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8. 황태자의 친위대? (2)
온갖 괴상한 물건들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들 전부가 카리엘에겐 익숙한 것들이었다.
‘지구에 있을 때 의학 드라마에서 봤던 것과 비슷하게 생겼네.’
브리온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카리엘은 다른 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괴짜들이긴 하지만 황태자 앞이라서 그런 것인지 그의 시선에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귀엽네.’
자신의 시선에 반응하는 이들을 보면서 피식 웃은 카리엘이 입을 열었다.
“다들 여기에 온 이유들은 알고 있나?”
“예!”
카리엘의 말에 모두가 곧장 대답했다.
“그럼 말하기 쉽겠군. 내 몸에 맞는 마나 숙성법을 만들 것. 그것이 내 의뢰다.”
카리엘의 말에 다들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보상이 궁금하겠지?”
그의 물음에 세 명의 괴짜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돈보다는 너희들이 원하는 것. 내가 해 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그것을 들어주지.”
카리엘의 말에 세 명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말이 나온 김에 원하는 것들을 말해 봐라.”
카리엘의 물음에 망설이던 괴짜들이 하나둘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말했다.
아르슈나는 화염 계열의 마도서를, 이리스는 투술법과 검술 등을, 브리온은 의학서를 원했다.
“뭐, 그 정도야……. 추가로 봉급도 챙겨 주마.”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며 통 크게 선불로 금화 주머니들을 던져 주자 그들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이거면 비룡의 심장을…….’
‘대형 몬스터 하나 정돈 살 수 있겠어!’
‘한동안 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모두가 금화들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런 그들을 보며 카리엘이 손뼉을 쳤다.
“그럼 보상도 줬겠다…… 당장 일을 시작하지.”
카리엘의 말에 금화에 정신이 팔려 있던 괴짜들은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돈으로 괴짜들의 환심을 산 덕분인지 진중한 표정으로 카리엘의 몸을 살펴보았다.
‘역시 돈이 최고군.’
카리엘이 그렇게 생각하며 괴짜들에게 말했다.
“만져 봐도 된다.”
어차피 자신의 몸을 알아야 제대로 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기에 허락한 것이지만, 타리온은 못내 불안했는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카리엘의 주위를 서성거렸다.
“가만히 좀 있어. 이들이 날 잡아먹기라도 해?”
“그것이 아니오라…….”
타리온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지만 카리엘은 귀찮다는 듯, 그를 내보냈다.
그러자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괴짜들.
“오! 정말로 화기를 많이 내뿜으시는군요.”
아르슈나가 놀랍다는 듯 카리엘의 화기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자신의 마력을 은근슬쩍 불어 넣으며 확인했다.
반면에 이리스는 카리엘의 몸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수련을 했는지 단번에 알아냈다.
“마나 숙성법의 기초만 익히셨군요.”
“잘 아는군.”
“의외로군요. 맞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이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병약했던 카리엘의 몸에는 맞지 않아야 정상인 방법이 오히려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리스도 처음 본다는 듯 흥미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반면에 브리온은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병약한 인간의 몸이라 흥미가 없나?”
“크흠! 그것이 아니오라…….”
마음을 들킨 것인지 브리온이 헛기침하더니 천천히 카리엘의 몸을 살폈다.
“많이 아프셨다고 들었는데, 확실히 몸 상태가 좋진 않으시군요.”
“그래?”
“예, 화기가 문제이신 것 같은데 아슬아슬합니다. 운동량으로 커버하고 계시는 듯하오나 한계가 명확합니다. 결국 몇 년 안에 한계를 맞이하실 것입니다.”
단번에 상태를 파악한 브리온을 보며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부른 거야. 이걸 내 몸에 맞게 개조해 보라고.”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테이블 위로 책 하나를 던졌다.
고대 웨어 울프의 강체술이 적힌 사본이었다.
책의 이름을 보자마자 이리스가 눈을 빛내며 곧바로 서적을 뒤적거렸다.
브리온도 흥미가 가는지 이리스와 함께 서적을 탐독했다.
고대 웨어 울프의 신체가 그려져 있고,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힘을 사용했는지 상세하게 적어 뒀으니 브리온의 입장에서는 흥미가 동하는 게 당연했다.
반면에 아르슈나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화염에 흥미가 있을 뿐, 투술이나 마나 숙성법에는 관심이 없는 그녀였기에 당연했다.
