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50. 인류연맹 창설!
로만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면서 동시에 인류연맹을 창설하고자 한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동대륙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계속해서 망설이던 국가들 중 일부가 이그니트로 사신을 보내왔다.
밀약을 맺은 남부 국가들의 설득으로 마침내 로만을 적으로 돌리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대륙의 남부 지대에 위치한 국가들 대부분이 이그니트에 사신을 보내 버리자 중부에 위치한 국가들은 혼란에 빠졌다.
“완성됐군.”
동대륙의 지도에 파란색 깃발을 꽂으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카리엘.
마침내 동대륙의 남부 지대가 이그니트와 동맹을 맺으면서 초기에 구상한 인류연맹이 완성되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로만의 동맹국들조차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상보다 로만이 느리군.”
“로만을 직접 흔든 게 주효했습니다.”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지도를 보며 답했다.
로만 내부에 첩자를 보내 직접 흔든 것.
그것 때문에 동맹국 확보에 전력을 다하지 못하면서 이그니트가 동대륙 남부의 국가들을 포섭하는 동안 중부 지역의 동맹국들조차 온전히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도 인류연맹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힘들 겁니다. 첩보에 따르면 이미 이들 국가 중 상당수는 마족들의 여부를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그렇다는 건…….”
“마족들과 밀약을 맺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족들을 알고 있음에도 로만을 묵인한다는 것은 마족들과 직접 계약을 맺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무엇을 약속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인류연맹에 들어올 가능성은 적다는 점이다.
“그래도 중부 지역 국가들 중 일부는 희망이 있습니다.”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을 추려 와 봐. 이젠 이들에게 집중할 때야.”
“예.”
카리엘의 명령에 곧장 밖으로 나간 타리온.
그러자 이번엔 시종장을 불렀다.
“로만을 직접적으로 흔드는 게 가능할까?”
“알 수 없습니다.”
고개를 저으며 말하는 시종장을 보면서 카리엘이 말했다.
“후…… 확실한 증거가 있으면 좋을텐데…….”
“안 그래도 그것에 관해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해 보게.”
카리엘의 허락이 떨어지자 시종장이 품속에서 뿔 하나를 꺼냈다.
“그건!”
“마족의 뿔입니다.”
시종장의 말에 공간을 휘저으며 나타난 수르트가 코를 벌름거렸다.
-진짜 마족은 아니군.
“아니야?”
수르트의 말에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카리엘.
“잠깐…… 그렇다는 건…….”
“반마족이군요.”
시종장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반마족?”
“예, 단순히 마족과 계약한 이들이 아닌 마족의 심장을 이식받은 자들. 스스로 마족이라 칭하지만 정식 마족이 아닌 혼혈입니다.”
-반마족이라 불렀나?
수르트가 ‘그냥 잡종 아닌가?’라고 중얼거렸지만 카리엘은 그 말을 무시하며 시종장을 바라보았다.
“이걸 반마족이라 불렀군.”
“아십니까?”
시종장의 물음에 카리엘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전생에 경험해 보았던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난 그냥 마인이라 불렀는데…….”
“그렇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시종장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카리엘이 좀 더 설명해 보라는 듯 턱짓을 했다.
“반마족도 마족과 비슷합니다. 단지 마족들보다 더 인간에 가까울 뿐이지요.”
시종장의 손에 들린 검은 뿔. 그곳엔 속성에 따라 각기 다른 보석이 붙어 있었다.
속성력이 가미된 마나가 결정화된 보석.
마족과 똑같은 형태의 뿔을 가졌으나 생김새는 여전히 인간에 가까웠기에 마족들에게조차 배척받는 존재들.
당장에 강한 힘을 갖게 되는 건 좋으나 결국 마족들의 노예나 다름없는 이들이 전생의 마인들이었다.
그런 주제에 인간보다는 우위에 있고 싶어서 끝까지 저항했던 인간들을 가장 많이 괴롭혔던 것도 마인들이었다.
