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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06화 (106/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39. 제국에서 불어오는 변혁의 바람이 아이론까지? (2)

서대륙을 제국이 완전히 장악한다고 가정했을 때, 여유가 생긴 제국이 동대륙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로만이 동대륙을 전부 먹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카리엘은 고민에 빠졌다.

공국이 제국의 그늘 밑으로 들어오면서 동대륙에 개입하기가 한결 편해졌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에 해적들과 더 긴밀한 관계를 가질 필요가 있었다.

“슬슬 작업을 해야 하나?”

남부 왕국들이 대놓고 제국과 적대적인 노선을 타고 있으니 거리낄 것이 없긴 했다.

“시종장.”

“예, 폐하.”

“정보부에 연락해서 해적왕에게 연통을 넣으라고 해.”

“예.”

동부에 있을 시절 약속했던 것을 지킬 때가 다가왔다.

해적들의 나라를 만들어 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는 것과 동시에, 남부 왕국들을 견제할 생각이었다.

“생각대로 되면 좋겠는데…….”

기대감에 차서 중얼거린 카리엘이 남부 왕국들을 괴롭힐 큰 그림을 그려 나갔다.

기왕 하는 거 아이사 군도에만 의지하지 않고 다방면으로 거래를 할 생각을 했다.

범죄 집단은 해적들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산적 떼, 마적 떼부터 밀무역을 하는 암상인들까지 범죄자들은 다양했다.

제국이 소국들을 처리하면서 그곳에 자리 잡았던 범죄자들은 대부분 제국과 남부 왕국들의 국경선 근처에 숨어 있었다.

“범죄자들을 저들만 이용하란 법은 없지.”

제국이 혼란할 때, 남부 왕국들이 소국 연합을 이용해 범죄자들을 지원했던 것처럼 카리엘 역시 범죄자들을 지원해 남부 왕국들을 괴롭힐 계획을 세웠다.

* * *

그렇게 카리엘이 범죄 조직을 이용해 남부 왕국들을 괴롭힐 방법을 찾는 사이, 이들 역시 제국을 괴롭힐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일단 첫 번째 방법은 세일럼의 항구를 봉쇄하는 것이었다.

제국의 동쪽 항구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만으로도 큰 타격을 주는 셈이다.

육군은 강할지언정 해군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동쪽의 해군을 키우려면 서부 변경백을 데려와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아이사르만을 봉쇄할 경우 제국이 어찌 나올 것 같나?”

“당장은 대응하기 힘들 것이옵니다. 하오나 대비는 해야 하옵니다. 제국이라면 아이론에서 했던 것처럼 탈로스에도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으음…….”

탈로스 국왕의 물음에 알탄 후작이 조심스레 의견을 말했다.

로만의 침공으로 주력군 대부분이 공국으로 들어간 이상 탈로스를 침공하기는 어려웠다.

탈로스의 제1검인 클레타 후작을 제외하고 첫 손가락에 뽑히는 실력자인 알탄 후작.

하지만 그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전략가라는 점에 있었다.

제국에 남부 변경백이 있다면 탈로스에는 알탄 후작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군사적 식견이 높은 알탄 후작.

그런 그가 경고하자 탈로스 국왕이 침음성을 내뱉었다.

그런 국왕에게 옆에 있던 윌싱엄 후작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문제는 봉쇄를 한다고 하더라도 제국에 큰 타격을 주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세일럼은 아직 완성된 게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거대 상단들 대부분은 여전히 육로의 비중이 높았다.

제국 전체를 놓고 봤을 땐 큰 타격이라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로스가 봉쇄 정책을 고민하는 건 세일럼이 갖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그래도 한 번쯤 기를 꺾어 줄 필요가 있긴 하네.”

“그건 맞습니다.”

국왕의 말에 윌싱엄 후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신분제를 견고히 하고자 하는 탈로스 입장에선 세일럼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저들의 발전을 한 번쯤은 막아설 필요가 있었다.

세일럼이 발전하는 것만으로도 국경 근처의 도시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국에서 혁명 세력을 중앙으로 불러들이기 시작하자 혼란은 점점 더 퍼져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건 탈로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로테온 역시 같은 문제를 겪고 있었기에 리스크를 감수하고 제국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당장에 제국의 침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문제는 해적들인데…… 저들을 막을 방도는 없나?”

