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안정민: 나는 정말 안돼.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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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질까요?”
강산의 질문에 최철수는 쉽게 아니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최철수가 생각하기에도 문제되는 배우들의 연기력은 몇 번의 연습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두 편을 촬영하는 것은 인정하기 어려웠다.
최철수가 이덕배 사장에게 강산을 새로운 감독으로 소개한 이상, 강산이 만드는 두 작품에는 자기 책임도 있다.
“최감독님. 감독님도 아시다시피 우리에게 시간이 별로 없잖아요.”
“그렇지만... 이건 좀...”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두 작품을 제 시간에 완성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음... 그렇기는 하지. 그래도 이런 식으로 만든다는 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아~ 최감독님. 오해하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감독님에게 말씀 드리지 않았나요?”
“무엇을 말인가?”
“전 최감독님에게 말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건망증이 심하네요. 감독님. 저는 후시녹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후시녹음!”
후시녹음이란 편집된 영상을 보면서 대사와 음향효과 등을 녹음하는 것을 말한다.
후시녹음은 동시녹음보다 그림을 보고 입을 맞추는 과정에서 부자연스런 상황이 연출될 수 있고 배우들이 현장에서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기 어렵다.
다만 녹음에 신경 쓰지 않아서 빨리 촬영할 수 있고, 실내 녹음이라 음질이 깨끗하다는 장점도 있다.
“네. 후시녹음. 2주일 안에 두 작품을 완성하려면 촬영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해서요. 그 방법으로 후시녹음을 생각했습니다. 후시녹음을 한다는 전제로 배우들도 캐스팅했으니까요?”
“캐스팅도?”
“네, 감독님. 그래서 연기가 되는 장민호 선생님과 선우혜 선배 외에는 비주얼 위주로 배우들을 캐스팅했습니다.”
“아! 그런 수가 있었네. 묘수야. 묘수. 그런데 말이야. 촬영을 마친 후에 후시녹음을 하려면 제작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
후시녹음은 당연한 말이지만 별도의 녹음 시간이 들어간다. 동시녹음을 하는 것보다 당연히 편집시간이 더 걸린다.
“그래서 촬영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가능한 배우들의 대사를 줄이고, 배우들의 발음이 어색한 부분은 후시 녹음을 할 때 다시 보충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후시 녹음을 할 성우 분들은 섭외했는가? 내가 좀 아는 성우들이 있는데?”
“오대산으로 출발하기 전에 이규리 배우 역으로, 김정란 성우님을 섭외해 놓았습니다. 다른 배우들은 본인이 직접 하거나 성우들을 구하거나 그때 가서 정할 생각입니다.”
김정란은 DBS 7기 공채 출신 성우로, 50세가 넘었지만 세기의 미녀라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전담 성우로 유명했다.
‘마를린 먼로의 입술, 리즈 테일러의 눈’이라는 말도 있을 만큼,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아름다운 눈을 가진 배우로 유명하다.
김정란 성우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미모에 어울리는 예쁜 목소리를 내려고, 일부러 밥을 먹지 않고 녹음했다고 한다.
“아~ 김정란 성우라면 믿을 만하지. 그래서 배우들에게 표정 연기를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발성부분은 그냥 넘어갔었구먼.”
“네. 감독님에게 미리 말씀을 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괜한 걱정을 했어.”
* * *
“2층 씬만 더 촬영하면 오늘 촬영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 주세요.”
강산이 스텝들을 독려하고 있을 때, 조감독 역할을 해주는 서지수 조명기사가 급한 표정으로 다가와 말했다.
“강감독, 안정민이 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왜요?”
“몰라. 그냥 자기는 하기 어렵다는 말만 하고 있어”
“나, 참.”
다음 씬은 상준이 다현에게 나쁜 짓을 하려고, 2층 발코니로 외벽을 타고 올라가는 짧은 씬이다.
강산은 펜션 2층 발코니 아래 외벽에서 촬영을 대기하고 있는 안정민에게 다가갔다.
