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에로영화감독의 비상-89화 (89/140)

〈 89화 〉 김여정: 이젠 내가 싫어진 거야.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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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은 이한의 방 앞에 있었다.

이한의 방문을 노크하려다가 글 쓰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노크를 포기하고 그냥 돌아가려고 했다.

이미숙은 벌어진 문틈 사이로 이한이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미숙은 잠시 주저하다가 빨간 사과를 이한의 방문 앞에 놓아두고 돌아섰다.

지난번에 자위 소동을 사과하려고 사과를 놓아둔 것이다.

화면이 전환된다.

이한은 신춘문예를 준비하느라 항상 정원에서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오늘도 여관의 마루턱에 앉아서 봄을 맞아 초록색이 올라오는 정원을 감상하고 있다.

마침, 이미숙이 정원을 지나가고 있었다.

“잠깐만요. 미숙씨!”

“왜요?”

“지난번에 제방 앞에 사과를 놓아둔 사람, 미숙씨죠?”

“네. 맞아요. 전에는 제가 실례했어요.”

“잘 받았어요.”

“뭐라고요?”

“사과 잘 받았다고요. 그리고 잘 먹었어요.”

“네. 그럼 이만”

“잠깐만요. 나중에 심심하면 제 방으로 놀러 오세요. 제가 재미있는 책을 빌려드릴게요. ”

“네. 고마워요.”

미숙이 돌아서자, 이한은 무언가 통했다는 생각에 주먹을 불끈 뒤고 즐거워했다.

강산은 이한이 먼저 미숙에게 책을 빌려주고, 나중에는 미숙이 이한에게 책을 빌리는 장면을 촬영했다.

다시 화면이 전환된다.

이미숙은 이한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강산은 이번 장면에서 이한이 이미숙에 대한 감정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미숙이 이한에게 접근하는 다른 의도가 있는 가를 의심하는 작은 불씨를 남겨두려고 한다.

강산은 조명팀에 이한의 방에 창호지 문으로 따뜻한 봄 햇살이 스며드는 것처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 장면을 보는 관객들의 감정이 말랑말랑 부드러워지게 말이다.

이 장면은 박성희 미술감독이 수고했다.

기존의 창호지 문이 누렇게 빛이 바래서인지, 햇빛이 잘 투과 되지 않아서 헌 창호지를 뜯어내고, 새 창호지로 문을 발랐다.

오후의 햇빛이 창호지 문을 타고 들어와 이한의 방안을 밝게 비치고 있었다.

미숙은 햇빛에 비치는 창살 무늬 문에 기대어 앉아서 책을 읽고, 이한은 조금 떨어진 앉은뱅이책상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이한은 글을 쓰려고 앉아있지만, 흘낏흘낏 미숙을 흘려보며 온 신경은 온통 미숙에게 쏠려 있다.

무슨 말이든 미숙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때, 미숙은 앉은 다리가 불편한지 다리를 주먹으로 두드리고 앉아서 책을 보다가 방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려서 책을 읽고 있다.

이한의 시선은 방안으로 들어온 햇빛을 따라갔다.

미숙의 어깨를 감싸고 허리와 엉덩이를 지나, 치마 아래에 하얀 다리를 지나간다.

부드러운 햇빛이 미숙의 치마에 머물렀다.

“컷. NG요. 이영철 배우님. 시선을 돌리는 템포가 조금 빨라요. 리허설할 때 카메라가 이한의 시선을 따라 이동한다고 말했잖아요. 조금 천천히 고개를 돌려주세요.”

“네.”

“그리고 지금 원고지에 무슨 글을 쓰고 있는 건가요?”

“그냥, 중국 요리 이름을 쓰고 있는 건데요.”

“음, 카메라에 잡히지는 않겠지만 다른 글을 쓰는 것은 어떨까요? 아니면 글 대신 그림을 그리시던가요?”

“무슨 그림을 그릴까요? 감독님.”

“아무 그림이나요. 지금 이한이 글을 쓰려고 해도 이미숙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다는 설정이잖아요? 그래서 글 쓰는 대신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하죠.”

