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49화 (49/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17. 화산에서의 혈전 (2)

마스터를 필두로 서북부의 전 병력이 밀고 들어가자 숲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몬스터들이 황급히 안쪽으로 숨어 버렸다.

만만하게 보았던 인간들이 생각보다 강력했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전투로 자신들이 알던 인간이 아님을 파악한 몬스터들은 숲 안쪽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군단장이 전투태세를 갖추던 병력을 불러 모았다.

“밀고 올라가라.”

“예!”

한차례 전투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쉬지도 않고 곧바로 행군을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불만이 있을 법도 하건만 병사들 중에 불만을 입 밖으로 내는 자는 없었다.

“전하.”

입술을 깨무는 카리엘을, 타리온이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리엘은 누가 봐도 초조해 보이는 모습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말 위에서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그 모습에, 타리온은 가까이 붙어서 그의 몸을 지탱했다.

마침내 깊은 생각에서 빠져나온 카리엘이 타리온을 돌아보았다.

“아켈리오 경 좀 불러와.”

“예.”

한번 고개를 숙인 다음 카리엘의 곁을 떠난 타리온은, 이윽고 아켈리오를 데리고 돌아왔다.

“부르셨습니까?”

“혹시 뭔가 느껴지는 거 없소?”

“느껴지는 것이라 하오시면?”

아켈리오가 의문에 찬 표정으로 묻자 카리엘이 숲을 가리키며 말했다.

“흑마력 같은 것 말이오.”

“음, 아직까진 느껴지는 것이 없습니다.”

아켈리오가 기감을 펼쳐 보았지만 아직까진 뭔가가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도 저 마나 폭풍은 심상치 않군요.”

마스터인 그의 마음속에서도 두려움이 일 정도로 엄청난 양의 마나로 이루어진 회오리.

그것이 화산 꼭대기에서 형성되고 있었다.

“저것이 터져 나온다면 어떻게 될 것 같소?”

“저 마나 폭풍 말이옵니까?”

“그렇소.”

카리엘의 물음에 하늘을 올려다보던 아켈리오가 조심히 말했다.

“적어도 이 일대는 날아갈 것입니다.”

“만약 거기에 화산 폭발까지 겹쳐진다면?”

“제국 서부와 중부 지역 일대가 박살 날 것입니다. 여파는 제국 전역에 미치겠지요.”

아켈리오의 답변에 카리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나의 화산 폭발이 이 정도라면, 남은 하나의 화산까지 이런 식으로 폭발할 경우 제국에 남은 미래는 멸망뿐이었다.

‘후, 이 미친놈들.’

흑마법사란 놈들이 하는 것들이 하는 짓이 악마보다 더 끔찍했다.

인간을 장난감처럼 여기는 악마들보다 더 많은 인간을 죽인 자들이 흑마법사였다.

“뭔가 걸리시는 게 있사옵니까?”

아켈리오의 물음에 카리엘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분명 흑마법사들이 원하는 건 화산 폭발을 이용해 제국에 혼란을 주는 것이다.

문제는 뭔가가 자꾸 걸린다는 점이었다.

‘뭐지?’

분명 놓치고 있는 게 있었다.

뭔가가 생각날 듯 말 듯 간질거리는 느낌에 카리엘은 한껏 미간을 찌푸렸지만 지금 당장은 생각나는 게 없었다.

결국 찜찜함을 남기며 숲 부근까지 도달했다.

“확실히 가까이서 보니까 더 위험한 느낌이 듭니다.”

아켈리오는 심각한 표정으로 화산을 바라보았다.

화산까지는 거리가 꽤 멀었음에도 마나 폭풍으로 인해 주변의 마나가 요동치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힘쓰기 힘들 정도로 요동치는 마나 때문에 기사들만으로 나서야 할 판이었다.

물론 기사들 역시 마나를 운용하는 게 상당히 까다로웠다.

“지금부터 화산까지 돌파를 시작한다.”

“예!”

군단장의 명령에 모든 병력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의 계획은 간단했다.

1. 병력으로 숲을 뚫는다.

2. 화산을 등반하는 것은 기사들만 한다.

