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23화 (123/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46. 그리햄에서 촉발된 대전쟁! (2)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남부군이나 북부군이 아니었다.

이그니트 연방으로 새로이 합류한 아이론 연맹이었다.

아이론은 해군을 움직여서 제국 서부군과 함께 로테온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 로테온의 해군이 움직였다.

당장이라도 전투를 벌일 것처럼 대치했으나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아이론과 로테온 모두 직접적인 전투는 피하면서 소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자 제국의 남부군이 탈로스의 접경 지역으로 군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부군이 움직일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과 달리 제국의 동부군은 오히려 공국으로 움직였다.

“로만의 개입을 철저히 봉쇄하겠다는 것이군.”

피레스 공작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이론 해군에 살바토르가 없는 건 확실한가?”

“예,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살바토르가 정말로 공국으로 향했다는 말인데…….”

피레스 공작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제국 동부군에 이어 아이론의 마스터인 살바토르까지 공국으로 간다.

그것은 로만으로 인해 이번 전쟁을 방해받을 생각이 없다는 제국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아직 젊기에 경험이 부족한 살바토르를 공국으로 보내면서 제국의 두 마스터들을 남부 원정에 투입시킨다.

이것이 제국이 노리는 바였다.

“……예상대로인가?”

제국은 급할 것이 없었다.

전투를 벌여도 제국이 우위에 있을 것이고, 그렇다고 옥쇄를 각오하고 버틴다 한들 국토 전역에 들끓는 혁명 세력을 제어하지 못해 무너질 것이다.

결국 여유가 있는 것은 제국 쪽이었다.

그렇기에 로테온은 비장의 한 수를 준비했다.

“저들이 우리의 의도를 알아챘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저희도 그들과 접선한 것은 단 한 번뿐입니다.”

정보부 요원의 말에 피레스 공작이 한숨을 쉬었다.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렇게 더는 물러설 수도 없었던 찰나에 찾아온 손님. 지금 로테온이 믿는 건 그들뿐이었다.

물론 이 작전은 철저하게 로테온만 알고 있는 것이었다.

탈로스야 내부에 어떤 첩자가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배제했고, 성국 역시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손님은 성국 입장에서는 절대로 용인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비밀리에 작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황제만 죽는다면 이 싸움은 우리의 승리다.”

피레스 공작이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빛냈다.

로테온이 나름의 준비를 하는 동안 탈로스 역시 뼈를 깎는 심정으로 모든 것을 걸어서 준비를 했다.

“틈을 보이는 순간 치고 들어가야 하오.”

“예.”

탈로스 국왕의 말에 클레타 공작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들의 목표는 제국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면 그들이 준비한 비밀 거점에서 비밀 병기가 튀어나올 것이다.

그것이 제국의 동부를 혼란하게 만들 것이고, 그 순간 탈로스의 밀약이 빛을 발할 것이다.

“부디 이 왕국에 신의 축복을…….”

국왕의 말에 클레타 공작 역시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신에게 기도했다.

* * *

본격적으로 서대륙의 미래를 건 전쟁이 시작되자 제국의 황궁 역시 바빠졌다.

준비해 왔던 그대로 작전을 진행했으나, 전쟁이란 건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는 했다.

“문제는?”

“아직까진 없습니다.”

카리엘의 물음에 군부대신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혼란은?”

“제국 내 소란은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경제 상황은?”

“예상 가능한 범위입니다.”

내무대신과 재무대신이 차례로 답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게 예정대로다.

그렇기에 더 불안했다. 남부 왕국들이 준비한 비수를 확인하기 전까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야만 했다.

“재상.”

“예, 폐하.”

“사전에 말했던 대로 동생들과 함께 떠날 준비를 하게.”

카리엘의 명령에 재상의 표정이 굳어졌다.

“폐하.”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야 해.”

카리엘의 명령에 재상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작전은 진행되었다.

그렇다면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는 게 맞았다.

“……알겠습니다.”

재상이 고개를 숙이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카리엘이 타리온을 바라보았다.

“로만의 움직임은?”

“아직 없습니다.”