“반마족들이 되려면 마족의 심장 혹은 다량의 마기가 필요합니다. 신기한 건 다수의 인간들을 반마족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기록이 많이 사라져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지는 알 수 없사옵니다.”
시종장의 말에 카리엘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마족들 놈들은 시체를 매장하지 않는다.”
“예?”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놈들은 죽은 마족들의 시체에서 심장과 마기의 결정체들을 따로 빼내어 특정 장소에 보관한다. 무덤이나 다름없지.”
“아…….”
“무엇보다 그 미친놈들은 동족의 시체를 이용해 무기까지 만든다. 동족 의식이란 게 없는 놈들이야.”
카리엘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로지 힘이 전부인 미친놈들.
동족의 몸 중에 쓸 만한 부분이 있다면 사용하기에 주저함이 없는 미치광이들이었다.
“아마 마족들의 심장이라면 썩어나도록 많을 거다. 즉, 인간들을 반마족으로 만들어 버리기엔 충분하고 남을 양이 있다는 거지.”
“폐하께선 이걸 어찌…….”
시종장이 감탄한 표정으로 묻자 카리엘은 말없이 이마를 톡톡 쳤다.
그러자 납득했다는 듯 타리온과 시종장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의 경험으로 아는 것이지만, 시종장에겐 과거 영웅의 기억 일부를 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었다.
어찌 되었든 과거의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이기에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인간은 마족의 심장만 잘 이식하면 언데드로 만들 수도 있지.”
“이 때문에 성국을…….”
타리온이 그제야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을 가장 괴롭혀 왔던 성국.
카리엘이 어째서 그들의 전력을 최대한 온전히 보존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마기에 가장 상극이 되는 힘은 신성력이기 때문에 최대한 이들의 힘을 보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쟁은 우리의 힘만으로도 가능할 거야. 하지만 뒤처리만큼은 신성력만한 것이 없지.”
전생의 경험을 통해 전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겪었었다.
그렇기에 카리엘은 인류연맹에서도 각기 다른 신을 믿는 신전들을 전부 우대해 줄 생각이었다.
제국은 주신앙은 불의 신전이지만 굳이 그걸 다른 국가들한테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인류연맹에 신앙은 최대한 배제된다.
모든 신앙을 존중하면서 그들의 신성력을 최대한 이용할 것이다.
그렇기에 불의 신전이 섭섭해할 것을 알면서도 성국이 제국 내에서 활동하는 것을 허락했다.
남부의 신앙들 역시 허락했다.
“후…… 어쨌든 상황이 이렇다면 더 길게 끌 것 없지. 이 증거를 공개하면서 인류연맹을 공식적으로 발표한다.”
“예!”
카리엘의 명령에 타리온과 시종장이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 * *
그날, 타리온은 곧바로 공개 석상에 기자들을 불러 놓고 발표를 했다. 기다릴 것 없다는 듯, 마족의 뿔을 증거로 내놓으면서 이것을 얻은 것이 로만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한 기자가 손을 들면서 말했다.
“그렇다는 건 이그니트가 로만의 땅에 첩자를 보낸 것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까?”
“그렇소.”
기자의 질문에 타리온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우리는 로만이 마족과 손잡았다고 생각하고 있소. 그런 상황에서 로만 내부에 있는 마족들을 찾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오?”
“그건…….”
“로만은 우리가 보낸 모든 서한을 무시했소. 그런 로만을 우리가 존중해 주어야 할 이유가 있소?”
로만측 기자로 보이는 자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에게서 눈길을 돌린 타리온이 다른 기자들을 보면서 말했다.
“참고로 역사학자들과 과거의 사례를 조사한 결과 이건 ‘반마족’이라 불렸던 존재인 것으로 판명되었소.”
“반마족?”
“그게 뭐지?”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타리온이 이들의 존재를 빠르게 설명했다.
