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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42화 (142/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53. 보급선을 지켜라! (2)

불의 사제들이 만든 광역 공격에 살이 타들어 가고 있음에도 신음하기는커녕 살기를 드러내며 힘을 끌어 올리는 검은 달의 무인들.

지옥의 아귀들이 신성력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이들의 힘이 아니고서도 검은 달의 힘은 강했으니.

로만의 정예군 중에서 선별한 이들을 이끌고 검은 달이 본격적으로 공격했다.

그러자 그림자들도 그에 맞서기 위해 모든 힘을 끌어 올렸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로만 측의 보급선 공격.

한 곳만으로 끝낼 생각은 없는 듯, 북쪽까지 이어진 임시 거점인 이곳이 전투에 들어갔다.

“북쪽 2번 거점이 후방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보고드립니다. 북쪽 4번 거점이 습격받았다는 소식입니다.”

“북쪽 3번 거점에도 역시 로만의 병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림자들의 보고에 타리온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거인의 요새를 포함해 로만의 북부까지 이어진 보급선.

그곳에는 거인의 요새 같은 중요 거점이 세 곳이 있었다.

출발점인 거인의 요새-중간 거점 발론-종착지 웨일드

거인의 요새야 말할 것도 없이 훌륭했고, 중간 거점 발론 역시 로만의 오랜 유통의 중심지 중 하나였기에 견고했다.

웨일드 역시 북부의 중심지 중 하나였고 이그니트의 주력군이 모여 있었다.

중요 거점들은 하나같이 훌륭했는데 문제는 그 거점들을 잇는 임시 거점들이었다.

물론 그중에 거인의 요새와 발론을 잇는 보급선은 상당히 견고한 성이 많아서 문제가 없었다. 거인의 요새가 무너질 것을 대비해서 중간중간 요새를 많이 만들어 놓았는데, 그곳들을 거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론에서 웨일드로 이어지는 보급선이 문제였다.

특히 서부 지역에서 북부 지역으로 넘어가는 지역에 가파른 산이 즐비했고, 길도 제한적이었기에 습격하기 딱 좋았다.

“예상대로인가?”

“예.”

적들의 습격에 타리온이 굳은 표정으로 지도를 살폈다.

예상했던 것처럼 가장 습격하기 좋은 협곡에 있는 거점들을 공격해 왔다. 나름 방비를 했으나 피해를 입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협곡 전체를 방어할 순 없다. 그러니 지금부터 모든 병력을 거점 주위로 모이라고 해.”

“예.”

타리온의 명령에 모든 그림자들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동대륙에서도 거칠기로 유명한 벨돈 협곡은 비공선이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

잘못해서 낮게 날았다간 언제 공격받을지 알 수 없었고, 일단 바람이 굉장히 거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착륙할 만한 곳이 마땅치가 않았다.

그런 벨돈 협곡에서 유일하게 기착지 역할을 할 만한 곳이 바로 협곡의 중간 지점인 타리온이 서 있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검은 달은 반드시 이곳에 대대적인 공세를 가할 것이다.

“이제 곧 이쪽에도 공격이 시작될 거다. 모두 대비하도록.”

“예!”

넘버링을 부여받은 그림자들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러자 타리온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하들을 흩어지게 했다.

넘버링을 부여받은 그림자들이라면 검은 달과 단독으로 맞선다고 해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로 하여금 주변을 감시하게 했다.

“폐하의 믿음에 부합해야 될 텐데…….”

그렇게 중얼거린 타리온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주군이 그 하나만을 믿고 모든 그림자들을 끌어모아 이곳으로 방어선을 지키게끔 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보급선을 완벽하게 구축하며 진격시켰을 것이다.

타리온과 그림자들이 보급선을 지켜 줄 것이라 믿으며 도박을 한 것이기에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공군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최소 사흘. 그 시간 동안 여기서 버텨야 한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은…….”

타리온의 말에 1번의 넘버링을 받은 남자가 말끝을 흐렸다.

벨돈 협곡의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이곳은 상당히 넓은 지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수의 병력들이 이곳에 올 수 있었다.

