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62. 마왕군
결국 카리엘이 그토록 염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지옥에 갔다가 마계로 돌아갔던 마왕이 결국 다시금 대륙에 발을 딛은 것이다.
이것을 막기 위해 이그니트의 주력군이 설원까지 쫓아갔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빌어먹을.”
“결국 흑마법사들을 마무리 못한 것이 컸다.”
태양검의 말에 피레스 공작이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을 냉정이 분석했다.
서대륙에서 비밀기지를 만드는 장인으로 불렸던 흑마법사들이 설원에서도 똑같이 비밀기지를 만들면서 이그니트의 주력군의 추격을 따돌렸다.
무엇보다 여러 갈래로 찢긴 마족의 군대들이 사방에서 이그니트 주력군을 괴롭힌 게 컸다.
마군단장 하나와 마스터급 마인 둘을 희생하면서까지 시간을 끈 그들로 인해 시간을 끌리는 사이 나머지 마족의 군대가 추격을 완전히 따돌려 버린 것이다.
결국 설원의 극심한 추위와 부족한 식량, 물자 등으로 인해서 장기간 추격전을 하지 못하고 되돌아오면서 재정비를 하는 사이 마왕이 강림했다.
“그래도 마군단장 하나와 마스터급 마인 둘을 죽였잖나.”
“의미가 있나? 마 군단장이야 마계에서 또 데려오면 그만인 것을.”
클레타 공작의 말에 피레스 공작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교황이 무겁게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말처럼 마족의 군대 입장에서 마군단장과 마스터급 마인 둘 정도 죽은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계에는 마군단장들이 다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왕이 어느 정도 힘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급보입니다! 설원에서 다수의 마왕군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규모는?”
“최고 과거의 주력군 수준이라 합니다.”
부하의 보고에 클레타 공작이 이를 갈며 책상을 탕 쳤다.
거의 절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힌 게 바로 몇 달 전이다. 그런데 상대는 또다시 그 정도 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나타나고 있었다.
“그들의 방향은?”
“혹한의 협곡 쪽입니다. 이미 제국쪽 주력군이 그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도 그쪽으로 가지.”
장교의 보고에 마스터들이 다급히 일어나며 군을 움직이기 위해 막사 밖으로 나왔다.
바로 그때, 또 다른 장교 하나가 다급하게 달려와 말했다.
“큰일 났습니다! 수색을 위해 나간 성기사단 하나가 전멸했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냐!”
태양검이 사색이 되어 물으려는 순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막강한 힘이 그들을 짓눌렀다.
“큭!”
“도망쳐야 하오!”
“그 무슨…….”
다급히 말하는 피레스 공작의 말에 태양검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고성을 지르려 했다.
“폐하의 당부를 잊으셨소?”
피레스 공작의 말에 태양검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신들을 짓누르는 기세는 마스터급에서는 나올 수 없는 종류의 힘이었다.
무엇보다 그를 더 두렵게 하는 건 이 힘이 저 멀리 산 뒤에서 나온다는 점이었다.
실로 말도 안 되는 힘의 영역.
“그래도 싸워 보지도 않고…….”
태양검의 말에 교황이 고개를 저었다.
마음 같아선 교황 본인도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산 뒤에서 대놓고 힘을 드러내며 도발하는 마왕으로 추정되는 이는 그것을 바랄 것이다.
결국 후퇴하기로 결정한 이그니트 주력군이 재빨리 남하를 시작했다.
-시시하군.
대놓고 도발했음에도 불구하고 후퇴를 결정한 인간들을 보면서 혀를 찼다.
단독으로 제국의 수색대와 기사단을 박살 내면서 산을 넘어온 마왕이 다급히 후퇴하며 남긴 인간 진영의 잔해들을 바라보았다.
과거 1할의 사용할 수 있었을 때보다 조금 강한 수준.
정확히 그 수준으로 꾀여 볼 생각이었다.
인간측에서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는 수준 정도로만 힘을 개방했음에도 줄행랑을 쳤다.
이것이 단순히 무서워서 도망친 것인지, 아니면 뒤쪽에 남겨 둔 뭔가가 더 있는지는 현시점에서 알 수 없었다.
