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11화 (111/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41. 마탑과의 전쟁 (3)

막대한 위약금을 부담하면서까지 황궁 마탑으로 빼내 가는 황제.

황제가 선택한 인물들은 마탑 입장에선 중요한 인물들은 아니었다. 마도구의 코어 제작이나, 무구들의 핵심 부품을 제작하는 이들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대부분이 단계가 낮은 마법사들이었다.

그렇기에 방치한 것이 문제였다.

무섭기로 유명한 황궁의 정보부를 이용해 이런 이들 중 쓸 만한 존재들만 쏙쏙 빼 간 것이다.

“……이걸 의도한 건가?”

길리먼이 마법사들이 준 보고서를 읽으면서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황제가 영입한 마법사들은 중앙 마탑만이 아니었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영입했으며, 그로 인한 위약금까지 전부 내주었다.

절대적인 숫자로 보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어느 한 분야에서는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다.

마탑에서 소외되었지만,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 수준에 이른 이들을 죄다 쓸어 가면서 황궁 마탑에 모아 놨다.

전문가들만 모아 놨으니 뭐라도 이룰 터.

“망했군.”

대략적으로나마 황제가 빼낸 인물들을 확인해 보니 황제의 의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였다.

“마도구의 대량생산을 하려는 것이군.”

생활형 마도구부터 비공선, 열차까지 제국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개발할 생각이다.

그동안 마탑에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막아 왔던 것을 스스로 박살 낼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영입한 이들은 거기에 꼭 필요한 인재들이다.

이제 정부는 굳이 마탑의 도움이 없어도 된다.

필요한 인재는 죄다 빼 갔고, 무엇보다 황궁 마탑에는 부족하기는 하지만 꽤나 그럴듯한 작업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황제가 직접 지원하기 시작했으니, 점차 더 좋은 환경이 될 터.

게다가 공방까지 확장해 나가면 마도구로 협박하는 짓도 더는 할 수 없게 된다.

“협상을…….”

이제 와서 협상하려 해도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래도 아직까진 방법이 있었다.

당장에야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나중엔 인력 부족에 시달릴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인재 양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0년 뒤를 생각하면 그조차 별문제 없겠지만, 황제의 계획대로라면 그 전에는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해볼 만해.”

마탑 연합이 준비한 패가 통하지 않아 당황했지만 아직은 기회가 있었다.

“탑주님? 어디를 가시는지…….”

“황궁으로 간다.”

길리먼은 다급하게 마차를 타고 황궁으로 향했다.

예전이었다면 마탑을 상징하는 마차를 보면 황급히 문을 열어 주고는 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황궁의 문 앞을 지키는 근위병들조차 까다롭게 굴면서 온갖 검사를 다 받게 했고, 안으로 들어가서도 황궁 기사들에게 추가로 검사를 받게 했다.

“미리 연통을 넣지 않으셔서 시간이 좀 걸릴 것입니다. 나중에 연통을 넣고 다시 오시는 게 어떨는지요.”

황제의 궁 앞에 선 늙은 시종장이 유려한 말솜씨로 말했지만 사실상 축객령이었기에 마탑주는 일그러질 뻔한 표정을 다잡고 허리를 굽혔다.

“기다려도 상관없습니다. 폐하만 뵐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으음…… 아시겠지만 폐하께선 무척 바쁜 분입니다. 일단 물어보겠으나 기대는 마십시오.”

“……예.”

시종장이 안으로 들어가자 마탑주가 이를 악물었다.

처음부터 황제가 쉽게 만나 줄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기에 인내하면서 시종장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폐하께서 시간이 되신답니다. 들어가시지요.”

자신의 예상과 달리 황제가 곧바로 만나 주겠다고 하자 마탑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를 기다렸다는 건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길리먼은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귀한 손님이 왔군.”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미소를 지으면서 티 테이블로 안내했다.

“중앙 마탑주라 직접 찾아왔다라……. 그래, 무슨 일로 찾아왔지?”

카리엘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걸 선호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길리먼 역시 다른 말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폐하께서 원하는 바를 전부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하시지요.”

“그래?”

생각보다 쉽게 항복한다는 듯 의외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길리먼을 바라보는 카리엘.

“생각보다 재미없군.”

카리엘이 시시하다는 표정으로 길리먼을 바라보고는 더 말해 보라는 듯 턱으로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길리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탑의 생산량을 지금보다 10배 이상 늘리겠습니다. 세금을 늘리셔도 받아들이겠습니다. 또한 중앙 부처에 마법사를 상시 파견토록 하여 중앙 부처에서 원하는 바를 잘 협조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법사 인재 양성을 위해 적극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길리먼이 하는 말을 전부 들은 카리엘이 피식 웃었다.

