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31화 (131/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49. 공공의 적을 만들기 (3)

서대륙보다 더 넓은 영토를 지닌 동대륙.

하지만 4분의 1은 사막지대였고, 5분의 1은 북쪽의 기마민족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실상 그곳을 제외한 지역만으로 따진다면 서대륙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로만을 비롯한 남부의 부유한 국가들은 수백 년 동안 이루지 못한 통일이란 과업.

그런데 그것을 이그니트가 다시 이뤄 냈으니 충분히 존중받을 만했다.

“반갑소.”

모두의 예를 받으면서 미소를 지은 카리엘이 한 명씩 악수를 하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곳에는 고풍스러운 장식품들로 내부가 장식되어 있었다.

웬만한 국가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진귀한 물건들이 건물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고, 온갖 편의 시설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아이사 군도의 해적들이 이번 일에 얼마나 진심인가를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해적왕이 직접 마중 나와 내부를 안내하고는 직접 회의실로 안내했다.

“편히 말씀들 나누십시오.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아니오.”

물러가려는 해적왕에게 카리엘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자리를 만든 그대 역시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소.”

카리엘의 말에 해적왕이 다른 국왕들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불쾌해하지는 않을까 싶은 것이다.

제국이 중립국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다른 국가의 왕들은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들은 별다른 내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대륙을 통일한 제국이 인정했는데 자신들에게 거부할 명분 따윈 없었다.

“이곳에 마련된 시설들은 일부터 끝내고 즐길까 하는데 어떠시오?”

“그리하십시오.”

윙사르의 왕이 대답하자 다른 이들도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실례되오나 앞으로 제국의 계획이 어찌 될지 여쭤봐도 되겠는지요.”

윙사르 국왕의 말에 다른 이들까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다들 상황이 좋지 않기에 모이기는 했으나, 불안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그니트가 강대하다고는 하지만 거리상으로는 로만이 훨씬 가까우니 제대로 된 계획이 없다면 자신들만 버린 말로 쓰이고 끝날 수도 있다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불안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 카리엘이 단호하게 답했다.

“일단 로만의 문제는 대륙을 넘어 인류의 문제요.”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타리온을 시켜 지도를 가져오게끔 했다.

그곳엔 이그니트와 동대륙의 남부 국가들을 위주로 파란색으로 칠해진 연맹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인류연맹」

지도에 새겨진 ‘인류연맹’이라는 단어에 윙사르 국왕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인류연맹이라…….”

“참고로 로만과 동맹국들은 반인류연맹으로 명할까 하오.”

카리엘의 말에 한 국가의 수장이 조용히 물었다.

“북쪽과 산드리아는 제외한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다들 지도를 다시 보더니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심각한 표정을 지은 카리엘이 입을 열었다.

“일단 북쪽 유목 부족들은 중립지대로 생각할 것이오. 설득이 될 것 같지도 않을뿐더러 북쪽까진 여력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이리 정했소.”

북쪽의 유목민족들은 자존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이들이다.

어떤 이들과도 쉽게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민족들.

산드리아처럼 수많은 부족들로 이루어진 이 민족들을 설득하기보단 로만의 동맹국들을 공략하는 편이 훨씬 편했다.

“이들은 추후 마족과의 전쟁 때 설득하면 되오.”

“혹시 이들을 설득할 계획도 있으십니까?”

“그렇소. 가장 먼저 골란을 공략할 것이오.”

윙사르 국왕의 말에 카리엘은 유목민족을 공략할 계획도 풀어놓았다.

가장 큰 세력인 골란을 중심으로 유목민족들을 한데 모을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골란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

“혹…… 골란을…….”

그때 카리엘의 계획을 눈치챈 한 국왕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자 다른 국왕들 역시 놀란 표정으로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맞소. 골란을 중심으로 유목민족을 연합시킬 것이오.”

카리엘이 그렇게 말하면서 지도를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유목민족들.