3. 화산 아래에 대기하는 병력은 지원군을 기다리며 적의 습격을 대비한다.

병사들은 화산 근방에서 몰아치는 마나 폭풍을 뚫고 갈 수가 없기에 기사들로만 이루어진 공략대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군단장은 적어도 기사들이 숲에서 힘을 빼는 일이 없도록 일반 병력만으로 몬스터들을 뚫고 갈 생각을 한 것이다.

계획은 그럴듯했다.

어떤 지휘관이 왔어도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무난한 작전.

하지만 상황은 무난하게 흘러가게끔 두지 않았다.

숲으로 진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마귀 특유의 괴상한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적들인가?”

“그렇습니다. 성국의 지원군으로 추정됩니다.”

카리엘의 물음에 까마귀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1차 지원군?”

“예.”

“전부?”

“그건 아닌 듯싶습니다. 성기사들과 고위 사제로 보이는 자들만 오고 있습니다.”

적일 가능성이 높은 놈들이 카리엘의 병력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성국에서 이곳까지 왔다면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힘들었을 텐데, 절묘하게도 정확히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대놓고 오는 것을 보아 자신들을 막기 위함이 거의 확실했다.

“북부군은?”

“까마귀들과 변경백께선 그들의 바로 뒤에서 오고 계십니다. 남은 병력은 성국의 2차 지원군을 견제하면서 올 것입니다.”

까마귀의 보고를 들은 카리엘은 생각에 잠겼다.

“군단장이 보기엔 어쩌면 좋을 것 같나?”

“본래라면 멈추는 게 맞사오나…….”

군단장이 말끝을 흐리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심상치 않은 마나의 폭풍.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확실한 건 이대로 화산이 폭발하게끔 놔둬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화산에 올라 폭발을 막아야 했다.

“경.”

“예.”

“기사단을 데리고 올라가시오.”

카리엘의 명령에 아켈리오의 표정이 굳어졌다.

“전하, 소신도 황궁 기사이옵니다.”

황태자의 안위가 먼저라는 것을 돌려 말하는 아켈리오.

하지만 카리엘은 단호했다.

“저게 터지면 제국은 멸망이오.”

“전하, 하오나…….”

“적들에게 놀아나 줄 생각이시오?”

카리엘의 말에 아켈리오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중앙군 기사단만 데려가겠습니다.”

“경.”

“황궁 기사는 절대 아니 됩니다.”

아켈리오의 말에 옆에서 타리온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카리엘도 하는 수 없다는 듯 한발 물러섰다.

일단 아켈리오가 화산 꼭대기에 도착하는 게 중요했다.

“군단장은 방어하기 좋은 지형을 알아보게.”

“그리하겠습니다.”

카리엘의 명령에 전 병력이 몬스터를 뚫고 황급히 화산 지역 근방까지 이동했다.

이미 한차례 몬스터 웨이브로 밖으로 빠져나간 몬스터가 많았기에 가뜩이나 숫자가 적었는데 마스터까지 대동하니, 몬스터들의 입장에서 인간의 군대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 덕분에 손쉽게 안으로 진입한 군대는 황급히 방어 준비를 했다.

“올라가시오.”

“예, 임무를 완수하고 내려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아켈리오는 중앙군의 기사단을 데리고 화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황궁 기사단장이 주변에 휘몰아치는 마나들을 일검에 가르며 내부로 진입하자 기사들이 황급히 뒤를 따랐다.

그렇게 기사단과 마스터를 위로 올려 보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성국을 상징하는 깃발과 함께 성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멈추시오!”

“우린 성국군이오! 그대들을 돕기 위해 왔소!”

한 성기사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제국은 경계 태세를 풀지 않았다.

그러자 고위 사제가 직접 나섰다.

“성국의 지원군이오! 길을 여시오!”

“이미 마스터가 화산을 오르고 있다.”

카리엘이 앞으로 나서며 말하자 앞으로 나선 고위 사제의 눈빛이 바뀌었다.

“마스터가 화산을 오르고 있다는 게 정말이오?”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이자 고위 사제가 다시금 확인하듯 물었다.

“마스터가 간 것이 확실하오?”

“그렇다니까?”