“항복은 무슨…… 거래를 하러 왔구만.”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길리먼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항복하는 것처럼 해 두고 실제 조건들은 전부 그지 같은 것들뿐이다.

생산량 10배? 애초에 쥐꼬리만큼 생산했는데 그걸 10배로 늘려 봤자 별 차이도 없었다.

세금을 더 낸다? 어차피 막대한 이득을 보고 있었고, 마도구조차 지들이 가격을 정하기 마련이니 별문제 없다.

그리고 중앙 부처에 마법사를 상시 파견해서 협조한다는 것도, 여전히 지들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다.

즉, 앞서 말한 것들은 전부 마지막 말을 위해 그냥 내뱉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핵심은 이것이었다.

‘나중에 마법사 수급에 문제가 생길 텐데…… 우리가 도와줄 테니까 적당한 선에서 그만하자!’

이런 뜻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기에 카리엘이 재밌다는 듯 웃은 것이다.

“아직 여력이 남았나 봐?”

이때만을 위해 준비해 왔기에 사정없이 두드렸음에도 길리먼은 항복하지 않았다.

“정부 부처를 마탑과 거래하는 모든 곳을 압박하고, 자금을 동결시키고, 심지어 내부의 인재들까지 빼 갔는데도 이런 여유를 부린다라…….”

카리엘이 턱을 괴고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길리먼을 바라보았다.

사실상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죄다 했다.

만약 이게 마탑이 아닌 상단이었다면 진즉에 거덜 나서 항복했을 정도로 두들겨 팬 것이다.

그럼에도 마탑은 여유가 있었다.

마법사라는 족속답게 자신들만 가지고 있는 기술, 그리고 그동안 벌어 놓은 막대한 자금, 마지막으로 마법사라 망해도 어딜 가서든 먹고살 수 있다는 자신감.

그렇기에 항복하지 않고 황제를 직접 찾아와 거래를 제안한 것이다.

“……제가 앞서 말한 조건들은 언제든 변경될 수 있는 것이옵니다. 그저…… 마탑들과 상의해서 천천히 진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의 명분까지 챙길 수 있도록 한발 더 물러서는 길리먼.

“그럴듯하군.”

카리엘의 말에 길리먼이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카리엘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거절해야겠어.”

“폐하, 어느 정도 타협안이 있어야 저도 마탑들을 설득할 수 있사옵니다.”

이대로 계속 싸울 거냐고 묻는 길리먼.

마탑과의 싸움이 길어지면 제국 입장에서도 좋지 않았다. 마법사 수급이야 나중 문제라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진행 중인 전쟁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제가 반드시 책임지고 마탑들을 설득하겠습니다. 전쟁이라는 명분도 있으니 무리해서라도 10배 이상으로 마도구를 제작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괜찮아. 그동안 비축해 놓은 게 있어서 당분간은 문제없어.”

“폐하, 마탑이 멈추면 제국의 경제도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이야 별문제 없겠지만 황궁 마탑만으로는 절대 감당하실 수 없을 겁니다!”

“그렇겠지.”

카리엘도 그 부분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하지. 이유는 곧 알 수 있을 거야.”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는 카리엘을 보면서 길리먼의 표정이 찡그러졌다.

이제 그만 물러가라는 손짓에 조용히 집무실을 나온 길리먼이 생각에 빠졌다.

‘숨겨 놓은 한 수가 더 있는가? 아니면 좀 더 우위를 점하려는 허세인가?’

지금 당장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황제의 궁에서 나온 길리먼이 한숨을 쉬었다.

만약 자신을 긴장하게 하려는 술수라면 다행이지만, 정말로 숨겨 놓은 한 수가 더 있다면 일이 복잡해진다.

“허세이기를 바랄 수밖에…….”

그렇게 중얼거리며 길리먼은 곧장 마탑으로 돌아갔다.

* * *

그새 마탑주가 황궁에서 황제와 담판을 지으러 갔다는 소문이 돌았는지 여러 곳에서 길리먼에게 연락이 왔지만 대답해 줄 수 있는 건 협상에 실패했다는 말뿐이었다.

길리먼의 실패 이후로 여러 마탑들이 카리엘을 알현하기 위해 애썼지만 전부 실패했다.

“정말로 뭐가 있는 건가?”

시간이 지날수록 마탑을 압박해 오는 강도가 높아지자 이제는 길리먼도 황제한테 뭔가 있음을 느꼈다.

바로 그때, 길리먼에게 한 마법사가 황급히 달려왔다.

“탑주님! 이것 좀 보십시오.”

작은 영상구.

그 안에는 광장의 거대한 영상구가 실시간으로 보이고 있었다.

-짐의 수많은 개혁에도 불구하고 매번 인재 부족에 시달리는 이유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느끼는 바. 모든 제국민들에게 기초 아카데미에서 배울 기회를 주어 많은 인재들을 양성해야 함을 느꼈…….

