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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26화 (126/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48. 서대륙 통일! 다음은 동대륙?

제국의 수도 습격이 막힌 시점부터 전쟁은 제국의 승리였다.

그래도 최소한의 명예는 지켜 주겠다고 남부 왕국들한테 ‘항복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하지만 이조차 굴욕이었다.

그렇다고 항복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항전하고자 해도 명분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피레스 공작이 제국에서 온 전언을 국왕에 들려주었다.

“국민들은 등을 돌렸고, 귀족들은 분열하기 시작했네.”

로테온 국왕의 말에 피레스 공작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의 주군이 결정을 내릴 시간을 기다려 주는 것만이 현재의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미지의 세력에게 도움을 청해 볼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들과는 그런 것까지 기대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그들은 로테온을 이용했고, 로테온 역시 그들을 이용한 것뿐.

그렇기에 이제 로테온에게 남은 것은 없었다.

“……나에게 선택지란 게 남아 있기는 한가?”

자신의 앞에 있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세 명의 신하들한테 물었다.

무역왕이 불리는 윌싱엄 후작, 정부를 총괄하는 델론드 후작, 로테온의 검 피레스 공작.

이 세 명은 국왕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한참 뒤 피레스 공작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마지막까지 싸우고자 하신다면 신은 곁을 지킬 것이옵니다.”

피레스 공작의 말에 윌싱엄 후작과 델론드 후작 역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들과 이들을 따르는 이들을 제외한 다른 귀족들은 왕궁에서 벗어나 각자의 저택으로 돌아간 지 오래되었다.

여차하면 몸을 뺄 생각을 하는 것이다.

국민들을 버리고 귀족들을 규합했다.

그런데 그 귀족들이 분열한다? 그렇다는 건 사실상 끝이라는 뜻이었다.

사실상 국가는 끝이다. 남은 건 왕가의 명예를 지키느냐, 아니면 곱게 제국에 항복해서 소중한 목숨들을 지키느냐였다.

“버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로테온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자 세 명의 귀족들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제국의 제안을 받아들이게나.”

자신의 대에서 왕국의 역사가 끝나 버리게 되었다. 자존심 강한 로테온 국왕에게 이것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결정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피레스 공작은 입술을 깨물었다.

처음엔 제국의 제안을 듣자마자 병력을 집결해 최후의 항전이라도 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피레스 공작이 마음을 바꾼 것은 한 부관의 보고 때문이었다.

“각하, 병력이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감히! 전시 상황에 이탈을 한단 말인가! 저들을 모조리 잡아들여라!”

“…….”

피레스 공작의 말에 부관이 말없이 무릎을 꿇었다.

“항명을 하는 것이냐?”

“저들은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뭐?”

피레스 공작의 물음에 부관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수도로 몰려오는 시위대 중에 병사들의 가족들이 있사옵니다.”

부관의 말에 피레스 공작의 입이 다물렸다.

“이대로라면 저들은 가족들을 베어야 하옵니다.”

목숨을 걸고 보고를 한 부관을 보면서 피레스 공작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차마 가족을 베라고 말할 수 없었던 공작은 말없이 부관을 물리고, 곧장 국왕을 찾았다.

그리고 결국 국왕으로 하여금 왕국의 역사를 끝내라고 종용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탈로스는 다른 결정을 내렸다.

로만에 지원 요청을 한 것이다.

며칠만 버티면 로만의 마스터가 탄 배가 탈로스의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이 수도까지 오면 버틸 수는 있을 터.

이런 계산과 함께 수도에서 버티겠다는 일념하에 모든 병력을 수도에 구겨 넣었다.

그러나 이 판단에 대한 결과는 참혹했다.

* * *

“탈로스를 봉쇄하라고 전해.”

“예!”

카리엘이 군부대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순간 남부군과 동부군이 움직였다.

항복을 결정한 로테온을 마지막까지 믿을 수 없었기에 아이론과 서부군을 통해 그들을 묶어 두고 가용 가능한 모든 전력을 탈로스에게 투입했다.

