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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82화 (182/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외전 1. 은퇴 싸움의 승자는? (4)

마침내 간택식이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만큼 세계 곳곳에서 미녀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예쁘기만 하냐면 그건 아니었다.

카리엘의 성정상 업무에 도움이 안 되고 예쁘기만 한다?

퇴짜 맞을 가능성이 높았다.

당장에 서대륙 최고의 미녀들이라 불리는 4인방 역시 업무 능력이 최상위에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황비를 목표로 한다고 하더라도 업무 능력만큼은 출중해야 했다.

“음…… 다들 대단하군.”

“그러게요.”

간택식을 신청한 여인들의 스펙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대륙이 다시금 안정화되면서 만들어진 이그니트의 자격증들.

특히 황궁 업무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따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실무 경험까지 갖춘 여인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대륙적 이벤트인 만큼 단순히 예쁘기만 해서는 황비가 되지 못함을 알기에 고스펙을 쌓아서 온 것이다.

웬만한 관료들 이상으로 스펙을 쌓아 온 여인들이 수도에 즐비했다.

「오늘밤 자정! 간택식을 위한 첫 연회가 열린다!」

「누가 황제 폐하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인가?」

간택식을 위한 첫 연회가 열리면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인 황궁으로 시선이 모아졌다.

많은 사람들은 카리엘 혼자 연회에 참여하여 수많은 여인들의 시선을 독차지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발표되는 내용은 달랐다.

“짐은 이 연회에 평소 아끼던 관료들을 대거 참여시킬 것이다. 일만 하느라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불쌍한 엘리트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느니라.”

간택식을 위한 연회였지만, 카리엘과 마찬가지로 결혼을 하지 못한 솔로들에게도 기회를 주고자 하는 카리엘의 자비로운 마음에 많은 이들이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이들은 벌써 눈치챘다.

“벌써 거르는 건가?”

“그러게.”

“확실히 이러면 포기하는 이들도 늘어나겠지.”

기사에서는 ‘황제의 배려’라고 표현했지만, 사람들은 이번 발표가 간택식을 위한 첫 번째 시험이라고 말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안 될 것 같은 사람은 미리 포기하라는 뜻.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연회에 참석할 관료들은 전부 이그니트 제국의 엘리트들이다.

아주 작정을 했는지, 젊은 고위 관료들 다수가 참석 예정이었다.

만약 이들뿐이었다면 간택식의 첫 번째 시험이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 세리엘 각하도 참석한다고?”

“그뿐인가? 재상인 루터 공도 참석하신다고 하네.”

이그니트의 핵심이라 볼 수 있는 군부의 수장 세리엘과 행정부의 수장 루터가 참석한다.

이것만으로도 웬만한 이들은 눈 돌아갈 만한 일이었다.

“자네들 소식이 늦구먼.”

“또 뭐가 있나?”

“쯧쯧! 이번에 글렌 경도 참석한다 하네.”

한 관료의 말에 곁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검사가 참석한다?

애매하게 황비를 노리는 이들은 죄다 이쪽으로 몰려들 가능성이 높았다.

“허…… 괜히 첫 번째 시험이라 불리는 게 아니구먼.”

“그러게 말이야.”

이그니트에서 잘나가는 이들은 죄다 참석하는 이번 연회 때문일까?

각국에서 사신단으로 참석한 이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거 어떡하지?”

“그러게. 글렌 경도 참석한다니!”

“루터 공은 어떻고?”

“세리엘 저하도 나쁘지 않지.”

카리엘만큼은 아니지만, 모두 그다음 순위 정도는 기대해 볼 만한 인재들이었다.

그리고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유명한 카리엘의 친위대도 참석했고, 들리는 말로는 정보부 수장인 타리온도 강제로 참석시킨다는 말도 나돌았다.

즉, 이번 연회는 단순히 간택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그니트의 핵심 인재들과 혼인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나 다름없다는 뜻이었다.

“작전 변경이다!”

“우리도!”

애초에 애매했던 이들은 곧바로 작전을 변경했다.

갑작스럽게 발표되었기 때문일까?

누굴 공략해야 할지 혼란스러운지, 연회장에 초대된 모든 이들이 혼란스러워했다.

그리고 이런 혼란을 야기한 카리엘은 뒤에서 음흉한 웃음을 흘리면서 즐거워했다.

“계획대로군.”

