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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47화 (147/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55. 셋으로 분할되는 대륙

마왕이 넘어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전쟁.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그니트의 패배나 다름없었다.

결국 마왕이 넘어오는 것을 막지 못했고, 불완전하게나마 마왕이 대륙으로 넘어왔으니까.

그 과정에서 정예군 다수가 죽음을 맞이했고, 앞으로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마스터급 전력들 역시 다수가 치명상을 입었다.

특히 글렌이 치명상을 입고 깨어나지 못하는 것과 월크셔 공작이 중태를 입고 사경을 헤매는 것이 컸다.

“상황이 좋진 않네.”

거인의 요새에서 보고를 받은 카리엘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러자 그와 같이 있는 지휘관들 역시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최악은 아닙니다.”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난 폭발로 정예 병력의 사상자가 엄청났지만 살아 있는 자들이 많았다.

팔다리가 날아가고, 사경을 헤매는 자들이 많았지만 살아 있다는 게 중요했다.

“팔이나 다리가 사라진 이들을 완벽하게 치료하는 게 가능하겠나?”

카리엘의 물음에 신관들이 고개를 저었다.

본래 자신의 것을 붙이는 것은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완전히 없어진 것을 다시 소생시킨 것은 다른 문제였다.

막대한 신성력을 사용하면 팔다리를 복구하는 것은 가능하다. 문제는 그렇게 생긴 팔이나 다리는 새로 생긴 것이기에 기존에 익히고 있던 모든 감각들이 거의 무효화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치료하면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겠으나…….”

신관이 말끝을 흐리자 다들 한숨을 쉬었다.

중상자들이 전투에 복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정말 방법이 없나?”

“……금기된 힘을 사용하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한 신관의 말에 카리엘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신관들이 움찔하며 금기된 방법을 입에 올린 신관을 노려보았다.

“어쨌든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군. 맞나?”

“……예.”

주교급 신관이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그들이 말한 금기된 힘이란 동물이나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인간의 팔다리를 붙이는 것이다.

신성력의 힘으로 팔다리를 붙이고 강제로 힘을 불어 넣어 육체에 맞게끔 개조한다.

그들이 증오하는 흑마법사들의 실험 결과를 통해 만들어진 방법이었다. 하지만 흑마법사를 극도로 혐오하는 신관들이었기에 시간이 지나서 금기된 방법으로 봉인해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도 한계가 있는 것이, 결국 키메라를 만들기 위한 실험에서 비롯된 방법이기에 본래 육체와의 호환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 방법도 한계는 있습니다. 오히려 맞지 않다면 새로 소생시킨 것보다 못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교급 신관이 금기된 방법의 문제점을 소상히 말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카리엘이 고개를 돌려 브리온을 바라보았다.

“브리온.”

“가능한 것 같습니다. 일단 새로 소생시키는 것과 금기된 방법 중 무엇이 더 나은지는 연구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카리엘이 브리온을 돌아보자마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가 오랫동안 연구한 시술과 치료 방법을 통해 과거로 복귀하게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수준은?”

“과거의 힘을 모두 되찾는 건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계산대로 된다면 7할 이상은 복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간은?”

“최소 2년은 걸릴 겁니다.”

브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되었든 정예 병력들은 완전히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의미 있는 일이었다.

“주력군에게 전해, 웨일드에서 철수하라고.”

카리엘의 명령에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웨일드는 로만의 북부를 책임지는 중심지다. 그런 곳을 버린다면 향후 마족들과의 전쟁이 어려워질 수 있었다.

“폐하, 마족들과 싸우려면…….”

“알아.”

마족들과 싸우려면 웨일드라는 거점은 필수다.

군사적 관점으로 보자면 웨일드라는 거점을 포기하는 것은 악수였다. 하지만 카리엘이 그리는 그림으로 보자면 웨일드를 내주는 게 맞았다.

“지금 주력군을 가다듬으면 마족들을 전부 쓸어버릴 수 있나?”

“그건…….”

카리엘의 물음에 지휘관들이 대답을 피했다.

일단 피해가 너무 컸기에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이그니트의 주력군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해 로만이 아래에서 도발을 하고 있었다.

“당장 마족들과 싸울 수도 없는데 보급선만 길어지는 건 문제야.”

“폐하, 웨일드에 철수한다면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한 지휘관의 말에 다른 지휘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족들과 로만이 본격적으로 동맹을 맺을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마족들과 로만이 이어진다면 앞으로 전황은 더 어려워질 겁니다.”

“동부 쪽 연합군 역시 상황이 어려워질 것입니다.”

지휘관들의 말에 카리엘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로만 북부는 동부 연합군과 이그니트가 로만과 마족들이 이어지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웨일드를 포기하는 순간 동부 연합군 쪽이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동부 연합군은 곧 남부로 복귀할 거야. 동쪽 점령지 역시 포기해야겠지.”

카리엘의 말에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지휘관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그들을 위해 카리엘은 비밀 수호대가 보낸 정보를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산드리아 주요 부족들이 로만의 깃발을 들고 움직임.

동부 연합군이 위험함.」

“이건…….”

“허…….”

마침내 산드리아가 움직였다.

그것도 대놓고 로만과 동맹을 드러내는 행동을 하면서 서쪽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동부 연합군이 분열되는 것은 물론이고, 북쪽의 유목 민족들 역시 전부 죽고 말 것이다.

“이제 이 상태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카리엘의 말에 지휘관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산드리아가 움직이기 전에 마족들을 끝내려 했건만…….’

마족들을 끝내고 로만에 집중하며 동부 국가들의 연합군이 산드리아를 막게끔 하는 것.