“그래도 위험하오. 흑마법사들을 잡아들이는 데 사제들의 도움이 필요할 터.”

“필요 없다. 제국의 정예들이 저곳으로 향했으니까.”

카리엘의 말에 고위 사제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마스터도 없고, 제국의 정예 병력마저 화산을 향해 올라갔다는 말에 고위 사제의 몸에서 마력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기습적으로 고위 사제가 몰래 발현한 마법이 카리엘을 향해 터져 나왔다.

쿠웅!

“그럴 줄 알았지.”

카리엘이 빙그레 웃으면서 고위 사제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카리엘을 향한 공격에 타리온이 앞으로 나서며 막아 내자 고위 사제가 혀를 찼다.

“황궁 기사들과 시종장은 남아 있었나?”

고위 사제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중얼거리는 순간 어느새 성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전부 제국의 정예 기사 부럽지 않은 실력을 가진 성기사들.

거기다가 고위 사제까지 포함된 전력이라면 현재의 전력으로 어려운 싸움이 예정되었다.

그럼에도 카리엘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쳐라.”

고위 사제의 명이 떨어지는 순간, 성기사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빛이 탁한 색깔로 변해 갔다.

신을 배신한 자들만이 가지는 회색빛의 혼탁한 힘.

동시에 고위 사제의 마력 역시 탁한 색깔로 변하면서 공중에 엄청난 양의 마력의 창이 생성되었다.

그 순간 타리온이 앞으로 나섰다.

고위 사제를 제압하기 위함이었다.

“황태자만 노려라!”

모두 죽어도 황태자만 죽일 수 있다면 남는 장사라는 듯, 고위 사제와 성기사 들은 지독하게 카리엘을 노렸다.

전부 정예로 이루어진 성기사단에 고위 사제들이 포함된 전력이라서 그런 것인지, 기사단장급으로 이루어진 친위대조차 방어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자 마치 두려움에 떠는 것처럼 부들부들 떨면서도 뒤로 물러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카리엘.

그 모습을 보면서 고위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눈이 벌게져서 카리엘을 노렸다.

‘친위대만 뚫으면!’

‘거의 다 왔다!’

‘황태자만 죽이면 된다!’

‘모든 것은 대계를 위하여!’

황궁 기사들과 그림자, 그리고 근방에 정찰 중이던 까마귀들까지 합류해 적이 카리엘을 노리는 것을 막아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군단장이 황급히 명령을 내려 보았지만 일반 병력으로 성기사의 돌진을 막기는 어려웠다.

“죽어!”

전원 기사단장급으로 이루어진 카리엘의 친위대에 동료들이 죽어 나가면서 억지로 벌린 틈.

그곳을 향해 성기사 하나가 검을 찔러 넣었다.

심각한 내상을 입어 미약한 마력만 흐르는 검.

2황자나 3황자였다면 어림도 없는 공격이었지만 카리엘은 달랐기에 희망을 걸어 보았다.

바로 그 순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카리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잘 왔어.”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거대한 불덩이에 의해 녹아내리는 성기사의 검.

단 한 번에 불과했지만 수르트는 성기사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 주었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황……태……자.”

카리엘을 잡기 위해 온몸에 칼이 꽂히면서도 돌진해 왔던 성기사가 피를 토하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카리엘은 빙그레 웃었다.

“미끼가 제법 훌륭했지?”

카리엘의 말에 친위대에 가로막혀 있던 성기사들이 분한 표정을 지었다.

황태자 하나 잡겠다고 무식하게 돌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어느새 군단장이 만든 포위망에 갇혀서 하나둘 죽어 나갔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림자들이 사제들을 공격했다.

대응하기 힘들게끔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공격하자, 결국 하나둘 죽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타리온에 의해 심장에 검이 박혀 죽은 고위 사제.

그런데 그 모습을 본 카리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웃으면서 죽는다고?”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죽는 고위 사제의 모습이, 카리엘은 의문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을 죽이는 것에도 실패했고, 화산 폭발을 막기 위해 올라가는 공략대의 저지도 실패했다.

그럼에도 저들은 웃으면서 죽었다.

‘화산 폭발이 다가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카리엘의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