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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0화 (10/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4. 황제파를 조져라!

황태자가 황제에게 불려 갔다는 소식은 수도 전체에 퍼졌다.

황제파가 황궁을 장악해서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을 것 같지만 그만큼 황궁 내부에 첩자들도 많았다.

주로 황제파 소속이면서도 뒷돈을 받아 정보를 건네주는 이중 첩자들.

귀족파, 중립파, 심지어 타국의 사람들까지 이중 첩자들에게 돈을 건넬 정도로 보안이 개판인 황궁에서 이런 빅 이슈가 새어 나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순식간에 수도에 소문이 퍼져 나갔다.

의외로 사람들은 입은 싼 편이다 보니 귀족들 내에서만 돌던 소문은 수도의 제국민들에게까지 퍼져 나가는 데에는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재밌네.”

카리엘이 책상에 앉아 턱을 괴고는 오늘 자 아침 신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어제 아침에 발간된 신문을 보았다.

「갑작스러운 황태자의 과격한 행보. 이유는?」

황궁 보고에서 있었던 일을 다룬 신문 제목.

실수한 내관을 과격하게 대하고 시종들에게 패악질을 부렸다는, 다소 과장된 내용이었다.

황제파가 수를 쓴 것이 분명한 내용이었으나 오늘 자 신문은 달랐다.

「황태자의 과격한 행보는 도를 넘은 내관들의 행동 때문?」

「뒤늦게 나온 황궁 보고 담당관. 과연 실수일까, 의도적이었을까?」

「황태자에게 허리를 숙이지 않은 시종장. 그의 오만함은 어디까지?」

「내관들과 시종들의 불손한 태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갑자기 달라진 내용들.

황태자를 안하무인으로 몰아가던 내용들이 일제히 시종들과 내관들의 불손한 태도를 언급하며 공격 방향을 바꿨다.

‘귀족들이 은근 이런 걸 잘 물어 준단 말이야.’

카리엘은 미끼를 물고 파닥거리는 귀족파를 생각하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귀족파한테 신나게 처맞겠군.”

키득거리면서 고생길이 훤할 황제파를 상상했다.

심성이 그다지 좋지 않은 카리엘이 자신을 쓰레기로 몰아가려는 황제파를 보고 가만있었을 리 없다.

이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미리 준비시킨 자료를 타리온이 슬쩍 신문사에 전달했고, 그 내용이 조간으로 보도되며 여론이 바뀌었다.

평소 황제파를 고깝게 보던 귀족파 휘하의 신문사들이 곧바로 이 미끼를 물었고, 중립을 지키는 신문사 역시 돈이 될 것 같자 곧바로 달려들었다.

새벽에 발간되자마자 채 2시간도 되기 전에 여론이 바뀌어 가는 장면을 보면서 카리엘은 진한 웃음을 흘렸다.

이제 황제파는 카리엘을 공격하겠다는 생각은 고이 접어 두고, 자신들에게까지 불똥이 튀지 않게끔 끈을 잘라 내는 데에 집중해야 할 터였다.

“어디 고생 좀 해 봐라.”

카리엘이 키득거리면서 신문들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갈 때였다.

“전하.”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타리온이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카리엘이 들어오라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타리온이 덩치에 안 맞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황제파가 또다시 움직였습니다.”

“뭔데?”

“전하께서 폐하께 대들었다는 내용을 은근슬쩍 흘릴 것 같습니다.”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피식 웃었다.

“재밌네. 그럼 우리도 하나 흘려 줘야겠지? 다음 단계 시작해라.”

“예!”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딱 봐도 재밌다는 게 눈에 보일 만큼 즐거워하는 타리온을 보면서 카리엘도 미소를 지었다. 자신 역시 황제파를 엿 먹이는 지금 이 상황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전하.”

“응? 할 말 있어?”

“전하께서 찾으라 명령하신 사람들을 발견했사옵니다.”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찾았네?”

카리엘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괴짜들인지라 찾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광전사 이리스는 전투에 미쳤다는 평가답게 제국 외곽지역에서 전쟁을 찾아 돌아다녔고, 불에 미친 마법사 아르슈나는 화산지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몬스터 외과 의사 브리온 역시 몬스터 해부를 위해 위험 지역에서 생활했다.

