷, OK요. 다음 주차장 씬을 바로 갈게요.”
스텝들은 펜션 뒤에 있는 주차장으로 촬영장소를 옮겨, 촬영 준비를 했다.
에쿠스는 햇볕이 그늘진 쪽으로 옮기고, 강산은 배우들에게 위치를 조정하고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장민호는 새로운 양복으로 갈아입고 에쿠스 옆에 서고, 새엄마 영숙과 다현은 화장을 새로 고치고, 다른 의상으로 바꾸어 입고 나왔다.
아버지 덕수가 부산으로 출장을 가는 씬이다.
이번 씬에는 별장관리인 상준(안정민 분)도 장민호를 배웅하는 장면에 나왔다.
동생 다미는 나오지 않았다.
“레디 액션”
새엄마 영숙은 출장 가는 덕수의 양복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면서 대사를 시작한다.
“출장 잘 다녀오세요. 여보”
“잘 있게.”
“몸 조심 하시고요.”
“알았네.”
“아빠! 이번 출장은 얼마나 걸려요?”
“한 일주일정도 걸릴 거야. 늦어지면 한 이틀 더 걸릴 테고”
“그럼, 다음 주는 집에 안 계시는 거예요?”
“그래. 부산에 있을 거야.”
“네.”
“내가 없는 동안 새엄마하고 잘 지내고.”
“알았다니까요.”
덕수가 자가용을 몰고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영숙과 다현, 상준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진다.
카메라는 아버지 덕수를 배웅하고 돌아서는 다현을 따라갔다.
다현은 새엄마 영숙과 같이 하지 않으려고,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후문으로 산책하러 나섰다.
후문으로 걸어가던 다현은 고개를 돌려 잠시 2층으로 바라보았다.
다현의 시선 끝에 이층 창가의 커튼에 다미의 실루엣이 살짝 거쳐있었다.
다미는 아버지 덕수가 출장 가는 장면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장면은 이야기의 복선을 만들기 위해서 넣은 장면이다.
* * *
산에는 밤이 빨리 다가온다.
힐링하우스 펜션에도 어느새 어둠이 내려와 앉았다.
스텝들과 배우들은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다.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촬영을 하느라 피곤한 표정이다.
강산은 스텝들과 배우들과 함께 간단한 저녁 식사를 했다.
아무리 일하러 왔다고 해도 야외에서 하는 식사는 대학 MT 기분이 난다.
식사를 같이하다 보면 인간적으로 서로 친하게 만들어 준다.
강산은 식사를 마치고 산책도 할 겸, 저녁에 촬영할 장면도 정리할 겸, 펜션과 가까운 연못을 찾아 걸었다.
회귀하기 전에 펜션 본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제법 큰 연못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당시 <부부의 신세계>를 촬영할 때, 부부가 산책하는 장면도 찍었으니까.
깊은 산속에 인공으로 만든 커다란 연못과 주변을 둘러싼 가로등과 고즈넉한 산책길도 인상적이었다.
그 위에 울긋불긋한 단풍잎들이 내려앉아 있었다.
강산은 연못에서 관리인 상준이 새엄마 영숙을 죽이고, 작은 딸 다미가 죽고, 큰 딸 다현이 상준을 복수하는 주요 장면들을 촬영할 생각이었다.
대충 이 정도쯤에 연못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연못 같은 공간이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럼 어디서 죽이지?’
연못을 설정하고 만든 대본을 다시 수정해야 하나 고민이었다.
강산은 고민하다가 펜션 주인에게 연못 위치를 물어보려고 펜션으로 갔다.
강산이 펜션 본채의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아주머니 한 분이 나왔다.
안에서 TV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TV를 보고 있었나 보다.
“누구세요?”
“별채에 있는 손님입니다.”
“무슨 일인데요?”
“몇 가지 좀 사장님에게 물어 볼게 있어서요?”
주인아주머니는 그래도 손님인데, 강산을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다.
현관문을 조금 열고는 얼굴만 보이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래도 손님을 맞는데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낯선 사람에게 경계심이 많은가 싶었다.
“말씀하세요?”
“저... 혹시 여기 근처에 연못이 있지 않습니까?”
“여, 연못요?”
아주머니는 강산의 말에 많이 놀란 모습이다. 그녀의 작은 눈이 동그랗게 커지고 말을 더듬었다.
강산은 회귀 전에 기억하던 장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저쪽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어, 어...”
아주머니는 강산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말을 더듬었다.
강산은 아주머니가 지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의심스러웠지만 친절한 미소를 잊지 않았다.
“혹시 연못에서 촬영해도 되는지, 허락받으려고 왔습니다.”
