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6화 (6/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2. 계약 (3)

타리온에게 고대 웨어 울프들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 오라고 명령한 후, 곧바로 궁으로 돌아온 카리엘이 할 일은 바로 침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끙…….”

고작 황궁 보고 좀 걸어 다녔다고 체력이 방전돼서 끙끙 앓는 지경에 이른 카리엘.

자신의 쓰레기 같은 체력을 저주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대감에 차 있었다.

‘진짜였어.’

신이 신화적 존재와 계약해야 한다고 했고 계약자라는 능력을 주었지만, 완전히 믿진 않았다.

그만큼 신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계약 과정이 어렵거나 찾기 힘든 곳에 처박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비록 몸 상태가 나빠서 계약에 실패했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히 희망을 가져 볼 만했다.

“강체술…….”

카리엘이 고대 웨어 울프이 강체술을 중얼거리면서 상념에 젖어 들었다.

계약하기 위한 최소한의 체력을 마련할 방법으로 강체술을 익혀야만 했다.

문제는 고대 웨어 울프의 사장된 기술이라 찾기가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위험을 감수하고 타리온에게 시킨 것이다.

“쯧, 한동안 간자들이 늘어나겠네.”

카리엘이 피곤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타리온이 있기에 큰 위협은 없었지만 간자들을 색출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마 타리온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황궁 보고에서 있었던 일까지 소문나면 더 피곤해지겠지.’

얌전했던 황태자가 갑자기 활동적으로 변했다.

그것만으로도 관심을 받기에 충분한데, 뭔가를 하려고 한다.

몸을 회복하는 방법을 찾은 것인지, 아니면 믿는 구석이 생겼는지 알아보려 할 것이다.

뭐가 되었든 그들에겐 피곤한 일이므로 몇몇 세력은 카리엘의 회복을 방해하려 들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웨어 울프의 강체술을 찾고 수르트와 계약을 마쳐야 했다.

“시간이 많지는 않겠어.”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책 더미를 바라보았다.

「웨어 울프에 대한 고찰 (1)」

웨어 울프와 연관 있는 책 하나를 집어 든 카리엘이 대충 훑어보다가 저 멀리 던져 버렸다.

많은 내용이 담긴 것처럼 책이 상당히 두꺼웠으나 내용은 뻔한 이야기만 길게 나열해 놓은 것에 불과했다.

“그러고 보면 참 쓰레기들이 많아.”

분명 교수급이 쓴 책인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알맹이라고는 좁쌀보다 작았다.

몬스터와 관련된 책들도, 고대 마나 활용에 대한 고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귀족이라는 신분과 인맥발로 된 무늬만 교수들이 돈을 벌기 위해 낸 책들을 황궁에 은근슬쩍 납품해 명성을 올리고 그걸로 교수 생활을 더 이어 나가는 자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전생엔 반란과 외부의 침입으로 그런 쓰레기들이라도 데리고 써야 했기에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번 생은 황제가 될 생각이 없으니 상관없겠지만, 자신을 대신해서 황제가 될 이라면 굉장히 짜증 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일은 미어터지는데 쓸 만한 인재는 안 보일 것이니 당연했다.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또 다른 책을 툭 던져 버렸다. 방금 읽은 책은 제법 쓸 만한 것도 있었지만 강체술과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만약 강체술을 찾는 게 아니었다면 혹하는 내용도 있었지만 해답지가 있는데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그렇기에 기대감을 가지고 얌전히 타리온을 기다리는 카리엘.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았는지 얼마 후, 타리온이 돌아왔다.

“전하.”

“많네?”

타리온이 수레를 끌고 들어오자 그곳에는 엄청난 양의 책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쓸모없는 것으로, 타리온 나름대로 적들을 기만하기 위한 책들을 잔뜩 가져온 것 같았다.

“마법서는 또 뭐야?”

“하하…….”

카리엘의 책망 섞인 말에 어색하게 웃은 타리온.

“명령한 건?”

“여기 있습니다.”

“고작?”

타리온이 꺼낸 두 권의 책.

두 권 모두 낡은 책으로 상당히 얇았다.

“제 권한으로 찾을 수 있는 건 이 두 권뿐이었습니다.”

“나머진 내가 찾아야 한다는 거군.”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타리온이 그런 그를 보면서 물었다.