-후자였으면 좋겠군.
그렇게 중얼거린 마왕이 빙그레 웃으면서 천천히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계에서 힘을 회복하는 데 주력한 덕분일까?
4할이 넘는 힘을 회복한 마왕이기에 무엇이 나오든지 살아 나갈 여유가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기대가 되었다.
-최후의 발악으로 무엇을 보여 주려나?
자신이 다시 대륙이 발을 디딘 이상 인류는 멸망이나 다름없다.
이제 남은 것은 지옥에서 과거의 힘을 회복한 ‘신’들과 이곳에서 싸우는 것뿐.
-이곳에서 나 역시 신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그렇게 선언한 마왕이 여유롭게 움직였다.
지루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땅에 마침내 인간의 요새 하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뿐, 인간들은 커녕 생명체 하나 없는 빈 요새.
그에 실망한 마왕이 강력한 힘으로 요새를 통째로 지워 버렸다.
쿠우우우우!
-무엇을 준비했는지 모르겠지만 시시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지루함에 분노가 끓어오른 마왕이 인간들에게 경고할겸 비어 있는 요새들을 닥치는 대로 소멸시키면서 남하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이그니트 군대의 사기는 빠르게 떨어졌다.
옛 로만의 영토에 있는 요새들이 하나둘 흔적도 남김없이 사라졌다.
카리엘의 명령을 제대로 지키려는지 힘들게 점령했던 로만의 요새들을 내주는 데 망설임이 없는 이그니트.
북부의 요새 웨일드 - 물류의 중심지 발론
이 2개의 거대한 요새까지 망설임없이 버렸다.
사실 교황을 비롯한 마스터들은 발론에서 싸워 볼 생각도 있었다.
그곳에 설치된 수 많은 무기들을 통해 마왕의 발이라도 묶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로칸 바르사유는 단호하게 그들의 청을 거절했다.
“곧 ‘마왕’이 거인의 요새에 당도합니다.”
부하의 보고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로칸이 한숨을 쉬었다.
마왕에 대적하지 마라고 명령하긴 했지만 마왕이 남하하는 시간을 최대한 늦춰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공중에서의 폭격이었다.
웨일드 내부로 진입한 마왕을 향해 대규모 폭격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성공한 건 처음 한 번뿐이었다.
그것도 흥미로움에 잠시 놀아 준 것일 뿐, 두 번째 폭격 때는 가차 없이 폭격에 사용된 모든 비공선들이 떨어졌다.
발론 역시 마찬가지다.
공중폭격 대신 요새 전체를 무너뜨리는 폭약을 사용하고 대규모 마법까지 사용했음에도 마왕은 그을림 하나 없이 걸어 나왔다.
실로 괴물 같은 신위.
“옵니다!”
장교들의 외침에 상념에서 깨어난 로칸이 모든 지휘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마왕 저지 작전을 실행한다.”
로칸의 명령에 모든 병력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요새에 있는 거대한 마도포들이 마왕을 조준하고, 엄청난 숫자의 비공선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비공선에서 나온 소형기들 역시 마법사를 태워 언제라도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그것을 보면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걸어오던 마왕이 그제야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호…… 이번엔 좀 다른가?
지나온 요새들처럼 단순한 함정이나 폭격이 아닌 제대로 된 전투를 해 보려는 듯 싶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이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 마도포의 빛줄기들이 마왕에게 직격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공중에서 수없이 낙하하는 폭탄들.
동시에 하늘을 나는 수천의 소형기에서 떨어지는 마법 폭탄과 마법이 오직 마왕 하나만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콰과과과광!
엄청난 폭발! 하지만 그 속에서 터져나오는 광소에 혹시나 하고 희망을 품었던 병사들의 표정에 절망감이 깃들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거대한 빛의 창이 떨어졌다.
-크하하하하! 바로 이것이다!
교황의 마법이 작렬했음에도 불구하고 웃으면서 거대한 창을 통째로 깨트리는 마왕.
그런 그를 향해 마스터들이 본격적으로 달려들었다.
