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31. 복귀하는 황태자! (2)
1황자가 수도에 돌아오는 바로 그날, 황태자가 된 것도 충격적인데 황제의 권한을 위임받았다.
그런데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내린 첫 번째 명령이 바로 주적을 설정하는 것.
언제나 그렇듯 적이 있다고 곧바로 토벌군을 이끌고 나갈 수는 없었다.
안에 숨어든 쥐새끼부터 처리해야 하는 법.
그것을 위해 모두가 재빠르게 움직였다.
시작은 수도에 있는 각 상단들이었다.
“갑자기 이러시면…….”
“전하의 명이오.”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감찰부.
그동안 의심해 왔던 상단들을 털기 시작하자, 치안대 역시 눈감아 주고 있던 조직들을 털었다.
‘데리엘’이라 불리는 반란 세력의 구심점과 연결되어 있는지라 차마 건드리지 못했던 곳들.
그런 곳들을 카리엘이 ‘직접’ 처리하라 명한 것이다.
그러자 수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예전에 느꼈던 감정을 다시금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실수한 것 같소.”
“후…… 태자 전하를 다시 불러들인 게 맞는 것인지…….”
혼란에 빠진 제국을 진정시키기 위해 카리엘이 황태자로 복권시키는 것에 찬성했던 귀족들.
그런 귀족들이 지금은 그 결정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은퇴를 위해 만만한 모습을 보였던 황태자가 아닌, 눈이 뒤집혀서 황제파를 쓸어버렸던 황태자의 모습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귀족회가 기존에 계획했던 것들 역시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처음 귀족회의 분위기는 카리엘이 돌아오면 귀족들의 권리를 위해서 다시금 물고 늘어지려는 것이었다.
범죄자들과 혁명 세력을 약점 삼아 카리엘을 길들여 보려던 귀족회.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당장 자신들과 연관된 상인들 중에 소국들과 거래하는 자들이 있는지 살펴봐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혈태자!
카리엘이 수도를 떠난 후 머릿속에서 사라졌던 그 이름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귀족들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명분을 쥔 카리엘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아는 중앙 귀족들은 몸을 사렸고, 동부와 북부 귀족들은 침묵했으며, 서부귀족들은 방관했다.
자신들과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남부 귀족들만이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바삐 움직였다.
* * *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카리엘은 황태자 궁으로 향했다.
“그동안 잘 놀았지?”
1황자 궁에서 다시금 황태자 궁이 된 그곳에 한창 연구 중이던 친위대가 전부 모였다.
동부에 있으면서도 친위대에 대한 보고는 간간이 받아 왔었는데, 나름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오자마자 부려 먹으시는군요.”
아르슈나가 툴툴거리자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밥값은 해야지. 그동안 쓴 돈에 비해 성과가 별로 없더만.”
카리엘의 뼈를 때리는 말에 모두들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궁에 갇혀서 연구만 하느라 몸도 쑤실 거 아니야. 오랜만에 몸 좀 풀어야지.”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친위대 전원에게 황궁 기사들을 이끌 수 있는 권한이 담긴 패를 건네주었다.
“황궁 기사 1개조와 중앙군 1개 부대를 이끌 수 있는 권한이야. 가서 박살 내고 와.”
“예.”
카리엘의 명령에 과거 그를 혈태자로 만들었던 친위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지막까지 반신반의하던 귀족들이 마침내 패닉에 빠졌다. 신문사들 역시 일제히 혈태자의 복귀를 알리며 피바람을 예고했다.
* * *
그렇게 카리엘이 잠자고 있던 칼을 휘두르는 동안 황궁 내부 역시 그의 매서운 눈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곧바로 각 부처에서 일하던 대신들을 황태자 궁으로 불러 모은 것이다.
“정보부를 개편하고자 한다.”
“개편이라 하오시면……?”
군부대신이 조심스럽게 묻자 카리엘이 대신들에게 개편안을 던져 주었다.
“신인 정보부장으로 타리온을 임명할 생각이다. 동시에 황궁 직속 그림자들을 소수만 제외하고 전부 정보부의 특수부대로 합칠 계획이다. 기존에 있던 특수부대에게는 외부를, 그림자들에게는 제국 내부를 담당시킬 생각이야.”
황족과 귀족들이 대립하면서 만들어 낸 조직들을 합친 것이다.
“전하, 폐하께오서 허락하시겠습니까?”
“안 그래도 폐하한테 물어보니 알아서 하라고 하시더군.”
“그런…….”
“쉽지 않은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어. 각 부처에서 따로따로 정보가 올라와서 그것들을 취합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고 있어. 거기다 가뜩이나 인력도 부족한데 똑같은 정보를 몇 명이나 올리고 앉았잖아.”
카리엘이 짜증 내는 표정으로 말하자 다들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군부대신.
그런 군부대신을 위해 카리엘이 말을 이었다.
“군부까진 건드릴 생각 없어. 하지만 정보부만큼은 통합해야 돼.”
“……알겠습니다.”
