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김두호: 최룡해의 함정입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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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촬영은 모두 끝났지만, 후반부 작업과정이 남았다.
강산에게는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이었다.
여름 휴가 시즌에 영화를 걸려면 7월 말까지는 마무리해야 8월 초에 영화를 극장에 걸 수 있다.
한 달 안에 후반 작업을 마쳐야 한다는 말이다.
영화음악은 탁성대에게 맡겼다.
영화를 크랭크 인하기도 전에 탁성대에게 시나리오를 먼저 보냈다.
강산은 시나리오 페이지에 빨간 사인펜으로 원하는 음악 스타일과 사용 악기와 톤, 음악 시간 등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세밀하게 적었다.
강산은 시퀀스 주제에 맞는 음악들을 선곡하고, 몇 시퀀스는 주인공의 감정 상태와 영상 분위기에 맞는 새로운 곡으로 작곡해 달라고 했다.
탁성대는 음악도 모르는 감독이 까다롭게 군다고 불평을 했다.
그러나 자기가 생각해도 이런 장면에 강산이 상상하는 음악이 실제로 입혀지면 정말 근사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탁성대는 한 달 동안 골방에 틀어박혀 1차 샘플 본을 만들었다.
탁성대는 1차 샘플본에 불과하지만, 자신이 만든 성과물에 내심 만족하고 있었다.
강산이 촬영을 마치고 편집본을 가져오면 다시 미세하게 조정해야 한다.
탁성대는 자신이 만든 음악에 맞춰 편집을 수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음악을 모르는 강산에게, 음악감독 탁성대가 선곡하고 직접 만든 음악에 만족하는 강산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강산, 너는 입으로 음악을 만들지만 나는 몸으로 만든다.’
탁성대의 달콤한 상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배우들의 부상과 출연거부 등으로 수정된 시나리오가 도착하면서부터는 다시 작업해야 하는 곡들로 가득했다.
새로운 시나리오에도 빨간 사인펜의 흔적이 가득했다.
‘X 됐다’
편집은 이기수 편집기사를 찾아서 맡겼다.
강산은 직접 편집작업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이번 기회에 이기수 편집기사와 직접 인연을 맺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여러 작업을 동시에 지휘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았다.
강산이 회귀하기 전에 본 이기수는 영화의 리듬과 타이밍 조절이 뛰어난 편집 감독이었다.
회귀하기 전에 이기수가 편집했던 작품들은 개별 캐릭터들의 감정이나 연기가 튀지 않고 도미노가 순서대로 쓰러지듯이 부드럽게 이어지게 편집했다.
이기수는 지금은 무명의 편집기사지만 나중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편집 감독이 될 것이다.
강산은 이기수에게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를 넘겨주면서 시퀀스마다 어떤 느낌으로 편집해달라고 빨간 사인펜으로 적어 주었다.
특히, 국일관 시퀀스에서는 심장이 뛰는 역동적인 ‘원 테이크’ 편집을 요구했다.
이기수는 다른 감독들과 작업할 때는 감독이 보내 준 여러 버전의 컷을 돌려보면서 어떻게 편집해야 할지를 고민했었다.
강산 감독은 여러 버전의 컷들을 많이 주지 않았다.
자기가 시키는 대로 컷들을 이어 붙이라는 것 같은데 자의식이 지나친 감독 같았다.
이기수는 강산이 보내온 필름들을 순서대로 돌려보았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냥 순서대로 이어 붙이기만 해도 완성본이 나올 것처럼 거의 완벽해 보였다.
강산이 말한 <국일관> 시퀀스도 나쁘지 않았는데, 강산은 완벽한 ‘원 테이크’를 요구하는 것 같았다.
이기수는 ‘원 테이크’ 같은 역동적인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 반복되는 것 같은 비슷한 액션 장면들을 생략하고, 숨은그림찾기처럼 교묘한 지점을 편집점으로 잡아서 컷과 컷 사이를 이었다.
타격감이 있는 리얼한 장면들을 위주로 짜집기해서 <국일관> 시퀀스를 완성했다.
* * *
촬영이 종료한 지금, 유명세와 김두호의 업무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제일 중요한 일은 그동안 들어갔던 제작비를 결산하고 영수증을 일일이 맞추는 것이다.
문제는 초과한 예산 오천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였다.
영화 <첫눈>은 사전에 준비했던 예산 1억을 넘어서 오천만 원이 더 초과 지출되었다.
초과된 오천만 원은 유명세가 삼천만 원, 김두호가 이천만 원, 두 사람의 개인 돈으로 먼저 충당했다.
물론 사전에 해피미디어 최룡해 사장과 애플프로덕션의 이덕배 사장에게 구두로 승인받았다.
쿨하게 승인한 최룡해 사장과 달리 이덕배 사장은 애매하게 얼버무렸지만, 영화를 만드는 중도에 좌초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이 돈을 정산받아야 할 시간이다.
이론적으로는 50:50으로 투자한 최룡해와 이덕배가 초과로 지출한 오천을 절반씩 부담해야 한다.
김두호와 유명세는 먼저 지급한 돈을 어떻게 돌려받을지를 서로의 보스에게 각자 물어보기로 했다.
김두호는 서로 크로스로 상대 사장에게 물어보는 것은 어떠냐고 유명세에게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김두호는 해피미디어 최룡해 사장이 먼저 거절하기를 바랐다.
이덕배 사장에게 말해 보았자 돈이 없을 게 뻔해서, 이덕배에게 돈을 달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유명세에게 전화를 받았다.