이들이 활동하는 영역은 산드리아처럼 광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이라 불리지 못하는 건 산드리아처럼 겉으로나마 묶여 있는 것이 아닌 완전히 찢겨 있기 때문이다.

수백 년에 걸쳐 로만이 통합하지 못하도록 이간질을 해 왔다.

그렇다면 카리엘은 반대로 그들이 통합할 수 있도록 지원할 생각이다.

로만이 인류연맹에 정신 팔려 신경 쓰지 못하는 사이 골란을 지원하며 통일할 수 있게끔 유도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동대륙에서 가장 큰 세력 중 하나가 인류연맹의 편이 되는 것이다.

계획이 여기까지 진행될 경우 동대륙의 상황을 종이에 적어 나가는 카리엘.

로만 ↔ 남부연맹

로만 ↔ 유목연합

유목연합 〓 남부연맹

산드리아(중립)

유목연합과 남부연맹이 인류연맹이라는 대의 아래 묶이고 산드리아를 중립으로만 둘 수 있다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유목연합

이그니트→ 로만

남부연맹

세 곳에서 압박당하는 상황.

이 상황에서 로만이 살 길은 동부의 국가들을 모조리 끌어모아 대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책 역시 있었다.

“인류의 적이라는 타이틀로 로만의 동맹국을 흔들 것이오.”

카리엘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동대륙 국가들의 수장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산드리아를 흔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지옥과 연관이 있다면 지옥문을 열려는 이들의 계획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

가능성 낮은 곳에 심력을 소모하기보단 로만의 동맹국을 건드는 게 훨씬 편할 터.

“산드리아는 공략하지 않는 것입니까?”

윙사르 국왕의 말에 카리엘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동대륙의 수장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때가 될 때까지 비밀로 해 줄 수 있겠소?”

카리엘의 말에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제야 입을 여는 카리엘.

현재 일어나는 전반적인 상황을 말해 주고는 산드리아 역시 지옥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산드리아와 국경선을 접하고 있는 국가의 수장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럴듯합니다. 그들의 부족 중에 지하 세계를 모시는 부족들이 다수가 있소.”

“음…… 하지만 모든 부족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들 중에는 태양신을 모시는 부족도 있고 풍요의 신을 모시는 이들도 있습니다.”

몇몇 국가의 수장들이 대대로 왕가에 전승되는 비밀들을 풀어내면서 설명했다.

산드리아 내부에 지하의 신을 모시는 부족들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태양신 같은 서대륙 국가와 같은 신을 모시는 이들도 많았다.

“그럼 이 부족들을 설득해 주실 수 있겠소?”

카리엘의 부탁에 산드리아와 국경을 접한 국왕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산드리아만 분열시켜 시간을 끌 수만 있다면 최고의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굳이 산드리아를 인류연맹에 끌어들일 필요도 없었다.

로만과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될 때까지만 시간을 끌 수만 있다면 충분했다.

“이것으로 주요 계획은 정해졌소.”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미소를 지으며 회담에 모인 이들에게 물었다.

“인류연맹 창설에 동의하시겠소?”

카리엘의 물음에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좋소. 이것으로 적어도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이그니트와 동맹국이 되었소.”

새로운 동맹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에 모든 이들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긴 회담으로 피곤하실 터이니 이곳에서 푹 쉬십시오. 부족하지만 최대한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해적왕의 말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곧 미녀들이 각국의 수장들을 한 명씩 안내했다.

마지막으로 카리엘에게도 미녀가 다가왔으니 손을 들어 제지하고는 해적왕을 바라보았다.

“따로 얘기를 더 해도 되겠소?”

“예.”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할 것 같자 눈짓으로 미녀들을 내보낸 해적왕이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잘해 주었으나 한 가지 더 부탁할 것이 있소.”

“말씀하십시오.”

해적왕의 말에 카리엘이 지도를 바라보았다.

