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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35화 (135/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51. 드러나는 로만의 전력

동대륙의 남부 왕국들이 중부 지역을 공략하면서 소국들을 하나하나 해방하기 시작할 무렵, 윙사르를 중심으로 로만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들이 북상을 시작했다.

기사왕이라 불리는 브라이튼 국왕을 중심으로 구성된 남쪽의 병력과, 동쪽 지역에서 중립국으로 유명한 덴버의 명장이자 마스터인 노장 더글라스가 소국들을 함락시키면서 로만을 압박했다.

동대륙에서도 유명한 두 명의 마스터를 중심으로 로만을 공격하는 순간 제국 역시 철벽을 넘어 공격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그니트와 로만의 전쟁!」

「공격받던 입장에서 공격하는 입장으로 변한 이그니트.」

이그니트의 공격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실시간으로 알리면서 서대륙 전역의 시선이 동쪽에 집중됐다.

두 제국이 본격적으로 전쟁을 벌이기 시작하자 모든 이들이 관심을 기울였다.

서대륙을 통일한 시점에서 이그니트의 우세가 점쳐졌고, 인류 연맹까지 있으니 로만이 패배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

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얼마나 빨리 로만을 무너뜨리느냐는 것뿐.

이런 세간의 평가와 다르게 이그니트의 군부는 걱정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언제 마족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국경선이 위험하면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국경선을 일부러 비우고 우리를 안쪽으로 끌어들인 다음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남쪽과 동쪽의 군대가 어떻게 될지 확인하고 움직이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저들이 다른 지역의 방어를 포기하고 제국에만 집중할 수도 있습니다!”

제국의 군부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치열하게 토론을 벌이고 있을 무렵, 로만의 군부는 바빠지고 있었다.

“제길! 다른 쪽 국경선은 전부 포기해. 최대한 안쪽으로 끌어들여서 주요 거점 요새에서 방어한다.”

“예!”

로만 최고의 사령관이라 불리는 에쉬타르가 다급히 여러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그니트 제국군을 막기 위해선 다른 곳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자칫 잘못 싸웠다간 한 방에 수도까지 뚫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른 동대륙 연합군에 대한 방어를 포기하고 수도를 중심으로 두 개의 거점 요새에서 막을 생각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폐하께선 뭐라 하시던가.”

“별말씀 없으셨습니다.”

“후…… 정말인가?”

“예.”

황제 직속의 장교의 대답에 에쉬타르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이미 로만이 마족과 손잡은 것을 대륙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더 숨길 게 무에 있단 말인가?

사실 에쉬타르도 마족에 관해선 자세히 알지 못했다.

로만에서 마족과 관련된 정보를 잘 알고 있는 건 황제와 몇몇 최상층의 인물들뿐이다.

그런 이들이 끝끝내 숨기고 있으니 에쉬타르 입장에선 답답할 뿐이었다.

“이대로라면 한 달도 못가서 수도까지 적이 몰려올 걸세.”

“…….”

에쉬타르의 솔직한 말에 황제의 귀라 불리는 장교가 한숨을 쉬었다.

“저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송구합니다.”

“……미치겠군.”

답답한 표정으로 담배를 무는 에쉬타르를 보면서 젊은 장교가 조심스레 말했다.

“예전에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때가 되면 나설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때가 로만의 멸망 이후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확답에 가까운 장교의 말에 에쉬타르가 한숨을 쉬었다.

“알겠네. 말하기 어려웠을 텐데 고맙군.”

“도움을 못 드려 송구합니다.”

자국의 위기 상황.

그런 상황에서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에게 환멸감을 느낀 장교가 쓴웃음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런 장교의 모습에 에쉬타르 역시 쓴웃음을 지었다.

“폐하께선 대체 무슨 생각이신가…….”

에쉬타르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상황판을 바라보았다.

현명하던 로만의 황제였다.

그런 그가 이런 무리수를 둘 정도라면 필시 뭔가가 있을 터.

그렇기에 믿고 따랐건만 갈수록 로만의 상황은 어려워지기만 할 뿐이다.

