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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85화 (185/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외전 2. 결혼 (2)

간택식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지만, 수도는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그니트의 가장 큰 이벤트가 남았기 때문이다.

「수도로 모이는 세계의 정상들!」

현시점에서 제국이라 불릴 만한 거의 유일한 나라가 바로 이그니트다 보니 각국의 수장들이 모두 참석하는 세계의 축제가 되어 버렸다.

동대륙을 삼분하려는 로만, 골란, 윙사르가 있지만 이들은 아직은 불안했다.

국토 규모, 인구수로만 따지자면 제국에 근접하기는 했다.

서대륙보다 더 넓은 땅을 3분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사력, 재력 등 바로 옆에 있는 이그니트와 너무 차이 난다는 점이 문제였다.

게다가 벌써부터 독립하려는 세력들이 나타나고 있기도 했다.

“확실히 이그니트가 굉장하긴 하네.”

“그러게.”

강력한 힘을 가진 황제 아래 단단히 뭉친 이그니트는 흔들림이 없었다.

대륙 전체가 큰 피해를 입긴 했지만 이그니트가 입은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마스터들이 죽거나 치명상을 입은 것은 물론이요, 전쟁 내내 제국민들의 희생 역시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에 대한 믿음은 굳건했다.

“부럽군.”

저 멀리 남쪽 섬에서 바다를 건너온 한 지도자가 카리엘을 연호하는 제국민들을 부면서 부러워했다.

자신은 귀족들을 견제하기도 바빴기 때문이다.

그건 다른 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대륙의 지도자들부터 동대륙의 지도자들까지,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카리엘의 결혼을 축복하며 즐거워하는 제국민들을 보며 부러워했다.

“지도자가 결혼한다고 모두가 환호해 주는 곳은 이곳뿐이겠지.”

저 멀리 초원에서 온 골란의 왕 바투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초원을 통일한 위대한 왕이 되었으나, 지금은 불안했다.

그 불안함을 주요 부족장들의 여식들과 혼인하면서 혼인 동맹으로 안정시키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과연 자신이 죽을 때까지 이 안정감이 이어질까?

자신이 죽을 때가 다가오면 자식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쪼개지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리고 이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윙사르와 로만 역시 골란처럼 혼인 동맹으로 엮어져 있었다.

로만의 황제는 산드리아의 주요 부족들과, 윙사르는 남부의 왕국이었던 나라들의 영애들과 혼인 동맹을 맺었다.

그러다 보니 동대륙에선 혼인 동맹이 유행하며 동맹 간의 결속을 다지는 주요 방법으로 굳혀지고 있었다.

그에 반해 이그니트의 황제는 달랐다.

「“황비는 들일 생각 없다. 한 명이면 충분하다!” 황비는 들일 생각 없는 황제 폐하!」

혼인 동맹은커녕 한 명의 황후만 택해 결혼하겠다는 카리엘의 결정에 많은 이들이 의아해하면서도 축하해 주었다.

특히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인연과 맺어져서 그런 것일까?

「오랜 짝사랑. 드디어 맺은 결실?」

「공녀 시절부터 해바라기처럼 한 명만 바라본 결과 마침내 황제 폐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공녀→공국 재무 관료 →제국 10대 상단주→황후까지! 그녀의 일생을 살펴보자!」

단독 후보로 결국 황후까지 된 아일라의 일대기는 많은 여인들의 꿈이 되어 버렸다.

특히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된 점이 더 부러움을 사는 것 같았다.

「다른 나라와는 다르다! 이그니트는 오직 단 한 명과만 결혼을?」

「주요 대신들 전부 연애결혼을 하겠다 선언!」

연회장에서 반강제적으로 연을 맺은 이들.

황제의 명령에, 결혼에 대해 미온적이었던 이들까지 전부 간택식 내내 반강제적으로 서로 보다 보니 정이 든 것 같았다.

물론 서로 갈라지는 이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좀 더 확실하게 이그니트의 풍습으로 자리 잡혀 버렸다.

「정략결혼은 옛 풍습! 과거의 잔재는 저리 가라!」

황제부터가 연애결혼을 적극 권장하고 고위 관료들이 죄다 그쪽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정략결혼은 점차 옛 풍습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제국의 핵심이 죄다 연애결혼을 하겠다는데 어쩔 것인가?

그러다 보니 타국에서 불타는 사랑을 하는 연인들이 이그니트로 넘어올 각만 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의 부러움 속에서 마침내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폐하, 준비가 끝났습니다.”

“후…… 오래도 걸리는군.”

