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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42화 (42/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14. 마무리를 지어 봅시다! (2)

벨푸르스가 자신들에게 향하는 군세를 조금이라도 줄여 보고자 수를 썼다.

인접 국가들 중에 자신들이 끄나풀을 심어 둔 곳을 움직였고, 지방 귀족들 중에서 자신들의 뜻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을 포섭했다.

그 와중에 살길은 만들어 놔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전부 산적이나 마적으로 위장하고 나타났다.

하지만 그들이 든 무기부터 인원수까지 일반적인 범죄자들이 아니라는 것쯤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군부는 난리가 났다.

“전하께서는?”

“그대로 가신다 하옵니다.”

“후…….”

부관의 보고에 군부대신 하워드가 한숨을 푹 쉬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여서 충격은 크지 않았지만 대응해야 하는 입장에선 골치가 아팠다.

일단 부족한 숫자의 중앙군으로 대응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인접 국가들은 변경백들이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부만 잘 정리하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보고가 들어오는 것을 보면 그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잘못했다간 목이 날아가게 생겼군.”

하워드가 자신의 목을 손으로 한번 쓰다듬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보고드립니다! 중앙 지역에 흑마법사들이 나타났다고 하옵니다.”

“뭐? 이런 미친! 중앙군은!”

“지금 대응하려고 움직이는…….”

부관이 대답하려는 순간, 월크셔 공작이 그의 어깨를 잡으며 하워드에게 말했다.

“흑마법사들은 우리가 처리하겠소.”

“예? 하지만…….”

“전하께서 날 여기에 두신 이유가 바로 저것들 때문이니 일을 해야지.”

그렇게 말을 남긴 월크셔 공작은 그길로 그곳을 떠났다.

그것을 본 하워드가 한숨을 쉬었다.

“치안대에 지원 요청해.”

“예?”

“수도 방위군 일부를 중앙군에 지원해야겠다.”

군부대신 입장에선 치안대에 지원을 요청하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후, 됐다. 내가 직접 가지.”

하워드가 그렇게 말하면서 곧바로 군부를 벗어났다.

자존심 강한 월크셔 공작조차 저리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는 건 이 사태가 끝날 경우 쓸모없었던 자들은 목이 날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살기 위해서라도 움직여야 했다.

“밥벌이하기도 쉽지 않군.”

어제도 드레스를 사 달라며 조르던 어린 딸아이가 생각난 하워드는 한숨을 쉬었다.

사랑스러운 딸아이를 위해서라면 그깟 자존심쯤은 얼마든지 내려놓을 수 있다 생각하며 빠르게 움직였다.

***

그렇게 군부가 카리엘의 결정에 바삐 움직이자 감찰부와 치안대의 대처 역시 빨라졌다.

“위기 상황이군.”

외무대신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성국과 남부 연합의 움직임마저 심상치 않았다.

혼란스러운 제국이 내전에 돌입하면 공격하려고 각을 재는 것이리라.

만약 제국이 이 혼란을 무사히 넘기게 된다면 그다음엔 자신들에게 칼을 들이밀 것이기에 승리할 가능성이 보인다면 언제든 쳐들어오려고 준비하는 것이었다.

“성국과 남부 연합에 연락해. 경거망동하면 가장 먼저 쳐들어갈 곳은 그곳이 될 거라고.”

“먹히겠습니까?”

“안 되면 성국만 조지는 걸로 남부 연합과 딜을 해야지.”

“후, 일단 해 보겠습니다.”

외무대신의 명령에 고위 외교관이 한숨을 쉬며 밖으로 나갔다.

“이번 위기만 넘기면 흑마법사와 손잡았다며 명분으로 압박할 수 있을 텐데…… 쉽지 않겠어.”

비록 부패한 관료 체제에 있었던 외무대신이지만 그동안 먹은 짬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번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 곧바로 반격할 방법들이 그려지고 있었다.

“부디 서부에서의 전투가 빠르게 끝나기를…….”

***

외무대신의 바람처럼 카리엘 역시 이번 전쟁을 빠르게 끝내기 위해 다급하게 움직였다.

광장에 모인 병력을 중심으로 빠르게 수도를 나가기 위해 황자들과 함께 움직일 때였다.

“전하!”

“왜?”

타리온의 다급한 부름에 카리엘이 행군을 정지시켰다.

“미리엘 저하의 마차이옵니다.”

“뭐?”

카리엘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황급히 마차의 커튼을 걷었다.

그러자 멀리서 작은 마차 하나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미리엘.”

작은 마차의 문이 열리자 황급히 뛰어나와 폭 안기는 여자아이.