제국 북서부를 지키는 특수부대들이 비공선을 타고 이곳에 오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때까지만 버틴다면 승산은 있었다.

그 이후부터는 이곳을 비롯한 몇몇 거점들을 요새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렵지. 하지만 해내야 된다.”

타리온의 말에 1번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계 게이트이 있는 근방까지 올라간 주력군이 이곳의 상황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만약 그림자들이 패배한다면 마스터 중 하나가 이 협곡을 지키러 내려와야 할 것이다. 그 역할을 부여받은 게 바로 글렌이었다.

이미 주력군은 자신들이 보급선을 지켜 줄 것이라 믿고 전투를 시작했다.

마계 게이트 공략을 위해 마족들의 방어선을 밀고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글렌이 이끄는 별동대가 하루라도 빨리 주력군에 합류해서 싸우게 하려면 반드시 승전 소식을 알려야 했다.

“오는군.”

타리온의 기감에 잡힌 존재가 빠르게 타리온을 향해 다가왔다.

이곳만큼은 격정지가 될 거라 예상했는지 검은 달의 수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만약을 대비해 1번을 자신의 곁에 두고 대신해서 지휘하게끔 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그 판단이 맞을 것 같았다.

“지금부터 너한테 지휘권을 넘긴다.”

“……예.”

1번이 고개를 숙이며 사라지자 타리온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은 장갑을 끼며 두 개의 검을 꺼내 들었다.

바람결에 팔목에 새겨진 0번이라는 넘버링이 언뜻 비침과 동시에 그의 앞에 검은 달의 수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자의 수장인가.”

“그래.”

타리온의 대답에 검은 달의 수장이 말없이 흑색 검을 빼 들었다.

붉은 보석이 박힌 검은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지옥의……기운?”

“눈치가 빠르군.”

그렇게 말한 검은 달의 수장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내 숨겨진 힘을 경계하는가?”

“…….”

타리온이 말없이 기세를 끌어 올리자 그런 그의 모습이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과연 그대가 내 힘을 드러내게 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

그의 말에 타리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경계선상에 선 것인가?’

글렌과 월크셔 공작이 카리엘의 도움으로 마스터의 경계선상에 들어섰을 때.

바로 그때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마스터에 들어선 존재는 아니라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자신의 실력만으로 과연 검은 달의 수장을 얼마나 붙잡고 있을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후…… 먼저 가지.”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한 타리온이 먼저 움직이자 검은 달의 수장의 흑색 검이 빠르게 휘둘렸다.

마침내 양 대륙을 대표하는 특수부대인 그림자와 검은 달이 본격적으로 부딪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보급선 방어 작전이 시작되었다.

사방에서 아귀들이 소환되었고, 그것에 대비하여 설치된 함정과 마력포가 불을 뿜으면서 굉음을 내뿜었다.

멀리서 보아도 치열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음을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

빛이 번쩍이고 굉음이 들려오는 전투는 계속되었다.

모두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정예 병력을 들이다 보니 장기전이 가능했고, 상처가 나도 마무리가 되지 않는다면 포션으로 치유하고 다시 전장에 합류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렇게 밤새도록 치열한 접전이 일어졌고, 이 사실은 당연히 제국의 수도와 주력군에 급보로 들어갔다.

* * *

“피해 상황은?”

“현재로선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카리엘의 물음에 군부대신이 곧바로 대답했다.

상황이 매우 심각했기에 자정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대신들이 회의장에 모여 있었다.

“공군은 어디까지 도착했지?”

“목표 지점까진 사흘 거리입니다만 병력을 태운 이들끼리 먼저 최대 속도로 간다면 이틀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물자와 같이 이동 중인 부대였지만 병력만 태운 비공선만 빠르게 이동한다면 거리는 줄일 수 있다.

문제는 협곡의 위치가 높고 바람이 거세다는 점이 문제였다.

거기다 언제 어디서 공격이 날아들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 속도로 가는 건 위험했다. 속도에 치중한다면 그만큼 비공선을 지켜 주는 마력 결계의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단 병력을 태운 비공선부터 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이미 그렇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최대 속도로 움직이지는 말라고 해.”

