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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8화 (18/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7. 일이 점점 커진다?

카리엘이 미리엘의 궁에 찾아간 날, 그 안에 있던 모든 시종들과 시녀들은 전부 황궁에서 쫓겨났다.

이유는 감히 황녀궁의 예산을 착복한 것.

일반적인 하녀나 하인 들은 황궁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끝났으나, 시녀와 시종 그리고 황녀궁을 담당했던 내관과 유모는 달랐다.

특히 유모의 경우는 죄가 엄중했다.

황녀궁에서 착복한 금액 대부분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황녀궁에 배정된 금액은 웬만한 하위 귀족들의 입이 찢어질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

값비싼 옷들이 옷장을 채우고 있었으나, 전부 유행이 지난 옷들이거나 메이저가 아닌 곳에서 산 옷들뿐이었다.

물품들도 고풍스러워 보이는 것들로 방을 채웠으나, 자세히 보면 하자가 있는 것뿐이었다.

궁 역시 겉은 깨끗해 보였지만, 깊은 곳까진 청소하지 않았는지 먼지가 가득했다.

전부 황제파와 연줄이 있는 가게와 담합해서 황녀궁의 예산을 착복했기에 일어난 일들이다.

보고서를 받은 카리엘이 싸늘한 표정으로 타리온을 바라보았다.

“유모를 데려와.”

카리엘의 명령에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타리온.

얼마 후, 시종들에게 질질 끌려오다시피 한 유모가 카리엘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황비께서 돌아가신 이후, 외가 쪽에서 보낸 유모가 궁을 관리했다 들었다. 그런데 어제 내가 본 황녀궁의 모습은 기가 찰 정도로 쓰레기더군.”

“저, 전하, 살려 주십쇼! 소신이 태만하여……!”

“네 죄가 태만한 것뿐일까?”

감옥에서 고문을 받고 나와 피투성이가 된 유모가 덜덜 떨리는 눈으로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린 카리엘이기에 온정을 기대해 보았으나, 눈을 본 순간 그런 기대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보다 싸늘한 눈이 그녀를 직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녀궁에 배정된 금액들이 황제파의 귀족들에게 흘러갔다는 정황을 발견했다.”

카리엘의 말에 유모의 몸이 굳어졌다.

“황제파 귀족들과 짜고 황녀를 입맛대로 키우려 했다지?”

카리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유모에게는 악마와도 같은 미소처럼 보였다.

“일부러 외롭게 만들어 가끔 찾아오는 황제파의 영애들에게 기대게끔 조장했다. 황녀궁의 예산은 황제파의 비자금에 쓰였고, 심지어 황녀를 제대로 보살피지도 않았다지.”

하녀들이 진술한 내용들을 유모에게 던져 주었다.

몇몇 양심 있는 하녀들이 가끔 미리엘과 놀아 주었지만 그때마다 유모가 그녀들을 혼냈다는 내용까지 적혀 있었다.

“저, 전하, 사실이 아니옵니다!”

유모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시종들이 그런 그녀를 다시금 꿇어앉혔다.

카리엘이 유모를 보면서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마 곱게는 죽지 못할 거다.”

카리엘의 말에 유모가 흠칫하며 덜덜 떨기 시작했다.

“미천한 하위 귀족 출신이 폐하의 외가가 되었다는 이유로 백작의 반열에 올랐으면! 감사하며 살 일이지, 감히 황족을 건드려?”

카리엘이 노성을 터뜨리면서 유모에게 기세를 일으켰다.

은연중에 피어나오는 붉은 기세에 유모를 붙잡고 있는 시종들조차 놀란 표정으로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카리엘은 유모를 보면서 싸늘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말해, 어디까지 연루되었는지. 그럼 죽음 정도는 편하게 맞게 주마.”

카리엘이 자비로 가득한 얼굴로 말하자 유모가 덜덜 떨면서 고개를 저었다.

“전하, 정말 저는 누구와도…….”

유모가 자신의 죄를 부정하려 하자 친절하게 그녀의 비리가 적힌 증거들을 앞에 던져 주었다.

