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23. 제국의 진짜 1인자는?
카리엘이 황궁을 떠나면서 내린 명령에 따라 황궁은 바삐 움직였다.
가장 먼저 또다시 일어난 갑작스러운 재앙에 대륙 회의는 중단되었다.
“제국의 북동부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소.”
2황자의 말에 대륙 회의에 참가했던 각국의 수장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3황자가 보이지 않았기에 무슨 일이 생겼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큰일이었다.
교황 역시 사전에 보고받았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가만히 2황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제국의 북동부에서 일어났단 말이오?”
“그렇소. 전례가 없는 규모이기에 피해가 크다 하오.”
2황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은 공왕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흑마법사들을 의심해야 할 것 같소.”
흑마법사들의 도주 루트에서 벌어진 일.
북서부와 남동부에서 사건이 일어났었기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파하는 게 좋겠소.”
2황자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심상치 않은 규모의 지진이 흑마법사에 의해 일어났다면 다른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그렇기에 각국의 정상들이 황급히 흑마법사들의 행방을 조사하라 명했다.
그렇게 대륙 회의의 일정이 보류되자 시카리오 후작 역시 다급히 카리엘을 따라 북부로 이동했다.
동시에 제국의 모든 부처가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독한 놈들이군.”
제이론 폴이 또다시 흑마법사로 추정되는 이들로 인해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북동부에서 발생한 일이기에 여유가 있는 아이론 연맹은 사신단이 묵고 있는 궁에서 사태를 냉철하게 파악하기 위해 차분하게 움직였다.
그 결과 이번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우리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제이론은 흑마법사들이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북서부와 남동부의 사태를 막아 내면서 어느 정도 정리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대륙 회의에 참가할 당시만 하더라도 앞으로의 서대륙의 상황과 힘의 균형에 대해서만 생각했는데,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일단 흑마법사들은 완전히 몰아낼 때까진 연맹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흑마법사들의 힘이 강하다는 것과, 서대륙의 평화를 심각하게 해칠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자 아이론의 사신단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신단에 포함된 인원 모두 큼지막한 상단들을 이끌고 있는 상단주였기에 제국에 지원하는 것과 흑마법사의 위협 중 어떤 것이 더 많은 돈을 잃을지는 계산이 끝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제이론의 말에 동의하면서 제국과 성국에 지원할 금액과 물품 등을 정하기 시작했다.
흑마법사들을 토벌하는 데 자금을 지원하기로 정해지면서 아이론의 정책이 확정되었다.
작전명 : 카리엘 1황자와 친해지기!
제국의 중심이라 판단되는 카리엘과 친해져야만 아이론 연맹에 미래가 있을 거라고 느낀 상단주들은 이번 지원을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보았다.
카리엘과 친해지기 위한 뇌물로 흑마법사를 처리한다?
상인 입장에선 남는 장사였다. 물론 그만큼 흑마법사가 위험하다는 것이 와닿았기에 만장일치로 지원안이 가결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건 다른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부의 두 국가들은 북동부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지만, 공국 같은 경우에는 심각했다.
지금이야 성국와 제국만의 일이지만 산맥을 넘어가는 과정에서 공국의 영토 역시 위협받을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왕이 직접 샤르도나 후작에게 공국으로 복귀를 명했다.
“만약의 경우 로만이 넘어올 수도 있으니 대비하시오.”
“예! 저하.”
공왕의 명령에 고개를 숙인 샤르도나 후작은 다급히 공국으로 복귀하기 위해 움직였다.
로만을 견제하고, 동부로 숨어들 흑마법사들을 처단할 것을 명한 공왕은 심각한 표정으로 속속 들어오는 정보들을 받아 보았다.
“후…… 하필 북동부라니…….”
공왕이 골치 아픈 표정으로 앞으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대륙 회의에 모인 국가 중 가장 힘이 약한 공국 입장에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했기에 뭐라도 계획을 세워서 대응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공국보다 다급한 곳이 있었다.
바로 성국이었다.
“정말 미궁에 흑마법사들이 들어간 것입니까?”
“……예, 성하. 송구하옵니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성기사를 보며 교황이 주먹을 꽉 쥔 채 부들거렸다.
“지금의 지진은 흑마법사들이 마수를 깨우면서 일어난 일이겠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감히…….”
성기사의 대답에 항상 인자한 표정을 짓던 교황이 드물게 분노한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태양신을 섬기는 교단 입장에서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존재.
이 마수는 한때 태양을 삼켰다는, 성국의 입장에서는 치욕스러운 신화 속의 존재라 미궁을 만들어 가두었다.
수백 년간 관리해 오며 의도적으로 몬스터들을 미궁으로 집어넣어 그곳을 발을 디딜 수 없는 위험한 곳으로 위장했다.
그런데 흑마법사들이 그들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다시금 꺼내 올린 것이다.
“그대가 가 주어야겠소.”
“예.”
교황의 명령에 태양검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성국에서 교황을 제외하고 가장 신성력이 강하다고 평가받는 그가 직접 군을 이끌고 미궁으로 향하기 위해 움직였다.
대륙 회의 일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교황이 움직일 순 없었다.
마수가 미궁에서 빠져나오는 정도가 아닌 이상 교황이 직접 움직이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교황이 움직일 정도라면 대륙의 모든 이들이 미궁의 일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성국의 치욕스러운 역사가 다시금 조명될 것이다.
“어떻게 묻은 것인데…….”
성국이 사력을 다해 수백 년에 걸쳐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힌 역사였다.