“현재로선 힘듭니다. 저들을 완전히 토벌하려면 탈로스 해군은 7할 이상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그럼 봉쇄가 불가능해집니다.”

“봉쇄를 포기하고 아이사 군도에만 집중한다면?”

탈로스 국왕이 고심 끝에 묻자 알탄 후작이 이번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힘듭니다.”

“이유가 무엇인가?”

“남부 해적들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알탄 후작의 말에 탈로스 국왕의 표정이 굳어졌다.

남부의 해적들은 아이사 군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대륙 전체로 보자면 서부에 신항로를 노리는 서부 해적, 동대륙의 무역로를 노리는 아이사 군도의 중앙 해적, 남부의 거대 섬들과의 무역로를 노리는 남부 해적들이 있다.

탈로스나 로테온이나 동대륙과의 무역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남부의 섬들과의 무역 역시 중요하다.

그들만이 갖고 있는 귀중한 약이나 사치품들을 동대륙으로 가져갈 시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남부 해적들은 로테온 해군의 도움을 받으면…….”

“서부 해적들이 로테온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알탄 후작의 말에 탈로스 국왕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제국에 박살 난 놈들이 무슨 여력이 있다고…….”

“거기까지는 아직 파악이 안 되었습니다. 다만…… 로테온에서는 제국이 지원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더군요.”

“말이 안 되네. 서부 해적들은 반역자들과 손잡은 놈들이야. 자존심 강한 제국이 그런 그들을 지원한다고?”

다른 죄도 아닌 무려 반역죄다.

얼마 전에 황족임에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처형했던 게 카리엘이었다.

그런 그가 서부 해적들을 지원한다고?

“황제라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으음…….”

윌싱엄 후작의 말에 탈로스 국왕이 반박하지 못하고 침음성을 흘렸다.

“제국이 해적들을 이용해 우리의 발을 묶으려 한다면 우리도 똑같이 해 줘야겠지.”

“그때 연을 쌓아 두었던 범죄 조직들을 다시 이용해 보겠습니다.”

알탄 후작의 말에 탈로스 국왕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소국 연합 때처럼 범죄 조직을 이용해서 다시금 제국을 괴롭혀 보려 한 탈로스.

하지만 이런 이들의 결정이 한발 늦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며칠 뒤에 국경에서 황급히 마적 떼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전하! 국경 근처에서 마적 떼가 몰려들어 공격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전하! 북쪽 지역에 산적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쪽 영주들이 황급히 지원군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전하! 밀수업자들로 인해 마약이 풀리고 있습니다!”

연이은 보고에 탈로스 국왕이 황급히 알탄 후작을 불렀다.

쾅!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분노한 탈로스 국왕이 왕좌를 주먹으로 내려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알탄 후작이 고개를 숙이면서 보고를 올렸다.

“아무래도 제국이 먼저 손을 쓴 것 같습니다.”

“뭐? 어찌…… 정보부는 뭘 했단 말인가!”

“로테온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을 보니 그림자들이 움직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국이 작정하고 움직인 듯합니다.”

알탄 후작의 말에 탈로스 국왕이 머리를 짚으며 휘청거렸다.

“하루라도 빨리 북쪽 지역을 안정시켜야 하옵니다. 이렇게 피해가 누적되었다간 본대를 불러들여야 할 수도 있습니다.”

“뭐? 어찌…….”

“국경선이 어지럽습니다. 만약 이 사태가 지속된다면 제국이 두고 볼 리가 없습니다. 눈치 빠른 남부 변경백이라면 침공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

탈로스 국왕이 한숨을 쉬면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귀족들을 불러들이게. 토벌군을 꾸려야겠네.”

“예.”

* * *

세일럼을 봉쇄하고, 제국을 괴롭힐 방법을 찾던 탈로스가 도리어 범죄 조직들로 골머리를 앓는 동안 로테온은 다른 방식으로 괴롭혀지고 있었다.

“또 그들인가!”

“……송구하옵니다.”

