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강산: 타켓층은요?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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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새벽 6시,
9월의 새벽은 제법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어제 준픽쳐스에서 빌려놓은 봉고는 강산이 운전하기로 하고, 조수석에는 채은숙이 앉았다.
뒷좌석에는 조감독겸 조명을 맡는 조천일, 잡일을 도와주는 잡부 남일규가 타고, 남은 공간에는 촬영용 기자재를 우겨넣었다.
강산은 채은숙과 스텝들을 봉고에 태우고, 어스름 새벽을 뚫고 경북 군위로 출발했다.
채은숙은 매니저가 다른 일정으로 매니저의 차를 이용하지 못하고, 강산과 같이 움직이게 되었다.
강산은 매니저가 따라오지 않아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채은숙은 이런 일이 익숙한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강산은 운전하면서 채은숙과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너무 피곤했나보다.
채은숙은 조수석에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강산은 미래지만 채은숙 같은 대가수가 이런 낡은 차에서 잠을 자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쓰러웠다.
강산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일행들과 간단한 아침 식사로 김밥에 라면을 먹고,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강산은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채은숙에게 말을 걸었다.
“채은숙 가수님. 우리가 가는 경북 군위라는 곳을 아세요?”
“경북 군위요. 잘 모르겠어요.”
“음, 트로트 가수들은 지방공연을 많이 간다고 하던데요?”
“네. 많이 가기는 가는데요. 저는 잠이 많아서 차를 타면 잠을 자서 잘 몰라요.”
“아~”
강산은 채은숙의 말에 다른 이야기를 계속하기 어색했다.
담배를 피우러 나가기 좋은 타이밍이지만 이번 생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니 대신 자판기 커피나 해야겠다.
채은숙은 낯가림이 심하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과는 살갑게 대하지 못해 건방지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중들 앞에서 노래하는 가수를 하고 있지만, 무대가 아닌 곳에서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의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강산 감독과는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처럼 말이나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채은숙도 자신의 이런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은숙씨. 커피 한 잔 마실래요?”
“아뇨.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자기 힘들어요.”
“아~ 네. 그럼 저는 커피나 한 잔 하고 올게요.”
강산이 자판기 커피나 마시려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채은숙이 강산을 불렀다.
“감독님.”
“네?”
“저기... 아까 말한 군위 있잖아요. 가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방금 전에는 잘 모른다고?”
“사실은 제가 너무 많은 지방에 가봐서요. 하루에 여러 지방을 돌다 보면, 지금 어디에 가는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라요. 사실 안다고 해도 노래만 몇 곡 부르고 돌아오는 거라 가본 적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렇군요. 참, 제가 어제 내가 드린 영화 <만추> 대본을 읽어 보셨어요?”
“네. 감독님. 그런데 왜 그 대본을 읽어봐야 하죠?”
강산은 순간적으로 얼음이 되었다.
채은숙이 자기하고 시비를 거는 것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회귀하기 전, 강산이라면 이런 말을 듣고는 절대로 참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억지로 하게 된 연기라지만, 연기하는 연기자가 자기 배역을 공부하지 않는 것은 연기에 대한 모독이다.
연기에 대한 모독은 강산, 자신에 대한 모독이라 여기고 불같이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강산은 채은숙의 말을 듣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해서 채은숙에게 화가 나지 않는다.
화를 내는 것도 열정이 있어야 하는데, 채은숙에게 화를 내기에는 강산이 나이를 너무 먹었다.
“영화 <만추> 대본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나 보군요.”
“그게 아니라... 뮤직비디오 <가을에 떠난 사랑>하고 영화 <만추>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 싶어서요.”
“노래 가사 하고 영화 만추의 여주인공 분위기가 비슷하지 않은가요?”
“네?”
“짧은 만남, 긴 이별. <가을에 떠난 사랑>의 가사와 만추의 여주인공의 이미지가 비슷하지 않은가 싶은데요.”
“아... 네.”
채은숙과 이야기하다 보니, 대화가 아니라 훈계가 되어 버렸다. 강산은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채가수님. 제가 말한 거 준비해 오셨어요?”
“네?”
“트렌치코트 말이에요. 가져오셨어요?”
“네.”
“그럼, 스카프는요?”
“아... 그건...”
트랜치코트와는 달리, 스카프에 대해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강산은 스카프는 준비하지 못했구나 싶었지만 채은숙의 얼굴을 보니, 준비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스카프를 싫어하나?
“은숙씨는 스카프가 별로인가요?”
“그게 아니라, 저하고는 스카프가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서요?”
“트렌치코트에 실크 블라우스 스카프를 맨 여인, 남자들의 로망이죠. 은숙씨 같이 예쁜 여자가 트렌치코트에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있으면 남자들이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을걸요.”
“제가 스카프를 하면 너무 올드하게 보이지 않을까요?”
“스카프는 여성들이 사계절 사용하는 패션 아이템이죠. 내가 보장하는데 20년 후에도 스카프가 유행할 거예요.”
강산이 채은숙에게 20년 후에도 스카프가 유행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말한 것은 채은숙을 설득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강산이 회귀하기 전, 2025년에도 스카프에 대한 여자들의 사랑은 여전했다는 것을 직접 보았다.
영화 <세 번의 사랑>을 하면서 하수연에게 <구짜>의 실크 스카프를 씌우려고 했다.
그런데 스카프 하나에 60만원이 넘어서 내심 ‘허거덕’ 하기도 했다.