가장 먼저 달려든 것은 태양검이었다. 그의 빛의 검이 묵직하게 날아들었고, 그 뒤를 피레스 공작과 클레타 공작의 검이 날아들었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이걸 원했다!
그렇게 말한 마왕이 네명의 마스터들과 어울리면서 막강한 힘을 내뿜었다.
하지만 힘의 차이가 너무 극명했다.
무려 네명의 마스터가 마왕 하나만을 상대하기 위해 달려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되지 못했다.
“쿨럭!”
“고작 이것이냐?”
마왕의 팔에 가슴이 뚫린 클레타 공작이 피를 내뿜으면서 그대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자 피레스 공작이 분노하면서 달려들었으나, 이제까지는 같이 놀아 주기 위한 여흥에 지나지 않았다는 듯, 곧바로 피레스 공작을 날려 버렸다.
“으아아아!”
반쯤 곤죽이 된 피레스 공작을 보면서 태양검이 전력을 다해 성력을 불어 넣었다.
마치 천벌을 내리듯 거대한 새하얀 성검이 마왕을 향해 날아들었으나, 그를 베지 못했다.
쿠우웅!
-흥이 식었다. 더 없느냐?
그렇게 말한 마왕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놈은 어딨느냐.
자신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었던 천재.
그가 생각난 마왕이 기감을 펼쳤다.
-거기구나!
그렇게 말한 마왕이 거대한 요새 너머를 바라보았다.
거인의 협곡 너머, 철벽의 요새에까지 닿은 마왕이 태양검을 죽이고 곧바로 움직이려 할 때였다.
교황이 펼칠 수 있는 최대 마법인 하얀 뇌전이 떨어지며 마왕의 발을 묶었고, 그사이 태양검을 뒤로 날려 버렸다.
그 순간, 반쯤 뭉개졌던 피레스 공작이 마지막 힘을 다해 마왕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꺼져라!
자신을 방해한 교황과 피레스 공작이 귀찮다는 듯, 처음으로 전력으로 힘을 개방했다.
그러자 강력한 투기가 사방에 비산하면서 달려들던 피레스 공작을 살점 덩어리로 만들고 노쇠한 교황의 목을 붙잡았다.
“끄으으으…….”
“성하!”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태양검의 목소리에 교황이 빙그레 웃으며 눈으로 교구을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목이 뚝 끊기더니 그대로 시체처럼 변해 버렸다.
-신들이 오기 전까지 그놈과 놀아야겠다!
그렇게 말한 마왕이 더는 요새에 관심이 없다는 듯, 전력으로 거인의 요새를 날려 버리려 했다.
바로 그 순간, 마도사의 폭풍이 날아들면서 마왕의 발을 또다시 묶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치고 나가는 태양검.
“진정하십쇼.”
쿠웅!
귀찮다는 듯 단번에 날려 버리려던 마왕의 공격을 흘려 낸 여인이 태양검을 진정시켰다.
철벽을 지켜야 했던 샤르도나가 태양검을 지켜 내자 상공으로 날아오른 월크셔 공작의 마법들이 마왕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버티시오.”
“의미가 있소?”
샤르도나의 물음에 태양검이 희망이 없다는 말했다.
“그가 깨어났소.”
그녀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태양검.
바로 그때, 분노한 마왕이 다시금 힘을 개방하며 도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태양검이 흥분하지 않았다.
그저 철저하게 시간을 끌겠다는 뜻, 요새의 다른 병력들과 함께 마왕의 발을 묶는 데 주력했다.
그러자 놀아 주는 것도 귀찮았는지 마왕이 전력으로 힘을 개방했다.
-그냥 다 같이 사라지거라.
일전에 북부에서 보여 주었던 거대한 검은 구체.
그것이 거인의 요새로 날아드는 순간, 공간이 일렁이면서 마왕의 검은 구체를 두 갈래로 갈라 버렸다.
쿠구구궁!
-너는!
자신의 힘을 가른 남자의 정체를 본 마왕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광소를 흘렸다.
-그래! 그래야지. 벽을 넘었구나!
광소를 터뜨린 마왕이 즐겁다는 듯 더욱더 큰 웃음을 터뜨리면서 힘을 개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