마나 정제법을 사용하는 인간들 중에 극단적으로 마나 숙성법을 배척하는 이들.
그들이 바로 마법사였다.
정제하는 것을 넘어 가공하는 이들이 마법사였기에 그들이 보기에 마나 숙성법은 미개한 것에 불과했다.
“아르슈나.”
“……예, 전하.”
“그대는 이거나 연구하도록.”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며 서적 하나를 툭 던져 주었다.
그곳엔 황실의 혈계 능력과 화기에 관련된 정보들이 적혀 있었다.
“이, 이건……!”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순 없다.”
“무, 물론이옵니다!”
카리엘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르슈나.
“다들 만족한 듯하니 연구는 바로 시작하지.”
카리엘의 말에 그들이 곧바로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어디서도 찾기 힘든 자료들이다 보니 다들 거기에 정신이 팔렸다.
“밖으로 나가서 토토와 연구를 시작해라. 필요한 물품은 궁에 마련해 뒀으니 이곳으로 출근하면 된다. 숙식도 되니까 필요하면 말하고.”
카리엘의 말에 아르슈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올렸다.
“저, 그럼 이곳에서 지내도 되겠습니까?”
“그럼 저도…….”
다들 외지에 나돌다 보니 딱히 집을 마련한 것 같지 않았다.
헛기침하는 브리온을 보면 세 사람 전부 여관 같은 데서 자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후, 그렇게 해.”
카리엘이 허락함과 동시에 손짓하자 세 사람이 곧바로 허리를 숙이며 방을 나섰다.
“이젠 진짜 떠날 준비를 해야겠네.”
괴짜들이 찾아왔다는 사실에 카리엘이 미소를 지었다.
강체술을 자신에게 맞게 개조하기만 하면 이 빌어먹을 황궁을 떠날 생각이었다.
“욜로 라이프가 머지않았다.”
카리엘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입가에 한가득 미소를 그렸다.
병약한 황태자가 자리를 물러나는 것을 바라지 않을 사람은 없었고, 마지막으로 제국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 퇴위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은퇴 후에도 건들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
은퇴 후, 곧바로 황궁을 떠나 섬 같은 곳에서 한적한 삶을 살 생각에 기분 좋게 잠들었던 카리엘.
바로 다음 날부터, 토토에게 끌려가 열심히 운동해야 했지만 그마저도 행복했다.
브리온과 토토에 의해 좀 더 효율적인 운동 방법이 생겨나며 몸이 좋아지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야! 야! 내 앞에서 그것들을 가져오지 말라고 했잖아!”
“……전하께 사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브리온이 입술을 쭉 내밀면서 말하자 카리엘이 진저리 쳤다.
매번 자신의 몸을 살필 때마다 괴상한 기구들을 움직이는 통에 진저리 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문제는 브리온만으로도 골치 아픈데, 다른 이들도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으아아악!”
오늘도 이리스의 수련을 빙자한 구타 속에서 괴성을 지르는 카리엘.
이리스의 도움으로 강체술의 수련 방법 역시 진화했다.
문제는 수인족처럼 야생의 수련법을 즐기는 그녀였기에 항상 실전 같은 훈련을 하고자 했다.
그때마다 카리엘의 몸은 반쯤 다져졌다.
“헉…… 헉…… 살살 좀 해라.”
“이래야 효과가 있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는 이리스.
반쯤 다져진 카리엘을 보면서 타리온이 나설 만도 했지만 고개만 돌린 채 입을 틀어막고 있을 뿐이다.
처음엔 이리스보고 미쳤냐며 화를 냈던 타리온이었지만 강체술이 급격하게 진전을 보이자 멀리서 입을 틀어막고 눈물만 흘리는 중이다.
“전하, 운동 시간…….”
“이 몸으로 어떻게 운동을 해!”
“지금 몸을 풀어야 다음 날 아프지가 않사옵니다.”
토토가 부풀어 오른 근육을 과시하며 카리엘이 강제로 데려갔다.
그러자 이리스도 토토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실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리스지만 토토의 운동을 따라 하며 효과를 본 이후 같이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전하! 전하! 새로운 방법을 찾았습니다!”
토토에게 끌려가 한참 운동하고 있을 때, 멀리서 아르슈나가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이번엔 제대로 된 거냐?”
“그럼요! 이번엔 진짜입니다!”
아르슈나의 말에 카리엘을 비롯해 토토, 이리스, 타리온이 짜게 식은 얼굴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진짜예요! 믿어 주세요!”