“후…… 수상한데. 공국에서 연락이 없었지?”

“예.”

분명 로만이 움직여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잠했다.

윙사르쪽 정보망은 물론이고 동대륙에 심어 놓은 첩자들을 통해 알아본 결과 깨끗했다.

“흑마법사들은?”

카리엘의 물음에 이번에도 타리온이 고개를 저었다.

서대륙의 대전쟁이 가만히 있을 리 없는 세력들이 잠잠하다는 것은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미리 알았으면 좋겠지만, 마지막까지 숨기려는 듯싶었다.

“아쉽군.”

결국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 저들의 의도를 알 수 없다는 것에 카리엘은 한껏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는 현 상황을 다시 한번 체크했다.

데이비어 공작과 중앙군은 탈로스를, 아켈리오 후작과 황궁 기사단은 남부군과 함께 로테온을 막기 위해 움직인 상황이다.

그리햄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정보부를 통해 혁명 세력이 집결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국경으로 병력들을 집결시켰기에 언제라도 탈로스와 로테온의 국경선을 넘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경 근처에 있는 것은, 두 왕국이 뭘 준비했을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국인데…… 태양검이 마스터가 되었을 확률은?”

“7할 이상입니다.”

타리온의 대답에 카리엘이 한숨을 쉬었다.

“월크셔 공작의 승산은?”

“예상하기 힘듭니다만…… 불리할 거라 예측됩니다.”

태양검이나 월크셔 공작이나 마스터에 오른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똑같은 초입의 경지라면 신성력이 있는 태양검이 유리했다.

마도사는 자신만의 가공된 마력이 필요한 데 반해 신성력을 사용하는 자들은 다른 신성력을 받아들이는 데 크게 거부감이 없었다.

태양검 역시 마스터에 올랐기에 오러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신성 마법도 일부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성물을 이용한다면 힘이 빠졌을 경우 신성 마법을 사용하여 변칙적인 공격이 가능했다.

“성물이라…….”

“그래도 시카리오 후작이 있으니 균형은 맞을 것이옵니다.”

현시점 서대륙 최강인 시카리오 후작.

교황보다 우위에 있는 그의 무력이라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걱정되는군.”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전생에 뼈저리게 겪어서 잘 알고 있었다.

항상 부족한 전력으로 아등바등 살림을 꾸려 가야 했기에 카리엘에게 전력 보존이 최우선이었다.

진짜 전쟁도 아니고 고작 서대륙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소중한 전력을 소모할 수는 없었다.

“최대한 시간만 끌라고 해.”

“예.”

다시 한번 북부군에 당부의 말을 전한 카리엘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성국이나 제국이나 서로의 전력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제국에 혜성처럼 나타난 천재.

글렌이라는 강력한 검을 숨기기 위해 카리엘은 월크셔 공작을 팔았다.

카리엘의 도움으로 벽을 뚫은 월크셔 공작이 비밀리에 북부군으로 움직였다는 정보를 살짝 흘리면서 동시에 글렌이 아직 폐관 수련에서 끝나지 않았다고 흘린 것이다.

「제국의 비밀 무기는 아직 완성되지 않음.」

정보부가 성국의 첩자를 색출해서 얻은 보고서의 내용이었다.

글렌이 아직 마스터가 되지 못했고, 제국은 그가 벽을 완전히 뚫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한 보고서였다.

그리고 이 내용은 남부 왕국들에게도 공유되었다.

즉, 남부 왕국들과 성국은 제국이 글렌이 마스터가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이 생각하는 제국의 전략은 크게 세 가지였다.

1. 글렌의 마스터 각성

2. 혁명 세력의 남부 장악

3. 회유책

장기전은 무조건 제국이 유리한 상황.

혁명 세력을 이용해 분열을 일으키고 삼국 내부에 이간책을 쓰는 것.

동시에 글렌이 마스터가 될 시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분열을 가속화시키는 것이 제국의 전략이었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긴 했다.

그러나 큰 함정도 존재했다.

“앞으로 남부 왕국들을 중심으로 감시해.”

“예, 폐하.”