최룡해 사장이 오케이 했다고 이천 오백을 주겠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이덕배 사장만 남았다.
“사장님”
“왜?”
“저, 영화 <첫눈> 있잖아요.”
“그게 왜?”
“초과된 예산을 정산할 시간이 돼서요.”
“얼만데?”
“지난번에 말씀해 드렸는데요. 이천 오백이라고”
“끄응, 왜 그렇게 많아.”
“그것도 지난번에 다 말씀드렸습니다.”
“알았어.”
“네?”
“내가 알았다고 했잖아! 나 이덕배야! 이덕배!”
“사장님 성함이 이덕배인 걸 누가 몰라요. 그게 아니라요. 이 일을 어떻게 처리 하겠냐구요?”
이덕배는 요즘 나이가 먹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거시기가 서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말에 힘이 떨어지는지, 근래에 들어 애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예전에는 자신이 인상만 써도 벌벌 떨던 김두호가 이제는 이덕배의 말을 듣고도 또박또박 말대꾸를 했다.
이덕배가 눈을 부라리면서 말해도 눈을 깔지 않고 오히려 똑바로 이덕배의 눈을 바로 보았다.
“해피미디어 최룡해 사장은 이천 오백을 주겠다고 합니다.”
김두호는 여기까지 말해 보고 이덕배의 인상이 더 험악해지면 바로 머리를 숙이려고 했다.
그러나 김두호의 마지막 말은 이덕배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었다.
김두호는 최룡해의 이름은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서”
이덕배의 목소리가 변했다.
김두호는 이덕배의 머리 위로 김이 올라오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이덕배는 피가 끓어오르는지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도망쳐야 한다. 아니 도망쳐야 산다.
김두호는 최대한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범인수선전>의 한립처럼 도망치거나 죽기 전에 가지고 있는 법기는 무엇이든지 다 던져야 한다.
“사장님. 진정하십시오.”
“내가 무얼 진정해! 너 지금 나를 놀리고 있는 거야!”
“사장님. 이것은 최룡해 사장의 함정입니다.”
“뭐, 함정?”
이덕배는 ‘최룡해 사장의 함정’이라는 말에 급속하게 냉정을 되찾았다.
예전부터 이덕배는 쩐귀 최룡해가 자신의 뒤통수를 칠 것이라는 의심을 지우지 않고 있었다.
“네. 생각해 보십시오. 사장님. 최룡해가 돈을 주겠다는 말은 사장님의 약점을 노리고 하는 말입니다.”
“내 약점, 내 약점이 뭔데?”
“현금 동원력”
“현금 동원력?”
“네. 최룡해는 사장님이 이천 오백을 내놓지 않으면 자신이 오천을 다 내놓을 것입니다.”
“왜? 최룡해가 왜 오천이나 내놓는데?”
“사장님, 그래야 최룡해가 사장님에게 투자 지분 조정을 요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분 조정?”
“네. 지금의 5:5에서 7.5:2.5로 지분을 고치자고 하지 않겠습니까? 참, 강산 감독에게 10%를 주기로 했다면서요, 그러면 7:2:1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 사장님은 20%가 되고 최룡해가 지분의 70%를 차지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20%, 최사장이 70%라고”
“네. 그래서 최룡해 사장의 함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덕배는 김두호의 말을 듣다 보니 그럴듯했다.
이덕배는 이렇게 될 것 같아서 최룡해를 그렇게 피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제 생각에 제일 좋은 방법은 오버된 오천을 투자 지분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투자 지분은 유명세와 김두호가 강산의 영화를 따라다니면서 이야기해 본 말이다.
강산이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아서 스텝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지만, 제작부장인 김두호와 유명세는 스텝들과 본의 아니게 만나게 되는 일들이 많았다.
만나는 스텝들과 배우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이 영화는 된다는 이야기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연기지만 시나리오, 감독, 촬영 모두를 혼자서 하는 강산의 천재적인 능력은 경이롭다고 말했다.
자신들도 투자할 수만 있다면 이 영화에 투자하고 싶다고 하였다.
로또가 눈앞에서 뛰어다니고 있는데 보고만 있다고 말이다.
유명세와 김두호가 자신들의 사재로 초과된 제작비를 도운 것은 최소한 본전은 챙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그런데 총제작비의 30%가 조금 넘는 돈을 집어넣고도 본전만 차지한다는 것은 너무 아쉽다.
최룡해 사장과 이덕배 사장이 받아만 준다면 초과된 비용 오천을 지분으로 바꾸고 싶었다.
“오천을 투자 지분으로 바꾸라고, 그럼 어떻게 되는데”
“투자 지분으로 바꾸면 3:3:3:1이 됩니다.”
“3:3:3:1”
“네. 최룡해가 30%, 사장님이 30%, 유명세와 제가 30%, 강산 감독이 10%가 되는 거죠. 사장님 지분이 30%로 조금 줄어들게 되지만 20%보다는 훨씬 좋지 않겠습니까?”
“음...”
“무엇보다 좋은 점은 최룡해의 지분이 70%에서 30%로 줄어들게 되고 사장님과 최룡해가 지분이 3:3으로 동등한 위치가 되지 않겠습니까? 최룡해의 함정에서도 벗어나게 되고요.”
“음... 알았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
“네. 사장님. 좋은 선택입니다.”
김두호는 이덕배의 ‘좋겠다’라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마터면, 요단강을 건너갔다가 올 뻔했다.
”그리고 김두호, 너 많이 컸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냐. 됐다. 너 갑자기 똑똑해진 거 같아서 하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