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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59화 (159/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59. 지옥문을 막아라! (3)

타리온의 보고에 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입니다. 거대한 회색빛 용이 나타났습니다.”

“용이라고?”

갑자기 나타난 용에 카리엘이 당황할 때 타리온이 추가로 말했다.

“수천 마리의 용도 문제지만 거대한 늑대도 문제입니다. 회색빛 불길을 내뿜는 거대한 늑대들 때문에 전열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거기까지 열린 건가?

타리온의 보고에 수르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기까지?”

-그래.

카리엘의 물음에 수르트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옥 최하층 나스트론드. 과거 세계수 위그라드실의 근처에 있었다고 알려진 최악의 지옥까지 열린 거다.

“그게 무슨…….”

카리엘이 더 말해 보라는 듯, 눈짓으로 재촉하자 수르트가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말해 주었다.

과거 최흉의 죄업을 가진 자만이 간 지옥.

펜리르의 자손들인 거대한 지옥 늑대와 시체와 위그라드실을 갉아먹는 용 니드호그의 자식들이 득시글거리는 지옥이었다. 매번 수천 갈래로 영혼이 찢긴 후, 다시금 회복되어 늑대왕 용들에게 다시금 찢기는 형벌을 받는, 끔찍한 곳이었다.

그러자 수르트의 말에 카리엘이 심각한 표정을 물었다.

“설마…… 그들이 살아 있는 건…….”

-펜리르는 죽었지. 하지만 니드호그는 모르겠군. 용들은 멸망 이후에도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높으니 그 녀석 역시 살아 있을지도.

“니드호그도…… 마왕보다 강하다고 봐야겠지?”

카리엘의 물음에 수르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화적 존재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카리엘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졌다.

“가름이라면…… 니드호그를 막을 수 있을까?”

-물론. 이기지는 못해도 이곳을 넘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쯤이야…….

가름이 과거의 기량을 모두 회복한다면 이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한번 영혼이 모두 찢겨 나가서 과거의 드높은 격이 한없이 추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름이라면 문을 막는 것은 가능할 터.

“하루라도 빨리 가름을 부활시켜야겠네.”

가장 깊숙한 곳에 있을 지옥의 존재들마저 넘어오기 시작한 이상 시간이 없었다.

문제는 남부 연합 전선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어딨어?

“그러게. 언제부터 확률 따져 가며 싸웠다고.”

전생에는 그딴 거 없이 항상 최악의 상황에서 싸워 왔던 카리엘이다.

“바로 가자.”

“예!”

카리엘의 명령에 곧바로 전 병력이 출발할 준비를 했다.

* * *

아홉 번째 지옥문을 마무리한 카리엘이 남부 전선에 도착했을 때 그를 간절히 기다리는 연합군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포기하지 마라!”

“이그니트 제국군이 올 때까지 버텨!”

악을 쓰면서 버티는 연합군.

하지만 연합군을 괴롭게 하는 건 용과 지옥의 늑대들만이 아니었다.

“산드리아군이다!”

이참에 연합군을 박살 내겠다는 각오로 나타난 산드리아의 주력군.

산드리아 최고의 부족들을 이끄는 부족장들이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마스터의 경지를 개척한 세 명의 인물들이 연합군을 향해 가장 선두에 서서 돌격해 왔다.

대지의 마도사.

지옥의 주술사.

사막의 황금매.

모두 거창한 이명을 갖고 있는 그들이 연합군의 마스터들을 맞이해 싸워 나갔다.

기사왕 브라이튼과 노장 더글라스, 골란의 왕 바투가 산드리아의 마스터들을 상대로 맞서 싸우면서 시간을 벌어 보았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겨우 버틸 수 있었던 전선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개판이군.”

선두에 선 거대한 지옥 늑대들, 그리고 하늘을 휘저으며 회색 불길을 쏘아 내는 용들로 인해 비명을 지르는 인간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 카리엘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엄청난 숫자의 지옥의 군대가 뒤이어 몰려오고 있었다.

본래라면 진즉에 뚫렸어야 할 방어선.

몇 겹으로 만들어진 방어선이 마지막 방어선만 남겨 둘 정도로 최악의 상황 속에 지금까지 버틴 것은 오직 카리엘이 오면 막아 낼 수 있다는 희망 하나 때문이었다.

“가자.”

“예! 폐하.”

카리엘의 명령에 고개를 숙인 타리온은 그림자들과 붉은 유령들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동시에 카리엘의 소환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승리의 인도자」

한 학자가 붙여 준 카리엘의 별명.

