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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69화 (69/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24. 흑마법사들의 한 방! (2)

“잘만 하면 이 상황을 이용할 수 있을 듯하오.”

“이용한단 말입니까?”

동부 변경백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카리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사르만은 분쟁 지역이었다.

그래서 확실히 어떤 나라의 땅이라고 못 박을 수 있는 근거가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서 소국 연합이 그곳으로 쳐들어갔으니 제국은 명분을 갖고 그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

“병력이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남부가 힘을 합쳐 그곳으로 온다면 현재의 병력으로는 대응하기 힘들 겁니다.”

“남부 변경백이 움직이면 되오.”

“부족할 겁니다. 마스터가 없는 이상 아무리 남부 변경이라도…….”

“서부 변경백과 같이 움직이면 되오.”

카리엘의 말에 동부 변경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론을 설득하면 되지 않겠소?”

“예? 아이론을 말입니까?”

“그렇소.”

동부 변경백의 말에 빙그레 웃은 카리엘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설명해 주었다.

상인들의 집단이나 다름없는 아이론 연맹은 이득만 된다면 어떤 짓이라도 한다.

거기다 다른 국가들과의 연합보다 제국을 선택한 이상 아이론도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이득을 안겨 주면 아이론이 로테온을 압박해 줄 것이오. 우리가 신뢰의 증표로 서부군을 탈로스를 압박하는 데 사용한다면 남부는 쉽게 움직일 수 없을 테니.”

“아이론이 이득을 볼 방법이…….”

“제국이 아이사르만을 먹고 동대륙과 직접적으로 교역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론에는 이득이오.”

카리엘의 말에 고개를 주위에 있던 지휘관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북부와 동부 두 변경백은 잠시 의문을 가진 듯했지만 이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대륙에 동대륙의 물품을 들여오는 루트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서대륙 최대 항구가 있는 남부에서 아이론으로 실어 오는 것과 직접 아이론까지 교역선이 오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엄청난 관세와 물류비를 동반한다.

그럼 두 번째 방법이 싸느냐?

그렇지 않았다.

탈로스와 로테온이 공동 관리하는 해협을 통과하는 대가로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그리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아이론이 지불해야 하는 돈이었다.

사실상 남부의 두 왕국이 손잡고 서대륙에 반강제적으로 돈을 갈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국 역시 이 상황에 편승해서 동대륙과의 육상 교역에서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제국이 동대륙과 직접 교역을 시작한다면?

“우린 아이론에 대한 관세장벽을 낮출 생각이니, 그것만으로도 아이론이 움직일 근거가 될 것이오.”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제국의 힘을 깎아 보려는 흑마법사들이 오히려 큰 기회를 준 셈이 되었다.

“동부군은 일단 동부로 향하시오. 대신 분쟁 지역으로의 진격은 최대한 늦춰 주시오.”

“남부군과 맞춰 보겠습니다.”

단번에 카리엘의 의도를 알아챈 동부 변경백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타리온.”

“예.”

“방금 한 말들을 직접 전하고 와.”

“저하.”

지금 하려는 일은 단순히 서신으로만 전하긴 어렵다.

상세하게 카리엘의 의도를 전할 필요가 있었다.

‘분쟁 지역을 먹는 것만으로는 만족 못 하지.’

이왕 할 거라면 그 이상을 노려야 한다.

그렇기에 카리엘은 이 상황을 빨리 끝낼 생각이 없었다.

“위험한 짓 할 생각 없어. 얌전히 변경백 옆에 붙어 있을 생각이니까 갔다 와.”

“후…… 알겠습니다.”

타리온이 시카리오 후작에게 고개를 숙이며 잘 부탁한다고 하자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타리온이 몇몇 그림자들과 함께 사라진 후, 카리엘은 북부군을 움직였다.

미궁에 도착한 이상 성국을 돕는 시늉은 해야 했다.

“흑마법사들이 저하를 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알고 있소. 여기에 얌전히 있을 테니 걱정 마시오.”

황궁 기사단과 북부군, 중앙군의 정예 기사들까지 겹겹으로 둘러싼 상태였기에 제아무리 기상천외한 방법을 쓰는 흑마법사라 할지라도 카리엘을 직접 공격하기는 어려웠다.

“다녀오시오.”

“예.”

시카리오 후작의 신형이 대답과 동시에 사라졌다.

동시에 까마귀들 역시 검은 연기를 흩뿌리면서 하늘로 뛰어올랐다.

“까마귀라…….”

정말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은 까마귀처럼 수백의 북부군 특수부대가 움직였다.

