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70화 (70/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24. 흑마법사들의 한 방! (3)

공국이 명운을 건 전쟁을 시작하자, 서대륙의 동쪽 지역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언데드 군단의 규모를 들은 제국의 동부 변경백은 다급하게 움직였으며, 남부 변경백 역시 제국까지 기어 들어온 마적 떼를 소탕하면서 진군했다.

그런데 의외로 가장 빠르게 움직인 건 탈로스였다.

흑마법사들의 언데드 군단이 예상보다 많은 것에 당황한 것이다.

쾅!

“미치겠군.”

클레타 공작이 주먹을 꽉 쥐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에게 들어온 첩보는 서대륙을 침공한 로만 제국의 군대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과, 기존에 생각했던 언데드 군단의 규모가 2배 이상 많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철벽이라 불리는 공국이라지만 양쪽에서 이 정도로 압박당한다면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 자명했다.

“공국 쪽 병력은 움직였느냐?”

“……예.”

탈로스를 견제하기 위해 분쟁 지역을 지키고 있던 병력이 마침내 모두 물러났다.

“상황이 더럽게 꼬였어.”

이제야 공국의 모든 병력이 수도로 집결하고 있었다.

이들이 늦게 움직이게 된 계기를 탈로스가 마련한 셈이니 멸망한다면 필시 탈로스가 모든 죄를 뒤집어쓸 것이다.

동대륙이 서대륙을 침공할 계기를 마련하게 만든 탈로스를 제국은 절대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고, 로테온도 이번만큼은 탈로스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작전을 변경합니까?”

“그래. 일단 언데드 군단을 처리하고 차후 공국과 협상해야겠지.”

클레타 공작의 결정에 장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분쟁 지역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언데드 군단을 향해 진격하려 했다.

로만의 서대륙 침공을 막기 위해 움직인 것처럼 연기하려는 것.

하지만 그들의 이러한 시도는 너무 늦었다.

“……제국군이 앞을 막고 있습니다.”

장교의 보고에 클레타 공작이 이를 악물었다.

제국 동부군이 공국을 도우러 움직였다.

그런 상황에서 제국의 서부군과 남부군이 탈로스의 앞을 가로막고 분쟁 지역에서 더 올라가지 못하게끔 견제했다.

그리고 그들의 빈자리는 아이론군이 메꾸었다.

“아이론 이 간잽이 새끼들이…….”

여기저기 간만 보던 녀석들이 제국과 완전히 손잡은 것이다.

제국이 남부를 압박하고 있음에도 로테온은 움직이지 못한다.

과거에 맺은 밀약에 따라 제국군이 움직이면 로테온이 탈로스를 도우러 올 거라는 가정이 아이론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살바토르가 이끄는 아이론군이 로테온의 접경 지역에 도달했다 합니다!”

결국 우려했던 보고가 들어왔고, 탈로스군은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제국군이라면 강제로 뚫어 볼 만하겠지만, 상대는 남부 변경백이다.

마스터가 있는 군대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명장.

그가 있는 이상 탈로스의 용장이라 불리는 클레타 공작도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결국 탈로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제국의 동부군이 언데드 군단의 뒤를 치면서 상황은 장기전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 * *

한편 카리엘은 이런 상황을 예견했다는 듯 웃는 낯으로 보고받고 있었다.

“상황이 재밌게 흘러가네.”

그림자의 보고를 들은 카리엘은 다음 수를 생각했다.

빠른 명령으로 흑마법사의 기습적인 한 방을 막아 냈다. 동시에 탈로스 역시 묶어 두었으니 상황은 장기전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을 터.

이제 신경 쓸 건 흑마법사들이 벌여 놓은 일을 정리하면서 발악하는 흑마법사들을 분쇄하는 것뿐이었다.

생명력이 끈질긴 흑마법사답게 살아남은 이들은 결국 동대륙으로 넘어갈 테지만, 전생에서처럼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동대륙이라는 변수가 있겠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이야기겠지.’

상황이 일단락되었다고 판단한 카리엘은 흑마법사에게 남은 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

1. 공국을 뚫기 위해 전력을 투입하는 것.

2. 데릭을 통해 제국의 수도에 더 혼란을 일으키는 것.

이 중 첫 번째는 현재 카리엘이 조치를 취해 사실상 실현될 가능성이 낮다.

그렇다면 남은 건 두 번째뿐인데, 이것 역시 카리엘은 어떻게 움직일지 대충은 예상됐다.

‘벨푸르스 잔당을 이용하거나 숨겨진 황족들을 이용하겠지.’