카리엘의 명령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타리온.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카리엘은 성국을 집중적으로 팼다.

그리햄을 통해 남부 왕국들에 혼란을 주는 데 성공하면서 성국을 중심으로 정보부를 이용했다.

첩자를 집어넣고 혁명 세력을 이용하고 막대한 뇌물 공세를 펼쳤다.

본래라면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작전이지만 로만과 흑마법사들에게 고위 사제들이 포섭되면서 빈틈이 생긴 것이다.

덕분에 성국에 관해선 확신할 수 있었다.

‘성국의 비수는 태양검 하나뿐이다.’

이런 확신 덕분에 카리엘은 성국에 관해선 걱정을 덜었다.

북부군이 잘 막아 준다는 가정하에 다른 부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성국은 내부를 걱정해야 할 판국이다.

제국과 전쟁을 시작한다면 내부에 불온한 움직임을 보일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부 왕국들의 숨겨진 한 수를 파악하지 못한 채, 제국군이 국경을 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리햄의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혁명 세력의 본거지나 다름없게 되어 버린 그리햄에서 남부 왕국들 쪽으로 대규모 시위행진이 시작되었다.

“혁명! 혁명!”

수많은 사람들이 혁명을 외치면서 행진했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일까?

본래라면 관심가지는 것조차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이 행렬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리햄으로부터 시작된 2개의 거대한 행렬.

양국의 수도를 향해 움직이는 혁명 세력의 행진에 신분제에 불만을 갖던 사람들이 하나둘 합류하면서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그러자 이걸 막기 위해 소수나마 남아 있었던 왕국들의 국경 수비대가 움직였고, 귀족들의 사병까지 동원되었다.

자신들의 영지에 있는 영지민들이 빠져나가니 막으려는 귀족들도 나타났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전보다 훨씬 많은 제국민들이 희생되자 결국 제국군이 국경을 넘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제국군이 국경을 넘었습니다. 시위대와 함께 수도로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라!”

로테온 군부의 명령은 단 하나였다.

최대한 시간을 끌라는 것.

그에 반해 탈로스는 어떠한 명령도 없었다.

알아서 판단해서 행동하라는 것.

박멸했다고 생각되었던 범죄 집단들이 다시 기승을 부리는 통에 명령 체계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두 왕국 전부 행정 체계가 무너지면서 혼란에 빠지자 이것을 수습한 것이 제국군이었다.

「마적 떼를 격파한 제국군! 탈로스의 구원자?」

「로테온의 국민들에게 보급품을 나눠 주는 제국군.」

두 왕국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면서 국민들의 환심을 사는 제국군.

그 때문일까? 이제까지는 혁명 세력이라 하면 제국이 남부 왕국을 집어삼키기 위해 잠입시킨 존재들로만 생각했던 왕국의 국민들이 생각을 바꿔 먹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제국에 흡수되는 게 낫겠어.”

“이게 나라냐?”

“혁명을 하자! 우리도 합류하자고!”

마지막까지 왕국에 대한 충성을 지키던 자들까지 너도나도 혁명의 물결에 합류하기 시작하면서 탈로스와 로테온의 지방은 제국에 집어삼켜지다시피 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자연스레 제국의 영토가 되어 버릴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왕국은 잠잠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하는 듯, 각국의 수도를 중심으로 뭉쳐서 제국군을 기다릴 뿐.

남부의 상황이 제국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동안 성국과 제국군은 격렬한 전투를 이어 나갔다.

“반드시 버티시오.”

시카리오 후작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월크셔 공작.

힘든 싸움이 될 것임을 알기에 월크셔 공작은 이를 악물면서 태양검을 상대하기 위해 마력을 끌어 올렸다.

몇 번의 전투를 겪으면서 태양검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마법 병단과 함께 태양검의 성기사단의 발을 묶는 데에만 전념했다.

그 때문일까?

성국이 자랑하는 팔라딘들이 발이 묶인 채 전투 상황은 큰 피해 없이 지지부진하게 흘러갔다.

이대로라면 제국이 원하는 대로 장기전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은 상황.

바로 그때, 기다리던 로테온의 한 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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