“여, 여, 여보! 여기 좀 나와 보세요. 빨리요. 빨리. 그 분이 왔어요. 그 분이!”
아주머니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강산은 뒷걸음쳐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주인아주머니는 강산을 손을 ‘꽉’ 잡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강산을 억지로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거실 소파에 강제로 앉게 했다.
“선생님. 여기 잠깐만 앉아 계세요.”
“네. 저기...”
강산은 살짝 당황했다. 이런 상황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차 좀 준비할게요. 커피가 좋으세요? 아니면 녹차?”
“네? 저는 커피... 얼음이 있으면 아이스로”
그때, 안방에서 배가 불뚝한 아저씨가 나타났다.
“무슨 일 이길래, 소란이야?”
“여보. 그 선생님이 말한 그 분이 왔어요.”
“무슨 선생?”
“아이고! 여봇! 여기 상량할 때 축수하던 그 선생님이 이곳이 화기가 세다고 물을 가까이 하라고 했잖아요. 당신이 그 선생님에게 ‘그럼 우물을 파 놓을까요?’ 했더니, ‘우물 정도로는 부족해. 연못정도는 돼야지.’ 하시던 선생님요?”
“운봉거사!”
“그래요. 운봉거사. 당신이 운봉거사에게 연못은 어디가 좋겠냐고 했더니, 나중에 귀인이 와서 알려줄 거라고 했잖아요.”
“그랬지.”
“그 분이 왔다고요. 연못 위치를 가르쳐 줄 분이요.”
“어디, 저 분이?”
“네~에”
강산은 불편한 자리라 소파 끝에 엉덩이만 걸치고 있었다.
주인 부부의 말을 엿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주인 부부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주인 부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지만, 자신이 연못 위치를 가르쳐 줄 사람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저~. 선생님.”
“네. 사장님”
“선생님. 갑자기 이런 말이 당황스럽겠지만 저의 펜션에 연못을 만들려고 하는데, 연못 위치 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사장님. 저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지, 풍수를 보는 지관이 아닙니다. 풍수는 잘 모릅니다.”
“살려주세요. 선생님. 한번만 도와주세요. 제발 연못 위치 좀 가르쳐 주세요. 운봉거사님이 귀인이 연못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이곳이 불타버릴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강산이 지관이 아니라고 거절하는데, 주인아주머니가 강산이 가르쳐주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한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 이곳에 왔을 때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강원도에 큰 산불이 나서 이곳도 위험한 적도 있었지만 연못 덕에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사장님 말씀은 ‘지금은 연못이 없다.’는 말씀이시죠?”
“네. 하지만 선생님이 적당한 위치를 가르쳐주면 그곳에 연못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사장님. 좀 전에 지관이 아니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선생님. 아까 저쪽을 가리키며 저쪽에 연못이 없냐고 하셨잖아요.”
주인아주머니가 강산을 보며 말했다.
“그건... 제가 잘못 알고, 착각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강산이 잘못 안 것이라고 잡아떼자, 주인부부는 적잖이 실망한 표정이다.
주인부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곤란한 일로 다른 사람들과 엮이는 것은 질색이다.
자리가 불편해진 강산은 일어서면서 주인부부에게 말했다.
“그런데 사장님. 근처에 연못 말고 우물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진짜 없는가요?”
“네. 선생님. 저희 펜션 근처에는 연못도 우물도 없지만요. 저 너머 오래된 저수지는 있습니다.”
“사장님. 죄송하지만 저수지 위치 좀 가르쳐 주시겠어요?”
“그럼, 선생님. 제가 저수지 위치를 가르쳐 주는 대신 선생님은 연못 위치 좀 가르쳐 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강산은 주인 부부의 얼굴을 보았다.
이 분들에게 연못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만 간절한 눈빛이다.
강산은 펜션 근처에 연못이 없다면 저수지가 필요했다.
시나리오를 지금 바꾸기에는 무리가 있다.
주인 부부는 저수지 위치를 가르쳐줄테니, 강산에게 연못 위치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반대로 강산이 연못 위치를 가르쳐주지 않으면, 저수지 위치를 가르쳐주지 않을 지도 모른다.
“사장님. 그럼 제가 생각하는 연못 위치를 말씀드려도 되는가요?”
“그럼요.”
“나중에 다른 말씀 하지 않으실 거죠.”
“당연하죠.”
“정말 다른 말씀 하시면 안 됩니다.”
“네.”
“그럼, 내일 아침에 와서 말씀드릴게요.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여보, 지도 좀 가져와서 선생님에게 저수지 위치 좀 가르쳐 드리세요.”
주인부부는 강산에게 지도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