고희윤의 전화 덕에 협찬으로 처리했지만,
아직도 스카프 한 장에 60만원이나 한다는 사실과 ‘없어서 못 판다.’는 <구짜>의 매니저의 말이 생생하다.
“그래도요. 감독님. 설마 스카프로 머리를 묶게 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너무해요. 감독님. 그럼 할머니같이 보이잖아요.”
“할머니요?”
“스카프로 머리를 묶는 것은 할머니 같잖아요. 감독님, 요즘 아가씨들은 스카프를 머리에 쓰지 않아요.”
“그럼 어디에 쓰는데요?”
“스카프를 목이나 어깨에 해요. 참! 목이나 어깨도 아니라 가방이나 백에 매치해서 액세서리처럼 쓰기도 한다니까요.”
“사실, 스카프를 머리에 쓰는 패션을 바부슈카 패션이라고 하지요. 바부슈카는 러시아어로 ‘할머니’라고 하고요.”
“그런데 어떻게 머리에 스카프를 해요?”
“그래도 저는 채은숙씨가 머리에 썼으면 하는데요.”
“감독님. 제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기어이 스카프를 머리에 씌우시려는 이유가 뭐예요?”
“이번 뮤직비디오의 컨셉이 복고라서요.”
“복고요?”
“올해 가을부터 복고가 유행하고 있잖아요. 아마 내년까지는 계속 복고가 유행할 거예요.”
“감독님은 어떻게 아세요?”
“이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돼요. 그리고 <가을에 떠난 사랑>의 타겟층은 어느 연령대로 생각하세요?”
채은숙은 이번에 발표하는 <가을에 떠난 사랑>의 가사를 생각해 보았다.
‘당~ 신은 누~구 시길래, 이러십니까?~’
노래의 가사나 분위기가 젊은 세대가 선호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채은숙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뮤직비디오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뮤직비디오 강산 감독은 복고가 유행할 거라면서. 스카프를 쓰고 연기를 하라고 한다.
채은숙은 강산에게 ‘복고’가 유행할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강산은 회귀해서 알고 있다고 대답할 수도 없고.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알게 된다고 말을 얼버무린다.
강산은 타겟층 이야기를 하면서 화제를 전환했다.
“타겟층요? 노래를 부르는데 타겟층이 왜 필요하죠?”
“채은숙 가수님. 노래는 하나의 상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홍보하려고 뮤직비디오도 만드는 거 아니세요?”
“네”
“노래 같은 상품이라도 트로트를 선호하는 대상층이 다르지 않겠어요. <가을에 떠난 사랑>이 모든 연령대가 좋아하기를 바랄 순 없잖아요?”
채은숙은 강산이 말이 신선하게 들렸다.
그동안 신곡들을 발표하고 대중들의 반응이 없을 때마다, 기획사 전문가들은 곡도 좋고 노래도 좋은데 운 때가 맞지 않아서 그런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면, 노래를 계속하다 보면 기회가 온다고 기다려라. 참고 인내하라고만 했다.
소속사 사장은 채은숙의 인지도가 부족해서 그런다고 밤무대나 지방공연을 열심히 다니라고 하였다.
매니저는 채은숙의 얼굴이 사납게 보여서 그런다고, 성형수술을 권하고 있다.
그런데 강산은 노래의 타겟층을 이야기했다.
“그럼, 어떻게 해요?”
“그래서 목표로 하는 타겟층을 공략하는 것이 필요하죠. 이런 방법을 마케팅에서는 타겟 마케팅이라고 하죠”
“아... 네”
“은숙씨는 어떤 연령대가 <가을에 떠난 사랑>을 좋아할 거 같은가요?”
“그건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네. 그렇군요. 그럼, 지금부터 생각해보세요. 선호하는 연령대에 따라 홍보 방법도 달리하셔야 할거예요.”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예를 들어 20~30대가 좋아할 거 같으면, 지상파 TV 방송 출연에 집중해서 홍보하고, 40~50대가 좋아할 거 같으면 지역축제나 라디오, 지방 방송에 집중하셔야 하지요.”
“아... 그럼 감독님은 <가을에 떠난 사랑>이 어떤 연령층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제 생각에는 곡의 분위기나 은숙씨의 허스키한 창법을 보면, 은숙씨 세대보다는 40~50대가 제일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복고 바람이 불면 2, 30대도 좋아하게 될 거에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2, 30대가 좋아하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선한 거짓말이라고 할까?
채은숙에게 희망을 주려고 하는 말이다.
미안하지만 회귀하기 전에 강산은 이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2, 30대가 좋아할지는 알지 못한다.
이 곡이 나오던 2000년대에는 정신없이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에로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노래가 히트했다면 들어는 봤을 것이다.
채은숙의 노래로 기억나는 것은 2007년의 <당신의 여자> 이후에 발표한 <사랑한다고> <내 남자> <고향 역에서> 등이다.
그래도 강산이 만드는 이상, 이 노래 <가을에 떠난 사랑>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히트하기를 원한다.
그러려면 바람이 불 때 돛을 올리듯이, 유행하는 코드와 맞추어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 그 4, 50대 세대들에게 어필해야죠. 그 4, 50대 세대들은 1960년대 ‘오드리 헵번’,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배우가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모습들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세대거든요.”
“그래서 스카프가 필요한 거군요. 그런데 어떡해요. 저는 감독님 생각도 모르고 스카프를 안 가져 왔는데요.”
“괜찮아요. 은숙씨 미모로 충분해요. 스카프 같은 거야, 시장에 들러서 사면 돼지요.”
“시장에서요?”
“뮤직비디오에서 필요한 건 스카프가 아니라 가을 분위기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