전생에 이미 겪어 본 일이기도 하고, 벨푸르스의 비밀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일어날 상황이야 뻔했다.

그리고 이건 수도에 있는 대신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형님……(중략)…… 이런 식으로 진행할 것 같습니다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만약 지적할 부분이 없다면 아우를 믿고 북동부에만 전념해 주시길…….

참! 미리엘이 걱정 많이 합니다. 몸조심하세요.

-형님을 존경하는 루피엘이」

“제법이네.”

카리엘이 피식 웃으면서 2황자에게서 온 서신을 곱게 접었다.

그러고는 또 다른 동생에게도 온 서신도 읽어 내려갔다.

「군부대신과 상의해 본 결과 이렇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예상한 대로 흘러간다면 남부 쪽 일은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남은 건 북동부에 예측하지 못한 피해가 일어나는 건데…… 이 역시 형님이 계시니 별문제 없겠지요.

아우들 걱정은 그만하시고 마수 처리나 확실히 해 주세요.

그리고 미리엘이 형님 걱정으로 매일 울먹입니다. 얼른 와서 달래 주세요.

-형님을 걱정하는 세리엘이」

3황자의 서신마저 읽은 카리엘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새 배운 거냐?”

자신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똑같이 행동하는 동생들을 보며 그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제국 내부의 일을 처리하는 2황자와 외부의 일을 처리하는 3황자에게서 자신의 향기가 묻어났다.

아직 미숙해 보이기는 했지만 대신들의 도움을 받아서인지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나를 이용하겠다니……. 누굴 닮은 건지 제법이야.”

동생들이 그에게 직접 서신을 보낸 것.

그것은 그를 이용해야 하니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함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찔렸는지, 미리엘을 들먹이면서 글을 끝맺었다.

사실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자신도 황태자를 은퇴하기 위해 동생들을 이용했으니, 자신도 이용당할 수 있었다.

겨우 자신의 이름을 팔아먹는 걸로 흑마법사의 공격을 완전히 막아 낼 수 있다면 남는 장사였다.

“어려서 그런가? 성장들이 빠르네.”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웃으면서 동생들의 서신을 품속에 넣었다.

“녀석들 말처럼 북동부에 집중해도 되겠어.”

마음을 놓은 카리엘은 미궁을 바라보았다.

두 마스터의 활약과 엄청난 숫자의 병력으로 금세 미궁을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상황은 어느새 변해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누구나 예상하듯 흑마법사가 있었다.

“정말 미친놈들이야.”

거인의 산맥에서 가까운 미궁의 특성을 이용해, 흑마법사들이 미친 짓을 벌였다.

산맥 중턱에서 대규모 자폭 마법으로 산사태를 일으켜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게끔 한 것이다.

자신들의 마법력이 부족하니 스스로 자폭 마법을 시전해 산사태를 만들었다.

그리고 산맥 밖으로 튀어나온 몬스터들이 마수와 싸우면서 전열이 뭉개진 병사들을 잡아먹게끔 유도했다.

마치 초식동물처럼 잠시 무리에서 빠져나온 병력을 노리는 산맥의 몬스터들.

예로부터 서대륙에는 이런 말이 전해 내려온다.

한번 인간 맛을 본 몬스터는 절대 그 맛을 끊을 수 없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을 잡아먹은 몬스터는 결국 인간을 다시 먹기 위해서 인간을 찾아 나섰다.

그래서 먼 옛날 사냥꾼들은 이 점을 이용해 일부러 노예들을 숲에 밀어 넣어 인간 맛을 보게 한 다음, 인간을 찾아 숲 밖으로 나오는 몬스터들을 사냥하기도 했다.

산맥 안에 있는 몬스터들 역시 인간을 잡아먹으면서 눈이 돌아갔는지 달려드는 놈들이 많아졌고, 그 때문에 병력은 아직도 미궁의 몬스터들을 완전히 격멸하지 못해 미궁을 무너뜨리지 못한 상태였다.

“슬슬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산맥에서 약한 몬스터들이 죄다 내려왔다.

그렇다면 그 녀석들을 잡아먹던 녀석들은 어떻게 될까?

당연히 먹이를 찾아 아래로 내려올 것이고, 그것이 반복되면 상위 몬스터들까지 미궁으로 내려올 것이다.

먹이가 널려 있으니 일찍부터 찾아오는 놈들도 있을 터.

길게 끌면 인간들만 불리한 구조였다.

“후…… 쉽지 않네.”

카리엘은 암담한 얼굴로 거대한 마수를 바라보았다.

가까워질수록 공명이 강해지는 것으로 보아 미궁으로 진입하면 녀석을 막을 수는 있을 것 같긴 했다.

