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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79화 (79/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27. 욜로 라이프 시작! (2)

서대륙에 암약하던 흑마법사들 대부분이 동대륙으로 넘어갔건만, 아직도 그들이 남긴 걸로 인해 대륙의 모든 국가들이 몸살을 앓고 있었다.

특히 제국 같은 경우 내부와 외부 모두를 신경 써야 될 만큼 정신이 없었다.

“다들 바빠 보이네.”

카리엘이 타리온과 식사하며 말하자 다들 헛기침했다.

궁에서 나온 이후 그는 시종들, 기사들과 식사하고는 했는데, 단순히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노는 것도 같이했다.

그렇기에 정말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건가 싶은 마음에 헛기침하는 것이다.

“흑마법사들이 끈질긴가 봅니다. 특히 벨푸르스의 잔당이 심각하더군요.”

타리온의 보고에 카리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 암약했을 테니까.”

전생에 자신을 괴롭혔던 존재들인 만큼 쉽게 처리할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황제가 된 후 겪은 일들 중 가장 끔찍했던 것은 마왕의 침공이나 로만의 침공이 아니었다.

바로 반란과 인접 국가들의 침공이었다.

그러니 이 사건들을 일으킨 원인으로 추측되는 벨푸르스를 쉽게 잡을 수 없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 전생엔 벨푸르스가 흑마법사와 결탁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만큼 제국이 썩어 있었다는 뜻이지만……. 그래도 짜증 나네.’

한 번쯤은 의심해 봤으나 쥐 죽은 듯 얌전히 있었고, 어느 순간 멸문했다고 알려졌기에 신경을 껐다.

수많은 사건들로 정신이 없었던 터라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급하게 토벌하려고 하면 안 돼.”

“예. 중앙에서도 차근차근 안전 지역을 확보해 나가겠다고 합니다.”

한 곳씩 치안을 완벽하게 만들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다는 계획이었다.

동시에 그림자와 특수부대들을 투입하여서 타국의 개입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었다.

“뭐…… 알아서들 잘하겠지.”

여기서 고민해 봤자 답이 없었기에 카리엘은 식사에 집중했다.

그러자 타리온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혹시나 싶어서 말을 꺼내 봤지만 복귀할 생각은 조금도 없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탈로스는 아직도 반응이 없어?”

“예.”

카리엘의 물음에 타리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자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명문을 가지고 도발하는 것이지만, 탈로스 입장에선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항의 서한 정도는 보내올 줄 알았다.

“이상하네?”

“저하를 철저히 무시하는 전략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나를?”

“예.”

타리온이 그렇게 답하면서 현재 탈로스가 하는 작전들로 추정되는 것들을 설명해 주었다.

1. 소국들을 비밀리에 지원.

2. 범죄 집단의 금적적 지원.

3. 제국 내 반란 세력과 비밀리에 접선 및 협력.

전부 제국을 흔들어 보기 위한 수작질.

탈로스뿐만 아니라 로테온 역시 이 수작질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성국은 어떨까?

그들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남부 연합처럼 뒤에서 수작질을 부리지 않고 정당하게 움직였다.

그들이 가장 자신 있는 선교 활동이다.

연이은 전쟁으로 피해를 본 이들의 마음을 파고들어 은근슬쩍 제국에 반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법을 어긴 게 아닌 만큼 잡아들이기도 어려울뿐더러, 성국 소속의 신관들이 아니었기에 추방시키기도 어려웠다.

본래 성국이라면 태양신을 섬기지 않는 다른 사제들은 인정하지 않았겠지만, 그들 역시 상황이 급박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재밌게 돌아가네.”

카리엘이 재밌다는 듯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탈로스와 로테온, 성국이 의도적으로 카리엘을 배제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공국은 평화로웠다.

아예 동쪽은 쳐다보지도 않겠다는 듯, 철저하게 외면하면서 제국만 괴롭히고 있었다.

“대신들한테서 곡소리가 나고 있겠어.”

“……그럴 겁니다.”

타리온의 대답에 카리엘이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웃었다.

이제는 전생의 미래와 완전히 달라졌다. 전생에 지금쯤이라면 귀족 파가 힘을 합쳐 황제 파를 압박할 시기였다.