안정민은 미안한 듯 강산을 시선을 피하고, 페트병에 든 물을 마시고 있다.
“정민이 형! 좀 빼지 말고 도와줘요.”
“강감독. 나도 하고 싶지. 그런데 안 되는 걸 어떡해. 무리야 무리. 억지로 하다가 다치면 나는 어떡해? 무슨 보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근육맨 안정민이 왜 그래요?”
“이 근육은 실전용이 아니야. 보여주기 전시용이야. 보기보다 그렇게 힘이 없어. 이번 씬은 팔 근력이 좋아야 가능한 씬이잖아.”
“그렇게 힘든 장면이 없어요. 형은 그냥 달리다가 그냥 올라가면 척만 해도 된다니까요.”
“강감독. 정말 미안한데, 지난번에 어깨 부상을 당해서 재활중이거든 지금은 조심해야 돼.”
“형. 미리 장치를 다 해놓았어요. 발만 걸치면 그냥 올라간다니까요.”
강산의 유혹에 안정민은 잠시 더 고민하다가 말했다.
안정민은 이번 영화에 참여하기 전에 매형이 하는 샷시 일을 도와주다가 어깨를 다쳤다.
지금은 다 나았다고 생각하지만 무리하다 다칠까봐 조심하고 있었다.
“강감독. 미안하지만 이번 씬은 내가 하기 어려워”
이번 씬은 상준이 다현의 2층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외벽을 타고 발코니로 올라가는 장면이다.
보통 에로영화에서는 이런 장면들을 촬영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하므로 반드시 필요한 장면은 아니다.
강산은 상준이 다현에게 나쁜 짓을 하기 전에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더하려고, 다현이 잠들어 있는 장면과 상준이 발코니로 올라가는 장면들을 교차해서 편집하려고 한다.
‘안정민이 어깨부상으로 어렵다고 하는데, 더 이상 설득하기도 어려울 것 같고, 그냥 다음 씬으로 넘어갈까?’
강산이 이번 씬을 포기 하고 다음 씬으로 넘어 갈지 고민하고 있을 때, 김두호가 강산에게 다가왔다.
김두호는 촬영을 구경하려고 촬영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강산이 촬영을 시작하지 않고 스텝들 분위기도 이상해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온 것이다.
김두호는 애플의 제작부장이다.
일반적으로 영화사의 제작부장은 전체적으로 영화제작을 관리하지만, 김두호는 이덕배 사장의 대리자이자 영화 진행을 감시하는 감독관이다.
이덕배 사장은 이번 작품에 애플의 운명이 달렸다며, 김두호에게 목을 걸라고 지시, 아니 협박(?)했다.
그래서 김두호가 이번 영화를 지원(?) 아니 감시하기 위해 동행한 것이다.
강산이 김두호를 빌려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어도 이덕배는 김두호를 딸려 보내려고 했다.
강산을 감시하라고 말이다.
“무슨 일이야?”
김두호가 강산에게 물었다.
“정민이 형이 외벽 촬영을 하기 어렵다고 해서 말이야”
“왜?”
“자기 힘으로는 외벽을 올라가기 어렵대”
“허우대는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그럼 어떡하려고?”
“촬영을 포기하거나 대역을 찾아야지.”
“대역? 누구?”
김두호를 보던 강산은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김두호에게 물었다.
“김두호. 너는 어때?”
“뭐?”
“네가 정민이 형 대역하는 것 말이야.”
“정민이 형하고 나는 얼굴도 다르고 체격 차이가 조금 나는데?”
안정민은 180의 늘씬한 체구지만 김두호는 175정도의 단단한 체형이다.
“너는 벽을 타고 올라가는 뒷모습만 나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정 어색하면 편집하지 뭐”
“좋아. 저 정도 높이야 식은 죽 먹기지. 사실 말은 잘 안했지만 해병대에 있을 때 저것보다 높은 것도 올라가고 뛰어내리는 훈련을 했지.”
