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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24화 (24/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8. 황태자의 친위대? (4)

극도로 높아진 긴장감 속에서 기사단의 마력이 서서히 발현되어 갔다.

이젠 카리엘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감지가 가능한 범위에 다가오는 순간 굉음이 들려왔다.

콰앙!

“포성?”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지축이 잠깐 흔들리더니 또 다른 굉음이 들려왔다.

“지금…… 마력포도 아니고 대포를 쏜 거야?”

그의 물음에 타리온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타리온의 대답에 카리엘의 얼굴이 구겨졌다.

구형 대포.

지구에서 대포라 불렸던 무기가 이곳에서는 사장된 이유는 딱 하나다.

기사급 존재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

몬스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력으로 강화된 무기에 막히고 설령 그것을 피해 몸에 직격한다 해도 죽이진 못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마력포였는데, 막대한 마력을 잡아먹기 때문에 요새에서나 사용이 가능했다.

현대의 대포들은 지방 영주들이 전쟁할 때나 쓰는 구닥다리 무기일 뿐이었다.

황궁 기사들과 그림자들까지 있는 카리엘에게 조금도 통하지 않을 거란 걸 잘 아는 그들이 사용했다는 건…….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 쏜다는 건…….”

“……위협용인 것 같습니다.”

“나더러 겁먹은 똥개처럼 수도로 도망치라는 뜻이겠지?”

“……돌아가라고 위협하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타리온이 마지못해 말하는 순간 카리엘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실전 경험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황태자이기에 위협을 가하면 겁먹고 수도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황태자를 죽였을 때 얻을 리스크를 없애고 오직 이득만을 취하는 방법이었다.

자신을 무시했기에 가능한 작전임을 아는 카리엘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얼마 후, 포성이 끝나고 카리엘이 직접 마차 문을 열고 나가 기사에게 물었다.

“잡았냐?”

“……죄송합니다.”

여기저기 그을린 흔적이 있는 황궁 기사가 고개를 숙이며 죄를 청했다.

“이유는?”

“포탄을 뚫고 접근하니 마탄으로 반격을 가해 왔습니다.”

“그 정도는 큰 문제가 안 될 텐데?”

카리엘의 말에 정예 기사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한데 땅에 폭탄을 묻어 두었습니다.”

“숨겨 둔 폭탄이 폭발하는 사이 도망쳤다?”

“송구합니다.”

황궁 기사의 말에 카리엘이 이를 갈았다.

“가서 잡아 와.”

카리엘의 말에 황궁 기사가 부복하며 말했다.

“소신들의 임무는 전하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옵니다!”

“그럼 너희들이 다녀와.”

카리엘은 목이라도 걸 기세로 말하는 황궁 기사들에게서 눈을 돌려 타리온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타리온 역시 부복하며 고개만 숙였다.

이번엔 위협이었지만 어쩌면 낚시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분노한 카리엘이 저들을 잡아 오라고 명한 후, 호위의 숫자가 줄어들 때를 노리고 공격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타리온과 황궁 기사들 입장에서는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분노로 잠시 흐려졌던 이성이 점차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적들이 공격했던 방향을 바라보았다.

“일단 내가 습격받았다는 연락을 넣어.”

“예!”

“군부에 연락해 중앙 지역 봉쇄하라고 해. 황태자가 습격받았으니 명분은 충분하겠지.”

카리엘의 명령에 타리온이 곧바로 시종 하나를 시켜서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그러는 사이 카리엘은 황궁 기사들에게 물었다.

“적들이 추가적으로 나를 공격할 가능성은?”

“5할은 되어 보입니다.”

“이유는?”

카리엘의 물음에 추격했던 황궁 기사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일부러 제가 쫓아올 시간을 준 것 같았습니다.”

“그래?”

황궁 기사의 감에 불과하지만, 실전으로 단련된 정예 기사의 감은 때로는 어떤 이론보다 정확하다.

“내가 수도로 돌아가는 길목에 매복해 있을 확률은?”

“……높습니다.”

“내가 저들을 쫓는 길목에 매복해 있을 확률도 높겠지?”

“그렇습니다.”

카리엘의 말에 황궁 기사가 자신의 생각을 밝히면서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병석에만 누워 있던 황태자가 생각보다 전술에 능했기 때문이다.

방구석에서 정치학과 전술학만 공부했는지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황궁 기사들.

하지만 이런 이들의 생각과 다르게 카리엘의 전술은 따로 공부한 게 아니었다.

직접 전쟁에 나서지도 못할 텐데 뭐 하러 그런 것을 공부할까.