대륙의 구원자, 불의 성자, 신의 사도, 위대한 통일 황제 등.

카리엘이 가진 별명은 참 많았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가장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카리엘의 별명은 승리의 인도자였다.

인류를 승리의 길로 데려다주길 바라는 사람의 희망이 모여 만든 별명의 소유자답게 카리엘은 등장하자마자 압도적인 힘으로 밀려가던 전선을 안정화했다.

“와아아아!”

“드디어 왔다!”

“승리의 인도자가 찾아왔다!”

병사들의 함성과 함께 바닥에 처박혀 있던 사기가 순식간에 치솟아 올랐다.

늑대를 피해 달아나기 바빴던 병사들이 희망을 품고 무기를 들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기사들은 다시금 모여서 뚫고 들어오는 늑대를 막아섰고, 공중에서 날아오는 용을 향해 병사들과 마법사들이 힘을 합쳐 공격했다.

“이대로 단숨에 지옥문까지 돌파한다!”

붉은 유령을 주축으로 쐐기 형태로 단숨에 돌파하려는 카리엘의 군대.

그동안 해 왔던 것처럼 카리엘과 불의 사제들의 압도적인 힘으로 일순간 지옥문까지 길을 뚫어 낼 생각이었으나, 이번만큼은 쉽지 않았다.

“로만의 군대가 나타났다!”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로만의 주력군까지 나타났다.

이번 전투가 앞으로 전쟁 상황에 중요한 분기점이 되리라는 것을 그들도 아는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항상 황제 옆에 붙어 있는 마도사 발칸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

카리엘의 물음에 말없이 앞으로 치고 나가는 아켈리오.

그런 그를 보좌하기 위해 몇 명의 황궁 기사들이 같이 나서면서 길을 터 주었다.

하지만 그들이 끝이 아니었다.

“검은 달이군.”

카리엘이 이번엔 타리온을 돌아보자 그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숙이며 그림자들을 데리고 앞으로 나섰다.

그렇게 로만과 이그니트의 특수 전력들까지 맞부딪히는 상황 속에서 카리엘은 묵묵히 전진했다.

“지옥문만 닫으면 끝난다. 길을 뚫어라!”

“명!”

카리엘의 명령에 소수의 붉은 유령들과 황궁 기사들이 앞을 뚫기 위해 나섰다.

수없이 몰려드는 아귀들과 망령들을 베어 내면서 전진하는 그들.

그동안 지옥문을 닫는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많은 지옥의 군대를 박살 내 온 정예들이었지만, 지옥의 최하층에서 나온 늑대와 용은 그들에게도 부담되었다.

그런데 이런 이들 앞에 또 다른 무언가가 나타났다.

“저건!”

카리엘이 놀란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뼈들로 이루어진 형체가 짐승의 울음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가름인가?

그렇게 중얼거린 수르트가 스스로 몸집을 불렸다.

어느새 스콜과 아그니 역시 거대화하면서 뼈로 된 가름의 앞에 섰다.

쿠우웅!

카리엘이 자랑하는 세 소환체가 앞을 막아섰으나, 가름의 돌진을 막아서는 게 고작이었다.

“……괴물인가?”

가름의 영혼 조각들을 흡수하면서 급격한 성장을 이룬 카리엘.

그런 그의 성장과 함께 소환체들 역시 많은 성장을 이루었는데, 그런 그들이 가름 하나를 막지 못하고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폐하!”

“아직. 아직이야.”

밀고 들어오는 가름을 보면서 다급히 말하는 기사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비록 밀리고 있지만 소환체들이 버티고 있었고, 거대한 가름이 날뛰는 덕분에 지옥 측 전열이 완전히 박살이 났다.

하필 가름이 지옥문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날뛰고 있었기에 근방의 지옥의 존재들은 싸움의 여파를 피해서 앞으로 돌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고 진격하던 카리엘에겐 바로 이때가 기회였다.

“좀만 더 버텨!”

가름의 꼬리치기에 나가떨어지는 수르트를 보면서 말하고는 재빨리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황궁 기사들이 사력을 다해 길을 열었다.

“폐하를 위해 길을 열어라!”

“길을 터!”

기사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지옥의 괴물들을 베어 내면서 잿빛 길을 만들어 냈고, 그 덕분에 지옥문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바로 그때, 기다렸다는 듯 지옥문에서 강력한 존재들이 나타났다.

“불쌍한 놈들…….”

신화시대 이후 지옥에서 끊임없이 고통받은 거인들이 등장했다.