“무엇을 찾으시려는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카리엘이 잠시 고민하더니 작은 음성으로 말했다.

“고대 웨어 울프의 마나 활용법. 정확히는 그들의 육체 강화법이 필요해.”

“육체 강화…….”

“짧은 서술이긴 했지만 육체 자체를 강화시킨다고 적혀 있었어.”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평생을 마나 정제법을 익혀 온 타리온이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문외한일 수밖에 없었다.

“음, 일반적인 마나 숙성법이 아닌 다른 것입니까?”

“그런 것 같아.”

타리온의 질문에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몬스터들이 사용하는 마나 숙성법은 전부 다른 것 같아도 근본은 같았다.

근육이나 장기 등에 작은 마나홀들을 만들고 혈관을 타고 마나를 순환시켜 순수한 마나를 육체에 맞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마나 숙성법을 ‘육체 강화를 위한 마나 활용법’이라고 달리 칭하는 학자도 있었다.

하지만 고대 웨어 울프는 이보다 더한 것 같았다.

“마나홀 없이 육체 자체에 마나를 쌓는 방법일 거라 추정하고 있어.”

“정말 고대의 순수한 육체 강화법일 수도 있겠군요.”

타리온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는 듯 말했다.

지금처럼 투술이 발달되지 않은 시기에는 효율보다 순수하게 육체에 마력을 쌓는 극히 비효율적인 마나 활용법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타리온이 턱을 문지르면서 그럴듯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위험하긴 하지만…… 확실히 가능성은 있을 것 같습니다.”

타리온이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 군데에 모아서 마나를 정제해 가공하거나 압축하는 방법으로 안정성을 꾀하는 게 아닌 이상 위험성이 동반된다.

다수의 마나홀을 이용하는 마나 숙성법조차 날뛰는 마나들을 제어하기가 극히 까다롭다고 알려졌는데, 육체 자체에 마나를 때려 박는다?

그건 정말 리스크가 크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인간들이 괜히 심장에 마나홀을 만들고 한 군데서만 마나를 정제하는 작업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순수한 마나들은 악동과도 같아 몸 이곳저곳을 날뛰려 하기에 제어하기 까다로운 것이다.

카리엘은 타리온이 가져온 책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단…… 꽝이네.”

카리엘은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원하는 내용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직접 도서관에 가는 수밖에 없겠어.”

황태자의 권한을 이용해 최심부의 책들을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타리온이 입을 열었다.

“전하, 고대의 마나 활용법을 복원하기 위한 것이라면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이가 있습니다.”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울 이?”

“그렇습니다. 아는 친구가 있는데…… 육체에 관해서라면 전문가 수준입니다. 다만…….”

“다만?”

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묻자 그가 망설이다가 입술을 열었다.

“괴짜라는 게 문제입니다!”

그의 말에 카리엘이 순간 머리로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 있었다.

근육에 미친 기사.

“설마 토토 경인가?”

“그, 그렇습니다.”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기사 주제에 마나 숙성법을 연구하고 근육을 연구하는 괴짜.

지구의 헬창을 떠올릴 정도로 매일같이 운동에 매진하는 미친놈.

그가 바로 토토였다.

물론 그가 단순히 운동에만 열중하는 괴짜였다면 이렇게까지 유명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괴짜인 주제에 제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강력한 존재였다.

“타리온이랑 친구인 줄은 몰랐는데?”

“어렸을 적에 같은 동네에 살았습니다. 제가 황궁에 들어오고 나서는 자주 볼 수 없게 되었지만요.”

타리온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림자 출신인 타리온이기에 최대한 아는 사람을 줄여야 했고, 그 때문에 본래의 인연들도 상당수 끊어 내야 했다.

“흠, 그렇단 말이지.”

카리엘이 타리온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타리온에게 말했다.

“이왕 도움을 받을 거라면 사람을 좀 더 모으자.”

“사람을 말입니까?”

“그래, 어차피 황궁에는 마나 숙성법의 전문가들이 거의 없잖아? 그러니 밖에서 찾아야지.”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빙그레 웃었다.

그러고선 종이를 가져오게 시켜서 머리에 떠오른 사람들을 나열했다.

불에 미친 마법사 아르슈나

광전사 이리스

몬스터 외과 의사 브리온

“전부 괴짜로 유명한 자들이군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대체 어디서 들으신 겁니까?”