그저 전생에 목숨을 위협받으며 도망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알게 된 것일 뿐.

이런 사정을 모르는 황궁 기사들의 오해가 깊어질 때, 카리엘이 다시 입을 열었다.

“결론은 여기서 군대를 기다리는 편이 낫다 이거지?”

“예.”

“그리하지. 아르슈나!”

카리엘의 부름에 황급히 튀어나온 아르슈나.

“결계 정도는 칠 수 있지?”

“전공이 아니지만 가능은 해요.”

“결계 펼치고, 황궁 기사들은 군대가 올 때까지 방어 진형 유지해.”

“예!”

황궁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린 카리엘이 타리온을 바라보며 명했다.

“군부는 포위망을 유지하며 잡것들을 잡는 데 집중하라고 해.”

“하오나 전하의 안전이…….”

“지금쯤 황궁 기사단이 발에 불붙은 것처럼 달려오고 있을 테니 괜찮아.”

제국 최정예 기사단이 있으니 안전은 확보된 것이나 마찬가지일 터.

군부의 병력은 감히 황태자를 욕보인 놈들을 잡아들여 대가를 치르게 해야 했다.

“난 마차에 들어가 있겠다.”

차분한 표정으로 명령을 내린 후, 들어가는 카리엘을 보면서 기사들의 표정은 더더욱 묘해졌다.

분명 처음 겪는 일일 텐데도 침착하게 명령을 내리고는 들어가는 모습에선 몇 번이나 사선을 넘나들어야만 얻을 수 있는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괴짜들 전원을 내보낸 후, 카리엘은 싸늘한 표정으로 수르트를 불러냈다.

“수르트, 만약의 사태에 날 보호할 수 있겠냐?”

-1분 정도는?

작은 불덩이의 모습을 한 수르트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

-흠, 네 시종의 경우 두 번 정도 막아 줄 순 있겠다.

수르트의 말에 카리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입가에 미소를 그리고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앉아 생각에 잠겼다.

만약의 순간이 온다고 하더라도 한 번쯤은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황궁 기사들과 그림자들이 있는 이상,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은 빈틈을 노린 일격 정도뿐인데, 그것을 방어할 수 있다면 자신이 죽을 확률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괴짜들의 실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전하, 괴짜들의 실력이 상당히 뛰어난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타리온이 자신에게 몰래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괴짜들의 드러난 실력은 정예 기사 수준.

하지만 타리온은 그들의 실력이 알려진 것보다도 더 강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수도 밖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만 데리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자, 이제 어쩔 거냐?”

저들의 한 수를 받아넘기며 한 방을 날렸다.

이제 다시 공은 저쪽으로 넘겨졌다.

자신은 움직이지 않고, 황궁 기사단이 오기를 기다리며 군부로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저들도 머리가 있고 정보망이 있다면 자신들의 계획이 간파당했다는 것쯤은 알 터.

단순한 위협이었다면 이대로 끝이겠지만 정말로 또 다른 한 수를 계획하고 있었다면 자신을 공격할지, 이대로 미끼를 군부에 던져 주고 후퇴할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어떤 놈이 걸려들려나?”

-누가 걸리든 쉽게 뒈지진 못하겠네.

수르트가 카리엘의 표정을 보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평소라면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을 카리엘이 어느 때보다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쾌한 기분 속에서 기다림이란 시간은 고욕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런지 미간을 찌푸리며 기다리고 있던 카리엘에게 타리온이 마차 문을 살짝 열며 말했다.

“전하.”

“적들이야?”

“……예. 움직일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타리온이 만약의 상황이 오면 홀로 빠져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타리온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황궁 기사단은?”

“수도를 빠져나왔다고는 합니다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합니다.”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의 중심부에 있는 마력을 가동시키자 동력음이 들리면서 움직인 준비를 했다.

바로 그 순간, 거대한 빛줄기 하나가 아르슈나가 만든 결계를 때렸다.

쿠우웅!

“습격입니다! 고위 마법 같습니다!”

황궁 기사의 외침에 모든 기사들이 발검을 하며 방어 태세를 갖췄다.

그러자 시종들 역시 마차 주변을 감싸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 순간 전방위에서 마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빛의 마법?”

카리엘은 마차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빛의 마법들을 보면서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대놓고 빛의 마법이라…….”

성국의 사제들이나 쓰는 빛의 마법을 이용한 습격.

이건 누가 봐도 성국을 의심하라고 하는 술수였다.

“누굴까?”

카리엘이 자신에게 이런 장난질을 한 놈이 누구일지 궁금했다.

솔직히 지금은 너무 많아서 답이 없었다.

