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차영남: 명수를 놔 주십시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알았다. 최대한 빨리 처리해 주마.”
짝귀의 말에 명수의 얼굴에 안도감이 돌았다.
명수는 짝귀가 이렇게 쉽게 인정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짝귀가 인정하지 않으면 사생결단을 하려고 발리송 나이프를 준비해 온 것이다.
사실, 짝귀가 구두로 한 약속을 인정한다고 해도 실제로 돈을 줄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오히려 시간을 끌면서 뒤통수를 치려는 수작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긴장이 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명수야. 요즘은 뭐하면서 지내냐?”
“나야. 뭐 집에서 잘 쉬고 있죠.”
“너, <헤라>라는 룸살롱 알지?”
“알죠. 미숙이가 일하던 클럽 아니에요.”
“거기 말이야. 네가 좀 맡아서 해볼래.”
“<헤라> 룸살롱, 거기 성규형이 관리하는 곳이 아닌가요?”
“그래. 지금은 성규가 맡고 있지.”
“생각해 보기로 하죠. 그럼 저는 일어나 보겠습니다.”
차명수는 짝귀에게 인사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이지만은 차명수가 나가자마자 짝귀에게 대들 듯이 말을 했다.
“이모부, <헤라>는 저한테 준다고 했잖아요? 저 자식에게 주면 어떡해요? 헤라가 없으면 내가 성규를 치기 어렵다고요.”
“지만아, 기다려라. 너는 왜 그렇게 조급해.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모든 것을 얻게 될 거야.”
* * *
다음날 강산은 차영남과 짝귀가 만나는 장면을 촬영했다.
장민호 선생의 발목 부상이 완전하게 나은 것은 아니라서 가능한 움직이는 동선을 줄이고 대사 위주로 장면을 설정했다.
짝귀와 이지만이 <신한건설>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서 퇴근해서 나오는 장면을 촬영했다.
이어서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던 차영남이 짝귀 앞에 막아서는 장면을 촬영했다.
다음 장면은 차영남과 짝귀가 만나는 장면으로 <신한건설> 근처 건물 지하에 있는 <청춘> 다방에서 촬영했다.
<청춘> 다방은 80년대의 이미지가 많이 남아 있었다.
다방 구석에는 90년대 들어 사라진 뮤직박스가 있고, 그 안에는 음악다방 DJ들이 음악을 틀어주던 앨범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점차 사라지고 있는 음악다방에서, 사라져야 할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강산은 조명을 조금 어둡게 해달라고 했다.
차영남과 짝귀는 다방 커피를 앞에 두고 서로 대치하듯이 마주 보고 앉아있다.
차영남은 조금 긴장한 듯 굳어있는 얼굴이 조금씩 떨고 있다.
짝귀는 차영남을 흥미로운 눈으로 보고 있다.
심드렁한 이지만이 차영남에게 말한다.
“아저씨. 길 가던 사람을 가지고 할 말이 있다고 여기까지 데려왔으면 말을 하셔야죠.”
“저는 차명수 아비 되는 사람입니다.”
“그건 방금 전에 하신 말씀이고요!”
“그만. 어르신에게 무슨 말버릇이야. 지만이 너는 좀 밖에 나가 있어.”
이지만은 억지로 일어나는 듯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차영남은 이지만이 밖으로 나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털썩’ 짝귀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짝귀는 차영남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놀라, 차영남의 어깨를 잡고 일으켰다.
“어이쿠, 선생님. 일어나십시오.”
“아닙니다. 사장님. 제 아들 좀 살려주십시오,”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교도소에 있는 명수를 누가 해치기라도 하겠습니까?”
“제 아들이 형무소에서 나왔습니다. 사장님.”
“네? 언제 나왔는데요?”
“며칠 전에 나왔습니다.”
“그래요. 학산파 애들이 명수에게 보복할까 봐 걱정하시는가 본대요. 학산파는 거의 정리했으니까 복수 같은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학산파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가?”