그렇다 보니 상당히 찾기 까다로운 존재들이었다.

“연락은?”

“보내 놨습니다. 다만 답변이 올 때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 같습니다.”

“흠……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오지에 있을 게 분명한 이들이기에 답변에 시간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뭐, 당장 급한 것도 아니고.”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기를 컨트롤할 수 있게 강체술도 변화시켜야 하지만 그때까지는 시간이 꽤 남은 상태였다.

현재는 토토가 만들어 준 운동 스케줄과 강체술의 기본을 수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만약 이들이 안 된다고 해도 차선은 있었기에 급하지 않았다.

“천천히 해. 시간은 많아.”

“예!”

타리온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고는 방을 나섰다.

그런 타리온의 얼굴이 미소로 가득한 것을 보고 카리엘도 웃었다.

전생과 현생을 포함해서 오늘만큼 재밌었던 적은 없었다. 그토록 자신을 괴롭혔던 황제파를 엿 먹이는 기념비적인 날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더 기대되는 것은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어서 발악 좀 해 봐라.”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노트를 펼쳤다.

그곳엔 자신이 기억하는 황제파의 비리들이 가득했다.

전생에 황제파의 비리들을 조사했을 때 얻은 정보들이었는데, 그 당시 그림자들이 가져온 정보를 듣고선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었다.

‘설마 이런 짓까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서슴지 않게 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카리엘이 가진 정보는 황제파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귀족파, 중립파 가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고, 그것으로 적들을 혼란시킬 준비까지 되어 있었다.

“떠나기 전에 최대한 이걸 다 쓰고 가고 싶은데…… 되려나?”

카리엘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노트를 바라보았다.

현재 기억하는 굵직한 것만 해도 노트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그것으로 모자라 이중 첩자들과 각 세력을 걸치고 있는 자들까지 생각하면 귀족들을 엿 먹일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거기다 자신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사건들까지 연계하면 수도는 개판으로 변할 것이다.

떠나기 전에 수도가 개판으로 변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카리엘은 진한 미소를 그리며 새로운 노트를 꺼내 방금 떠올린 계획들을 적어 나갔다.

“흐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오는 상황에 즐거워하면서 정신없이 황제파를 엿 먹일 새로운 방법들을 적어 나갔다.

그러자 어느새 ‘뿅!’ 하고 나타난 수르트가 한심해하는 표정으로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누구는 화기를 최대한 빨아들여 체화하느라 정신없는데 정작 당사자는 놀고 있으니 기분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 놀고 수련해라.

“응? 언제 나왔대? 그리고 놀고 있는 거 아닌데?”

카리엘이 수르트를 보며 노트를 들어 올렸다.

-그게 노는 거지.

“다 미래를 위한 계획이지. 수도를 개판으로 만들어 놔야 나중에 내가 움직이기도 편하잖아. 그래야 마수들과 계약도 하러 가지.”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오는 변명을 들으며 수르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았으니 닥치고 수련해. 더 이상 화기 못 빨아들여. 일주일 동안 강체술로만 버텨야 한다고.

“음…….”

수르트의 말에 카리엘이 아쉬운 표정으로 노트를 바라보았다.

모처럼 황제파를 엿 먹일 엄청난 계획이 떠올랐는데 이대로 수련하러 가기는 아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르트의 서슬 퍼런 눈초리에 결국 강체술을 수련하러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카리엘이 토토를 불러 강체술 수련에 집중하는 사이, 수도는 말 그대로 개판으로 변해 갔다.

“이게 다 황제파 때문이다!”

“황제파를 끌어내려야 한다!”

명분을 잡았다는 듯, 귀족파 출신의 귀족들이 들고일어나 광장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아직 확실한 건수를 잡지는 못했기에 대놓고 대전 회의 안건으로 내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하위 귀족들을 이용해 광장에서 여론을 선동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단순하게 아니라고 반박하던 황제파도 시간이 지날수록 사태가 커지자 단순 대응을 멈추고 침묵했다.

