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42. 분열된 아이론을 집어삼켜라!
마침내 황제가 마탑까지 집어삼키면서 제국은 더 가파르게 변화할 준비를 끝마쳤다.
이 소식은 곧바로 제국 전역에 퍼졌고, 아이론을 비롯한 서대륙의 다른 국가들에게까지 퍼져 나갔다.
자신을 가로막던 모든 세력을 집어삼켰으니 카리엘 입장에서는 더는 거리낄 게 없었다.
제국 내부가 정돈되기 시작했으니 이제 시선을 외부로 돌릴 차례.
“일단 동부부터 해결해야 하나?”
집무실에서 지도를 보면서 고민에 잠긴 카리엘.
항복한 마탑을 통해서 철도와 비공선을 더 양산할 수 있는 준비를 시작하라고 명령했고, 동시에 각 마탑들이 갖고 있던 핵심 마법들과 기술들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죄를 감해 주면서 정부가 주도적으로 마도구를 양산할 수 있는 체제까지 확립했다.
문제는 사방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통에 이것들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점이다.
동부와 서부 양 방향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고, 북쪽의 성국까지 견제해야 하는 판국이 한 곳에 힘을 모을 수가 없었다.
“타리온.”
“예.”
“해적왕에게 연통을 넣어. 일단 동부부터 해결을 본다.”
결론을 내린 카리엘이 명령을 내리자 타리온은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다.
자신이 직접 명령을 내렸으니 해적왕이라 할지라도 답을 줄 터.
그의 연통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일에 몰두했다.
해야 할 것이 참 많았다.
그동안 마탑에 의해 막혀 있던 개혁들을 모조리 진행시키고 있었고, 그로 인해 모자란 인력은 죄다 동부에서 차출했다.
귀족들도 지지 않겠다는 듯, 열심히 나섰지만 한계가 있었다.
결국 고생은 중앙 부처의 기존 관료들이 할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카리엘에게도 일이 몰리는 상황이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밤이 되었다.
“폐하.”
야밤을 틈타 조용히 들어온 타리온을 보면서 카리엘이 물었다.
“답변은?”
“왔습니다.”
그렇게 말한 타리온이 조용히 서신을 전했다.
“으음…….”
해적왕이 전한 서신의 내용은 상당히 심각했다.
탈로스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제국이 해적들을 이용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렇기에 그들 역시 막대한 돈을 들여 아이사 군도의 해적들 일부를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로 인해 해적왕이 추진하는 계획들에 문제가 생겼다.
“그러게 진작 서부로 몰아내라니까.”
일전에 해적왕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서부로 몰아내 독립시키라고 충고했었다.
남은 세력으로 아이사 군도를 장악하면서 몰아낸 세력이 서부의 해적들을 집어삼킬 수 있도록 도우라고 했었는데, 미적거리더니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다.
“일단 우리가 약속한 것부터 먼저 진행할 수밖에 없겠네."’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한숨을 쉬었다.
“이 서신을 해적왕에게 전해.”
“예. 그리고 이것을…….”
“이건?”
“아이론 연맹주가 보낸 밀지입니다.”
“그가? 갑자기?”
카리엘이 타리온이 건넨 밀지를 받아서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비밀리에 나를 보고 싶다네?”
“그렇습니까?”
“그래. 아무래도 아이론의 상황이 많이 다급해진 거 같은데…….”
카리엘의 말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타리온이 품속에서 보고서 하나를 꺼내서 건넸다.
“아이론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카리엘이 그가 건넨 보고서를 받자마자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제국이 마탑까지 휘어잡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아이론 내부에서 혁명 세력이 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아이론은 친제국파와 반제국파가 전쟁을 벌이면서 그로 인해 팍팍해진 삶에 지쳐 들고일어난 반정부파가 생겨난 상황이다.
거기다 서서히 세를 불려 나가고 있는 혁명 세력이 더해지면서 개판으로 변했다.
여러 세력들이 아이론 곳곳에서 일어나면서 예전의 자유롭고 강력했던 국가의 모습은 사라지고 지옥 같은 곳으로 변해 버렸다.
“최악의 상황이군.”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한숨을 쉬었다.
