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61화 (161/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60. 가름의 시험 (2)

주요 인원들이 모이자 카리엘이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가름의 시험을 받으러 가야 한다.”

그 말에 타리온이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저희만 대동하고 가실 생각입니까?”

타리온의 물음에 카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황궁 기사와 그림자 몇 명만 붙여 줘.”

“폐하!”

이번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듯 모든 이들이 카리엘을 만류했다.

이번 전투로 연합군은 한동안 전쟁하기 힘들 정도로 피해를 입었고, 이그니트의 주력군 역시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반면에 로만과 산드리아의 군대는 아니었다.

그들 역시 큰 피해를 입긴 했지만, 지옥의 군대가 있는 이상 위협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안 됩니다! 적어도 연합군이 안정화될 때까진 기다리시는 게…….”

토토의 말에 카리엘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름의 인정을 받아야 해.”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자신의 생각을 타리온과 친위대에게 말했다.

가름의 인정을 받으러 가려면 자신이 빠질 수밖에 없는데, 만약 상대가 눈치를 챈다면 그쪽으로 병력을 이끌고 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카리엘도, 구원하러 올 이그니트의 주력군도 위험해질 수 있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이그니트가 빠진 틈을 타, 연합군을 재차 침공할 가능성도 있었다.

지금의 연합군이라면 로만과 산드리아의 동맹군을 막아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연기를…… 하라는 겁니까?”

“그래.”

황제와 이그니트의 주력군이 연합군과 함께 있다는 것을 저들에게 보임으로써 만약에라도 일어날 위험을 차단하는 것.

그것이 카리엘이 원하는 것이었다.

“하오나 친위대와 그림자 대다수를 이곳에 남겨 두고 떠나시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황궁 기사들이라도…….”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친위대, 황궁 기사단, 그림자들 중 하나만 전부 빠져도 저들은 의심할 것이다.

“폐하! 제발 다시 한번만 생각해 주십시오.”

타리온이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카리엘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지옥문 때도 봤겠지만, 가름의 시험에 들면 누구도 들어올 수 없어.”

“하오나 시험이 끝나면…….”

“그 때문에 그림자를 대동하는 거야.”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소수의 그림자와 황궁 기사들로 하여금 만약의 상황에 연락할 수 있도록 해 놓을 생각이었다.

“이번엔 언제 돌아올지 몰라.”

카리엘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자 다들 굳은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가름의 시험을 받을 때도, 카리엘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이고, 내상을 아직까지 회복하지 못했다.

신성력을 퍼붓고, 포션을 들이켜도 회복되지 못할 만큼 컸다.

그런데 새로 받을 시련은 이번이 장난으로 여겨질 만큼 혹독할 것이다.

“내가 이곳으로 넘어온 이유가 이곳에 있다.”

카리엘이 화염으로 만들어진 화살표를 가리키며 말하자 모두들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연합군을 다시금 정상화해야 한다.”

이미 이그니트는 마왕을 막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실정이다.

지옥의 군대만큼은 연합군이 주축이 되어 막아 줘야 했다.

카리엘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다들 더더욱 할 말이 없어졌다.

타리온이 자신만이라도 따라가겠다고 끝까지 우겨 봤지만 카리엘의 결정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모든 이들을 설득한 카리엘이 기본적인 작전을 설명했다.

“내 전용 비공선을 중심으로 같이 움직여. 마치 내가 움직이는 것처럼 호위하도록.”

“후방에서 불의 사제들을 더 충원하겠습니다. 황궁 기사들도 더 불러야겠습니다.”

아켈리오의 말에 침울한 표정을 짓던 타리온도 의견을 냈다.

“폐하께서 내상을 입은 것처럼 꾸며 보겠습니다.”

“시일을 두고 내가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한 것처럼 해 봐.”

카리엘의 의견에 타리온이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섣부르게 정보를 흘리면 오히려 의심하지 않겠습니까?”

타리온의 의견에 카리엘이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

의심 많은 검은달과 로만의 황제라면 오히려 의심할 수도 있었다.

오히려 철저하게 숨기면서 카리엘이 건재한 것처럼 꾸미는 것이 그들에게 더 먹힐 것 같았다.

“처음엔 철저하게 정보를 통제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 오히려 내가 건재한 것처럼 사기 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

타리온의 말처럼 처음엔 카리엘이 건재한 것처럼 언론에 흘린다.