“폐하께선 이들을 ‘마인’이라 부르기로 하셨소. 악마에 영혼까지 팔아먹은 악마 숭배자들과 이들은 다를 바가 없소. 그런 이들을 용납한 로만은 인류의 적이오.”
그렇게 외친 타리온이 한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폐하께선 인류연맹을 공식적으로 만들고자 하셨소. 이미 동대륙의 남부 국가들은 전원 참여하기로 약속한 상태요. 인류연맹의 발족식은 중립국 아이사에서 하기로 했소. 정확히 한 달 후 동맹국들과 함께 인류연맹이 만들어질 것이오.”
그렇게 말한 타리온은 동대륙에서 온 기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늦지 않았소. 인류를 지키기 위한 연맹에 가입하고자 한다면 언제든 이그니트를 방문하시오. 우린 그대들을 환영하오.”
타리온의 발표에 동대륙 측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본 타리온은 미소를 지으면서 단상에서 내려갔다.
“제법이네?”
멀리서 몰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리엘이 피식 웃었다.
정보부 수장을 맡으면서 공식석상에 모습을 꽤 드러냈더니 이제는 버벅거리지 않고 말을 잘했다.
처음 정보부를 맡을 때만 하더라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폐하.”
“잘하던데?”
카리엘의 칭찬에 헛기침을 하면서 얼굴을 붉히는 타리온.
그런 그의 모습에 토토를 비롯한 친위대는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얼굴을 구겼다.
아저씨가 부끄럽다는 듯 몸을 베베 꼬는 모습이 영 보기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류연맹 발족식까지 최대한 중부를 흔들어 봐.”
“예.”
카리엘의 명령에 타리온이 고개를 숙였다.
동대륙의 남부 국가들과 동맹을 맺으면서 동대륙에서 활동하기 한결 편해진 덕분일까?
다수의 그림자들이 동대륙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그 덕에 동대륙의 중부에 위치한 국가들과 접선하는 횟수도 예전보다 훌쩍 늘어난 상태였다.
“욕심 내지 마. 많은 국가도 필요 없어. 한 국가만 제대로 끌어들여도 저들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야.”
“예.”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고개를 숙이면서 사라졌다.
로만의 동맹은 결속력이 약했다.
마족들과 계약을 맺었을 거라 추정되는 국가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몰라도, 그렇지 않은 국가는 매우 크게 흔들렸다.
그림자들은 바로 그들을 공략할 생각이었다.
물론 마족들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그니트가 어떻게 나올지 뻔히 아는 상황에서 가만히 당해 주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그렇기에 마족이 직접 움직여 동대륙 중부의 남은 국가들과 접선했다.
“그대들과 손잡으라?”
“그렇소. 마왕님을 모실 경우 영생에 가까운 생명을 얻을 것이오.”
“영생이라……. 어떻게?”
왕관을 쓴 남자의 물음에 고위 마족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위 마족의 심장이오. 이것을 흡수하면 그대는 고위 마족이 될 수 있소.”
인간이라면 누구나 혹할 만한 제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국의 국왕은 고민했다.
“일단 고민해 보겠소.”
“으음…….”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당황하는 고위 마족.
하지만 일단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 자신들의 숫자는 부족했기에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중이라면 반강제로 협박하겠지만 지금은 미소를 지으며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그렇게 마족이 물러나자 국왕이 붉은 커튼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참 뒤에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는 한 남자.
“결정은 하셨습니까?”
“그대의 말이 정말인가?”
“예.”
제국의 그림자가 한 말처럼 정말로 마족은 심장을 흡수하게 만들려 했다.
그렇다면 저걸 흡수할 시 마족의 노예가 되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폐하께 전하게, 발족식이 시작되기 전까진 결정을 내리겠다고.”
“예.”
국왕의 말에 짧게 대답한 그림자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 소국의 왕이 한숨을 쉬었다. 오늘따라 머리에 얹은 왕관이 굉장히 무겁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