“그래도 믿고 따라야겠지.”

최근의 모습을 보면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조국의 황제였다.

분명 뭔가 생각한 바가 있을 것이라며 믿고 최대한 적들을 막기 위해서 머리를 굴렸다.

로만을 따르는 인접 국가의 요새에 지원군을 보내면서 적들의 시간을 낮추고 남쪽에서 진격해 오는 적들은 무시하며 주요 요새로 병력을 집결시켰다.

그러자 인류 연맹은 신이 났다.

비록 상대가 의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연전연승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승! 거칠 것이 없는 인류 연맹!」

「파죽지세로 올라가는 남부 연합군. 이대로라면 이그니트 제국보다 먼저 로만의 수도에 도착할 수도?」

「로만의 동맹국을 박살 낸 동부 연합군. ‘우리가 더 빨리 도달할 것이다!’ 남부와 동부 연합군이 서로 경쟁하듯 로만의 영토를 집어삼키다?」

거칠 것 없이 로만의 수도를 향해 진격하던 그들도 결국 멈출 수밖에 없는 순간이 다가왔다.

“역시…… 로만인가?”

윙사르의 국왕이자 동대륙의 남부를 대표하는 마스터인 브라이튼이 로만의 요새를 보고 감탄했다.

견고하게 만들어진 성벽은 물론이고, 몇십 겹으로 중첩된 결계와 수백은 넘어 보이는 마도포들은 잘못 공격했다간 엄청난 피해만 입을 것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동쪽에서 진입하는 군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산드리아와 로만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던 중립국 덴버의 마스터 더글라스도 로만의 동쪽 요새 앞에서 진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에쉬타르가 준비를 단단히 했군.”

자신의 친우이자 로만을 대표하는 명장인 에쉬타르가 이곳을 최후의 거점으로 삼은 것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일단 휴식을 취하도록 하시오.”

“예.”

더글라스의 명령에 각 국가의 병력들이 임시 기지를 만들면서 요새 공략에 앞서 휴식을 취했다.

* * *

그렇게 동대륙의 연합군이 로만의 요새 앞에서 진격을 멈췄을 때, 제국군은 철벽을 넘어서 동대륙으로 진입하는 거인의 요새를 공략하는 중이었다.

“간은 충분히 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데이비어 공작의 물음에 태양검과 옛 남부 왕국의 마스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4인의 마스터.

그에 반해 상대는 서대륙을 괴롭혔던 쌍둥이 마스터 이반 형제와 로만 유일의 마도사 발칸이었다.

사실상 로만의 전력 대부분을 이 요새를 지키기 위해 투입했음에도 한 명이 부족했다.

혹시라도 숨겨 놓은 전력이 있을까 싶어서 탐색전을 펼쳤지만 결국 나오는 이는 없었다.

그렇기에 더 볼 것 없다는 듯 제국의 총공세를 결정했다.

“……오는군.”

“그래.”

이반 형제가 죽음을 각오한 표정으로 몰려오는 이그니트의 대군을 바라보았다.

정예로 이루어진 이그니트 군대의 총공격이라 아무리 거인의 요새라도 며칠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걸 알기에 이를 악무는 이반 형제.

그리고 뒤이어 성벽에 오른 마도사 발칸이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이그니트의 4인의 마스터가 일시에 오러를 만들어 내면서 요새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단숨에 요새를 함락시키고 수도로 진격한다!”

데이비어 공작의 외침에 이그니트의 군대가 함성을 지르면서 돌격했다.

그러자 한 명이 모자란 로만 측에서도 사기를 끌어 올리면서 대항해 보았지만 데이비어의 돌진을 보자마자 대번에 사기가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남부의 마스터들과 태양검을 막기 위해 로만 측의 마스터급 전력이 모조리 투입되었지만 데이비어를 막을 인물이 없었기에 기사단으로 대응해야 했던 것이다.

