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49화 (149/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56. 시작되려 하는 전쟁

불편한 평화.

대전쟁을 앞둔 시기에 일어난 짧은 평화의 시기가 도래했고, 모든 이들은 이 평화가 언제 깨질지 불안해했다.

하지만 빨리 깨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불편한 평화를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다.

평화로운 시기와 달리 마족들은 비어 있는 북부를 빠르게 점령했고, 로만이나 중앙 지역에서 도망쳐 나온 이들을 마인으로 만들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로만 역시 산드리아와 중앙 지역을 평정하면서 엄청난 성장을 이뤄 냈다.

한때 동대륙 최강에서 멸망 직전까지 갔던 로만이 다시금 과거의 성세를 되찾은 것이다.

남부 지역 역시 활발했다.

많은 인구수를 바탕으로 해상 무역 규모를 몇 배나 키워 내면서 엄청난 성장세를 이룩했다. 거기다 이그니트로부터 들여오는 신문물은 그들의 발전을 더욱 가속화했다.

이그니트 역시 엄청난 성장을 이룩했다. 인류 연맹의 성장을 견인하는 것이 바로 이그니트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엔진 개발!」

「한층 발전된 비공선 개발!」

「마도구 생산 기존에 10배 이상 확대!」

서대륙 내에서는 발전을 거듭하면서 엄청난 성장을 이룩하고 있는 것과 달리 동대륙으로 넘어온 황제와 마스터들의 소식은 조용했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면.

「새로운 마군단장 등장!」

「로만, 새로운 마스터 탄생! 2개의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검은 달의 수장.」

「골란의 왕, 마침내 벽을 깨고 마스터로!」

「윙사르 국왕, 마법검을 통해 기존보다 더 강한 무력을?」

「산드리아의 숨겨 둔 마스터, 사막의 검과 대지의 술법사 등장!」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6단계에 들어선 무인들도 심심찮게 발표되었고, 대륙 전체가 새로운 발표 소식을 하나로 묶어 대륙 100대 무인을 선정하기도 했다.

문제는 나날이 늘어 가는 타국의 강한 무인들에 비해 이그니트는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이그니트가 입었던 피해가 생각보다 컸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의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그런 상황 속에서 마침내 내실을 다지던 로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동부에서 충돌한 로만과 마족. 대체 그곳에 무엇이 있길래?」

상식적으로 봐선 이해가 가지 않는 곳.

풀 한포기 자라기 어려운 험지를 가지기 위해서 마족과 로만이 충돌했다. 이제껏 그 지역을 두고 눈치만 보던 이들이 갑자기 그 지역으로 군대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소식은 폐관 수련 중이던 카리엘의 귀에도 들어갔다.

“마침내 시작인가?”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시종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옥문을 찾은 것 같아?”

“그건 아닌 듯싶습니다.”

“아직은 흔적만 발견한 건가?”

카리엘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시종장이 건넨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죽음의 땅」

1. 북부의 설원과 남부의 사막지대를 가로지르는 고산지대.

2. 몇몇 곳에 거대한 분지가 형성되어 있음.(신화시대 대 전투가 일어났던 지역으로 추정.)

3. 고원 곳곳에 수상한 힘이 잠들어 있음.(지옥과 관련된 힘일 가능성이 큼.)

4. 마나 역류 현상과 괴이한 자연현상으로 진입이 어려움.

시종장이 건네준 보고서를 토대로 보자면 죽음의 땅은 일반적인 존재들은 진입 자체가 어려울 정도의 땅이었다.

하지만 이건 로만의 북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화시대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지역과 괴이한 힘이 남아 있는 곳이 다수 있었다.

‘결론은 꽝이었지.’

북부를 점령할 당시 비밀 수호대를 통해 알아본 결과 신화시대에 위대한 경지를 이룩했던 자들의 힘의 잔재가 남아 있는 것뿐이었다.

마족 역시 이를 알았는지 처음에 이그니트가 물러나고 나서, 옛 로만의 북부 지역을 이 잡듯 뒤졌다.

그리고 얼마 후, 죽음의 땅 인근까지 미친 듯이 진군했다.