보고를 듣고 웃고 있는 카리엘을 보면서 타리온이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꼭 저도 포함시키셔야 했습니까?”

“그럼!”

“저곳에 끼기엔 제 나이가…….”

“마스턴데 뭐 어때. 얼굴은 젊어 보여!”

실제로 마스터에 오르고 나서 점점 젊어지고 있는 타리온.

이미 육체적 나이는 30대에 불과할 만큼 젊어져 있었다.

“그게 중요한 게…….”

“나이 때문에 그래? 그럴 줄 알고 중년의 여성도 초대해 놨으니까 잘해 봐. 타리온도 새 삶을 시작해 봐야지.”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은 간택식의 첫 번째 시험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냥 카리엘이 귀찮아서 털어 내기 위한 밑작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루피엘에게 혼란을 주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루피엘의 세력 중에는 일에 치여 연애도 못 하고 있는 젊은 관료들이 꽤나 있었는데, 카리엘은 그들을 꾀어낼 방법으로 이 연회를 이용한 것이다.

루터 같은 경우 강제적으로 참석시켜야 했지만, 막상 참석자 명단에 올려놓으니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즉, 이 한 수로 루피엘이 자랑하는 세력이 반쯤 와해되었다.

“……잔인하십니다.”

“강하게 키워야지.”

카리엘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자신이 전생에 개고생한 것에 비하면 지금의 어려움은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루피엘은 젊은 나이치고 정국을 잘 이끌고 있긴 했다. 실제로 역대 황제 중 상위에 랭크될 재능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하지만 하필 현 황제가 카리엘이었다.

“강하게 커야 한다, 동생아!”

주먹을 쥐면서 말하는 카리엘의 모습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타리온.

황위를 물려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에 마지막으로 루피엘을 강하게 키울 작정으로 압박해 줄 생각이었다.

루피엘이 갖고 있던 세력을 와해시키고, 그가 세워 놓은 계획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려 주면서 절망감을 심어 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강제로 황위에 오르면 한층 더 발전하리라.

“그나저나 황후는 누구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글쎄…… 일단 샤르도나 후작은 제외할 생각이야.”

“……예?”

카리엘의 말에 타리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이가 좀 많긴 하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미모를 자랑하는 그녀였다.

철벽이라는 이명답게 마스터 중에서도 상위권에 랭크된 그녀의 강함 역시 그녀의 매력을 더 끌어올려 주고 있다.

그런 그녀를 제외한다?

“그녀를 좋아하는 자가 있거든.”

“샤르도나 후작을 흠모하지 않는 남자를 찾는 게 더 빠르지 않겠습니까?”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한숨을 쉬었다.

“정보부 수장 맞아?”

“예?”

“쯧쯧! 남들 다 아는 거 타리온만 눈치 못 채고 있네.”

한심하다는 듯 말하는 카리엘을 본 타리온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구시렁거렸다.

‘그래도 전 젊었을 적에 연애도 많이 해 봤는데요. 결혼도…….’라고 중얼거리는 타리온.

하지만 현실은 쓸쓸히 늙어 가는 처지였다.

“어쨌든 샤르도나 후작은 제외야.”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연회장으로 가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남들이 다 예상한 것처럼 카리엘 역시 황후는 아는 인물들로 할 생각이었다.

평소 황궁을 자주 찾아왔던 아일라나 마르니에, 그리고 최근 자주 협력해 준 룬디아 성녀 중에 고를 생각이다.

“누가 먼저 찾아오려나?”

그렇게 중얼거린 카리엘이 연회장으로 향했다.

“카리엘 프레드리히 폰 블레이저 폐하 드십니다!”

연회를 주관하는 내관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연주가 멈추고 거대한 문이 열렸다.

그랜드 홀에 모인 선남선녀들이 모두 카리엘을 보면서 고개를 숙였고, 카리엘은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중앙으로 향했다.

그런 그가 향한 곳은 똥 씹은 표정을 짓는 타리온과 반대로 기대에 찬 눈빛을 하고 있는 루터가 있는 곳이었다.

“인상 좀 풀어. 기껏 자리를 마련해 줬더니…….”

“폐하, 제 나이가…….”

“쯧쯧! 평생 홀로 늙어 죽을 거야? 그러면 쓸쓸하다고 칭얼대지를 말든가. 타리온 넌 무조건 여기서 한 명 붙잡고 데려와. 이건 명령이야.”