카리엘이 오랜만에 완벽하게 갖춰진 복장을 입고 정돈된 모습으로 나가자 많은 이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비록 살바토르에 의해 대륙 최고의 미남 자리는 엄두도 못 내는 처지였지만, 그렇다고 카리엘이 어디 가서 꿀리는 얼굴인 것은 아니었다.

매번 야근으로 수척해진 얼굴에 갈구는 모습만 보여서 그렇지, 근엄한 얼굴로 걸어가는 카리엘의 모습은 웬만한 미남들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가지.”

“예! 폐하.”

카리엘의 명령에 앞을 지키고 있는 모든 마스터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역대 황제들 중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마스터 이상으로 구성된 호위.

양옆에는 두 명의 그랜드 마스터가 서고, 그 뒤로 마스터들이 쭉 나열하면서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광장에서 거대한 영상구로 지켜보는 제국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경악할 만한 일이건만, 뒤이어 나온 장면은 더 대단했다.

상공에 뜬 수백 척의 비공선들이 일제히 현수막을 내리며 카리엘의 혼인을 축하했고, 수많은 소형기들이 날아다니면서 꽃가루를 뿌려 댔다.

“이것이…… 세계 최강국인가?”

“허…….”

카리엘이 결혼식장으로 가는 동안 수많은 마법들이 하늘을 수놓으면서 축하하는 모습에 각국에서 온 사신들이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은 흉내도 낼 수 없는 마도 공학의 정수가 담긴 수많은 마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카리엘은 이 정도로 화려한 결혼식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냥 대충 하자.”

가뜩이나 예산도 부족한데 굳이 쓸데없는 데 돈을 낭비하지 말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대신들을 비롯해 모든 이들이 반대했다. 심지어 제국민들까지 반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국의 위엄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맞습니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타국에 각인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대신들이 만장일치로 이런 주장을 했다.

제국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륙을 3분할 한 동대륙 국가들부터, 신대륙에서 거대한 영토를 집어삼키면서 감히 이그니트에 견주려는 국가들까지.

이 모든 국가들을 상대로 보여 주어야 했다.

“세계 최강국은 우리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짠돌이로 유명한 재상 루터조차 이런 말을 할 정도였다.

그만큼 이그니트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은 중요했다. 단순히 자존심을 지키는 것을 넘어 세계의 중심이 될 경우 얻는 이득이 무지막지했기 때문이다.

「세계 무역의 중심」

이 타이틀을 지킴으로써 얻는 이득이 낭비되는 비용을 훨씬 상회하고 남았다.

그렇기에 이그니트의 기술의 정수가 이번 결혼식을 통해 보여진 것이다.

모두가 넋을 놓은 채 하늘을 바라보다 다시금 거대한 영상구를 바라보았다.

“오오오…….”

카리엘이 황제가 되면서 보여 주었던 불의 힘.

이제는 불의 신전의 중심이 된 성역으로 천천히 올라가자 수많은 불의 정령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난 후, 수도에 머물면서 카리엘이 만든 파장과 함께 자연스레 탄생한 불의 정령들.

수많은 불덩이들이 카리엘의 주변을 맴도는 모습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어째서 그가 대륙을 구한 영웅인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렇게 정령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장에 도착한 카리엘.

그러자 하늘에서 신부가 될 아일라가 천천히 내려왔다.

수십 대의 소형기들이 발현한 마법을 통해 아무런 장치도 없이 공중에서 내려오는 아일라.

그 모습에 모두가 감탄했다.

더 놀라운 건 지상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카리엘이 직접 불의 날개를 만들어 아일라를 안고서 지상에 착지한 것이다.

“실로 압도적이군.”

동대륙에서 넘어온 기자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당장 결혼식이 끝나고 쏟아져 나올 기사의 제목이 떠올랐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결혼식」

오직 이그니트의 황제, 그것도 카리엘만이 가능한 결혼식이었다.

주례를 맡은 불의 신전의 주교의 덕담과 몇 가지 행사들이 진행되었으나, 앞에 보인 이벤트들이 너무 큰 탓인지 사람들이 집중하지 못했다.

행사 주관자도 그것을 알았는지 빠르게 지루한 부분을 넘기고는 카리엘과 아일라의 키스를 마지막으로 결혼식을 끝냈다.

“두 분의 혼인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주례의 마지막 말이 끝나는 순간, 모든 이들이 카리엘의 결혼을 축복해 주었다.

수도 전체의 함성 소리와 함께 황후의 탄생을 축하했다.