타리온의 물음에 카리엘이 산더미처럼 쌓인 책들을 가리켰다.

그러자 타리온이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래, 바쁘겠지만 수고 좀 해.”

“예!”

타리온에게 이 일이 최우선 사항임을 말해 준 후, 카리엘이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

다음 날, 동이 뜨기도 전에 일어난 카리엘이 곧바로 황궁 도서관으로 가기 위해 마치에 올랐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육체 강화를 위해 토토를 데려오겠다는 타리온에게 황궁 도서관으로 오라는 말을 전한 카리엘은 곧바로 고대 웨어 울프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어제 황궁 보고에서 있었던 일이 퍼진 덕분일까?

황궁 도서관에선 누구도 시건방지게 굴지 않고 알아서들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있었다.

카리엘은 그런 그들을 뒤로하고 황궁 도서관에 걸어 들어갔다.

귀족들이 열람할 수 있는 곳을 지나 황족 전용 서고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인 직계 황족들을 위한 서고마저 지나가자 늙은 노인이 나와 카리엘에게 인사했다.

“전하를 뵙습니다.”

“안에 들어갈 수 있겠나?”

그의 물음에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카리엘을 잠시 바라보더니 한 발자국 옆으로 비켜섰다.

황족들을 위한 서고보다 더 안쪽에 위치한 곳.

황제와 차기 황제만을 위한 황궁 도서관의 최심부.

카리엘이 황궁 도서관에 직접 온 것은 바로 이곳에 들어가기 위함이었다.

타리온이 시종장의 권한으로 황족의 서고까지 뒤져서 가져온 책이 변변찮은 이상, 남은 건 이곳뿐이었다.

“고맙네.”

“당연한 권리십니다.”

‘무늬만 황태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어 혹시나 했지만 늙은 사서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자신을 안내했다.

‘그림자 출신인가?’

예사롭지 않은 사서의 발걸음에 고민하며 가만히 뒤따라가는 사이, 카리엘은 자물쇠가 걸린 문 몇 개를 통과해 황궁 도서관의 최심부에 도착했다.

“미안하지만 좀 도와줄 수 있겠나?”

내관에게 했던 하대와는 달리 존중이 담긴 말투에 늙은 사서의 눈이 빛났다.

“그러기 위해 사서가 있는 것이니 편히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럼 부탁 좀 하지.”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며 고대의 마나 활용법이 담긴 책과 육체를 강화하는 방법들, 그리고 고대 웨어 울프의 마나 기술들이 담긴 책들을 요구했다.

그러자 사서의 눈에 흥미가 가득 담겼다가 사라졌다.

“앉아서 쉬고 계시면 금방 찾아오겠습니다.”

사서의 말에 카리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작 황궁 도서관에 온 것만으로도 살짝 피로감을 느낀 카리엘이 의자에 앉아 늘어져 있노라니, 어느샌가 책을 전부 찾은 늙은 사서가 조용히 다가왔다.

“전하.”

“벌써 찾았나?”

몇 권의 고서를 들고 온 늙은 사서를 본 카리엘은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자 늙은 사서가 책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찾고자 하시는 것이 고대 웨어 울프의 마나 활용법에 관한 것이라면 여기 있사옵니다.”

“음…….”

늙은 사서의 말에 카리엘이 침음성을 삼키자 주름진 얼굴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소신이 이곳에 나갈 일은 없을 것이니 걱정 마시옵소서.”

그 말에 카리엘이 늙은 사서를 빤히 바라보았다.

분명 전생에도 어릴 적에 몇 번 본 적이 있는 자였지만 황제가 되고 나서 자취를 감췄다.

‘묘하군.’

심상치 않은 자임을 본능적으로 느꼈으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급히 사서가 펼쳐 준 부분을 확인한 카리엘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찾았군.”

드디어 그토록 찾던 것을 찾아낸 카리엘이 빙그레 웃으면서 늙은 사서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마치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종이와 펜을 가져왔다.

그런 그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중요 부분을 빠르게 적어 내려간 카리엘은 종이를 고이 접어 품속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지.”

“할 일을 했을 뿐이옵니다.”

늙은 사서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이자 카리엘은 언젠가 반드시 보답하겠다는 말과 함께 곧바로 도서관을 나섰다.

그런 그를 보면서 늙은 사서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불의 의지가 사라지진 않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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