겉으로 보기에 여유로워 보이는 제국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조금만 삐끗해도 제국은 무너질 것이다.
여러 개혁들을 통해 간신히 봉합해 가는 것뿐이지, 만약 삐끗해서 전쟁에서 패하기라도 하는 날엔 온갖 문제들이 터져 나올 것이다.
결국 제국이 살아남으려면 모든 전쟁에서 승리해야 했다.
“일단 로만부터 정리하자고.”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은 곧바로 다음 날 발표했다.
“남부를 어지럽히는 해적들에게 명한다. 지금이라도 남부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멈춘다면 제국은 그대들을 포용할 생각이다. 또한 원한다면 정식 국가로 인정해 수교를 맺을 것이다.”
해적들에게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소식에 서대륙은 물론이고 동대륙도 놀랐다.
두 대륙 간의 교역에 가장 방해되는 존재가 바로 아이사 군도의 해적들이었기 때문이다.
「해적들을 포용하려는 황제 폐하!」
「해적들을 정식 국가로?」
전쟁 중이었음에도 모든 신문사들이 해적들에 관해서만 기사를 낼 정도로 모두가 놀란 발표.
단순히 말만 던진 것이 아니었다.
마치 정식 국가에 사신을 보내는 것처럼 사신단을 꾸려 세일럼으로 보냈으며, 해적왕에게 황제가 친히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뿐이었다면 그저 하나의 ‘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카리엘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서대륙의 평화를 어지럽히는 로만의 행위에 제국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음이니…… 공국을 침공하는 로만의 군대를 격멸하기 위해 군대를 모집하겠다!”
이미 동서로 나뉘어 어마어마한 숫자의 군대를 보내 놓은 제국이기에 추가로 지원군을 보내려면 병력을 추가로 모집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과 동시에 그동안 숨겨 왔던 정보들을 하나씩 꺼냈다.
“제국의 정보부에 따르면 탈로스가 로만과 밀약을 맺은 정황이 발견되었다. 만약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않는다면 탈로스는 서대륙의 ‘적’으로 규정할 것이다.”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내용.
로테온과 탈로스, 성국이 합심해서 로만과 밀약을 맺었다는 사실이었으나, 카리엘은 탈로스만 콕 집어서 말했다.
서대륙의 ‘적’으로 공식적으로 규정하면서 로테온과 성국에 살길을 열어 준 것이다.
반제국파의 동맹에 내분을 일으켜 보겠다는 의도였다.
물론 제국이라는 거대한 적에 맞서기 위해 지금이야 별 효과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
탈로스 하나만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다 보면 그들에게 패색이 짙어졌을 때보다 쉽게 전쟁을 마무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를 위해서 패를 깔아 둔 카리엘은 곧바로 동부 항구 세일럼으로 향했다.
* * *
“폐하를 뵙습니다.”
제국의 황제가 해적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동부로 향한다!
이 사실에 아이사 군도 내에 있는 반해적왕 파벌들조차 동요했다.
제국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니 그동안 해적왕이 약속했던 것들이 정말인가 싶은 것이다.
이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해 카리엘이 직접 움직인 것이었다.
“오랜만이군.”
해적왕 존 키드와 반갑게 인사한 카리엘은 주요 해적들과도 악수를 나누었다.
전부 남부 해역에서 한가락 하는 네임드들.
그리고 카리엘은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제국은 아이사 군도 인근 해역에 관해 그대들의 주권을 인정할 생각이야. 이는 공국과도 이야기가 끝난 상황일세. 아이론 연맹주도 이에 찬성한다더군.”
카리엘의 말에 해적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전쟁이 끝나면 앞으로 동대륙과의 무역은 더 커질 거야. 그뿐만 아니라 교역량 자체가 지금보다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높지.”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수도에서 준비해 온 자료들을 보여 주었다.
일부러 무식한 해적들이 보기 쉽도록 그래프까지 손수 그려 왔다.
제국에서 시작된 혁명과 온갖 계획들로 인해 발전이 가속화되고 동부와 서부를 잇는 철도 사업이 완성되면 물류량은 폭증할 것이다.