며칠 동안 황제파 출신의 관료들이 온갖 욕을 들어먹으며 사태가 안 좋아지자 황제파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일부 내관들과 시종들의 불손한 움직임을 파악했다. 곧바로 조치했으나 조사 과정에서 황궁 보고 담당관의 경우 첩자로 밝혀졌다. 현재 이 사실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조사 중이다.」

황제파의 발표를 들은 제국민들은 귀족파를 따라 몰려들던 것을 멈추었다.

제국민들도 머리가 있는 이상 황궁에 귀족들이 첩자를 보내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 사건을 귀족파가 조작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자 귀족파는 당연히 반발했다.

이 사건을 덮기 위해 수를 쓰는 것이라 화를 냈지만 이미 여론은 서서히 식으며 사태를 관망하는 것으로 변해 갔다.

만약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들끓었던 여론은 귀족들이 또 서로 싸운다며 관심을 끊어 버릴 테니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 버리고 말 것이다.

“제법이네?”

토토와 열심히 수련하고 있던 카리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전하, 다시 운동하실 시간이옵니다.”

“아! 잠깐만.”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타리온을 대신해 남은 시종에게 명령을 내렸다.

“첩자들, 감찰부로 넘겨.”

“예, 전하.”

명을 받고 황급히 움직이는 시종을 보며 카리엘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럴 줄 알고 황태자궁에 있는 첩자들 몇을 잡아 두었다.

식재료를 각 궁으로 나르는 최하층의 시종들이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황태자궁으로 첩자들이 기어 들어왔다는 그 ‘사실’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꺼지기 전에 다시 장작을 넣어 줘야지.”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웃고 있을 때, 토토가 다가왔다.

“전하, 어서 운동을 시작하시지요.”

“아, 좀만 쉬면 안 될까?”

“아니 됩니다. 근육이 열이 받았을 때 운동해야 효과가 좋습니다. 그래야 강체술 수련도 더 효율이 올라가고요.”

토토의 말에 카리엘이 한숨을 푹 쉬었다.

“스트레칭부터 시작하시죠.”

“아까 했잖아!”

“쉬었으니 다시 몸을 푸셔야지요.”

카리엘의 반항에 토토가 웃으면서 말하고는 자신도 같이하겠다는 듯 열심히 스트레칭을 했다.

꿈틀거리는 근육을 자랑하면서 스트레칭을 하는 토토를 카리엘이 꼴 보기 싫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결국 토토의 말을 따라 스트레칭부터 시작한 카리엘은 오늘도 열심히 구슬땀을 흐렸다.

괜히 토토에게 도움을 청했나 싶을 정도로 지옥 같은 운동을 하고 있을 때, 감찰부는 난리가 났다.

“저, 전하께서 직접 보내신 거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황태자궁의 시종들에 의해 끌려온 세 명의 남자들.

한때 황태자궁의 시종들이었지만 첩자임이 밝혀져 궁의 지하에 갇혀 있던 자들이었다.

“황태자궁의 첩자임을 정식으로 발표하고 이들의 뒤를 캐라는 명이옵니다.”

“으음…….”

시종의 말에 감찰부장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수도 지역을 담당하는 감찰부의 장이었지만 그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가, 감찰총장께 여쭤봐야 할 것 같네.”

수도 감찰부장이 은근슬쩍 발을 빼려 하자 시종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태자 전하께서 전하라 하셨습니다. 폐하께 이번 사건을 총괄하라는 명을 받았으니 자신의 명령만 받으면 된다 하셨습니다.”

“헉!”

황제의 명이라는 말에 감찰부장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곧바로 공식적으로 발표하시고 팀을 꾸리십시오. 그리고 치안대에 도움 요청을 하시고 전방위적 수사를 위한 준비를 끝마치시라는 명입니다.”

시종은 그 말을 끝으로 볼일 다 봤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는 뒤돌아서서 나갔다.

그러자 그 시종의 뒤를 따라 다른 시종들까지 우르르 빠져나갔다.

감찰부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 됐다.”

감찰부장의 중얼거림에 근처에 있던 감찰부원들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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