테이블에 펼쳐진 지도는 서대륙과 동대륙만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세계에는 더 많은 대륙이 있었다.

서대륙보다 훨씬 작은 규모지만 여러 개의 거대한 섬으로 이루어진 남쪽의 섬들도 있었고, 서쪽으로는 신대륙이 존재했다.

“신대륙과 남쪽 섬에도 도움을 청할까 하오.”

“으음…….”

카리엘의 말에 해적왕이 침음성을 삼켰다.

동대륙은 당장에 마족들이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니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겠지만, 신대륙과 남쪽 섬들은 아니었다.

엄청난 크기의 바다가 자연의 방벽을 만들어 줄 텐데 굳이 지원군까지 보내는 피해를 감수할까?

“고대 문헌에 보면 마족들이 남쪽 섬들을 공격한 적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소.”

“……그렇습니까?”

“신대륙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남쪽 섬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가능성이 있소.”

카리엘의 말에 해적왕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한번 해 보겠습니다.”

“남쪽 섬들만 좀 부탁하오. 신대륙은 우리가 직접 하겠소.”

카리엘의 말에 부담감을 잔뜩 안은 해적왕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카리엘은 그런 그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풀리길 바라며 말했다.

“이것을 보시겠소?”

“이건…….”

카리엘이 펼친 새로운 지도.

그곳에는 주요 무역로가 그려져 있었다.

통일된 제국의 물류망을 그린 기밀이 담긴 지도였다.

그런데 그 지도에서 바닷길의 주요 무역로가 전부 아이사 군도가 점령한 섬들을 경유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동대륙의 무역로는 아이사 군도로.

남쪽 거대 섬들을 향하는 무역로는 해적이 점령한 섬들을 연결한 무역로로.

심지어 신대륙으로 향하는 무역로 일부도 해적왕이 점령한 섬을 일부 경유하게끔 조정되어 있었다.

“향후 아이사의 섬들을 연결해 새로운 무역망을 만들 것이오.”

“그리만 된다면…….”

“제대로 된 수입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오.”

세일럼에서 했던 약속.

그것을 지키고자 무역로까지 수정해 준 카리엘에게 해적왕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또한 섬에 농사를 비롯한 공업지대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겠소.”

“그것까지…….”

“그래야 상인들이 제대로 무역로를 이용하지 않겠소?”

항구부터 간단한 가공품까지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 아이사 군도의 섬들을 경유하는 무역로가 제대로 정착시킬 생각이다.

“물론 이건 공짜는 아니오.”

“대가는 지불하겠습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해적왕을 향해 카리엘이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만난 김에 좀 더 세밀하게 계획을 세워 보시겠소?”

“예, 그리하겠습니다.”

카리엘의 제안에 흥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해적왕은 자신들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카리엘과 계획을 나누었다.

일부 섬은 이그니트에 양보하거나 자신들이 점령한 섬의 일부는 몇십 년간 장기 대여하면서 항구를 만들게끔 하는 세부 계획까지 세웠다.

* * *

그렇게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눈 카리엘은 짧은 휴식과 함께 곧장 제국으로 복귀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제국의 다음 계획이 시작되었다.

「로만을 인류의 적으로 규정한다!」

이그니트 황제의 공식적인 발표.

이건 곧 서대륙 전체의 뜻과 다름이 없었다.

동시에 동대륙의 남부 국가들 다수가 일제히 로만을 인류의 적으로 규정했다.

그러자 갈팡질팡하는 동대륙 국가들이 혼란에 빠졌다.

오랫동안 동대륙의 최강으로 군림해 온 로만을 완전히 적으로 돌려야 할지 아니면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면서 혼란에 빠진 것이다.

그렇데 동대륙에 대규모 혼란에 도래하자 이그니트는 곧바로 다음 발표를 이어 나갔다.

「인류연맹 계획 중. 인류의 적을 몰아낼 동맹국들을 모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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