“그럼, 정민이 형 옷으로 갈아입고 연습 좀 해보자.”
안정민 대역은 김두호로 정하고, 김두호는 안정민이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발코니로 올라가는 장면을 리허설 했다.
김두호는 본격적으로 연기하려고 대기했지만 강산은 리허설 촬영 장면으로 ‘OK’를 했다.
발코니로 올라가는 장면이 어색하거나, 촬영이 예상외로 길어지면 아예 건너 뛸 생각이었다.
그런데 김두호는 무협영화의 한 장면을 만들었다.
김두호는 건물 외벽으로 달려가더니, 오른발로 외벽을 ‘툭’ 차고는 그 탄력으로 올라갔다.
발코니 난간을 두 손으로 붙잡고, 턱걸이 하듯이 상체를 끌어 올리고 발코니 위로 올라갔다.
외벽을 올라가기 편하게 숨겨놓은 받침을 사용하지 않고 말이다.
다음 장면으로 안정민이 마당에 있는 소나무에 기대어 발코니를 바라보다가 외벽으로 달려가려는 장면을 촬영했다.
외벽을 올라가는 장면은 김두호가 촬영한 컷으로 이어 붙일 생각이다.
자세하게 본다면 조금 차이나는 점이 보이겠지만 밤이 주는 마술과 편집의 마법으로 자연스럽게 만들 것이다.
다음으로, 안정민이 발코니 난간 끝을 양손의 손가락으로 집고, 탄력으로 발코니 위로 올라가는 장면을 촬영했다.
이 장면을 찍기 위해서도 한바탕 쇼를 했다.
안정민이 발코니 난간 밑에서 발코니 위로 올라오는 장면에서, 안정민이 발코니 밑에서 쉽게 올라가기 위해 높이가 맞는 사다리를 찾았다.
펜션 주인 부부에게 부탁했지만 펜션에 있는 사다리는 높이가 낮은 사다리밖에 없었다.
촬영에 적당한 높은 사다리는 구하지 못했다.
강산은 임기응변으로 발코니 근처 외벽에 책상을 설치하기로 했다.
“김두호 부장님. 부엌에 있는 식탁을 가져와서 벽에 붙이고 그 위에 사다리 좀 올려 주세요.”
김두호는 펜션에 있는 식탁을 가져다가 외벽에 붙이고 그 위에 사다리를 설치했다.
“강감독. 아무래도 불안한데?”
“뭐가?”
“식탁 균형이 안 맞아서 사다리가 조금 흔들리는 거 같아”
“그럼 네가 사다리 좀 잡아서 지지해줘”
식탁위에 사다리를 올려서 자리를 잡고, 김두호에게 사다리가 움직이지 않게 지지하게 했다.
안정민이 사다리 위로 올라가자, 김두호는 사다리 끝에 오른 발을 밀어 넣어 고정했다.
“흐읍...”
김두호는 사다리가 조금 뒤로 밀리자, 오른발이 사다리에 끼어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났다.
안정민은 사다리 위에서 사다리 밑을 바라보며 다리를 부르르 떨었다.
강산이 ‘레디 액션’ 신호를 주자, 안정민은 급박한 얼굴로 서둘러 발코니 위로 올라오는 장면을 촬영했다.
강산은 스텝들에게 바로 다음 2층 정사 씬을 준비하게 했다.
이번 씬은 발코니 씬을 촬영하기 전에 촬영하려고 했던 씬으로, 2층 다현의 방에 몰래 들어간 상준이 다현에게 나쁜 짓을 한다.
촬영을 준비하던 서지수 조명기사가 난처한 표정으로 강산에게 말했다.
“이규리 배우가 잠을 자고 있어.”
“네?”
“오늘 촬영이 조금 피곤했나 봐. 외벽 촬영이 예상보다 길어졌잖아. 그리고 스텝들도 피곤해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안 돼요. 오늘 안에 촬영을 마쳐야해요. 이규리 배우를 빨리 깨워서 촬영 준비해 달라고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