데이비어 공작 혼자만이었다면 로만 측에서도 대응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몰려오는 이그니트의 기사단까지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단번에 성문이 반파되면서 이그니트의 병력이 중앙으로 집결하며 성문을 중심으로 치열한 공방전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을 뚫기 위해 데이비어가 전력을 다해 검을 뻗었다.

그가 자랑하는 섬광과도 같은 찌르기가 이어지며 검에서 막대한 오러가 뻗어 나갔다.

“뚜…… 뚫린다!”

기사단의 마력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창이 데이비어의 검에 균열이 일어나며 뚫리려는 바로 그때, 하늘에서 흑색 창이 떨어졌다.

쿠우웅!

“이 기운은…….”

자신의 공격을 막아 낸 흑마법을 확인한 데이비어 공작이 살기를 드러냈다.

“흑마법사인가?”

서대륙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떠난 흑마법사의 수장이 상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데이비어 공작이 전력으로 오러를 끌어 올렸다.

상대가 마도사급으로 알려진 흑마법사의 수장이라면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 봤자 승산은 우리 쪽에 있다. 흑마법사를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우위야.’

전체적인 전력도 이그니트가 우세였지만, 성국의 교황과 북부의 시카리오가 합류하고 있다. 게다가 황궁 제2기사단장으로 임명된 글렌 역시 합류하고 있으니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글렌이 흑마도사를 견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검을 휘둘렀다.

수천 개의 흑색 창들을 일격에 날려 버리면서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데이비어. 그리고 이반 형제와 마도사 발칸을 상대하는 이그니트의 마스터들.

그들이 치열한 접전을 벌일 때, 이그니트가 자랑하는 비공선들과 기사단들이 조금씩 거인의 요새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침내 숨어 있던 흑마법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기어 나왔군.”

이그니트의 남부 사령관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직 마족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들은 곧 당도할 병력이 있기에 충분했다.

“남겨 둔 전력을 모조리 투입해.”

“예!”

로칸 바르사유의 명령과 함께 남아 있던 모든 병력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뚫려 버린 성문을 두고 제국에서 추가로 투입된 병력들과 흑마법사들의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남부 사령관의 귀에 장교의 다급한 보고가 들려왔다.

“지원군이 정체불명의 집단에 공격받았다 합니다!”

“뭐?”

남부 사령관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만에 그럴 병력이…… 있었다면 차라리 이곳에 집중하는 게 나았을 텐데?”

로만의 명장인 에쉬타르가 한 결정치고는 뭔가 이상했다.

어설픈 병력으로는 교황과 서대륙 최강의 검에게 순식간에 학살당할 것이다.

이그니트 최고의 명장이라 불리는 그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동대륙의 명장이 이런 어설픈 결정을 내린다?

뭔가 이상했다.

그렇게 의아함을 느낄 때 시카리오 후작 직속의 까마귀들이 당도해 추가적으로 보고했다.

“정체불명의 군대 때문에 지원군의 발이 묶였습니다. 오늘 안으로 당도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뭐? 그게 말이 되나?”

“정체불명의 군대에 마스터급 존재가 둘이나 섞여 있었습니다.”

까마귀의 보고에 로칸이 눈을 커다랗게 뜨며 물었다.

“마족인가?”

“아닙니다. 마스터급 존재로 보이는 자는 폐하께서 마인이라 명명하신 놈들 같다고 합니다.”

“마인…….”

로칸이 인상을 찡그릴 때 그에게 또 하나의 급보가 당도했다.

“글렌 경이 이끄는 군대 역시 습격을 당했다 합니다.”

“뭐? 그들도 마인인가?”

“아닙니다. 이번엔 마족군단입니다. 스스로를 마군단장이라 밝힌 이와 글렌 경이 현재 전투 중입니다!”

뒤이어 들어온 보고에 로칸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걸 노린 건가!’

그렇게 생각한 로칸 바르사유가 떨리는 표정으로 거인의 요새를 바라보았다.

압도적인 승리를 생각했던 그였지만,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여기서 또 뭔가가 남았다면…… 어려운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생각한 로칸이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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