그런데 그것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으득!
흑마법사로 인해 지금 성국이 받은 피해는 제대로 추산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제국의 신전 철수.
막대한 배상금.
나락으로 떨어진 서대륙에서의 위상.
여기에 치욕적인 역사까지 재조명되게 생겼다.
반드시 이것만은 막아야 했기에 비밀리에 태양검에게 전권을 주며 미궁의 일을 해결하라고 지시한 교황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지러운 머리를 짚으며 잠시 눈을 감은 교황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후…… 제국만으로도 벅차거늘…….”
교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의 대에 일어난 이 끔찍한 상황을 부정해 보았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이제 성국이 해야 할 일은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끔 어떻게든 봉합하는 것.
그러기 위해 엄청난 숫자의 군대를 2개로 나누어, 하나는 지진 지역으로 보내고 다른 하나는 비밀리에 미궁으로 향하게끔 했다.
* * *
그렇게 성국마저 가장 강한 이를 빼서 자국으로 복귀시키며 군대를 움직이자 이 사태의 심각성이 대륙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북동부에 유례없는 지진?」
성국과 공국의 발 빠른 대처를 곧바로 보도하는 신문사들.
대륙에서 일어난 지진 소식에 순식간에 모든 관심사가 지진에 집중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흑마법사에 대한 소식까지 전해졌다.
「이 사태의 배후에 흑마법사가?」
「이번에도 흑마법사가 일을 벌였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공국의 군대가 움직였다. 로만을 대비해 샤르도나 후작이 복귀했고, 북동부로 1개 군단을 파견할 가능성도……」
「성국! 조사를 위해 2개 군단을 파견키로!」
성국과 공국이 다급하게 군대를 움직인다는 소식이었지만 이들의 소식은 금방 묻혀 버릴 수밖에 없었다.
「카리엘 1황자! 직접 군을 이끌고 북동부로!」
「제국의 영웅! 이번에도 해결할까?」
카리엘이 직접 북동부로 향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제국민들의 관심은 온통 그곳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국가들은 저마다 치열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역시 황태자 은퇴는 보여 주기식이었나?”
“……그런 것 같습니다.”
탈로스의 국왕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자 클레타 공작이 무거운 음성으로 답했다.
지진이 일어나자마자 제국의 대신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북부 변경백이 카리엘에게 합류하면서 북부군이 북동부로 움직일 준비를 끝냈다.
거기다 세리엘이 중앙군에 명령해 카리엘을 도울 군단을 편성하게끔 했다.
이 모든 일이 하루도 안 돼서 일어난 것이다.
카리엘이 주도적으로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그동안 대륙 회의에 참석하면서 봐 왔기에 알 수 있었다.
1황자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속도 차이를 직접 체감한 탈로스 국왕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제국이 위험해지면 언제든 1황자가 복귀할 수도 있겠어.”
“사실상 황태자 경합은 보여 주기식에 불과할 수도 있겠습니다.”
“방심해선 안 되겠군.”
탈로스 국왕의 말에 클레타 공작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이 더 크기 전에 수를 내야겠어.”
“예, 두 황자들이 더 큰다면 1황자에게 여유가 생길 겁니다. 그 전에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카리엘이 어째서 스스로 황태자 자리에서 물러났는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간단하게 알 수 있었다.
암중에서 서대륙을 주무르며 제국의 위대한 영광을 되찾으려는 것이었다.
두 황자들의 재능이 모자라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가정이었다.
“그래. 1황자가 계획대로 서대륙을 암중에서 주무르려 하기 전에…….”
탈로스 국왕이 심각한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클레타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나라의 명문을 걸어야 할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가만히 기다리면 서대륙이 제국에 먹힐 것은 자명한 일.
얌전히 굴복하느니 발악해 보는 것이 의미 있었기에 만약의 상황을 준비하려 했다.
“돌아가는 대로 계획을 세우게.”
“예.”
탈로스 국왕이 심각하게 말하자 클레타 공작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로테온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위험하군.”
“예, 흑마법사들을 몰아내면 제국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로테온 국왕의 말에 피레스 공작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 동부 변경백와 북부 변경백이 카리엘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선 확신했다.
‘제국의 진짜 황제는 1황자다!’
현 황제보다도 더한 영향력이 있는 카리엘이야말로 현 제국의 정점이라고 판단했다.
“아무래도 제국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갈아엎어야겠군.”
“예, 그동안의 정보는 너무 낡았습니다.”
이미 제국은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예전의 정보망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썩은 부분을 토대로 만들어진 기존의 정보망에 의존하기보다는 제국의 숨겨진 힘을 새로이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암중에서 움직일 카리엘의 손과 발을 찾아야만 미래를 대비할 수 있었다.
“카리엘 황자를 중심으로 제국의 모든 정보망을 재편하게.”
“그리하겠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만든 정보망을 전부 갈아 버릴 생각으로 명령을 내린 로테온 국왕.
앞으로 다시 정보망을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자금이 투입되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 하지 않으면 로테온의 미래는 없었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제국이라…….”
소국들만 남겨 두고 서대륙 거의 대부분을 점령했던 제국.
그 시절을 다시 겪을 수는 없기에 로테온 국왕은 주먹을 꽉 쥐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국이 그 시절로 돌아가게끔 놔둘 수는 없었다.
* * *
그렇게 각국의 수장들이 카리엘과 흑마법사에 집중하는 사이, 카리엘은 정신없이 북동부와 미궁에 관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