“이 가게가 황제파와 연관되었다는 걸 부정하려는 건가?”

“전하, 전 정말 이 가게가 마음에 들어서 황녀 저하께 추천해 드린 것이옵니다!”

끝까지 죄를 부정하는 그녀.

아마 자신만 입 다물고 있으면 황제파가 적어도 죽음만은 면하게 해 줄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이대로 낙향해서 죽은 듯이 살겠다는 그녀의 생각이 눈에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카리엘이 현실을 일깨워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앞으로 지옥 같은 삶을 살 그대를 위해 한 가지 좋은 소식을 말해 주마.”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유모의 귓가에 입술을 갖다 댔다.

“이번 사건과 연관이 있는 황제파에게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죄를 물을 것이다. 이는 공작들과도 얘기가 된 일이고, 중립파와도 이야기가 끝난 일이야.”

“아…… 아……!”

“지옥으로 가는 길이 외롭진 않을 거다, 연루된 자들과 네 가족들까지 전부 죽여 버릴 것이니.”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유모를 치워 버리라고 손짓했다.

그러자 유모가 황급히 카리엘이 발목을 붙잡고 애원했다.

“전하! 전하! 알고 있는 바를 전부 말하겠사옵니다. 그러니 제발! 제 가족들에겐 자비를…….”

“꺼져라.”

“전하! 저어언하!”

더는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듯, 유모를 치워 버린 카리엘이 타리온을 보면서 말했다.

“귀찮더라도 돌아가야겠군.”

“감찰총장에게 그리 전하겠습니다.”

마지막 기회를 걷어찬 유모에게 더 이상의 기회를 주기 싫다는 카리엘의 단호한 의지.

그것을 느낀 타리온이 군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귀찮기에 유모를 이용해 황제파를 썰어 버릴 생각이었던 카리엘이었지만, 끝까지 뻔뻔하게 나오는 꼴을 보면서 생각을 바꿔먹었다.

‘쓰레기를 구슬릴 필요는 없지.’

카리엘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플랜b를 가동했다.

제국의 정식 황녀인 미리엘에게 일어난 일을 전부 외부에 공표했다.

동시에 군사기밀을 넘긴 오숑빌 백작이 사실은 타국과 황제파를 연결한 연락책에 불과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졌다.

「제국의 두 공작가가 움직였다. 이번 사건을 대전 회의 안건으로 직접 올린다!」

「중립파가 움직인다. 그 중심엔 감찰총장이?」

공작가와 중립파가 움직인다는 소식이 수도를 강타하자, 다급해진 건 황제파였다.

“하필…… 이제껏 관심도 안 가졌던 황녀를 왜!”

“미치겠군. 살길을 찾아야 해!”

황제파 출신의 내관들이 황궁 안을 바삐 움직였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귀족파와 중립파 출신의 귀족들을 만나기 위해 움직였지만 누구도 그들을 만나 주지 않았다.

마치 이참에 황제파를 쓸어버리겠다는 기세로 움직이자 재상이 직접 황제를 만나기 위해 움직였다.

“폐하, 재상 무솔리니 후작이 찾아뵙고자 하옵니다.”

시종장의 외침에 황제가 들어오라는 말을 했고, 조심스럽게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간 무솔리니.

그런 그가 본 장면은 황제의 앞에 모여 있는 그의 자식들이었다.

“어서 오게.”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가 반갑게 무솔리니를 맞아 주자 당황하던 그가 황급히 표정을 감추고 인사를 올렸다.

“황태자 전하와 황자 저하, 그리고 황녀 저하를 뵙습니다.”

무솔리니가 인사하자 모두가 웃으면서 그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모두의 환대 속에서 의자에 앉은 무솔리니를 향해 황제가 웃으며 물었다.

“한데 무슨 일인가?”

황제의 물음에 무솔리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황녀 저하의 일로 찾아뵈었사옵니다.”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던 참인데 잘되었군.”

황제의 말에 무솔리니가 황태자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자신이 한발 늦었다는 표정을 짓는 무솔리니를 향해 카리엘이 입을 열었다.