“……후, 그래.”
불에 관해서라면 대륙에서 첫손에 꼽힐 인물이 아르슈나였기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녀가 화기를 다룰 방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면서 곧바로 강체술에 접목시킨 이후로 효율이 좋아진 건 사실이었다.
문제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서 나온 결과가 열 개 중 두 개 정도만 쓸 만하다는 점이었다.
거기다가 급격하게 뭔가가 바뀌지도 않았다.
조금 개선되는 정도의 효과가 전부이니 카리엘과 타리온 입장에선 ‘이걸 계속해야 하나?’ 하고 고민할 정도였다.
그래도 걸음마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기초만 수련하던 때보다 진전이 있었기에 마음껏 연구하도록 놔두고 있었다.
카리엘은 아르슈나가 새로이 개발한 강체술을 훈련하기 위해 혼자 개인 연무장으로 했다.
그런데 수련을 시작하자마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뭔가 다르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번엔 정말로 확 달라진 느낌인데?”
카리엘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몸의 감각에 집중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훨씬 많은 화기가 강체술의 움직임에 따라 몸을 타고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격렬하게 강체술을 수련할 때였다.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나타난 수르트가 카리엘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전보다 더 정순해진 불길과 색깔을 보면서 수르트가 상당히 회복되었음을 깨달은 카리엘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화기를 더 가져갈 수 있겠네?”
-오자마자 그 소리냐!
“하하! 빨리 가져가 봐.”
자신이 나오자마자 화기부터 가져가라고 보채는 카리엘을 서운하다는 듯 보면서도 수르트는 곧바로 화기를 흡수했다.
“오오!”
-그동안 노력은 좀 했나 보네.
수르트가 카리엘을 보면서 그렇게 말하고는 앙증맞은 팔로 팔짱을 끼며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몸도 회복되어 가고 있고, 은퇴 날도 얼마 안 남았고. 진짜 황궁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곁에 있던 수르트가 축하한다며 얼른 다른 마수들을 찾으러 가자고 보챘다.
평소라면 귀찮다며 버럭 소리를 질렀겠지만 오늘만큼 환하게 웃으며 알겠다며 카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껏 미소를 지으며 언제 은퇴할지 날짜를 정하며 잠에 빠져든 카리엘.
하지만 그런 그의 행복은 다음 날 조간신문을 보자마자 와장장 깨져 나갔다.
「제국의 진정한 충신! 카리엘 프레드리히 폰 블레이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태자! 그가 바로 지금의 황태자다!」
대전 회의에서 폭탄 발언을 한 카리엘과 그 전에도 부패한 귀족들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것들이 제국민들에게 알려지면서 엄청난 지지를 얻게 되었다.
제국민들에게 지지받는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황제와 귀족들 입장에선 아니었다.
“……위험하네.”
카리엘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혀를 찼다.
암군이라 불리는 황제가 카리엘을 질투하기 시작하면 골치 아파진다.
거기다 귀족들 역시 카리엘이 은퇴한다 해도 나중을 위해 견제하려 할 수도 있다.
이 상황을 타개할 최고의 방법은 이대로 황태자를 빠르게 내려놓고 튀는 것.
하지만 사정상 그럴 수도 없다.
지금 카리엘이 은퇴해 버리면 현재 하고 있는 것들이 어그러질 수도 있었다.
어쩌면 황제파와 재상이 살길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다.
“재상과 황제파는 완전히 조지고 가야 하는데…….”
전생의 경험을 통해 쓸데없이 후환을 남기면 반드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 끝내야 했다.
특히 여우 같은 재상의 경우 더더욱 그러했다.
한 방 먹은 재상이 다시 복귀한다면 카리엘이 인생을 갈아 넣어도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나이가 어리고, 병약했던 그였기에 기회가 있었던 것일 뿐, 이제는 노련한 정치가로 여길 테니 은퇴한다 해도 이중 삼중으로 카리엘을 견제할 것이다.
“속도를 높여야겠네.”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랫놈들이야 치안대와 감찰부로 충분하지만, 고위 귀족들 같은 경우에는 잡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사법기관과 귀족회를 들먹이며 그곳에서 정식 재판을 받겠다고 설치면 감찰부도 끌고 가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카리엘이 직접 움직였다.
그런데 이번엔 그의 곁에 시종들과 기사들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붉은 정복을 입은 자들.
대륙에서 괴짜라 불리는 자들이 카리엘을 따라붙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