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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186화 (186/201)

< 황태자는 은퇴가 하고 싶습니다 >

외전 3. 이것은 신혼여행인가? 출장인가?

주요 축하객들의 선물을 받은 카리엘의 표정은 어두웠다.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식에서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자, 주위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랜 시간 카리엘과 함께 일해 왔기에 지금의 표정은 심각한 일이 일어났을 때 짓는 표정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폐하.”

“응?”

타리온의 부름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카리엘.

“일단 오늘은 다 잊으시옵소서.”

그의 조언에 카리엘이 옆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아일라가 보였다.

“후…… 그래. 일단 다 잊자.”

그렇게 말한 카리엘이 애써 웃으면서 걱정스레 바라보는 이들을 다독인 후, 다음 일정을 소화해 나갔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결혼식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황제와 황후가 반지를 끼고 정식으로 혼약을 했지만 많은 절차가 남아 있었다.

죽은 선대 황후 대신 전대 황비들을 만나 인사해야 하고, 역대 황제들의 무덤에도 가서 인사를 올려야 했다.

그 후 대신들을 만나 정식으로 인사를 하고 황족들에게도 인사해야 했다.

비리를 저지른 황족들을 한차례 처단했기에 얼마 남지 않은 황족들에게 황후를 정식으로 소개한 후, 귀족원에도 가야 했다.

이제는 유명무실해진 기관에 가까웠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더 명예로워진 기관.

아직까지 귀족원에 남아 있는 귀족들은 전부 이름 좀 날리는 명문가였으며, 전쟁 기간에 엄청난 공을 세워 명예 작위를 받은 이들이 많았기에 예전처럼 쓰레기 기관이 아니었다.

“힘들지?”

카리엘의 물음에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는 아일라.

“이제 한 군데 남았어. 좀만 더 힘내 줘.”

그렇게 말한 후 마차에 올라탄 카리엘와 아일라.

모든 일정이 끝나고 마침내 도착한 곳은 광장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만들어진 단상에 카리엘과 새로이 황후가 된 아일라가 올라섰다.

“모두들 짐의 결혼을 축하해 줘서 고맙다.”

웃으면서 말하는 카리엘을 보면서 환호성과 휘파람을 부는 제국민들.

그런 그들을 보면서 어색한 표정을 짓는 아일라.

카리엘과 더불어 제국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카리엘이 좋아서, 그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달려왔던 인생이었는데 막상 그 옆에 서서 보니 너무나도 높은 곳에 올라서서 그런지 두려움이 몰려왔다.

“차차 적응될 거야.”

살짝 떨고 있는 아일라를 부드럽게 감싸 준 카리엘이 미소를 지으면서 안심시켜 준 후, 제국민들이 던져 주는 꽃이나 아이가 주는 선물 등을 받으면서 한참을 광장에 서 있었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마치고 황궁으로 돌아온 카리엘과 아일라.

아침 일찍 시작한 일정이었으나,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카리엘은 약간 망설이는 표정으로 아일라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갈 곳이 있는데…….”

“네? 일정은 다 끝났다고…….”

“개인적인 곳이야.”

카리엘은 작게 고개를 끄덕인 아일라를 데리고 카리엘이 머물렀던 옛 황태자 궁으로 향했다.

현재는 루피엘이 황태자였기에 그가 머물던 곳이 황태자 궁이 되었지만, 여전히 궁은 관리되고 있는 듯싶었다.

“여긴…… 폐하의……?”

“그래. 옛 궁이지.”

마차에서 내린 카리엘이 자신이 머물던 옛 황태자 궁을 바라보았다.

전생과 현생의 상당 기간을 보냈던 궁.

지구에서의 자신과 카리엘로서의 자신에 혼란이 와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기억부터, 화기 때문에 죽을 듯이 아팠던 기억, 그리고 현생에서의 기억까지 복합적으로 묻어나는 곳은 이곳뿐이었다.

솔직히 일찍 저승으로 간 자신의 몸의 어미나 황제에 대한 기억보다 이곳에 대한 기억이 더 추억으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이곳을 마지막으로 오고자 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머물고자 하는데…….”