그런데 황제 파가 사라지고 귀족 파는 갈라졌다.

그리고 내분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대신 제국과 타국들의 기 싸움이 진행 중이었다.

“또 있어?”

“예. 남부 연합과 성국이 비밀리에 회동을 가졌다고 합니다.”

“저번에 했잖아.”

“이번엔 그 정도가 아닙니다. 주기적으로 만남을 가지면서 뭔가를 계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검은 봉투로 감싸인 보고서를 꺼내면서 말하는 타리온.

특급 기밀 정보에 카리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제국에서 최상위 몇 명만 볼 수 있는 보고서를 들여다보던 카리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걸 나한테 보여 주는 이유가 뭐야?”

중앙에서 자신한테 특급 기밀 정보를 보여 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탈로스를 좀 더 압박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더 하면 전쟁이야. 알지?”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고개를 숙였다.

선택은 그가 해야 한다는 듯 말을 아끼는 그 모습에 카리엘은 한숨을 푹 쉬었다.

“은퇴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나한테 이런 걸 보내는 거야!”

카리엘이 신경질적으로 보고서를 던지면서 머리를 짚었다.

“그만큼 제국이 어렵습니다.”

“다 해 줬잖아. 그 정도 판을 깔아 줬으면 스스로 해야지. 언제까지 떠먹여 줘야 하냐?”

“크흠!”

카리엘이 타리온을 노려보면서 말하자 타리온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다른 이들 역시 카리엘의 매서운 눈초리를 피해 머리를 숙이고 먹는 데 집중했다.

“후…….”

흥분을 가라앉힌 카리엘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소국들과 반란 세력으로 제국이 혼란스러운 동안 수를 써 보려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국과 전쟁을 해 보겠다고?”

카리엘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중얼거렸다.

제국과의 전쟁.

분명 그것은 남부 연합과 성국 입장에서도 어려운 결정일 것이다.

아이론과 공국과 동맹을 맺은 제국이기에 승산은 한없이 낮을 터.

“다시 갖고 와 봐.”

“넵!”

황급히 바닥에 떨어진 보고서를 주워다 돌려준 타리온.

구겨진 보고서를 펴서 천천히 읽어 보는 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믿고 이러는 거지?”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벨푸르스? 아무리 그들이라도 더는 여력이 없을 텐데……. 로만으로 공국을 묶어 두려는 건가? 그래도 승산은 낮을 터.’

카리엘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재 제국에서 가장 약한 고리가 어딜까?

귀족들?

그렇다고 보기엔 현재의 제국은 각 파벌로 똘똘 뭉쳐 있었다.

두 황자의 파벌로 나뉘어 있으며 중립파는 제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뭉쳐 있었다.

‘아이론?’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은 그곳밖에 없었다.

동맹으로 묶여 있다고는 하지만 공국처럼 단단하게 묶여 있지는 않았다.

그걸 감안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상인들이라지만 신의를 잃는 순간 어떻게 되는지 본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제국과 함께하기로 한 이상 배신할 수는 없었다.

“잠깐.”

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국과 아이론의 협정서 내용이 정확히 어떻게 되지?”

카리엘의 물음에 타리온이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앙에 협정서 내용 좀 보내 보라고 해 봐.”

“예.”

타리온이 고개를 숙이고 다급히 사라지자 카리엘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아이론은 지금 꼼수를 쓰는 것이다.

“꼼수를 쓴다라…….”

카리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이론 연맹 자체가 상인들이 모여 만든 나라답게 얍삽한 면이 있었다.

일정 기간을 명시하고 갱신하도록 만들었다면, 그 시기가 지날 경우 공식적으로는 아이론에 귀책사유가 없어진다.

대륙 회의에 맺었던 것을 감안하면 흑마법사와 관련이 있을 터.

‘만약 흑마법사들을 몰아내는 것으로 협정 기간이 끝나고 갱신하도록 되어 있다면…….’

카리엘이 그렇게 생각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제국 내에 있는 반란군이 토벌되는 순간 일시에 삼국이 제국을 친다. 그 상황에서 믿었던 아이론이 배신하거나 중립을 지키기라도 한다면 제국은 곤란해지는 것이다.

