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13화 (113/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42. 분열된 아이론을 집어삼켜라! (2)

마침내 제국의 모든 군대가 아이론에 집중되기 시작하자 모든 신문사들이 이에 대해 보도했다.

아켈리오와 중앙군은 곧바로 아이론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동부군은 탈로스를 압박했다.

아이론에 진입한 탈로스 주력군을 조금이라도 빼기 위함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지부진하던 아이론 내전도 다시금 본격적으로 싸울 준비를 했다.

“제국군이 오고 있습니다. 후퇴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 우린 여기서 아이론의 정부군을 격퇴한다.”

“하지만 아이론 내에서 반발하는 세력이 적지 않습니다.

부관의 말에 피레스 공작이 침음성을 흘렸다. 사실 이렇게 전쟁이 질질 끌린 이유가 바로 아이론 내에서 일어난 반발 세력 때문이다.

‘우리의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 모두 꺼져라!’

친제국파나 반제국파 모두 타국의 군대를 끌어들인 시점에서 매국노나 다름없게 된 셈.

그러다 보니 몇몇 거대 상단들을 중심으로 뭉치며 반정부군이 만들어졌다.

거기다 기존의 체제에 불만을 갖고 있는 혁명 세력까지 들고일어나면서 남부 왕국군에 대해 저항하기 시작했다.

제국만 상대해도 힘들 지경인데, 여기저기서 들고일어나는 아이론의 자체적인 반군 세력까지 신경 쓰다 보니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냥 밀어 버린다.”

“그러다간 아이론의 반제국파가 떨어져나갈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어. 더 미적거리다간 전쟁 자체를 질 수 있다. 흩어져 있는 로테온군을 전부 집결시켜. 빠른 시일 내에 모든 걸 마무리 짓는다.”

“예!”

로테온의 제1검인 피레스 공작이 결단을 내렸다.

제국군이 도착하면 모든 것이 끝이었기에 위험을 감수하고 병력을 집결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저항하는 반란군을 잔혹하게 죽이는 일이 발생하면서 반제국파에 가담했던 아이론 측 인사들이 반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시하고 병력을 집결시키는 피레스 공작.

그러자 탈로스군도 움직였다.

“제국군이 오기 전에 뚫어야 한다. 우리도 모든 군을 이곳으로 집결하라고 해!”

“본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국의 동부군이 파죽지세로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부관의 보고에 클레타 공작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남은 병력으로 버텨 보라고 해. 우린 여기서 아이론을 점령한다.”

“하오나…… 제국군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여기서 아이론을 빼앗기면 더 큰 위기를 초래한다. 우린 전하의 명령대로 친제국파를 아이론에서 몰아내야 한다.”

탈로스의 제1검인 클레타 공작마저 승부수를 던졌다.

반제국파와 함께 두 남부 왕국군이 밀고 올라가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친제국파의 정부군은 황급히 전선을 당겼다.

지금처럼 반제국파를 완전히 밀어내기보다 주요 요새들을 중심으로 버텨 보겠다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그러자 제국군도 그에 발맞춰 아이론군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제국의 지원군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 보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론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갈 때, 비밀리에 아이론에서 온 한 인물이 카리엘을 찾았다.

“오랜만이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비밀리에 황궁을 찾은 아이론의 연맹주가 인사를 했다.

“상황이 급박한 거 같은데…….”

“예. 그래도 폐하의 은혜 덕분에 어떻게든 버티고는 있습니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하는 제이론 폴.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는지 수척해진 얼굴로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동질감을 느낀 카리엘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몸에 좋은 약초로 우린 차를 내오게 한 후 조용히 물었다.

“밀지로 나를 만나고자 청한 이유가 무엇이오?”

“혁명 세력 때문에 뵙자고 했습니다.”

“……혁명 세력?”

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제이론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아이론 내부에 혁명 세력이 생겼다는 것쯤은 아실 겁니다.”

“으음…….”

카리엘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제이론을 바라보자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혁명 세력이 제국과 통합하자고 주장하는 자들이라는 것도 아실 테지요.”

아이론이 생겨난 기원.

그것은 자유와 공정한 기회를 통해 능력 있는 자들이 더 잘사는 사회가 되자는 것이었다.

상인들이 세운 나라.

그런 아이론이 썩어 들어가면서 이제는 타국의 대리 전쟁터가 되었다.

그러자 그에 분노해 이럴 바에는 차라리 제국에 합병되자는 무리, 즉 혁명 세력이 나타났다.

카리엘이 귀족들을 박살 내고 혁명 세력을 끌어들일 때부터 점점 커지던 혁명 세력은 제국이 마탑을 박살 내면서 급격한 발전을 이루기 시작하자 폭발해 버렸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제국에 통합되자!’

이 주장에 코웃음 치던 사람들도 슬슬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본래 아이론 연맹 자체가 제국에서 떨어져 나온 국가였기 때문이다.

막강한 돈을 가진 상인들이 마스터급 용병들과 수많은 군대마저 사서 반란을 일으키려 하자 독립시켜 준다는 말과 함께 제국 각 지역에 반발하던 자들을 죄다 모아 놓은 게 아이론의 시작이었다.

“반정부파나 혁명 세력 모두 아이론의 밑바닥을 경험한 이들이 많습니다.”

아이론의 밑바닥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제국의 탄광에서 구르고 있는 범죄자들이 더 나을 지경이니 말 다 한 것이다.

철저한 자본주의사회이다 보니 더 악랄하게 사람을 부려 먹었다.

제이론에 의해 시작된 복지사업은 그저 그들의 삶을 그저 연명하게끔 만들어 주는 것에 불과했다.

“그들은 제국의 체제 아래로 들어오길 희망합니다.”

“아이론 정부는 반대하는 입장 아니오?”