문제는 확실한 방법을 모르기에 섣부르게 접근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힘을 빼 놓은 다음 들어가려 했는데, 마수 놈의 체력이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려 두 명의 마스터가 두들기고, 마력포로 온몸이 지져지고 있음에도 금세 회복해서 우렁차게 울어 댔다.

-쯧쯧!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냐?

“수르트? 너 어떻게…….”

카리엘이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옆에 나타난 불덩이를 바라보았다.

-매일같이 울려 대는데 어떻게 잠을 자냐!

수르트가 분노한 표정으로 앙증맞은 팔을 들어 카리엘을 툭툭 쳤다.

“아…….”

-아오! 진짜! 여기에 온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이러고 있는 거야!

“아니, 방법을 모르는데…….”

-화산에서는 알고 했냐? 일단 지르고 봐야지!

수르트의 말에 카리엘이 분노하며 말했다.

“미친놈아! 저걸 봐라! 잘못 깔리기라도 하면 곧바로 저세상이야!”

-쯧쯧! 아직도 제 힘에 대해 의심하네.

수르트가 한 번만 말해 주겠다는 듯, 말했다.

-일단 공명이 시작되면 녀석의 움직임이 멈출 가능성이 높아. 그때 녀석의 정신을 깨워!

“그게 쉽냐?”

-쉽지. 일단 다가가면 공명될 거니까.

수르트의 말에 카리엘이 한숨을 쉬었다.

격렬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박살 나는 미궁은 둘째 치더라도 마력 폭풍에 의해 잘못 들어갔다간 그대로 몸이 찢길 판이었다.

-제대로 시작하면 도와줄 테니까 얼른 가기나 해! 이놈의 공명 때문에 회복도 못 하고! 아오!

수르트가 작은 주먹을 들어 올리며 분노했다.

그러자 카리엘이 헛기침하면서 수르트의 매서운 눈길을 피했다.

수르트 입장에선 좀 자려고 하면 알람이 울리는 꼴이니 충분히 빡칠 만했다.

“후…… 그래. 해 볼게.”

분노한 수르트를 달래기 위해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지휘관들을 불러 모았다.

예상한 것과 달리 마수의 힘이 빠지기는커녕 이쪽의 피해만 늘어 가는 상황이었다.

산맥 쪽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으니 위험을 감수하고 움직일 타이밍이긴 했다.

“성국과 대화를 해야겠소.”

한참 마수를 패고 왔던 시카리오 후작이 카리엘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 성국은 자신들의 치욕이 드러난 상황이라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카리엘에게 당한 것이 있으니 막 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이미 인자한 웃음을 지었던 교황마저 살벌한 표정으로 매일같이 고위 마법을 갈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몰렸다는 뜻이었다.

“언제까지고 이러고 앉아 있을 수는 없소.”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며 진지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를 마련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굳이 많은 사람이 있을 필요는 없었다.

성국과 제국의 협상에 필요한 것은 교황과 카리엘 둘이면 충분했다.

비밀 회담을 위해서 시카리오 후작이 직접 움직였다.

서대륙 최강이라 불리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지, 홀로 찾아간 시카리오 후작을 잡을 생각도 못 하는 성국.

마수와 몬스터를 막아 내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기에 제국과 싸울 생각 자체를 못 한 것이다.

결국 눈이 돌아갔던 교황도 제정신을 차리면서 약속이 잡혔다.

“오랜만이오.”

웃으면서 말하는 인사하는 카리엘을 보며 미소조차 짓지 않는 교황.

“할 말이 무엇입니까?”

비밀 회담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단둘이라서 그런 걸까?

기계적으로 짓던 미소조차 지운 교황이 싸늘한 표정으로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마수를 처리해야 하지 않겠소?”

“……방법이라도 찾으셨소?”

교황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마수에 관해서는 가장 많은 자료를 보유하고 있던 성국도 찾지 못했다.

그렇기에 의문에 찬 표정을 짓는 교황.

“그렇소. 그러니 협조 좀 부탁드리오.”

“……협조?”

“우리가 마수를 막는 동안 성국은 몬스터를 좀 막아 주시오.”

카리엘의 말에 교황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지금 카리엘이 하는 말은 ‘이제부터 자신들이 전쟁을 주도할 테니 너희들은 옆에서 거들기나 하라!’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방법을 알려 주신다면 성국이…….”

“제국만이 할 수 있는 일이오. 참고로 알려 드리기도 어려운 것이, 제국의 비밀과 연관이 있소.”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교황의 표정은 결국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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