“감찰부와 치안부에도 정보부 요원 일부를 파악해서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줄여 볼 생각이다.”
한마디로 정보에 관한 것은 이제부터 정보부에 전적으로 일임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각 파벌들의 사정으로 중구난방으로 만들어졌던 정보 라인. 그것을 개편되는 정보부에 통합해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군부 역시 각 사령부 직속으로 특작부대를 만들고 정보부를 연결시켜.”
“……되겠습니까?”
“해야지. 지금처럼 중구난방으로 이뤄지니 소국 연합 하나 제대로 진압 못 하고 질질 끄는 거잖아.”
카리엘이 혀를 차면서 말하자 대신들이 고개를 숙였다.
모두들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란군을 제압 못 하는 건 이해가 간다.
황제의 자식일지도 모르는 자인 데다, 여러 사안들과도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가 아니라고 했지만 ‘혹시나’하는 생각에 건들기 애매했기에 일부러 카리엘이 돌아올 때까지 의도적으로 뭉갠 것이었다.
하지만 소국 연합은?
남부 강국들이 돕는다고 하더라도 그뿐이다. 대군을 일으켜 그들부터 쳤다면 진즉에 박살 났을 것이었다.
그러나 각 부처마다 사정이 있었고, 두 황자들은 그들의 말을 하나하나 들어주면서 일을 처리하다 보니 질질 끌어 버린 것이다.
“정보부에 관해서는 재고할 생각 없어. 명심해.”
“……예.”
확실히 못 박은 카리엘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대신들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더 일을 벌일 생각은 없어. 현재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국 연합을 쓸어버리면서 반란군도 진압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곧바로 정보부 개편을 위해 대신들을 움직였다.
동시에 감찰부와 치안부를 움직여서 수도에 숨어든 반란군 세력들을 잡아내었다.
조금 틈을 보였다고 그새 바퀴벌레처럼 숨어든 쓰레기들을 모조리 색출해 내면서 중앙을 안정시켰다.
이제 남은 건 벌레들을 직접 퇴치하러 밖으로 나가는 것뿐이었다.
어느 정도 내부가 정리되었다 싶어진 카리엘은 곧바로 대전 회의를 열었다.
아직 수도에 남아 있는 변경백들까지 전부 소환한 카리엘은 황좌에 다리를 꼬고 앉아 팔걸이에 턱을 괴었다.
“후…… 솔직히 실망했소.”
황태자가 된 후 정식으로 모든 주요 귀족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대놓고 속내를 드러낸 카리엘.
한숨까지 쉬면서 혀를 차자 가장 앞줄에 선 두 황자들부터 고개를 숙였다.
“하나하나 사정을 봐주면서 일을 처리하면 일은 점점 늘어지는 법. 뭐, 동생들이야 아직 어리니 이해할 수 있소.”
카리엘은 대놓고 두 황자들에게 눈길을 준 뒤 대신들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들이…….”
분노해서 얼굴을 일그러뜨리자 귀족들은 카리엘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후…… 뭐 복잡한 상황이니 이해하고 넘어가겠소, 지금부터라도 처리하면 그만이니.”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변경백들을 불렀다.
“시카리오 후작은 지금부터 성국이 제국에서 헛짓거리 못 하게 완전 봉쇄하시오.”
“그리하겠습니다.”
“방랑 사제라 칭하는 이들까지 전부! 아시겠소?”
“예, 전하.”
시카리오 후작이 고개를 숙이며 답하자 카리엘은 이번엔 서부 변경백을 바라보았다.
“미켈 후작.”
“예, 전하.”
“아이론과 ‘협력’해서 서부의 치안을 확실히 안정시키시오.”
카리엘의 말뜻이 무엇인지 짐작한 미켈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공식적으로는 ‘협력’이지만 아이론이 쓸데없는 짓 못 하게 압박하라는 뜻이었다.
대전 회의라는 공식 석상에서 이런 식으로 말한다는 것 자체가 ‘너희들이 뭔 짓을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조심해!’라고 경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남은 건 남부뿐이군.”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두 변경백을 바라보았다.
“로칸 공.”
“예, 전하.”
“동부군과 함께라면 남부의 두 왕국, 막을 수 있겠소?”
카리엘의 물음에 로칸 바르사유가 곧바로 답하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오나 일이 끝날 때까지 시간을 벌 수는 있을 것입니다.”
바르사유 후작의 말에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희대의 명장이 불리는 로칸 바르사유와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기사단을 보유한 동부군이 함께 견제한다면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허언이 없기로 유명한 로칸 후작이 직접 일이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라 했으니 남은 건 혼란스러운 제국을 정리하는 것뿐.
“노펠 후작은 동부군을 분쟁 지역으로 전진시키시오. 탈로스의 제1검이 직접 군을 이끌고 올 수 있도록 압박해야 하오.”
“그리하겠습니다.”
“로칸 후작 역시 로테온의 주력 병력을 접경 지역에 배치시킬 정도로 압박하시오.”
“예! 전하.”