동대륙과 무역이 잦은 탈로스라면 로만과도 비밀리에 협약을 맺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즉, 공국 역시 로만에 묶이게 된다는 뜻이다.

사실 이러한 가정이 말이 안 되기는 했다.

동맹을 맺고서 얼마 되지 않아 배신한다는 것 자체가 국격 자체를 낮춰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할 정도로 아이론이 제국의 성장에 위기감을 느꼈다면?

“상인 놈들은 믿을 수가 없지.”

전생을 생각하며 이를 가는 카리엘.

미숙하던 시절, 그들에게 당한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이가 갈렸다.

제국이 어려운 곳을 칼로 후벼 파 이득을 챙기는 더러운 놈들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결국 대규모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건가?”

작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전생과는 다른 형태였지만 결국 서대륙은 대규모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흐름으로 가고 있었다.

카리엘이 골치 아픈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타리온이 다급히 카리엘에게 다가왔다.

“보냈어?”

“예. 빠른 시일 내에 협정문 사본과 보고서가 도착할 것입니다.”

타리온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인 카리엘이 머리를 짚으면서 머리를 상쾌하게 해 주는 허브차를 들이켰다.

“만약…… 상황이 안 좋아지면 복귀하실 생각입니까?”

“……글쎄. 먼저 확인부터 해야겠지.”

카리엘이 싸늘한 눈빛으로 보고서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나서긴 해야 할 것이다.

삼국이 쳐들어오고 아이론이 동맹을 깬다면 혼란이 찾아올 터. 그 틈을 노리고 분란을 일으킬 경우 2개로 나뉜 파벌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터.

그렇게 되기 전에 그가 나서서 중심을 잡아 주는 수밖에 없었다.

“……아닐 거야.”

아무리 아이론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신의 없는 놈들은 아닐 거다.

무엇보다 현재의 제국은 그리 약하지 않다.

설사 예측대로 된다고 하더라도, 최악의 상황을 직면하기 전에 차단하면 그만이었다.

“아무래도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겠어.”

“적극적이라 하오시면……?”

타리온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카리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중앙에 말해서 돈 좀 보내 달라고 해.”

“돈 말입니까?”

“그래. 상대가 소국들을 이용해서 우리를 괴롭힌다면 우리도 똑같이 해 줘야지.”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녀석들이 도적 떼를 이용해서 제국의 국경을 어지럽힌다지?”

“그렇습니다만…… 설마?”

“그래. 우린 해적을 이용하자.”

카리엘은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탈로스와 로테온의 약점이 해상무역이잖아. 해적들을 통해 그것만 건드려도 지금처럼 날뛰진 못할걸.”

“음…… 괜찮겠습니까? 제국은 해적과 접점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공국의 도움을 받아야지.”

이럴 때 사용하려고 동맹을 하는 것이다.

예전부터 아이사르만을 점령하고 있는 공국이니 이쪽 해적들과도 어느 정도 안면은 있을 터.

그들을 불러다 자리만 만들어 주면 잘 구슬려서 남부 왕국들의 뒤통수를 치게 만들 수 있었다.

“아이사 군도의 해적 연합이 그리 지독하다지?”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빙그레 웃었다.

남부 왕국들뿐만 아니라 동대륙의 로만 제국조차 학을 떼는 존재들이 아이사 군도의 해적 연합이었다.

그들만 잘 꼬드기면 강력한 한 방을 날려 줄 수 있을 것이다.

“공왕과 중앙에 보내는 서신이야. 그리고 이건 감찰부.”

“감찰부는 왜……?”

“성국을 이대로 내버려 둘 거야?”

“아…….”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새끼들을 털면 먼지라도 나올 거 아니야. 탈탈 털라고 해.”

“예!”

방랑 사제들을 털라고 명령한 카리엘이 이를 바득 갈면서 말했다.

“감히 내 휴식을 방해해?”

남부 왕국들과는 평화적으로 가려 했던 카리엘은 방향을 바꿨다. 아무래도 이놈들에게는 몽둥이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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