미리엘이 울먹이자 카리엘은 다독여 주었다.

“우으…….”

차마 말을 못 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미리엘을 내려다보던 카리엘은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춰 주었다.

“죽지…… 마요.”

“안 죽어.”

카리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미리엘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한꺼번에 세 황자 전부가 전장으로 떠나니 아직 뭘 잘 모르는 미리엘이 불안해진 것이다.

어느새 2황자와 3황자도 같이 다가와서 미리엘의 눈물을 닦고는 달래 주었다.

“오라비들 안 죽는다.”

“금방 올게.”

세 황자들이 울고 있는 미리엘을 다독였다.

한참 동안이나 우는 미리엘을 간신히 진정시킨 후 간신히 황궁으로 돌려보냈다.

“빠르게 정리하자.”

“예.”

“네.”

카리엘의 말에 두 황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동생 때문에 잠시 멈추었던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수도의 정문 앞에 도달했다.

그러자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병력의 행렬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부디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병사들이 전부 지나갈 때까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해 주는 경건한 모습에, 멀리서 지켜보던 귀족들조차 감탄하며 고개를 숙이고 함께 기도할 정도였다.

승리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제국민들의 염원과 함께 모든 병력이 빠르게 수도를 벗어났다.

중앙군에서 정예 병력으로 차출되었는지 병력이 고된 행군에도 큰 불만 없이 움직이자 중앙 지역을 벗어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힘들지 않으십니까?”

“마차를 타고 가는데 힘들 리가.”

타리온의 물음에 카리엘이 코웃음 쳤다.

이 정도는 병약한 시절에도 수없이 했던 일이다.

게다가 일반 마차도 아니고 온갖 마법적 장치가 가미된 마차였다.

황궁처럼 편하지는 않겠지만 행군 중에 이 정도 호사를 누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이제 곧 경계선이옵니다.”

“그래.”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창문을 열어 저 멀리 보이는 서부의 경계선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경계선이 다가오자 황궁 기사단 일부가 황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고, 무작정 걷기만 했던 병력 역시 곧바로 대응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고 행군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로 서부의 경계선을 통과한 순간.

[불의 정령왕의 파편들이 반응했습니다.]

“뭐?”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플라 화산과 카푸르 화산이 무언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폭발하려 합니다.

무언가를 저지하세요. 실패할 시 제국에 끔찍한 재앙이 일어납니다. 성공적으로 저지할 시 초대 정령왕의 파편이 영혼에 각인됩니다. (0/2)

※완벽하게 저지할 경우 무언가의 비밀 일부를 알 수 있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나타난 반투명한 창을 가만히 들여다본 카리엘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화산 폭발이 정상적인 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라플라는 서부 지역이고…… 카푸르 화산이라면…….’

“타리온.”

“예.”

“카푸르 화신이 어디에 있었지?”

“제국 동남부 지역에 있습니다. 거인의 산맥 근방에 있죠.”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전생에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된 지역인가?’

카리엘이 그렇게 생각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시는지…….”

“잠깐만 혼자 있을게.”

카리엘의 말에 걱정스레 바라보던 타리온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뿅!’ 하고 나타난 수르트가 카리엘을 향해 말했다.

“정령왕의 파편이 나타났다.”

-화산 폭발의 원인이 그건가?

수르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단번에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아챘다.

“무언가에 의해 강제로 폭발하려는 것 같다.”

-아무래도 네가 회귀한 게 단순한 신의 장난은 아닌 것 같군.

“……그래?”

카리엘의 말에 수르트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정령왕의 파편을 폭주시켜 화산을 강제로 폭발시킨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는 건…….”

카리엘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수르트를 바라보았다.

-신의 농간. 아니면 현재의 우리로선 알 수 없는 저 위의 사정이 얽혀 있을 테지.

수르트의 말에 카리엘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만약 전생에 몬스터 웨이브 역시 이런 식으로 발생한 거라면 자신은 굉장히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령왕의 파편들 말고 남은 두 파편 역시 이유가 있겠지?”

-그럴 가능성이 높지.

수르트의 말에 카리엘이 한숨을 쉬었다.

지옥의 수문장은 몰라도 태양을 삼킨 마수 같은 경우는 대충 짐작이 갔다.

‘성국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신관들 중 일부가 흑마법사와 관련되어 있는 상황이니 성국이 오랫동안 봉인해 온 마수를 가지고 무슨 장난을 칠 가능성 역시 높게 보아야 했다.

-신이 너한테 이런 시련을 내린다는 건 너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안 할 수도 없겠군.”