귀족들만 해도 파벌들 전부가 의심되었고, 타국도 의심되었다.

어쩌면 성국이 수를 쓴 것일지도 모른다.

대놓고 이런 짓을 저지르고, 자신들을 가장한 술수라고 주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황궁 기사와 그림자들은 자신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저들을 잡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고생 좀 하겠어.”

황궁 기사들은 물론이고, 타리온을 비롯한 시종들의 실력까지 얼추 계산해 놓고 공격하는 듯싶었다.

팍! 팍!

마차에 박히는 암기들.

황태자를 태운 마차답게 모든 암기들을 방어해 주었지만, 만약이란 게 있기 때문에 카리엘이 최강의 패인 시종들과 타리온을 공격하는 데에 활용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쉴 새 없이 공격해 오는 마법들을 방어하기도 벅찬 기사들.

이런 상황에서 가용할 수 있는 전력은 하나밖에 없었다.

“토토.”

“예!”

“괴짜들을 불러와.”

카리엘의 명령에 근방에 서 있던 토토가 황급히 괴짜들을 불러왔다.

“브리온, 너도 한가락 한다지?”

카리엘이 창문을 열며 브리온에게 말하자 그가 헛기침하면서 말했다.

“어디 가서 꿀릴 실력은 아닙니다.”

의사 주제에 웬만한 무인보단 나은 실력을 갖고 있는 브리온.

게다가 아르슈나, 이리스 역시 제국에서 유명세를 탈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었다.

정예 기사 중 하나인 토토는 말할 것도 없었다.

“너희들이 움직여야겠다. 지금 습격한 놈들 중 제일 강한 놈으로 잡아 와.”

카리엘의 명령에 그들이 멈칫했다.

“전하, 전하의 안전이 제일 우선이옵니다.”

토토의 말에 다른 이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몸을 지킬 수단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 그리고 황궁 기사와 그림자들은 폼이 아니야.”

“하오나…….”

“토토 너도 느낄 텐데, 지금 저들이 장난질을 치고 있다는 걸.”

카리엘을 죽이려는 게 아니었다.

안전한 지역에서 마법만 쏴 대는 이들을 보면서 토토 역시 저들의 노림수가 따로 있다는 것쯤은 눈치챘다.

“잡아 와. 잡아 온 자에겐 현재 예산의 2배를 안겨 주지.”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괴짜들의 눈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하지만 토토의 눈초리에 다들 헛기침만 했다.

“자신 없나?”

카리엘의 도발에 괴짜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용병왕의 고서. 가능하옵니까?”

이리스의 물음에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 주지.”

카리엘의 답이 떨어지는 순간 이리스가 가장 먼저 뛰쳐나갔다.

그러자 브리온과 아르슈나 역시 다급하게 움직였다.

“너도 원하는 것 있냐?”

“특수한 운동기구들이 필요하옵니다.”

“말해, 전부 구해 주지.”

확답이 떨어지는 순간 토토가 굉음을 내며 빛의 마법을 쓰는 습격자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마치 대포처럼 튀어 나가는 토토의 몸을 본 카리엘은 문득 그냥 몸통 박치기만 당해도 짓뭉개져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토토까지 합류하며 네 명의 괴짜들이 가장 강한 마법사를 잡기 위해 움직이자 시종들을 지휘하던 타리온이 황급히 마차 옆에 붙었다.

“전하, 저들을 저리 보내시면…….”

“알잖아, 장난질하는 거. 감히 나한테 장난질을 쳤으니 잡아야 하지 않겠어?”

“그래도 너무 위험하옵니다.”

“그러니까 옆에 있어. 내가 보기에 저들을 잡는 건 괴짜들로 충분할 거 같으니까.”

카리엘은 앞을 바라보았다.

지팡이인지 창인지 모를 것을 휘두르며 화염을 내뿜는 마법사.

온갖 괴상한 기구들을 꺼내 적들을 도륙 내는 의사.

저게 동물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이상하게 싸우는 무투가.

근육 덩어리처럼 보이는 거구의 기사.

하나같이 괴상한 자들이었지만, 그들의 힘은 진짜였다.

“타리온, 네 말이 맞았네.”

“……예.”

전원 자신만의 특성을 발현하며 싸우는 괴짜들.

5단계에 이른 자들만이 가능하다는 고유 특성을 발현하는 괴짜들을 보면서 카리엘이 피식 웃었다.

제국 군부의 기사단을 이끌 만한 단장급 무력을 소유한 이들.

그들이 서로 강한 마법사를 잡겠다고 난리 치는 모습은 실로 경이롭다 못해 무서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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