아무리 급해도 지원군의 안전까지 희생시켜 가면서 움직일 수는 없었다.

로만이라면 지원군이 올 것까지 예상했을 테고, 그렇다면 반드시 비공선을 노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시간 싸움인가?”

이미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했기에 카리엘에게 남은 건 기다림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이 매우 답답했다.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타리온이 직접 전선으로 향한 상황이라 더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항상 카리엘의 옆에서 보좌하던 타리온이 죽을 가능성이 높은 전장으로 떠났으니 마음이 착잡했다.

이런 심경을 느낀 것인지 다른 대신들도 말없이 다음 소식을 기다렸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폐하! 1차 공세를 막아 냈다고 하옵니다!”

시종장이 들고 온 소식에 카리엘과 대신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피해는?”

“그림자를 포함한 병력 중 3할의 사상자가 났습니다. 다만 사제들이 있어 전투에 복귀할 수 있는 인원이 많을 것 같습니다.”

시종장의 보고에 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보다 피해가 적다?’

3할의 피해는 뼈아픈 것이지만 검은 달을 막아 내는 것치고는 피해가 적었다.

게다가 그들 중 다수가 죽은 것이 아닌 단순 부상이기에 더 그랬다.

“……아무래도 노림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군부대신도 같은 것을 느꼈는지 카리엘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바로 그때, 시종 하나가 다급히 달려와 시종장에게 조심스럽게 귓속말로 무언가 말을 전했다.

그것을 들은 시종장이 보기 드물게 표정을 굳혔다.

“무슨 일이지?”

“폐하, 잠시 귀를……”

시종장의 말에 카리엘이 시종장에게 귀를 대 주었다.

그러자 그가 귓속말로 조용히 말했다.

“산드리아 쪽에 저희 인원 몇 명이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시종장의 보고에 카리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느 쪽이지?”

“폐하의 명으로 주시하던 근방입니다.”

“숫자는”

“스무 명입니다.”

비밀 수호대가 무려 스무 명이나 죽었다.

거기다가 그들을 돕는 다른 요원들까지 죽었으니 강한 전력이 빠져나갔다는 뜻일 터.

“시기는?”

“정보가 건너오는 시간까지 합해 봤을 때 최소 이틀 전일 것입니다.”

시종장의 말에 카리엘이 군부대신을 손짓하여 불렀다.

그러자 조용히 다가온 그에게 시종장에게 들은 것을 간략하게 알려 주었다.

“이들이 보급선의 작전에 투입될 가능성은?”

“최소 6할 이상으로 보입니다.”

군부대신이 굳은 표정으로 말하자 카리엘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시간이…… 우리 편만은 아니군.”

적들 역시 노림수가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갑자기 움직인 이유가 있나?”

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산드리아 쪽의 감춰진 전력이 로만을 돕고자 했다면 미리 움직였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급박하게 움직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만에 하나 발각될 위험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일 테지요.”

군부대신의 말에 시종장 역시 같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움직여서 전력을 드러내는 대신 공격 시점에 맞춰서 도착할 수 있게끔 움직인다.

이그니트의 지원군의 도착 예정 시간과 자신들의 정보가 이그니트에 들어가는 시간까지 세밀하게 계산한 움직임이었다.

“그렇다는 건…… 그들이 아군보다 먼저 도착할 수도 있다는 뜻이군.”

“……예.”

카리엘의 말에 군부대신이 무겁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일단 지금 움직이는 지원군과 전투 중인 부대에 이 사실을 전해.”

“따로 명령을 내리시진 않는 것입니까?”

군부대신의 물음에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알아서 판단하겠지. 난 내 지휘관들을 믿는다.”

카리엘의 말에 군부대신이 감동한 표정을 짓다가 황급히 표정을 갈무리하고선 밖으로 나갔다.

“들었겠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그러니 우리는 만약의 사태도 대비해야 할 듯싶군.”

보급선이 무너질 상황을 대비하자는 카리엘의 말에 대신들이 만약을 위해 준비해 왔던 보고서들을 그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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