그 뒤를 기사단과 병력이 따르며 미궁에서 나오는 몬스터를 학살하며 진격했다.

그러자 중앙군과 북부군의 연합 병력의 합류만으로 아슬아슬하던 성국의 전선이 단번에 안정되는 것이 보였다.

성국에만 집중하던 몬스터들이 제국군까지 상대하며 점차 미궁 안쪽으로 전선이 밀려나는 것이 확인되자 카리엘은 그림자들에게 주변에 숨어 있을 흑마법사들을 확인하라 명했다.

“얌전히 물러나지 않은 걸 후회해야 할 거야.”

동대륙으로 얌전히 넘어갔다면 굳이 뒤쫓으며 피해를 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이놈들이 굳이 서대륙에서 일을 벌여 자신을 귀찮게 했다.

지금부터 그 대가를 톡톡히 받아 낼 생각이었다.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장로까지 죽인다면 세 명 이상의 장로들이 죽는 것이다.

각 장로급이 이끄는 단체까지 전멸시킨다면 흑마법사의 전력 3분의 1 정도는 날리는 것이다.

그런데 동부에 일을 벌이는 것을 보아하니 그곳에도 장로급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살아 나가긴 어려울 거야.”

동부구와 소국 연합뿐만 아니라 로만까지 움직인 것으로 보아 흑마법사들의 계획은 명확했다.

“북쪽 협곡은 눈속임일 가능성이 높아. 목표는 공국이다.”

거인의 산맥을 가로지르는 가장 큰 협곡을 막는 철벽.

그곳을 뚫어 볼 심산인 것이다.

혹한의 협곡을 뚫는 것보다 공국을 통해 거인의 길로 가는 것이 훨씬 더 안전했다.

서대륙의 동부 쪽 상황에 빠삭한 동부 변경백이라면 이미 카리엘의 의도 정도는 전부 눈치챘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예 공국에서 눌러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자신의 계획대로 모든 일이 흘러간다면 공국에 있는 휴양지에서 욜로 라이프를 즐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황제와 대신들에게 한 방 먹은 이후로 제국에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상당히 위험한 일임을 깨달았기에 이참에 아예 타국으로 튈 각도 보고 있었다.

“후…… 일단 저놈부터 처리해야겠지?”

카리엘은 맹렬하게 움직이는 마수를 바라보았다.

시카리오 후작이 합류했음에도 몸부림이 격렬하여 아직 제압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수가 미궁에서 거의 빠져나왔기 때문에 교황과 시카리오 후작이 전력을 다했음에도 전보다 더 어려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미친개처럼 날뛰는 거대 늑대를 보면서 카리엘은 접근할 타이밍을 쟀다.

그 전에 뒤통수를 칠 가능성이 높은 흑마법사들부터 처리해야 했다.

두근!

“음.”

아주 잠시간 자신과 눈이 마주친 거대한 늑대.

그 순간 카리엘과 늑대의 힘이 얽혀들었다.

하지만 두 마스터의 공격으로 순식간에 끊겨 버렸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편하게 해 줄게.”

카리엘이 조용히 중얼거리면서 가만히 전황을 지켜보았다.

* * *

그렇게 제국군이 북동부에서 본격적으로 전장에 합류하는 동안, 서대륙의 동부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큰일이옵니다! 흑마법사의 언데드 군단이 공국의 국경선을 돌파했다 하옵니다!”

“샤…… 샤르도나 후작에게 연락을!”

“지금 제정신이오!”

당황하는 귀족들에게 분노한 표정으로 고함을 내지르는 공왕.

“지금 그녀는 부족한 병력으로 로만을 막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도움을 청한단 말이오!”

“하오나! 이러다간 큰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한 귀족이 전황이 좋지 않음을 공왕에게 다시 전했다.

언데드 군단에 의해 공국의 국경이 뚫릴 위기에 처했을 때부터 서대륙 동부에 있는 마적들이 들끓었다.

아이사르만의 해적들과 연합 세력을 구축한 마적들이 공국의 위기를 틈타 동시에 약탈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공국의 재앙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탈…… 탈로스가 움직였습니다!”

황급히 달려와 전하는 전령의 보고에 공왕이 머리를 짚었다.

탈로스가 공국의 위기를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이 위기를 헤쳐 나가는 것을 돕는 대가로 분쟁 지역의 완전한 점령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았다.

‘어쩌면…….’

위기를 틈타 공국 자체를 먹으려 할 수도 있었다.