그에 발맞춰 산드리아 역시 죽음의 땅 인근에 대군을 집결시켰다. 그렇게 지낸 지가 몇 년째.

“3년이라……. 예상했던 것보다 평화가 오래 지속되기는 했지.”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피식 웃었다.

아이러니한 게 전생에 자신이 황제가 되었던 시기와 맞물려 대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늦어도 이쯤엔 황제 자리를 물려주고 튀려 했는데…… 어렵게 됐네.”

카리엘의 중얼거림에 시종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언젠간 이루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랬으면 좋겠네.”

시종장의 말에 피식 웃은 카리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너무 숙이고 있었더니 온몸이 뭉쳐 있어. 이제 슬슬 제국도 움직일 준비를 해야겠다.”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시종장과 함께 수련장을 빠져나갔다.

거인의 요새에서 얌전히 수련만 하던 카리엘이 마침내 밖으로 나왔다.

그것으로 모자라 두 동생들에게만 맡겨 두었던 제국의 수도에 직접 찾아가기 위해 비공선에 몸을 실었다.

“요새에 계속 계실 줄 알았습니다만.”

“앞으로 이어질 전쟁 전에 마지막 점검은 해야지.”

타리온의 물음에 카리엘이 웃으면서 말했다.

“근데 용케 아켈리오 경을 설득했네?”

“저도 마스터니까요.”

황궁 기사단장으로서 기어코 따라가려고 하는 아켈리오를 설득한 타리온이었다.

현재 아켈리오는 최근 무언가 실마리를 얻어 수련 중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대전쟁을 앞둔 지금 조금이라도 실력이 상승할 수 있는 기회를 별거 아닌 이유로 저버리게 할 순 없었다.

“폐하, 곧 도착이옵니다.”

“벌써? 빠르네?”

정거장 몇 개는 더 들러야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하자 의외라는 표정을 지은 카리엘.

“출력이 얼마나 높아진 거야?”

카리엘이 알던 비공선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에 혀를 내둘렀다.

그동안 받던 보고서에는 대충 출력이 얼마만큼 늘어났고, 기존 구조에 비해 저항이 덜 먹는다 등등 어려운 용어만 써 있어서 그런갑다 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막상 타 보니 체감이 확 되었다.

“열차의 속도도 훨씬 빨라졌습니다.”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발전한 게 보이네.”

아래에 보이는 수도의 전경에 카리엘이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곳곳에 고층 빌딩들이 자리하고, 마탑과 같은 높은 건물들과 그 주위로 모여든 수많은 공방들이 보였다.

수도의 인근에는 엄청난 숫자의 공장들이 들어선 것도 보였다.

“외부의 위협이 없으니 미친 듯이 확장하는군.”

더 이상 서대륙에 이그니트를 위협할 적이 없으니 수도 외부에 주요 건물들이 엄청나게 늘어나 있었다.

보고만 받던 것과 달리 직접 보니 이그니트가 지난 3년간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카리엘을 태운 비공선이 수도에 내려선 이후에도 놀라움은 계속되었다.

연이서 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제국민들의 생활수준이 엄청나게 올라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부에서 들여온 고급 옷감을 입은 제국민들이 많아졌네.”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피식 웃었다.

한때는 귀족들만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던 장식품, 옷감 등이 이제는 부유한 제국민들 대다수가 착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토록 막고자 했던 귀족들의 권한 역시 이제는 상당 부분 제국민들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로워지기도 했다.

“폐하를 뵙습니다!”

황궁 앞에 도착하자 대신들과 두 동생들이 카리엘에게 예를 올렸다.

실로 오랜만에 황궁에 돌아온 카리엘을 환영하기 위해 거의 모든 관료들이 몰려온 것 같았다.

“다들 바쁜데 이러지 말고 들어가. 대신들은 나와 같이 회의장으로 가지.”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두 동생들과 대신들을 데리고 곧바로 회의장으로 향했다. 황궁으로 돌아온 걸 기념해서 쉬어도 될 법했지만 상황이 좋지 못했다.