두 변경백에게 명확히 명령을 내려 주었다.
남은 건 저들이 알아서 할 일.
“이제 남은 건 소국 연합과 반란군뿐이군.”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귀족파의 거두들을 바라보았다.
“데이비어 공작.”
“예, 전하.”
“날 다시 황궁에 불러들인 것을 어느 정도 손해 볼 각오를 하셨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소?”
“명만 내려 주십시오.”
“월크셔 공작, 그대는?”
“소신 역시 마찬가지이옵니다.”
두 공작이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카리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비어 공작, 그대에게 중앙군 2개 군단을 지휘할 권한을 주겠소. 마찬가지로 월크셔 공작, 그대에게도 역시 중앙군 2개 군단을 이끌 권한을 주겠소.”
“저, 전하! 중앙군의 군단들을 그렇게 보내 버리면 수도가 위험해지옵니다!”
군부대신이 사색이 되어 말하자 다른 귀족들 역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려 4개의 군단이 나간다. 사실상 중앙군 대부분이 차출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수도 방위를 위한 군단을 제외하면 대부분 쭉정이들뿐. 그들을 다 모아 봤자 겨우 1개 군단을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수도 방위를 위한 군단이 있다. 또한 황궁 직속 부대 역시 있을 것인데 무엇이 두렵지?”
카리엘의 말에 군부대신이 입을 벙긋거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자연히 귀족들의 입도 닫혔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했다.
정예 군단이 남아 있고 쭉정이들이긴 하지만, 1개 군단에 가까운 병력이 중앙에 남아 있다. 거기다 황궁 직속부대 역시 수도를 지킬 것이니 여전히 안전한 건 맞았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것이 있으니 귀족들 입장에선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 각오도 없이 적들을 토벌하려 했나?”
카리엘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 병력들을 품고만 있으니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다.
그걸 이용해 성국과 남부의 왕국들이 자꾸만 선을 넘는 것이고.
“나를 다시 이 자리에 앉혔다는 건 이 사태를 해결하라는 뜻일 터.”
반론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말한 카리엘은 다시금 두 공작을 바라보았다.
“두 공작에게 4개 군단을 지원해 주었소. 남은 건 귀족들이 힘을 모아야 할 터. 가능하겠소?”
“부족한 병력은 소신들이 채우겠습니다.”
데이비어 공작의 대답에 카리엘은 만족스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럼 데이비어 공작은 소국 연합을, 월크셔 공작은 반란군을 진압해 주시오. 각 중앙군의 2개 군단은 동생들에게 맡기겠소.”
각 파벌의 병력들은 공작들이 직접 지휘하고, 중앙군은 황자들에게 지원하게끔 해서 이원화할 생각이다.
명색이 중앙군인데 귀족파의 수장이 지휘하게끔 둘 수 없었다.
그러자 중립파 귀족들의 불편했던 표정이 풀어졌다. 변경백들과 중앙군은 중립파의 핵심 군벌이었기에 그들을 두 공작들이 지휘하는 게 내심 불편했던 것이다.
“기간은 두 달. 가능하겠소?”
“그 안에 돌아오겠습니다.”
자신감을 보이는 월크셔 공작.
그러자 데이비어 공작 역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한 달 안에 연합군을 박살 내고 승전보를 전하겠습니다.”
두 공작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 시작되자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하지.”
이번엔 실망시키지 말라는 듯 대신들과 귀족들을 한번 쳐다본 카리엘은 무서운 기세를 내뿜으며 대전을 빠져나갔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적들을 쓸어버리기 위한 출정식이 열렸다.
각 변경백들은 주변 국가들을 막기 위해 빠르게 각 사령부로 움직였으며, 두 공작과 두 황자가 2개의 군대를 이끌고 수도를 빠져나갔다.
그러자 데릭을 ‘데리엘 황자’라 믿는 제국민들이 반발했다.
그런 그들에게 개편된 정보부 수장이 된 타리온이 첫 임무를 수행했다.
“전하, 정말 괜찮겠습니까?”
“이런 건 확실히 하는 게 좋아.”
“하오나 황실의 권위가…….”
타리온이 걱정된다는 듯 말하자 카리엘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황실 이미지는 지금도 개판이야. 똥통에 똥 좀 더 묻는다고 달라질 거 없어.”
데릭을 반란군으로 완벽하게 규정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있는데 굳이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단호한 카리엘의 모습에 타리온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인 후 밖으로 나섰다.
개편된 정보부.
그곳의 수장이 된 타리온이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섰다.
“반란군의 수장 데릭, 그는 폐하의 자식이 아닙니다.”
타리온의 말에 그곳에 모인 귀족들과 기자들이 숨을 죽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겨우 이 말을 하려고 이곳에 모두를 모이게 한 것은 아닐 테니까.
“다만…… 황족은 맞습니다.”
타리온이 그 말을 하면서 정말 이걸 발표해야 하나 싶은 표정을 지었다.
끝까지 고민하던 타리온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그의 정체는 황비마마와 벨푸르스 가주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