“사장님, 제 아들 좀, 그냥 놔 주십시요. 대신 여기 부족하지만”
차영남은 호주머니에서 구겨진 봉투 한 장을 내놓았다.
짝귀는 차영남 내놓은 봉투를 보고 차가운 눈빛으로 변했다가 다시 미소지으며 말했다.
“명수 아버지. 이게 뭐니까?”
“제 아들이 그동안 사장님께 신세진 것에 대한 감사 표시입니다.”
“아저씨.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내가 명수를 도와주면 도와주었지 내가 왜 해치겠습니까? 명수는 내게 귀한 동생입니다.”
“사장님.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이제는 명수를 놔 주십시오.”
“아저씨. 나는 명수가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가져가세요.”
“아닙니다. 그동안의 고마움에 대한 성의 표시입니다. 저는 일이 있어서 그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차영남이 일어나서 <청춘> 다방을 나가자, 이지만이 들어와 짝귀의 앞자리에 앉았다.
“사장님. 명수 아버지가 뭐라고 하는 거예요?”
“명수가 출소했단다.”
“명수가요? 걔, 많이 남았을 텐데요.”
“아무튼, 나왔다고 치고 너, 명수한테 약점 잡힐 거 있냐?”
“어, 없어요.”
“너, 명수 애인하고 무슨 일이 있었잖아.”
“미숙이는 내가 먼저였어요. 명수 개새끼가 내 애인을 뺏은 거라구요.”
“명수가 빵에 들어갈 때 내가 뭐라고 했지?”
“빵에서 나오면 미숙이하고 1억을 준다고 했잖아요.”
“미숙이라는 애는 성규에게 처리하라고 했으니까 문제없을 테고 1억이 문제가 되겠구만”
“그런데 사장님. 명수에게 1억을 줄 거에요?”
“나한테 그런 돈이 어딨어.”
“네~. 그런데 저 봉투는 뭐에요?”
“아. 저 봉투, 명수 아버지가 주고 가더라. 명수 건드리지 말라고.”
“그럼, 명수는 건드리지 않을 생각이에요?”
“그건 명수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 있지 않겠어. 그리고 그 영감에게 가서 알아듣게 이야기 좀 해줘라.”
“뭘?”
“나대지 말라고”
* * *
영화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강산은 룸살롱을 빌렸다. 지난번과 같이 다정 룸살롱 박상무의 소개로 남부터미널 근처의 오피스텔 빌딩 지하에 있는 룸살롱이다.
이 <보물섬>이라는 룸살롱은 300평이 넘는 지하 식당가를 개조해서 실내 룸 개수만 해도 40개가 넘는 대형 룸살롱이다.
보통 룸 하나당 평균 3명의 도우미가 필요하므로 120명의 넘는 도우미와 웨이터, 마담 등 도와주는 인력들도 60여 명이 넘는다.
<보물섬> 룸살롱은 신장개업을 앞두고 영업허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정 룸살롱 박상무의 소개와 영화가 잘되면 저절로 홍보가 될 거라는 강산의 설득에 사장이 넘어간 덕에 일주일간의 촬영을 허락받았다.
박성희 미술감독에게 <헤라>라는 네온사인을 만들어 입구에 간판으로 달게 하고 조명팀에게 내려가는 입구를 좀 더 밝게 만들어 달라고 했다.
촬영장소는 세 곳으로 <보물섬> 사장의 사무실, <보물섬>의 일반 룸, <보물섬>의 최고급 룸에서 촬영할 것이다.
이곳 <헤라>에서는 세 씬을 촬영하려고 한다.
첫 번째 씬은 차영남이 사채업자들에게 빌린 돈을 갚으라고 협박당하자, 차영남을 도와주기 위해 이미숙이 김성규에게 선수금을 빌리는 씬이다.
이 씬은 명수가 장미여관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후에 벌어지는 일로 편집할 예정이다.