하지만 카리엘은 계속해서 두문불출하며 밖으로 나오지 않고 언론 플레이만 한다.

그러다 은근슬쩍 치료사들과 사제들이 움직이는 것을 들켜 주는 것이다.

여기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가름의 시련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만큼 시일이 꽤 흘렀을 때, 타국의 언론으로부터 자연스레 카리엘의 건강 이상설이 흘러나오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었다.

“이건 너한테 맡길게.”

모든 일을 타리온한테 일임한 카리엘이 이제 어떻게 떠나야 할지를 의논했다.

1. 비밀리에 단독으로 움직인다.

2. 대대적으로 지옥문을 수색하는 것처럼 비공선을 띄운 후, 그들 중 하나에 탑승한다.

3. 연합군과 함께 좀 더 전진하면서 시선을 끈 후, 조용히 빠져나간다.

크게 세 가지 방법이 거론되었다.

이들 중 첫 번째 방법이 가장 빠르게 삭제되었다.

로만의 검은달이 굳건한 상황에서 단독으로 움직이는 건 아무리 비밀리에 움직인다고 해도 너무 위험했다.

“결국 2번과 3번 중에서 선택해야 하나?”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고심에 빠졌다.

하지만 고심은 길지 않았다.

“2번으로 가자.”

그러자 타리온이 좀 더 안전하게 연합군도 동원하자고 했지만 카리엘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그것이 더 눈에 띌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현재 연합군의 상황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었기에, 카리엘은 비공선으로 하여금 주변을 수색하는 것처럼 연기하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가름이 있는 곳으로 떠나기 위한 작전까지 완성하고 나자 마침내 카리엘은 혼자만 남게 되었다.

“생각보다 떠나는 데 시간이 걸리겠어.”

-어차피 네 몸이 완전히 회복되기 전까진 가름의 시련은 어림도 없어.

수르트의 말에 카리엘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가름의 영혼이 떠나면서 단순히 힘만 빠진 것이 아니었다.

온몸을 가득 채우던 힘이 빠지면서 그 힘으로 유지된 육체 역시 이상이 생긴 것이다.

현재 카리엘의 몸은 균형을 잃은 상황이다.

그것을 회복하려면 화기로 빈자리를 가득 메우면서 천천히 육체의 균형을 되찾아야만 했다.

-너무 다급해하지 마.

수르트가 그렇게 말하자 스콜과 아그니가 모습을 드러내며 카리엘을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그들이 보기에도 카리엘이 다급해하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

대답은 알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카리엘의 얼굴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

* * *

그렇게 초조함 속에서 몸을 회복하는 데 주력하는 사이, 타리온을 중심으로 작전이 진행되었다.

가장 먼저 카리엘과 이그니트의 군대가 뒤로 빠졌다.

지옥문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 연합군과 함께 뒤로 물러난 이그니트군은 곧바로 병력 일부를 이용해 주변을 수색했다.

동시에 남아 있는 비공선의 개조 작업도 진행했다.

수색할 병력들과 똑같은 비공선을 사용할 것이기에, 모든 비공선을 개조해야만 했다.

그렇게 기존의 비공선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할 물자들을 지원받는 동안, 황제 전용 비공선 역시 개조에 들어갔다.

적어도 보이기엔 전보다 더 강력한 무장들로 업그레이드 하면서 ‘여기에 황제가 있소!’ 하고 보여 주어야 했다.

덤으로 비밀리에 치료사들과 사제들을 그 안으로 들였다.

지금부터 밑작업을 해 놔야 검은달을 낚을 수 있기에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열심히 움직인 덕분에 카리엘이 몸을 회복하는 시간에 맞춰서 준비가 끝날 수 있었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폐하께서 움직이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카리엘의 물음에 보고서를 건넨 타리온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카리엘이 웃으면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다행히 위치는 로만과 산드리아의 주력군이 있는 곳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니까.”

“……예.”

마지못해 대답하는 타리온의 어깨를 두드린 카리엘은 떠날 준비를 했다.

마지막으로 타리온으로부터 보고서를 본 후, 옷을 갈아입었다.

염색을 하고, 붉은 유령에게 지급된 헬멧과 고글을 썼다.

어떤 상황에서도 대응하기 위해 단검, 장검, 그리고 불의 축복이 새겨진 탄환과 총까지 챙긴 후 수색을 위해 개조된 비공선으로 향했다.

“……5번 수색대.”

“예!”