거대한 뼈밖에 없는 몸뚱이에서는 잿빛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뼈에서는 한기가 뿜어져 나와 사막의 모래에 서리를 만들고 있었다.

과거 보급선 방어선 때 만났던 지옥의 거인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

정식으로 지옥문에서 나온 거인의 힘은 비록 생전의 힘 대부분을 잃었지만 강력했다.

웬만한 지옥의 마물들은 전부 녹여버릴 수 있는 카리엘의 불길을 버티면서 꿋꿋하게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들었던 것보단 훨씬 약해.’

그렇게 생각한 카리엘이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르트에게 들은 ‘서리 거인’들에 비하면 약하디약한 존재들.

그렇기에 카리엘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전진했다.

지옥문에 다가설수록, 몸에 새겨진 가름의 영혼 조각의 공명 현상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지옥문에만 도착하면 돼.’

지금껏 보지 못한 거대한 지옥문.

바로 그곳에 박혀 있는 잿빛 보석이 가름의 영혼 조각일 가능성이 컸다.

지옥문의 상단부에 박혀 있는 거대한 보석만 정화한다면 거대한 크기의 지옥문 역시 닫힐 것이다.

“폐하!”

카리엘의 불길을 뚫고 나타나는 거인들을 보면서 로브를 쓴 자들이 걱정스레 말했다.

“저것만 정화하면 된다.”

카리엘이 그렇게 말한 순간, 공중에서 강력한 마법 공격들이 떨어졌다.

쾅!

거대한 잿빛으로 물든 얼음의 창이 떨어지는 순간, 불의 방어막이 펼쳐지면서 그것을 막아 냈다.

“쿨럭!”

“괜찮아?”

피를 토한 여인이 품속에서 포션을 꺼내 들이켜면서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습니다.”

“상대는 마도사급인가?”

“그런 걸로 추정됩니다.”

여인의 말에 카리엘이 한숨을 쉬었다.

“로만의 마도사라면 발칸이군.”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입술을 깨물었다.

상대는 카리엘에게 시간을 줄 생각이 없다는 듯, 강력한 마력을 뿜어내면서 다시금 마법을 발현할 준비를 했다.

마도사급 마법에 서리거인으로 추정되는 지옥의 거인들.

그것들을 보면서 카리엘이 말했다.

“저 마도사와 저것들을 뚫고 길을 만들어 줄 수 있겠어?”

카리엘의 물음에 로브를 쓴 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카리엘도 그들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곧바로 불의 힘을 최대로 사용했다.

그 순간, 카리엘의 곁에 있던 자들이 쓰고 있던 로브가 불타며 모습을 드러냈다.

“황제 직속 친위대, 폐하의 명을 받들어 길을 뚫겠습니다.”

전원 이마에 붉은 문양을 드러낸 카리엘의 친위대가 전력을 드러냈다.

“상대가 마도사라고는 하지만 지옥의 힘을 받아들였다. 상성상 우리가 우위다.”

친위대의 대장 격이 된 토토가 그렇게 말하면서 거검을 휘둘렀다.

쿠웅!

또다시 날아들던 얼음의 창을 그대로 베어 내면서 가장 먼저 움직여 길을 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리스와 브리온이 움직이면서 몰려드는 거인들의 관절을 꺾거나 잘라 내면서 시간을 끌었다.

동시에 아르슈나가 화염 마법을 극한으로 발휘하면서 최대한 마도사의 신경을 분산시켰다.

황태자 시절부터 유명했던 카리엘의 친위대.

하지만 예전과 똑같은 건 아니었다.

앞서간 이들의 뒤로 수십 명의 인원들이 움직이며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전부 카리엘에게 직접 불의 축복을 받아 이마에 밝은 빛을 뿜고 있었다.

“크으…….”

로만의 마도사.

위대한 경지를 이룩한 마도사였기에 본래라면 친위대 전원이 달라붙어도 힘들었을 이.

하지만 그는 지옥의 힘을 받아들인 게 실책이었다.

마법의 힘은 더 강해졌을지 몰라도, 그 이상으로 강력한 상성을 가진 불의 힘에 친위대에게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거대한 서리거인의 뼈다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워어어어!

-그어어!

멍청한 소리를 내며 울부짖는 뼈다귀들을 뒤로하고 친위대들이 열어 준 길을 통해 마침내, 지옥문 앞에 도착한 카리엘.

그 순간, 초록빛 불길이 뿜어지면서 지옥문을 감쌌다.

동시에 불의 폭풍이 만들어지면서 카리엘과 지옥문 주변을 감싸 버렸다.

「가름의 첫 번째 시험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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