이 씬 뒤에는 <장미여관>을 비우고 이한에게 접수대를 부탁하는 씬과 조철성이 공사장에 나가려고 출근하는 장면과 미숙이 새벽에 퇴근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과 이어서 편집할 것이다.
강산은 서정아에게 이번 씬을 위해 몸 관리를 해달라고 했다.
룸살롱 <헤라>로 들어가는 씬에서 타이트한 블라우스를 입혀서 서장아의 육감적인 각선미를 보여주고 싶었다.
서정아는 이 장면을 위해 2주 전부터 운동과 식사량 조절 등 특별관리에 들어갔다.
이미숙은 <헤라>로 들어가기 전에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내뱉고는 긴 하이힐로 비벼 끄고는 네온이 밝게 빛나는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강산은 네온사인 빛만으로 조명하고 서정아의 뒷모습을 따라갔다.
이미숙이 <헤라> 안으로 들어서자 카메라는 어느새 이미숙의 얼굴을 정면으로 비춘다.
“무슨 일이세요?”
“김성규 사장을 만나러 왔는데요.”
“약속은 하셨어요?”
“아뇨. 수지가 왔다고 전해 줄래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이미숙은 자신을 막고 용건을 물어보는 웨이터에게 김성규를 불러 달라고 했다.
미숙이 헤라의 인테리어를 둘러보고 있는 동안 성규가 나와서 미숙을 발견하자 반갑게 맞이한다.
“어이, 미수기, 여기는 어쩐 일이여.”
“응, 오빠하고 이야기할 게 있어서 그런데, 오빠 시간 있어?”
“당연히 있제. 있고 말고. 미수기 니 헌티는 없는 시간이라도 내야제. 사무실로 가서 야기 허자.”
성규는 사무실로 미숙을 데리고 가려다가 멈춰서 웨이터들에게 말했다.
“어이! 느그들 이 누님이 나를 찾아오며는 나헌티 바로 모셔, 알것냐!”
“네!”
“이거 머여, 왜 그리 대답이 시원찮은 것이여, 알것냐!”
““네!””
“응, 그려. 수고들 허고”
성규는 미숙을 자기 사무실로 데려갔다.
사무실은 감각적이고 모던한 분위기로 책상 앞에 ‘ㄷ’자형 검정 소파가 놓여 있었다.
성규는 익숙한 듯이 ‘ㄷ’자형 검정 소파의 가운데에 앉아서 인터폰을 들었다.
“여기 쥬스 두 잔만 가지고 와?”
성규는 사무실이 익숙하지 않은지 두리번거리는 미숙에게 말했다.
“미숙이 니가 봐도 어색허지야. 내가 헌거 아니여. 명숙이 지가 헌거여. 요즘 인테리어 사업 헌다고 말이 아니여.”
“명숙이 언니, 인테리어 사업해요?”
“응, 사업 헌다고 난리여, 난리. 사업을 허믄 허는 기제, 왜 남편 직장에다가 일을 벌리는 거냔 말이여, 봐라. 우들헌티 이런 분위기가 말이나 되냐?”
“좋은데 뭘?”
“그런 그렇고, 뭔 일 때문에 찾아온 거야.”
“나 여기서 일 좀 하게 해줘”
“일? 무슨 일? 마담을 할려고?”
“아니 선수로 뛸려고”
“선수로. 그러믄 나야 좋제. 그런디 갑자기 왜 그러는디? 뭔 일이 있는가?”
“돈이 필요해서, 오빠 선수금 좀 줄 수 있어.”
“얼마나 필요헌디?”
“이천”
“이천, 음... 천으로 허면 안될까? 이천은 미숙이, 네가 갚을 때 쪼깐 보대끼지 않컷어”
“이천이 필요해. 성규 오빠, 일 년 전에도 선수금 삼천을 다 갚았잖아?”
“그때는 니가 한창 잘나갈 때고? 지금은 쪼깐 거시기허지.”
“오빠. 내가 지난번 선수금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오케이! 뒨말은 허지 말고, 알었다. 그러케 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