삼군이 탈로스에 집결했지만 카리엘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제국이 현재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은 병사들만 말하는 게 아니었다.

“폐하! 다시 한번 생각하심이…….”

“짐을 지키면 될 것 아닌가?”

카리엘의 말에 황궁 기사들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카리엘은 로테온을 포위했던 병력을 서부군에 맡기고는 그곳에 있던 병력까지 박박 긁어서 탈로스로 향했다.

바닷길을 통해 몰래 지원을 보내려는 로만의 의도를 분쇄하기 위해 직접 탈로스로 행차한 것이다.

결국 황제를 보호하기 위해서 황궁 기사단 대다수와 글렌을 비롯한 친위대까지 함께했다.

제국의 주요 전력이 모였기 때문일까?

기승을 부리던 탈로스의 범죄 조직들도 자취를 감추었고, 소수의 기사들을 데리고 국민들을 탄압하던 귀족들의 군대들도 전부 사라졌다.

남은 건 탈로스의 중심부에 모여 있는 군대뿐.

“폐하를 뵙습니다.”

“폐하를 뵙습니다.”

데이비어 공작과 아켈리오 공작을 비롯한 주요 지휘관들이 고개를 숙였다.

“로만에서 비밀리에 지원군을 보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늦어도 사흘 안에는 당도한다는군.”

카리엘의 말에 모든 지휘관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곳을 함락하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지?”

카리엘의 물음에 남부 사령관이 조용해 대답했다.

“대부분 오합지졸이니 하루 안에 끝낼 수 있습니다.”

남부 사령관의 대답에 카리엘이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힘의 차이를 보여 주게. 압도적인 차이로 항복을 유도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군.”

“예! 폐하.”

카리엘의 명령에 모든 지휘관들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고는 물러났다.

마음 같아서는 쓸어버리고 싶지만,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병력을 보존해야만 후에 있을 전쟁이 편해졌다.

특히 마스터나 고위 기사들의 존재들 같은 경우는 더더욱 그러했다.

웬만하면 탈로스의 주요 병력은 보전하면서 전쟁을 마무리 짓고 싶었던 카리엘은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탈로스를 굴복시키고자 했다.

시작은 마스터들이었다.

“먼저 가겠네.”

그렇게 말한 데이비어 공작이 검을 뽑아 들고 허공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그 순간 거대한 오러가 섬광이 되어서 성의 요새를 두드렸다.

하지만 탈로스의 모든 역량이 집중된 요새가 고작 마스터 한 명에 뚫릴 리가 없었다. 그것을 예상했는지 이번엔 아켈리오의 거대한 검이 결계를 때렸다.

두 마스터의 전력을 다한 공격에 결계에 균열이 간 순간, 상공에서 비공선 무리가 나타났다.

“막아라! 저것들이 당도하게 두어선 아니 된다!”

알칸 후작이 곧바로 대응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대응에 나서는 건 탈로스의 정예 부대뿐이었다.

대부분의 귀족들의 군대는 당황하고 있을 뿐.

바로 그때, 두 마스터의 공격을 가르면서 한 줄기의 섬광이 지나갔다.

콰창!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결계가 깨지는 순간, 앞으로 나서며 검을 휘두르는 클레타 공작.

전력으로 만든 오러 블레이드로 섬광을 베어 내는 순간,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주변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완전했는지 클레타 공작이 전력으로 베어 내자 일그러졌던 공간이 원래도 돌아오면서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쿨럭!”

“각하?”

마른기침을 하면서 비틀거리는 클레타 공작.

남부 제1검으로 불리면서 피레스 공작보다도 한 수 위라 평가받는 그가 이제 막 마스터에 오른 애송이의 공격에 비틀거린다는 사실에 알탄 후작의 눈이 떨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결계를 부수고 들어온 참격이었다.

“……괴물이군.”

클레타 공작이 떨리는 음성으로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살짝 떨려 오는 것이 범상치 않은 실력임을 확인했다.