역사에 길이 남을 화려한 결혼식과 함께 모든 절차가 끝났다.

“부럽습니다.”

루피엘의 말에 카리엘이 피식 웃었다.

부럽다는 감정이 뚝뚝 떨어진다는 착각이 드는 눈빛.

“부러우면 너도 결혼해.”

“후…….”

카리엘의 말에 루피엘도 잠깐 고민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섣부르게 결혼했다간 카리엘에게 약점 잡혀서 황위를 넘겨받게 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황태자인 루피엘을 시작으로 하나둘 카리엘의 혼인을 축복하러 찾아오는 대신들.

“폐하도 지옥의 길을 걷기 시작하셨군요.”

“부디…… 저희와는 다르게 조금이라도 그 행복이 오래기시기를…….”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중년의 대신들.

반면에 젊은 청년들은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도 일찍 결혼해야겠습니다, 형님.”

“부럽군요.”

세리엘과 루터는 앞으로 아내와 같이 살 카리엘을 부러워했다.

서로가 상반되는 입장 차이를 보이는 신하들의 모습이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은 카리엘은 마지막으로 각국의 사신들을 맞이했다.

“반갑소.”

“혼인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윙사르의 왕부터 골란의 왕, 로만의 황제, 아니 이제는 왕이 된 남자의 축하까지 받았다.

그렇게 형식적인 축하 인사와 선물을 받던 카리엘.

축하하러 오는 모든 사람들을 직접 맞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상위 신분의 지도자들의 축하 인사는 받아야 했기에 한 명씩 악수하며 선물을 받을 때였다.

“폐하의 혼인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반갑소.”

신대륙의 이름 모를 국가의 지도자.

퀭한 그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으나 애써 미소를 지은 카리엘이 그렇게 넘어가려 할 때였다.

“폐하.”

자신을 부르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카리엘이 이름 모를 왕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 전해 드릴 말이 있습니다.”

“전할 말?”

이름 모를 왕의 말에 카리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딱 봐도 축하 인사 같은 말이 아님을 알았기에 눈짓으로 타리온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호위하던 마스터급 인사들이 주변을 가려 주었다.

“무엇이오?”

“그대는 신이 되고자 하는가? 아니면 방관하고자 하는가?”

갑작스러운 반말.

하지만 이자가 한 말이 아님을 알기에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누가 전하라고 했소?”

“신대륙의 가장 높은 곳을 점령한 이가 전하라 했습니다.”

알 수 없는 그의 말에 카리엘이 타리온을 바라보았다.

“혹…… 케찰코아틀이란 존재 같습니다.”

“그분이 또 전하라 하셨습니다, 사라진 신의 공백…… 그로 인한 혼란을 아느냐고.”

신대륙의 가장 높은 산을 점령한 거대한 뱀.

단순히 거대하기만 했던 뱀이 최근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잠들어 있기만 하던 그 뱀이 어느샌가 깨어나 대륙에서 넘어간 고대의 잔재들을 먹어 치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고대의 잔재를 먹으면서 점점 더 강해진 그 뱀은 이제는 다양한 힘까지 다루게 되면서 신적 존재로 거듭나고 있다고 했다.

물론 진짜 ‘신’급 존재를 본 이그니트 입장에선 그저 크기만 큰 괴물에 불과했지만, 신대륙 입장에선 달랐다.

“일전에 보고받은 그것들 중 하나인가?”

“그렇습니다.”

카리엘의 말에 고개를 숙인 타리온.

“단순히 힘을 개화한 것 이상으로 영성까지 지녔나?”

어쩌면 세계의 비밀 일부를 알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타리온이나 다른 이들 입장에선 서대륙에서 널려 있는 고대의 잔재 중 일부의 힘을 흡수한 신수 정도로 보았지만 카리엘은 달랐다.

진짜 ‘신’이 사라진 공백.

그것에 관해서 얘기한 케찰코아틀이란 존재에 궁금해졌다.

“후…… 어쩌면 신혼여행이 정말로 길어질지도 모르겠네.”

그런 그의 말에 근처에 있던 마스터들의 눈빛이 떨렸다.

“일단 말을 전해 주러 와서 고맙소.”

“예, 폐하.”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으로 물러난 신대륙의 이름 모를 왕.

그리고 그 이후, 몇몇의 지도자에게 더 이런 말을 듣게 된 카리엘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민에 빠졌다.

“발드르…….”

이제는 사라진 신의 이름을 부른 카리엘은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신이 사라진 세계.

그로 인해 무언가가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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