“예. 저희 입장에선 아이론이란 국가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제이론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는 개인적으로 차라리 제국에 나라를 넘기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따르는 상인들은 달랐다.

아이론에서 이뤄 놓은 모든 것이 제국으로 편입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로 인한 불안감 때문에 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만큼은 기를 쓰고 반대했다.

아무리 친제국파라 하더라도 나라가 넘겨지는 것은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더 버티지 못하게끔 몰아가고 있네요.”

자조 섞인 말투로 말한 제이론이 고개를 숙이며 카리엘에게 부탁했다.

“연맹을 만들어 주십쇼.”

“연맹? 설마…….”

“예. 새로이 만들어진 연맹 안에 저희들이 들어가면 제국의 속국이 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으음…….”

카리엘이 고민하는 듯하자 제이론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지금처럼 국가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의 독립 체제만 유지하게끔 해 주시면 됩니다.”

“어느 정도라…….”

“세일럼 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다만 그 규모가 좀 커질 뿐이지요.”

현재 동부의 세일럼 항구가 가진 독립성.

그 정도만을 바라는 제이론의 말에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뒷감당이 무서워서지요.”

제이론의 말에 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뒷감당?”

“공짜로 도와주시는 건 아닐 거 아닙니까?”

제이론의 말에 카리엘이 헛기침했다.

지금 제국이 아이론을 도와주는 것은 남부 왕국들과 성국을 견제하기 위함이지만 그렇다고 공짜로 도울 수는 없는 법.

나중에 모든 전쟁이 끝났을 때, 제국은 그동안 도와준 대가를 어느 정도는 받아 낼 생각이었다.

문제는 두 명의 마스터와 제국의 정예군 대부분을 보낸 이상 일부만 대가로 받는다 할지라도 아이론이 감당하기엔 버거울 것이라는 점이다.

“어차피 폐하께서 계신 이상 아이론이란 나라가 오래 유지되진 못할 거라 생각합니다.”

“으음…….”

“그럴 바에 미리 제국에 들어오는 게 훨씬 낫지요. 미리 오면 이렇게 거래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제이론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마탑의 탑주들은 기회를 놓쳤기에 혹독한 대가를 치렀지만 머리가 좋은 제이론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영리하군.’

전생에 제국을 지켜 낸 재상인 루터에 버금가는 천재.

그렇게 평가한 카리엘이 피식 웃었다.

‘내 계획은 쓸모없게 되었네.’

아이론을 집어삼키기 위해사 혁명 세력을 이용해 작업을 할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이런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제이론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전생의 자신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일은 터져 나오고 있고, 나라는 멸망 직전에 이르렀다.

그 당시 절절하게 느껴졌던 절망감이 제이론의 얼굴에서 느껴졌다.

“폐하께도 그렇게 나쁜 거래는 아닐 겁니다. 아이론이 제국에 들어가면 공국 역시 이리할 테니까요.”

“공국까지 욕심낼 생각은 없소. 지금의 관계로 충분하오.”

“공국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 텐데요.”

제이론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자 카리엘이 헛기침했다.

이미 공국 내에 제국 동부군을 상시 주둔시키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 자체가 반쯤은 제국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론이 제국에 흡수되면 공국도 그리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이론과 공국을 삼키면 서대륙의 통일도 꿈만은 아닐 겁니다.”

제이론이 그렇게 말하면서 집무실 한쪽에 걸린 지도를 바라보았다.

서대륙의 중앙을 전부 먹은 이그니트.

남은 건 남부 왕국들과 성국뿐인데, 제국의 발전 속도라면 그들까지 집어삼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서대륙을 통일하면 다음은 동대륙일까?’

거기까지 생각한 제이론이 카리엘의 얼굴을 힐끔 보았다.

어쩌면 자신은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황제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

“후…… 좋소. 그럼 발표는 언제쯤 하는 게 좋겠소?”

“지원군이 오는 타이밍이 어떠신지요?”

그렇게 말한 제이론이 아이론의 현 상황을 직접 설명해 주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부 왕국들의 횡포에 반제국파에서 이탈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 중 일부는 친제국파에 합류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혁명 세력이나 반정부파로 흡수되고 있었다.

그러니 최대한 그들을 흡수한 다음 혁명 세력과 반정부파와 협상을 끝내고 스무스하게 제국에 합병된다는 발표를 하는 것이 좋았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제이론이 일어나서 고개를 숙이자 짧게 고개를 끄덕인 카리엘이 직접 제이론을 배웅했다.

“후…… 지금 당장 대신들을 소집하게.”

“예.”

제이론을 보낸 카리엘이 곧바로 주요 대신들을 소집했다.

방금 제이론과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자 모두 놀라워했다.

몇몇 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카리엘에게 몇 번이나 묻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론이 스스로 제국에 합병되기를 원한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소국도 아니고, 한때 강국으로 불렸던 아이론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좀 더 무리를 해도 될 것 같은데…….”

“주요 귀족들에게 사정을 설명해 두고 진행한다면 큰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카리엘의 말에 재상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명분은 제국의 옛 고토 회복.

아이론이 제국이 된다는데 거부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혁명 세력 역시 이러한 명분이라면 큰 불만은 없을 터.

제국민들 역시 어느 정도 선까지는 이해해 줄 것이다.

“그럼 바로 진행하게.”

“알겠습니다.”

카리엘은 그 자리에서 재무대신과 내무대신을 통해 추가적인 물자 확보를 명했고, 군부대신을 통해 추가 징집을 명했다.

동시에 황궁 기사단 일부와 정보부의 특수 병력까지 아이론으로 급파했다.

“이참에 바로 끝장을 봐야겠어.”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대신들을 닦달해 아이론으로 향할 물자를 더욱 늘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제는 단기전으로 결판을 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