그것이 카리엘이 세운 계획이었다.

스스로 위험까지 감수하고 전쟁에 뛰어들었음에도 결국 마족들을 끝내지 못했다. 그렇다는 건 그가 기존에 세운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삼 분할로 간다.”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자신의 계획서를 테이블 중앙에 놓았다.

「          북부와 북동부-마족

↕          ↕

서부와 남부-인류 연맹 ↔ 중앙과 동부-로만 」

이 계획을 본 지휘관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마족들이 로만과 적대 관계가 되겠습니까?”

한 지휘관의 물음에 카리엘이 그동안 조사한 것들을 보여 주었다.

얼핏 로만과 마족들은 동맹관계처럼 보이지만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일시적으로 손을 잡은 것에 불과했다.

그들의 주 관심사는 ‘지옥문’이었다.

지옥문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은 산드리아의 사막지대.

그중에서도 아무도 살지 않는 몇몇 지역이 후보였다.

“만약 우리가 서부와 남부를 중심으로 걸어 잠근다면 어떻게 될까?”

이그니트가 지옥문을 먼저 찾는 것을 포기한다면 남은 것은 마족과 로만의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돼도 과연 둘이 여전히 동맹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미 로만과 마족들이 끈끈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은 이번 전쟁을 통해 드러났다.

정말로 마족을 도우려 했다면 도발만 하는 게 아니라 사력을 다해 이그니트의 요새들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로만은 마족이 빠르게 밀리지 않을 만큼만 견제하고선 엄청난 피해를 입는 동안에도 가만히 구경만 했다.

거기서 카리엘은 확신을 얻었다.

‘로만과 마족의 동맹은 우리가 빠지는 순간 적대 관계가 된다.’

설사 동맹이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당장은 이그니트와 인류 연맹을 본격으로 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주요 요새를 중심으로 강력한 방어선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북부 유목 민족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데려와야지.”

카리엘이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북부 통일의 꿈을 꾸었던 골란의 족장 역시 현 상황에서는 그게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었다.

직접 마왕의 강함을 목격하고, 산드리아의 대군이 몰려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결국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부 연합군이 있는 동안 북쪽의 유목 민족을 남쪽으로 내려보낸다.”

대부분이 말을 타고 생활하는 민족이니 빠르게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그들이 남부로 내려가면 동부 연합군 역시 남쪽으로 후퇴할 것이다.

“이렇게 걸어 잠근 전력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까?”

타리온의 물음에 카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산드리아에도 이번 결정에 불만이 있는 부족들이 있어. 그들을 포섭해야지.”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동대륙의 지도에서 산드리아 지역 일부에 인류 연맹의 깃발을 꽂았다.

대충 10여 개의 오아시스가 있는 지역에 깃발을 꽂았다.

전부 현 산드리아 황제에 대한 불만이 있는 부족들이었으며 자체적으로 요새를 갖고 있는 부족들이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근방의 부족들을 규합한다.”

남동부 일대까지 집어삼킨 인류 연맹의 크기는 상당했다.

로만과 산드리아가 손잡으면서 광활한 크기의 동맹이 만들어졌으니 서대륙을 통일한 이그니트와 남부 일대의 동대륙 국가들의 연합 역시 굉장히 컸다.

그리고 그에 준할 만큼 혹한의 땅을 점령한 마족들의 땅 역시 컸다.

“대륙 전체를 놓고 보면 비슷비슷하군요.”

타리온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정말로 지옥문을 찾는 게 주된 목적이라면…….”

산드리아와 손잡은 로만을 마족들이 과연 가만히 놔둘까?

어떻게든 북부를 통해 동진하면서 산드리아의 사막지대에 개입하려 할 것이 분명했다.

“분쟁 지역은 이쪽이 될 가능성이 높지.”

산드리아의 사막지대 중 가장 험한 지대.

유목 민족과 산드리아의 분쟁 지역으로 유명한 죽음의 대지.

이번 사태로 유목 민족들이 전부 남쪽으로 빠져 버린다면 완전히 비어 버린 땅이 될 터.

산드리아가 본격적으로 이곳을 조사할 게 뻔했다.

그리고 마족들은 이것을 가만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있는데 둘이 크게 싸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겠지.”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싸움은 ‘지옥문’이 드러날 때. 바로 그때겠지.”

지옥문이 나타나면 마족들과 로만이 사력을 다해 싸울 것이고, 바로 그때가 인류 연맹이 움직일 타이밍이었다.

“길게 봐야 돼. 이미 싸움은 장기전이 되었어.”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지휘관들을 향해 명했다.

“발론까지 후퇴하라고 해. 거인의 요새에사 발론까지가 우리의 영역이다. 남은 병력은 이곳에서 남부 왕국 길을 뚫어.”

“예!”

카리엘의 명령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났다.

큰 그림을 그려 줬으니 남은 것은 실무자들이 할 일.

카리엘이 명을 내리기 무섭게 이그니트의 주력군이 후퇴를 준비했다. 동시에 각 동맹국에 현 상황을 알리고 양해를 구했다.

산드리아가 로만의 편에 섰으니 다른 동맹국들도 현 상황을 유지시키기 어렵다는 것은 인지했다.

문제는 골란을 중심으로 뭉친 유목 민족이었다.

“이곳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터전을 버리다니요!”

이그니트의 제안에 반대하는 이들.

“하지만 마족들을 막을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 동부 연합군이 물러나면 로만과 산드리아에 포위됩니다! 고립되어 다 죽을 것입니까?”

이그니트의 제안에 찬성하는 이들.

이 둘이 격렬하게 싸우는 걸 보면서 골란의 족장은 고심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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