긴장한 붉은 유령의 지휘관을 보면서 우렁차게 대답한 카리엘이 붉은 유령으로 위장한 그림자와 황궁 기사와 함께 군인처럼 답하자 지휘관이 헛기침했다.

황제에게 명령을 내려야만 하는 이 상황에 잔뜩 긴장한 채 말을 더듬은 지휘관.

“……며…… 명령을 하달하겠다!”

끝까지 말을 더듬으면서 말하는 지휘관을 보면서 열심히 군인을 연기한 카리엘이 군례를 올리고는 발을 맞춰 비공선에 올랐다.

-제법인데?

수르트가 제법 군인 연기를 하는 카리엘을 보면서 말했다.

“이래 봬도 예전에 군 생활 엘리트로 끝낸 사람이야.”

지구에서의 일을 생각하며 말하는 카리엘을 보며 수르트가 피식 웃었다.

-그런 것치고는 움직임이 영…….

그때 수르트의 말을 한 귀로 흘리던 카리엘의 표정이 구겨졌다.

명령을 하달받는 것까진 괜찮았는데, 비공선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혼자만 발이 틀렸기 때문이다.

“……오래돼서 그래.”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답답한 군복을 풀었다.

“폐하, 준비가 끝났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그림자의 말에 카리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출발을 명했다.

그러자 카리엘의 비공선과 함께 수십 대의 작은 비공선들이 동시에 떠오르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 가지 의외인 건 군을 재건하느라 정신없을 연합군에서도 다수의 비공선들이 수색에 동원되었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카리엘의 비공선은 큰 의심 없이 가름이 있을 만한 곳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폐하?”

“멈춰.”

자신의 어깨를 붙잡는 카리엘을 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은 그림자가 황급히 비공선을 조종해 멈췄다.

아무것도 없는 모래사막.

그곳에 착지한 비공선에서 내린 카리엘이 조용히 힘을 발현했다.

그러자 황금빛 모래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더니 모래가 빨려 들어가면서 초록빛 불길이 튀어나왔다.

“폐…… 폐하!”

초록빛 불길에 휩싸이는 자신을 보면서 당황하는 그림자들을 향해 카리엘이 말했다.

“걱정 마라.”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거대한 불길에 사로잡혀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렇게 카리엘이 안쪽으로 사라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모래들이 뿜어지면서 거대한 모래언덕으로 변했다.

이 모든 것이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지만, 그들의 앞에 있어야 할 카리엘이 사라지면서 그림자들은 이 모든 현상이 현실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상황을 본부에 전해라.”

“예.”

이미 몇 번이나 카리엘이 당부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림자들은 지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본부에 카리엘이 사라졌음을 알리고, 이 지역을 위주로 수색대를 편성하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검은달이나 산드리아 군대가 올 수도 있기에 언제라도 이곳을 올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 * *

그렇게 모래사막 위에서 하나의 비공선이 다시 하늘로 떠오르며 마치 이 지대를 수색하는 것처럼 연기할 때, 안으로 들어온 카리엘은 거대한 존재를 만났다.

“가……름.”

환영이 아닌 거대한 육체로 자신을 바라보는 개를 보면서 카리엘이 침음성을 삼켰다.

-반갑군.

모든 영혼 조각들의 기억을 간직한 가름이 반가운 표정으로 카리엘일 맞이했다.

동시에 이를 드러냈다.

-길게 끌 거 없겠지. 지금부터 나의 시련을 시작하마.

가름의 말에 카리엘이 침을 꿀꺽 삼켰다.

지옥문에서처럼 가름과 싸워야 할 것으로 생각한 카리엘이 힘을 끌어 올리자 가름이 피식 웃었다.

-그 힘으로 나를 상대할 수 있겠나?

-설마…….

가름의 말에 수르트가 당황한 기색으로 나타났다.

-너 또 고약한 취미를……

-아 수르트인가? 큭큭! 너도 오랜만에 내 고향 좀 구경하다 나오는 게 어때?

그렇게 말한 가름이 힘을 발현했다.

그 순간, 그가 있던 지형이 회색빛으로 변하면서 카리엘의 몸을 지옥의 기운으로 억눌렀다.

-나의 시험은 간단하다. 그대가 지옥에서 살아 돌아오는 것. 기한은 내가 만족할 때까지.

“이런 미친!”

-그럼 잘 갔다 오거라.

그 말을 끝으로 회색빛 폭풍이 만들어지면서 카리엘을 집어삼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