“네.”

“그럼. 다시 갈게요.”

이한은 자신이 혼자 있던 방에 이미숙이 들어오자, 불편하기는 하지만 나쁘지 않은 감정을 느꼈다.

미숙에게서는 한동안 맡아보지 못한 여자 화장품 냄새가 났다.

이한은 글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검정 볼펜은 둥근 사과를 그리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미숙에게로 고개가 돌아갔다.

미숙이 방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리자, 굴곡진 엉덩이 아래로 시선이 멈췄다.

이한은 그림을 그리던 볼펜을 떨어뜨린 것처럼 미숙의 다리를 향해 볼펜을 굴렸다.

그리고 볼펜을 주우러 가는 것처럼 일어나 미숙의 다리 밑에 멈춘 볼펜을 주우려고 고개를 숙였다.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미숙의 다리를 향해 손을 뻗다가 갑자기 일어난 이미숙이 이한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이어 이한의 창호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변태 자식...”

이한은 억울한 표정으로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며 방바닥에 있는 볼펜을 주었다.

*   *   *

어두워진 장미여관에 소란이 벌어진다.

부엌에서 냄비가 떨어지는 우당탕한 소리가 나고 여관방에 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아저씨, 무슨 소리예요?”

“모르겠다.”

잠을 자다가 일어난 것처럼 차영남이 천천히 상의를 걸치고 이미숙도 머리를 흩트리고 거실로 나왔다.

차영남이 야구 방망이를 들고 유리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자 이미숙이 말린다.

“아저씨, 조심하세요.”

“알았다. 너는 방에 있어라.”

“네”

차영남은 유리 문을 열고 부엌을 향해 걸어갔다.

어스푸름한 달빛에 시야가 온전하지 않지만, 부엌 문이 열려 있고 부엌 안이 소란스러워 보였다.

차영남은 부엌 등을 켜려고 스위치를 찾아 더듬 거리는데 누군가 차영남의 왼손을 잡았다.

“누, 누구야!”

“아저씨, 저예요.”

“너, 방에 있으라고 했잖아.”

“아저씨, 혼자 위험해지면 어떡해요. 다른 사람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요.”

“무슨 일이 있겠냐?”

“그래도요. 아저씨”

차영남이 부엌 문가에 붙은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자, 부엌에서 검은 고양이가 뛰쳐나왔다.

차영남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옮기며 고양이를 피했다.

“아니, 이 자식이! 훠이, 훠이”

“아저씨, 뭐예요.”

“고양이야.”

“고양이요? 도둑이 아니고요?”

“도둑고양이야.”

“아~ 네.”

“미숙아. 내가 방에 있으라고 하지 않았어?”

“그래도. 아저씨 혼자 위험해서 어떡해요.”

“후... 그래, 고맙다. 이제 방에 들어가거라.”

“부엌 좀 청소하고요. 아저씨나 먼저 들어가세요.”

“미숙아. 내가 정리할 테니, 네가 먼저 들어가 쉬어라.”

“아니에요. 저는 한번 잠 깨면 잠을 잘못 자요. 아저씨 먼저 들어가세요.”

미숙이 영남의 등을 떠밀자, 영남이 부엌을 벗어났다.

미숙은 혼자 남아 부엌 바닥에 떨어진 냄비들과 깨어진 김치 그릇들과 고구마를 담아놓은 그릇을 정리했다.

부엌에서 빗자루로 청소를 하고 정리를 마치려고 하는데 구석 그늘진 자리에 신발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

미숙은 신발을 두고 무슨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미숙은 누군가의 방 앞에 신발 하나를 올려놓고 고구마가 담긴 그릇을 놓아두었다.

*   *   *

차영남이 방에 손님이 들어왔다.

“영남씨~, 들어가도 돼?”

“마리아씨, 들어오세요.”

“아이고, 냄새야, 쿰쿰한 이 냄새가 뭐야, 홀아비 냄샌가?”