“마침내 로만과 마족들이 움직였다.”

회의장에 도착하자마자 입을 연 카리엘이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 회의가 나를 보는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카리엘의 말에 회의장 분위기가 급격하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폐하.”

재상이 뭔가 말하려 했지만 카리엘이 손을 들어 제지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데 언제까지 황위를 어정쩡하게 놔둘 수는 없겠지.”

카리엘의 말에 대신들과 두 동생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폐하! 폐하께서 아직 젊으신데…….”

“차라리 혼인을 하십시오!”

두 동생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카리엘을 만류하려 했다.

그건 다른 대신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평화의 시기가 계속되는 동안 대신들이 몇 차례나 요구했던 게 바로 혼인이었다.

하지만 카리엘은 거절했다.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 카리엘은 최전선에 서야 했다.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태어난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아이가 황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럴 바에 아예 혼인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나의 혼인은 살아 돌아온다면 그 이후에 하겠다!’

틈만 나면 재촉하는 대신들에게 이렇게 말해 놓은 상태였고, 그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차기 황위를 불안하게 둘 수는 없었다.

“폐하, 이참에 혼인을 하고 가시지요.”

“결혼식이 꼭 거창할 필요가 있습니까?”

“맞습니다. 후보도 많습니다. 공국의 공녀와 아이론 맹주의 여동생 역시 괜찮습니다.”

대신들의 말에 카리엘이 쓴웃음을 짓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차기 황위는 루피엘 네가 맡는다.”

카리엘의 말에 루피엘의 동공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리엘, 넌 혹시라도 내가 죽을 시 거인의 요새로 넘어와 군대를 총괄해라. 마족들과 지옥의 괴물들이 서대륙으로 넘어오지 않게 막아야 한다.”

카리엘의 말에 세리엘의 표정 역시 어두워졌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자신의 형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부담스러우면 몇 년 버티다가 미리엘에게 넘겨라.”

부담스러워하는 루피엘을 보면서 카리엘이 말했다.

카리엘이 떠날 때만 하더라도 어린 소녀에 불과했던 미리엘이었다. 그런 그녀가 그 어린 나이에 황궁의 예산을 총괄하면서 빠르게 성장했고, 지금은 조금이지만 재무부의 일까지 돕고 있었다.

몇 년만 더 이대로 성장한다면 미리엘은 카리엘 못지않은 존재가 될 것이다.

“꼭 직접 나서셔야 하는 것이옵니까?”

아직까지도 은퇴하지 못한 재상 윈스턴이 카리엘을 보며 물었다.

진즉에 루터에 물려주고 은퇴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은퇴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골골대면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윈스턴을 보며 피식 웃은 카리엘이 말했다.

“내 힘은 충분히 증명했을 터.”

“하오나…….”

“내가 여기서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보다 지옥의 군대를 쓸어버리는 편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은 증명했을 터. 자네에겐 내 수련의 성과도 말해 놨을 텐데.”

카리엘의 말에 윈스턴이 말없이 한숨을 쉬었다.

“다들 알아들은 것 같으니 남은 할 말을 마저 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두 동생들을 보며 말했다.

“루피엘을 황태자로 삼을 것이며 세리엘은 서대륙 총사령관에 임명할 것이다. 나의 부재 시 동대륙의 모든 병력을 지휘할 권한을 가질 것이다. 대신들은 짐의 뜻을 헤아려 최대한 빨리 황태자와 총사령관 임명식을 준비하도록.”

“명을 받듭니다!”

카리엘의 명령에 모든 대신들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회의장을 벗어난 후 회의장에 재상만을 남겼다.

“아무래도 좀 더 황궁에 있어 줘야 할 것 같아.”

“……죽을 때까지 있는다 생각하겠습니다.”

은퇴를 포기한 표정의 윈스턴을 보면서 카리엘이 웃으며 말했다.

“보고서를 보니 루터는 잘하고 있는 것 같더군. 슬슬 인수인계 시작해.”

그의 말에 윈스턴의 눈이 동그래졌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소식에 그는 몇 번이나 카리엘을 보며 제 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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