그렇게 찡찡대는 타리온을 물리고는 루터와 글렌을 바라보았다.

기대감에 찬 루터와 달리 글렌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전생에도 그러했지만, 검술 말고는 다른 것엔 큰 관심이 없기에 이번 연회도 별로 관심 없는 표정이었다.

“자네도 짝을 찾게.”

“……예?”

“대공이 걱정이 많네.”

“아…….”

대공이 걱정한다는 말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글렌.

그런 그를 보면서 귀찮아도 짝을 찾아보라는 말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카리엘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이번 연회는 모두가 알다시피 짐의 짝을 찾는 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기껏 모였는데 짐의 짝만 찾기는 아쉽지 않겠나?”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모두 짐만 바라보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게. 모두 이그니트의 미래를 이끌어 갈 자들이니 결코 부족하지는 않을 거다.”

그렇게 말한 카리엘은 눈짓으로 악단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연회장의 분위가 바뀌었다.

세계 각지에서 최고의 신붓감들만 모인 자리답게 이그니트 최고의 신랑감들로 채운 연회장은 금방 서로 눈이 맞아 가며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남들 다 이어 주면 뭐 합니까?”

타리온이 비웃듯 말하며 다가오자 카리엘의 표정이 구겨졌다.

묘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서로 눈이 맞아 구석진 자리로 이동하는 커플들.

그러나 주인공인 카리엘에게는 아직까지 누구 하나 다가오는 이가 없었다.

분면 연회의 주인공은 자신이고 명분도 간택식일 텐데 아무도 없었다.

“……이유가 뭐지?”

“아무래도 황후 후보들 때문 아니겠습니까?”

비웃는 듯한 타리온을 노려보던 카리엘.

그런 상황에서 마침내 용기를 낸 여인이 등장했다.

아무도 카리엘에게 접근하지 않자, 이때다 싶어서 카리엘을 향해 걸어오는 여인.

문제는 막상 앞에 서서는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한다는 점이다.

결국 울면서 물러나는 여인.

그리고 그건 다른 여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체 왜……?”

아무리 황후 후보가 내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카리엘이 무조건 그녀들만 선택하려는 건 아니었다.

정말 자신의 마음에 든 여인이 나타난다면 정략결혼이고 나발이고 연애결혼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위압감 좀 줄이시죠.”

타리온의 말에 카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압감?”

“후…… 폐하께서 은연중에 풍기는 분위기는 웬만한 여인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겁니다.”

타리온의 말에 근처에 있던 글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들과 고위 관료들이야 이미 오랫동안 겪어 왔기에 익숙했고, 동생들 역시 그러했다.

여기에는 카리엘의 주변에 있는 이들이 워낙 엘리트들라 카리엘의 위압감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달랐다.

왜 카리엘이 광장에서 연설하면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거나 고개를 조아리겠는가.

「역대 최고의 황제」

「대륙을 지킨 영웅」

「신의 사자」

카리엘을 상징하는 별명만 해도 웬만한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칭호들인데, 카리엘 본인이 갖고 있는 위압감마저 장난이 아니었다.

황태자 시절부터 대신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보여 주었던 그였고, 전쟁을 치르면서 그 카리스마는 더욱 높아진 상태였다.

“…….”

“그냥 ‘황후 후보’들이 다가오길 기다리시죠.”

죄다 울면서 나가는 여인들을 보면서 착잡한 표정을 짓는 카리엘.

결국 연회 분위기에 방해될까 봐 슬쩍 구석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하네.”

자신이 자리를 옮기자 기다렸다는 듯 분위기가 좋아지는 연회장을 보고 씁쓸해진 카리엘.

분명 자신에게 집중되었던 시선을 돌린다는 계획은 성공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씁쓸한 것일까?

“후…….”

오늘따라 밝은 빛을 내뿜으며 자신을 비추는 달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였다.

“폐하?”

아름답게 차려입은 한 여인이 카리엘을 향해 다가왔다.

“아일라?”

그의 부름에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우아하게 고개를 숙인 아일라.

“폐하, 저와 계약을 하시겠습니까?”

다짜고짜 찾아와서 계약을 들이미는 아일라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린 카리엘.

그런 그녀를 향해 카리엘이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어디 한번 들어 볼까?”

당돌한 그녀를, 미소를 지은 카리엘이 팔짱을 낀 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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