“무슨 일이에요. 이 밤중에”

“다른 일은 아니고요. 영남씨, 월세 말이야. 이번 달도 늦을 거 같아서 말이야.”

“그런 말이라면 낮에 해도 될 텐데요. 그리고 늦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요. 천천히 준비되면 주세요.”

“영남씨, 그게 말이야. 돈 말고 다른 것은 안 될까?”

박마리아는 차영남의 손을 잡으며 말하자, 차영남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박마리아의 손을 떼놓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것이 뭔데요.”

“그거 말이에요. 말로 하기 조금 어색한 거요. ”

“그러니까 그게 뭔데요.”

“아이, 영남씨, 그러지 말고, 시간이 별로 없어요. 밤이 너무 늦었잖아요.”

박마리아는 차영남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어색한 윙크를 했다.

차영남은 박마리아의 노골적인 유혹에 마음에 흔들리는지, 서둘러 이 자리를 정리하려고 했다.

“밤이 너무 늦었네요. 마리아씨,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얘기하죠. 요즘 초저녁 잠이 많아져서 그런지 너무 피곤하네요,”

“영남씨, 정말 이러기에요. 옛날에는 안 그랬잖아요. 미숙이 고년 때문인 거에요.”

“아네요.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초저녁 잠이 많아져서 그래요. 그리고 월세가 밀린 지 두 달이 넘었잖아요.”

“젊은 애한테 홀려서 나에게 이러는 거예요. 흐흐흑~”

“마리아씨, 이러면 안 돼요.”

“흐흐흑, 영남씨 정말 너무해요.”

박마리아가 울기 시작하자, 차영남은 박마리아를 일으켜 세우려고 박마리아의 허리를 잡았다.

갑자기 박마리아가 차영남을 포옹하고, 차영남은 박마리아에게 이끌러 이불 위로 넘어진다.

잘못 보면 차영남이 박마리아의 몸 위에 올라탄 형국이다.

이때, 꽈당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차영남과 박마리아는 소리가 나는 문 쪽을 바라보았다.

이미숙이었다.

“마리아 아줌마, 지금 뭐하는 거예요!”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아줌마! 여관방 월세는 몸이 아니라 돈으로 갚으세요.”

이미숙은 사납게 박마리아의 머리를 잡고 차영남의 방에서 끌어냈다.

“미숙아! 이거 놓고 얘기하자. 미숙아. 나 어제 머리 했어. 놓고 얘기해, 놓고. 요즘 머리카락에 힘이 없어서 손대기만 해도 머리가 빠진다고.”

박마리아는 이미숙에게 끌려가면서 이미숙의 손을 툭툭 치면서 놓으라고 소리쳤다.

“컷. OK요. 오늘 촬영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스텝들은 정리해 주세요.”

강산이 OK를 하자, 서정아는 김여정의 머리에서 손을 풀고 김여정에게 사과한다.

“선생님, 너무 쎄게 잡았죠.”

“아냐. 잘했어. 그런데 무슨 애가 손힘이 그렇게 세니? 아이고야,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줄 알았네.”

“선생님. 죄송해요.”

서정아가 김여정에게 연신 고개 숙이며 사과하자, 이것을 지켜보던 장민호가 서정아에게 말했다.

“아냐, 잘했어. 이런 씬은 한 번에 가야지, 봐준다고 널널하게 연기하다가는 강감독이 절대 OK하지 않을 거야.”

“민호씨, 머리는 내가 잡혔는데 내 걱정은 하지 않고, 정아씨 걱정해주는 거야.”

“아니야. 강감독이 NG를 걸기 시작하면 여정씨가 더 힘들어질까 봐 그런 거지.”

“그건 그렇고 민호씨, 옛날 같으면 내 얼굴을 마주 보지도 못했는데, 이젠 내가 유혹해도 눈 깜짝하지 않데. 이젠 내가 싫어진 거야. 민호씨”

“그만! 여정씨. 이제, 그만 후배들 놀려요. 여정씨를 잘 모르는 후배들은 여정씨가 진짜로 화난 줄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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