“그러니 자네들의 역할이 중요하네.”
“저희의 역할 말입니까?”
존 키드의 물음에 카리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우리가 동부 항구를 가졌지만 동대륙과의 교역에 유리할 뿐, 남쪽의 타 대륙의 나라들과는 교역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네.”
“아!”
“난 이왕이면 그대들이 남쪽 해적들까지 전부 집어삼켜 주었으면 싶군. 겸사겸사 서쪽 해적들까지 통합해서 바다의 무역로를 지켜 주는 사업을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걸세.”
카리엘의 말에 해적들이 몽롱하게 변했다.
“지금처럼 노략질하는 거? 분명 돈이 되기는 하겠지. 하지만 생각해 보게. 안전한 무역로가 생기면서 폭증하는 무역량을……. 그로 인해 얻을 보호비와 무역로 곳곳에 위치한 섬에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돈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거야.”
“으음…….”
카리엘의 말에 해적들이 아직은 감이 잘 안 온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들을 위해 카리엘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아이사 군도와 남서부 지역의 섬을 장악한다면 그대들은 모든 무역로를 장악한다는 뜻이야. 아직도 감이 잘 안 오나?”
안전한 무역로가 만들어진다.
이 뜻이 무엇일까?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상인들이 무역에 뛰어든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는 건 지금보다 몇 배나 많은 무역량이 남부 해역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하니, 그 과정에 생기는 수입은 모조리 해적들의 것이 된다는 뜻이었다.
“자네들 중에도 고리대금업을 하는 자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카리엘의 말에 몇몇 해적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탈한 돈으로 남부 왕국들에 잠입해 몰래 고리대금업을 하는 해적들이 있었다.
무역선을 털다 보니 돈이 상당히 많았고, 그러다 보니 불법으로 돈놀이하는 해적들 역시 규모가 상당히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자들이 보기에 카리엘의 말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남부나 제국에서 주는 푼돈에 연연하지 말고 진짜로 ‘돈’을 벌어 보게.”
그 말에 해적들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범죄가 아닌 정당한 방법으로 지금보다 몇십 배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면?
충분히 해 볼 만했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좀 필요하지.”
“무엇입니까?”
해적왕의 물음에 카리엘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간단하네. 제국이 동대륙의 국가들을 지원할 수 있게 도와주게.”
밀약이 아닌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로만 인근의 국가를 지원하는 것.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것이기에 많은 물자를 지원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물자들이 가는 선박을 해적들이 지켜 준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무리 로만이라도 지금처럼 대군을 공국을 공략하는 데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럴 경우 제국은 군대를 빼서 아이론에 집중시킬 것이다.
“만약 아이론 사태가 안정화된다면 서부의 해적들을 장악하게끔 우리 해군을 통해 도와주도록 하지.”
“이 약속을 문서로 남길 수 있습니까?”
한 해적의 물음에 카리엘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난 그대들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기로 했네. 정식으로 국가가 된다고 발표하는 즉시 문서화해서 보내 주도록 하지.”
여기까지 약속하자 해적왕의 반대파로 보이는 몇몇 해적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기자들까지 불러다 놓고 하는 공식적인 협약.
그것을 해적들과 맺는 순간, 서대륙이 난리가 났다.
물론 동대륙 역시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지원을 받아 보겠다는 동대륙의 나라들이 죄다 무역선을 타고 제국에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국가들 중에 제국에 낙점받은 것은 ‘윙사르’였다.
윙사르와 제국 간의 협약이 체결되는 바로 그 순간, 로만의 국경에 윙사르의 군대가 침공을 개시했다.
그러자 대군으로 공국을 몰아치던 로만의 대군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지원을 받은 후에나 움직일 줄 알았던 윙사르가 곧바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윙사르 접경 지역에 있는 로만의 군대가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기어이 절반 정도만 뒤로 빠지는 선에서 군대를 유지시켰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정도면 공국이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제국의 동부군과 중앙군, 그리고 아켈리오가 빠지기엔 충분했기 때문이다.
「아이론 연맹에 아켈리오가 이끄는 추가 지원군 파견!」
「제국이 본격적으로 아이론 연맹의 내전에 개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