제국은 여러 문제로 정신이 없는 상황이고, 타국들을 견제하기도 바쁜 상황이니 공국을 도울 가능성이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현 시간부로 비상체제를 선포한다. 모두 무기를 들고 싸울 준비를 하도록.”

공왕의 말에 망설이는 몇몇 귀족들.

한때 기사의 나라라고 불렸던 공국이다.

위기 속에서 모두가 검을 들고 싸웠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동대륙과의 교역이 시작되고 분쟁 지역을 통해 막대한 양의 무역을 시작하면서 공국 역시 썩어 버렸다.

제국의 이권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돈맛에 취해 공국의 귀족들 역시 썩어 버린 것이다.

“뭐 하는가! 앉아 있지 말고 모두 싸울 준비를 하라!”

공왕의 말에도 미적거리는 귀족들.

이미 평화에 취해 있던 귀족들은 코앞까지 다가온 전쟁이란 두려움에 덜덜 떨기만 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공왕은 싸늘한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보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당황하는 귀족 하나의 목에 검을 들이밀면서 말했다.

“기사의 나라였던 공국의 긍지를 더럽히지 마라.”

“히…… 히익!”

그는 오줌을 지리는 귀족을 더럽다는 듯 발로 차 버리고는 말했다.

“내가 직접 전장을 지휘할 것이다.”

“예!”

몇몇 귀족들이 우렁차게 대답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썩어 버렸다 생각한 공국이었지만, 아직 긍지를 잊지 않은 자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이 공왕의 뒤를 따라 갑주를 입고 검을 들었다.

수많은 귀족들이 뒤따라 나오면서 언데드 군단과 싸운 준비를 했다.

“뒤는 샤르도나 후작이 목숨을 걸고 지켜 줄 것이다. 우리는 언데드를 격파하고 탈로스를 막는다!”

공왕이 살벌한 눈으로 말하자 도열해 있는 모든 기사들이 고개를 숙이면서 검을 들어 올렸다. 왕의 명령에 공국의 모든 병력이 최후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기를 들었다.

* * *

공왕이 저 멀리 국경을 뚫고 들어오기 시작하는 언데드 군단을 상대로 전투준비를 할 때, 서대륙의 방벽이라 불리는 공국의 요새에선 샤르도나 후작이 로만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공국의 국경이 언데드에게 뚫렸다 하옵니다.”

“……뭐라? 그걸 왜 지금에서야…….”

샤르도나 후작의 말에 보고를 올린 장교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전하께서 알리지 말라 하셨습니다.”

“…….”

로만을 막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샤르도나 후작에게 짐을 지우지 않기 위한 결정.

그것을 알기에 샤르도나 후작은 입술을 깨물었다.

“전하께서 언데드 군단을 막을 수 있겠나?”

“……막으실 것이옵니다.”

확신이 없는 부하의 보고에 샤르도나 후작은 이를 악물었다.

“전하를 믿자. 우린…… 저 빌어먹을 녀석들을 목숨 걸고 막는다.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니…….”

“예!”

샤르도나 후작이 이를 악물며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멀리서 다시 몰려오는 엄청난 숫자의 병력을 막기 위해 화살을 채우고, 마력포를 장전했다.

* * *

양쪽에서 공격받으며 풍전등화의 상황에 처한 공국.

언데드 군단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런데 그들을 상대할 준비를 하던 공왕에게 예상치 못한 급보가 도착했다.

“보고드립니다! 제국 동부군이 남하하고 있다 하옵니다!”

“남하?”

공왕은 부하의 보고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북동부로 간 것 아니었나?”

“동부에 언데드가 나타났다는 보고를 듣고 곧바로 남하를 시작했다 하옵니다.”

예상치 못했던 제국군의 도움.

그런 상황에서도 또 한 명이 보고를 올렸다.

“탈로스의 진격이 멈췄습니다.”

“뭐?”

“제국의 남부군과 서부군이 탈로스의 군대를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로테온을 견제하기도 바쁠 남부군이 움직인 것도 놀라운 일인데, 서부군까지 움직였다는 소식에 공왕은 의문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버티면 된다는 것이구나. 그럼 버텨야지.”

공왕이 그렇게 말하면서 검을 꽉 쥐었다.

“지금 이 사실을 전군에 알려라.”

버티면 살 수 있다.

이 사실을 전 병력에 알리라 전한 공왕은 검을 뽑아 들어 명령을 내렸다.

“전원, 공격 준비!”

공왕의 지휘에 기사들이 발검을 했고, 병사들은 활시위를 당겼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흑마법사의 마법이 선제적으로 요새의 결계를 두드리는 것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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