-그렇겠지.

수르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후, 상황 참 복잡하게 돌아가는군.”

-좋게 생각해. 어차피 남은 두 녀석들도 찾아본다고 나랑 약속했잖아.

수르트의 말에 카리엘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은 안 죽겠다는 거지.”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벨푸르스를 생각했다.

흑마법사와 연관됐을 가능성이 높은 녀석들이 어떻게든 자신들을 잡으러 오는 병력의 숫자를 분산시키려 했다.

순순히 죽지 않겠다는 의지를 느낀 카리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나보고 오라는 건데…….”

-겁먹지 마. 최악의 상황이 와도 너 하나 정도는 살릴 수 있다.

“몇 초 막아 주는 거?”

고작 몇 초 막아 주는 걸로는 어림도 없다고 말하자 수르트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젠 큰 거 한 방 날릴 정도는 된다.

“……확실해?”

-그래. 마도사 부럽지 않은 큰 걸로 한 방 날려 주마.

수르트의 말에 카리엘이 피식 웃었다.

“구라면 나 죽어.”

-너 죽으면 나도 죽어.

운명 공동체인 수르트가 진짜라고 작은 팔을 휘저었다.

그러자 카리엘이 피식 웃으면서 믿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이제 은퇴는 물 건너간 건가?

“아니, 서부의 일이 끝나면 은퇴는 할 거다.”

-……가능할까?

수르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카리엘이 단호하게 말했다.

“남은 두 녀석을 해결하는 것은 은퇴하고 나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카리엘이 반드시 은퇴하고야 말겠다고 의지를 다질 때였다.

타리온이 다급히 창밖에서 입을 열었다.

“전하!”

“서북부에 문제가 생겼나?”

“……예.”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은 마침내 선택의 시간이 도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황은?”

“화산은 폭발 직전에 돌입했으며, 몬스터 웨이브가 곧 시작될 것 같습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지?”

카리엘의 물음에 타리온이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곳에서 흑마법사들이 발견되었다는 보고이옵니다.”

“그리고?”

“언데드 군단이 나타났다 하옵니다. 서북부의 전선 뒤편에 나타난 것을 보니…….”

“전쟁 중에 뒤를 치려는 계획이군.”

병력의 양은 중요하지 않다.

몬스터들을 막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소수라도 뒤를 치게 된다면 전열이 무너질 터.

“병력을 보내 달라 요청했겠지.”

“……그렇습니다.”

“지휘관들을 불러.”

카리엘의 말에 행군을 멈추고 마차 주위로 주요 인사들이 몰려들었다.

“다들 들었다시피 서북부의 상황이 심상치 않소.”

“어쩌실 겁니까?”

3황자의 물음에 카리엘이 간단하게 답했다.

“병력을 나눠야지.”

“결국…….”

카리엘의 말에 3황자가 한숨을 쉬었다.

“주 병력은 그대로 벨푸르스를 친다.”

“예? 그러면……?”

“나와 친위대, 그리고 기시단 일부만 서북부로 갈 생각이다.”

“너무 위험합니다!”

2황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흑마법사를 처리하는 데에 저와 월크셔 마법 병단도 같이하겠습니다.”

“벨푸르스에 흑마법사들이 없을 리 없다. 너와 월크셔는 그놈들을 처리해야 해.”

이참에 뿌리를 뽑아 버려야 했다.

“미끼 역은 내가 한다.”

카리엘의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희생하려고 하는 카리엘을 보며 모두가 미간을 찌푸렸으나 카리엘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수르트의 말이 사실이라면 큰 위험은 없다.’

카리엘이 그렇게 생각할 때, 대공이 조심스레 말했다.

“전하, 그렇다면 대공가의 기사단 일부와 이 녀석이라도 데려가시지요.”

“소가주를 말이오?”

“예, 아직 어리지만 쓸 만할 것이옵니다.”

듀칼의 제안에 글렌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은은하게 뿜어내는 기세를 느낀 이들이 흠칫했다.

마스터인 데이비어 공작조차 입가를 말아 올릴 정도로 묵직한 기세였다.

“제법이오.”

“마스터 앞에서 무례를 범했습니다.”

데이비어의 칭찬에 글렌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전하를 호위하고 싶사옵니다. 받아 주시겠습니까?”

글렌의 말에 카리엘이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피식 웃었다.

‘이것도 운명인가?’

전생에서도 자신을 호위했던 글렌이 이번 생에서도 자신을 호위하고자 한다.

마치 짜기라도 한 것 같은 지금 상황에 잠시 미소 짓던 카리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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