“각하! 또 옵니다!”

또다시 괴상한 참격이 날아오자 클레타 공작이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며 대응했다.

하지만 제국에는 마스터가 두 명이나 더 있었다.

섬광과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를 막기 위해 기사단과 마법사단이 움직였다.

자연히 결계가 복구되지 못했고, 그사이 요새 위로 진입한 비공선에서 공중에서 폭격이 시작되었다.

요새 내부에 있는 마도 무기들을 향해 폭탄을 떨어뜨림과 동시에 그림자들을 비롯한 특수부대들이 요새 안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탈로스의 수도가 혼란에 빠졌다.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듯, 이번엔 제국의 기사단이 움직였다.

단단하기로 유명한 동부 기사단.

정예로 불리는 중앙 기사단.

맹수와 같은 남부 기사단.

3개의 기사단이 일제히 요새를 향해 달려왔다.

서로의 마력을 결속해 창처럼 성문을 향해 돌진하거나 사방에서 요새에 오르기 위해 달려드는 기사들.

그러는 사이 제국군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총력전을 기울이는 모습. 상대가 어떠한 전략을 갖고 있든지 상관없이 밀어 버릴 수 있다는 압도적인 자신감에서 나오는 전략이었다.

각군이 자랑하는 특수부대와 기사들이 날뛰기 시작하자 급하게 긁어모은 탈로스 군대가 우왕좌왕하면서 혼란에 빠졌다.

그러자 그 여파로 인해 정예군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길…….”

알탄 후작이 입술을 깨물며 사력을 다해 저항해 보았지만 무의미했다.

전력의 차이가 너무 컸다.

요새를 끼고 싸운다 한들 몇 시간 더 버티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알탄 후작이 무력감에 치를 떨며 직접 검을 뽑아 들 때였다.

“모두 항복하라! 그리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황제가 직접 황궁 기사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적들의 성문에서 보이는 곳에 섰다.

“약속한다. 탈로스 왕의 잘못된 명령으로 인해 전쟁에 투입된 이들은 짐의 명령으로 모두 사면될 것이다. 그러니 항복하라.”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힘을 발현했다.

마룡 떼를 쓸어버렸던 카리엘의 거대한 소환수들이 만들어지자 모두들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항복하는 순간 제국민으로 받아들을 것이다. 하나! 마지막까지 저항한다면…… 탈로스의 국민으로 남고자 한다는 뜻으로 여기겠다.”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살기를 드러냈다.

“짐은 탈로스라는 흔적을 이 대륙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고 마음먹은 바. 끝까지 저항하는 이들의 가족부터 친척까지 삼족을 멸해 이 대륙에 탈로스 흔적을 완전히 지워 주겠다.”

살벌하기까지 한 카리엘의 말에 탈로스의 병사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알탄 후작이 고함을 쳤다.

“물러서지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러운 탈로스의 병사들이다!”

알탄 후작이 다급히 고함을 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탈로스의 병사들이 하나둘 무기를 내려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명분도 없었다.

혁명 세력을 탄압하고, 평민들은 신분제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들만 살겠다고 귀족들을 긁어모아 수도에 짱 박혀 있는 이들을 향해 누가 충성심을 보이겠나?

귀족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병사들은 그렇지 못했다.

“저항하겠나?”

아켈리오 공작의 물음에 클레타 공작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느새 클레타 공작을 포위한 3인의 마스터.

목숨 걸고 저항해 본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의미는 없겠지만 전하의 대피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생각한 클레타 공작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려 할 때였다.

“전하!”

알탄 후작의 외침에 뒤를 돌아보는 클레타 공작.

자신들의 주군이 홀로 왕궁을 빠져나와 요새의 성문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모두가 탈로스 국왕의 모습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이내 반쯤 부서진 성문을 열고 홀로 황제 앞에 섰다. 그런 클레타 국왕에게 카리엘이 조용히 물었다.

“항복하겠나?”

카리엘의 물음에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탈로스 국왕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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