“기초 아카데미?”

길리먼이 ‘고작 이거?’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기적인 대책이 될 수는 있겠으나 당장 1~2년 내에 있을 마법사 부족은 피할 수 없다.

어린 마법사들을 지금 바로 양성한다고 해도 몇 년은 걸리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길리먼에게 한 마법사가 다급히 신문을 건네주었다.

「아카데미 개혁! 그 주축은 두 명의 황자들!」

“아카데미 개혁? 설마!”

의아한 표정을 짓던 길리먼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신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카데미 개혁안

1. 아카데미의 전문화.

그동안 중구난방으로 이루어지던 아카데미 교육을 세분화해서 전문성을 높인다.

2. 인맥으로 유지되던 아카데미 교수직은 전면 개편한다.

그동안 자질이 없음에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모든 교수들은 황자들과 학생들의 평가에 따라 전부 파면한다.

3. 아카데미 입학을 대가로 한 계약은 무효.

사전에 외부 세력에 의해 강제로 들어오도록 약속을 받거나 귀족으로부터 강제적으로 파벌에 들게끔 계약을 쓴 경우 모두 무효화한다. 오직 아카데미 졸업 이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4. 장학금.

일정 수준 이상의 재능을 보인 자는 황실에서 전액 장학금을 수여한다. 혹 그러지 못한 자들이라도 학비를 마련할 다수의 방안을 마련할 것이다.

※이는 당장 내일부터 시행되는 일이며 향후 모든 아카데미로 확대 시행될 것이다.]

굵직한 것들만 적어 놓은 아카데미 개혁안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엄청났다.

당장 자신의 마탑에 들어오기로 예정된 마법사들마저 계약이 무효화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마탑 입장에선 이미 계약한 걸 강제로 파기당한 것이라 항의할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해서 정한 아카데미 규칙이기에 딴지를 걸 수가 없다.

아카데미 안에 있는 수많은 학생들 중 9할 이상이 이 개혁안에 찬성했다는 것까지 신문에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었나?”

당장에 아카데미에서 졸업하는 마법사들을 영입하는 것만으로도 단순한 업무는 처리할 수 있을 터.

시간을 벌었으니 남은 건 천천히 마탑을 옥죄는 것뿐이다.

장기적인 방안도, 단기적인 방안도 모두 마련되었으니 남은 건 마탑을 박살 내는 것뿐.

“……분열하겠군.”

똑똑하기로 소문난 마법사들이라면 이제 자신들에게 가진 패가 없다는 걸 깨달았을 테고, 그렇다면 남은 건 항복뿐이었다.

설사 대부분의 마탑들이 마지막까지 연합 세력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조금씩 빠져나가는 마탑들만으로도 싸움은 끝난다.

항복하는 이들만 받아들인 후 마탑을 전부 쓸어버려도 황제 입장에선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이다.

* * *

그리고 결국 길리먼이 그토록 우려하는 일이 일어났다.

며칠도 아니었다.

바로 다음 날, 황제를 찾아간 대다수 마탑들이 모든 권한을 내려놓고 황제의 뜻에 따르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자 거대해 보이던 마탑의 연합 세력이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 제국에 있는 모든 마탑에 감찰부가 들이닥쳤는데, 중앙 마탑 역시 그것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제국 최대 마탑에 대한 예의를 차린다고 감찰총장인 포돌스키가 마탑주의 방까지 홀로 찾아왔다.

“폐하께서 전하신 서신이오.”

“…….”

황제의 서신이라는 말에 길리먼은 두 손으로 받아 든 후 조용히 봉투에서 서신을 꺼냈다.

「이제 와서 봐 달라고 하면 곤란해. 봐주는 건 선착순일세. 자넨 늦었어.」

“허허…….”

황제의 서신을 본 순간 자신에게 어떤 희망도 없음을 깨달은 길리먼은 허탈한 표정으로 마른 웃음을 흘렸다.

“그러니 기회를 줄 때 잡지 그러셨소.”

포돌스키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길리먼을 바라보다 뒤쪽으로 눈짓했다.

그러자 그제야 안으로 들어온 감찰부원들이 길리먼의 양팔을 잡았다.

“배임, 횡령, 타국과 밀수, 허락되지 않은 마도구까지 타국으로 넘겼다는 정황이 발견되었소.”

“……갑시다.”

지금 길리먼이 할 수 있는 건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포돌스키를 따라 감찰부에 가는 것뿐.

힘없는 발걸음으로 조용히 감찰부로 끌려가는 길리먼을 본 모든 사람들은 이제 진정한 황제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깨달았다.

마탑들을 무너뜨리면서 비로소 얻게 된 절대 권력.

그것을 쥔 황제가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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