“감히 황족을 건드린 일이옵니다.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하옵니다.”

“으음, 옳은 말이다. 하지만 너무 일을 크게 벌일 경우 자칫 제국의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음이야.”

훈계하듯 말하는 황제를 보면서 무솔리니가 희망을 가진 듯, 황급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황족의 권위를 세우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그래서?”

황제의 물음에 무솔리니가 고개를 더 숙이며 말했다.

“감히 황녀궁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내무부 전원과 황녀 저하를 욕보인 시종, 시녀 들 그리고 감히 저하께 싸구려 물품 등을 납품한 자들 전원을 처벌해야 할 줄 아뢰옵니다.”

무솔리니의 말에 황제가 흡족한 표정으로 카리엘을 슬쩍 바라보았다.

재상의 말을 들어 보면 마치 연관된 모든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쭉정이들만 쓸어버리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내무부로 끝내시지요.’

마치 카리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한 재상의 표정.

그런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 카리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폐하, 일벌백계는 당연한 것이옵니다. 하지만 이들만으로 끝나면 또다시 이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바. 전 그 뿌리를 찾아내 불태워야 한다고 생각하옵니다.”

“소자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

“소자도 형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황태자의 말에 2황자, 3황자까지 같은 생각이라고 말하자 황제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들이 만약 그냥 온 것이라면 황제는 노성을 터뜨리며 자중하라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황태자는 중립파를, 2황자와 3황자는 공작가를 대표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전한 것이다.

그렇기에 황제는 침음성을 삼키며 침묵했다.

“전하, 가뜩이나 일이 커져 혼란에 빠져 있사옵니다. 여기서 일이 더 커지면…….”

재상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카리엘을 바라보자 그런 그를 향해 카리엘이 냉혹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렇기에 이번에 확실히 끝을 봐야 하는 것이오. 감히 제국을 좀먹는 쓰레기들을 이참에 전부 불태우는 것이 제국을 위한 길임을 재상께서도 잘 아시지 않소?”

“하오나 폐하께서 이룩하신 균형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모든 비리를 근절하는 것은 위대한 성군으로 남으실 폐하의 업적이 될 터. 재상은 이를 방해할 셈이오?”

카리엘의 말에 재상이 이를 악물었다.

명분은 저쪽이 쥐고 있으니 자신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균형론을 물고 늘어져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재상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폐하, 이대로라면 균형이 무너지옵니다. 타국들과도 불편한 관계가 될 수 있는 바. 타국의 사신들을 불러들여 천천히 논의해야 하옵니다.”

재상이 어떻게든 시간을 벌고자 말했다.

황제가 이를 받아들이면 황제파는 그 시간 동안 어떻게든 살 구멍을 찾아낼 것이다.

비리 문서들을 몰래 소각하고, 이번 사건과 접점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끊어 내리라.

하지만 카리엘은 그걸 그대로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앞으로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자신이 병약한 황태자여서, 같은 편인 줄 알았기에 방심했던 황제파에게 날린 일격.

카리엘은 이 일격을 치명상을 입히는 것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일단 이 일은 대전 회의에서 다루시지요.”

카리엘의 말에 재상의 표정이 구겨졌다.

대전 회의에서 다루게 된다면 자신들이 불리하게 될 것은 자명했기 때문이다.

“폐하.”

“공작들이 직접 안건으로 올린 일입니다.”

황제를 부르는 재상의 말을 끊고 카리엘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일견 황제를 협박하는 말이 될 수도 있으나, 재상의 말에 현혹되기 전에 이번 일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황제의 머릿속에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우리끼리 결론짓기는 힘들겠군. 대전 회의에서 논하도록 하지.”

귀족파와 중립파가 힘을 합쳤다.

게다가 명분도 밀리고, 심지어 모든 황자들이 움직였다.

황족의 권위를 되찾겠다는 명분.

여기서 잘못 움직이게 되면 제국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황족들마저 수도로 올라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황제는 황제파와 함께 고사하게 될지도 모를 일.

‘버려야 하는가?’

황제의 머릿속에서 이미 황제파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제를 오랫동안 봐 온 재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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