로테온의 차기 마스터라 불리는 델론드 후작이 고개를 숙였다.

정보부를 총괄하는 그가 이렇게 고개를 숙이는 이유는 로테온 내부에 제국의 정보부 소속의 특수부대가 대거 들어와 어지럽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들이 합류하면서 제국 정보부의 특수부대의 질적 향상이 크게 이루어졌다.

거기다 정보들 역시 따로따로 보내던 것이 통합되었기 때문인지 명령 체계가 간소화되면서 빠르게 작전이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제국을 제외하면 최고의 정보망을 갖추고 있던 로테온의 정보 체계를 어지럽히면서 괴롭힐 정도까지 되었다.

“아이론에서 들어오는 정보들의 신빙성이 의심된다는 군부의 보고서가 들어왔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제국 정보부가 저희만을 물고 늘어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서부 지역의 정보망이 대거 무너졌습니다.”

“하…… 로테온의 정보부는 대륙 최강을 다투는 조직 아니었나!”

국왕의 호통에 델론드 후작이 고개를 숙였다.

분명 그러했다.

자신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제국의 정보부나 황실직속 단체인 그림자, 제국 북부군의 까마귀들보다도 한 수 위의 정보망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림자와 정보부가 통합되면서 상황이 역전되었다.

“……로테온의 힘만으로는 더 이상 제국의 정보부를 견제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냉철한 판단으로 유명한 델론드 후작이 이렇게 얘기하자 로테온의 국왕이 한숨을 쉬었다.

수십 년간 서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정보망을 갖추고 있던 것이 자신들이었거늘.

고작 몇 년 사이에 자신들을 뛰어넘는 정보망을 갖춘 제국을 보면 무서울 정도였다.

하나로 힘이 합쳐진 제국의 힘을 제대로 느낀 로테온의 국왕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래서 분열을 일으켰던 것이거늘…….”

매번 막대한 돈을 들여 제국의 귀족들을 구워삶았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로테온에선 괜히 돈을 낭비한다고 불만이 있었음에도 꾸준하게 제국의 귀족들에게 뇌물을 쥐여 주었다.

그런데 한 명의 걸출한 황족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제국의 힘을 한데 모았다.

그것만으로 남부 왕국들이 수십 년에 걸쳐서 이룩한 것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지금이 이 정도라면 앞으로 제국이 더 발전할 경우 어찌 될지 두렵군.”

자신의 국왕이 두려움을 가득 품고서 하는 말에 델론드 후작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저 최대한 제국의 정보부를 막아 내는 것 말고는…….

* * *

탈로스와 로테온에게 한 방 먹인 카리엘은 본격적으로 아이론에 힘을 집중했다.

로테온의 정보부를 틀어막고, 탈로스의 군사력을 범죄 조직들로 견제하면서 잠깐이나마 아이론에 틈이 생기자 막대한 자금과 특수부대들을 투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론 내에 있는 혁명 세력을 지원해. 자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어.”

카리엘의 명령에 내무대신이 사색이 되어 말했다.

“예산이 부족합니다.”

내무대신의 죽는 소리에 카리엘이 황실의 예산을 끌어다 쓰는 것까지 허락했다.

“방계 황족들에게 들어가는 자금 다 끊어.”

“예? 하…… 하오나…….”

“내 궁으로 잡힌 내탕금부터 절반으로 줄여. 동생들도 마찬가지고. 그럼 불만을 갖진 않겠지.”

“그래도 되겠습니까?”

“상관없어.”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옆에 있는 포돌스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무슨 말을 할지 알지?”

“귀족원이 사적으로 유용하는 자금들을 회수하겠습니다.”

중앙 부처나 귀족원에서 일하는 귀족들에게 지원하는 품위유지비.

그래도 중앙에서 일하는 귀족들이니 어디 가서 무시당하지 말라며 주는 비용이기에 건들지 못했으나, 상황이 달라졌다.

당장 황제조차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는 상황인데 귀족들의 품위 따위가 중요할까.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야. 힘들어도 버텨. 잘하면 아이론을 우리가 먹을 수도 있다.”

카리엘의 말에 포돌스키와 내무대신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알아들었으면 움직여.”

“예!”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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