“상관없어요.”

아일라의 허락이 떨어지자 빙그레 웃은 카리엘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머물겠다.

“예! 폐하.”

카리엘의 말에 뒤에 있던 시종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렇게 카리엘은 온갖 추억들이 서려 있어 황제의 궁보다 더 정감이 가는 옛 황태자 궁에서 아일라와 함께 혼인 후 첫날밤을 보냈다.

* * *

세기의 결혼식이라고 불리는 혼인을 한 이후, 며칠간의 휴식을 보낸 후, 신혼여행을 떠날 날짜가 다가왔다.

“정말 너무하십니다.”

“신혼이잖아.”

루피엘이 한숨을 푹푹 쉬면서 카리엘을 원망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신혼이라는 핑계로 옛 황태자 궁에 틀어박혀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은 카리엘.

그 때문에 루피엘은 정말 일에 치여 죽는 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일했다.

“부러우면 너도 결혼해.”

“하…….”

카리엘의 말에 루피엘은 한숨만 쉴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저것이 낚시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왕 가는 거 푹 빨리 돌아오십쇼.”

“글쎄…… 그게 될까?”

카리엘이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손에 들린 보고서를 흔들어 보였다.

전부 과거의 잔재들과 관한 보고서임을 알기에 루피엘이 쓴웃음을 지었다.

한 번뿐인 신혼여행에 일 더미를 가득 안고 있는 카리엘의 모습에서 왠지 자신의 미래가 보였다.

“신혼여행인데 일 더미를 안고가게 생겼네.”

“쉬엄……쉬엄 하세요.”

“언제는 빨리 돌아오라며.”

“…….”

자신을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루피엘에게 카리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도 나와 다르진 않을 테니 그렇게 안쓰럽게 볼 거 없어.”

“전…… 아닙니다.”

애써 이를 악물며 대답하는 루피엘.

그런 그를 보며 ‘과연 그럴까?’란 표정으로 바라본 카리엘이 자신을 기다리는 아일라를 위해 루피엘과 대신들에게 인사하고는 마차에 올라탔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카리엘의 물음에 마차 옆에서 백마를 탄 세리엘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일단 외가에 갈 때까진 너희들이 처리하고 있어.”

“하오나 폐하…….”

“야, 나도 신혼인데 조금은 쉬어야 할 거 아냐!”

세리엘을 노려보며 말한 카리엘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나도 좀 쉬자.”

“충분히 쉬신 거 같은데…….”

카리엘의 결혼식을 찾아온 수많은 하객들.

그리고 각국의 수장들을 본 건 첫날뿐이다. 그 이후로 수많은 연회장에서 그들을 맞이한 건 전부 루피엘이었다.

거기다 이왕 온 김에 각국의 사신단들과 체결한 수많은 협정들.

그걸 전부 체결하고 회의한 것도 루피엘이다.

물론 세리엘과 군부 역시 동대륙과 새로이 맺은 협정으로 바빴다.

대신들부터 고위 관료들까지 첫날을 제외하고 전부 야근을 하거나 늦은 밤까지 연회장에 참석하며 피로를 누적시키는 동안 카리엘은 정말로 결혼식 이후 달콤한 신혼 생활만 즐긴 것이다.

그렇기에 세리엘이 짜게 식은 눈으로 카리엘을 바라보았다.

“……신혼이잖아.”

루피엘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변명으로 세리엘의 강렬한 눈빛을 넘긴 카리엘이 곧바로 마차를 움직이라고 신호를 주었다.

화려하게 치장된 마차를 타고 황제 전용 비공선이 세워진 곳에 도착하자 영상구를 든 기자들이 둘을 맞이했다.

「마침내 달콤한 신혼여행을 떠나는 황제 폐하.」

「웃고 있는 황제 폐하와 울먹이는 황태자 전하.」

비공선을 타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카리엘과 초췌한 표정으로 일하는 루피엘의 표정이 대문짝만 하게 나온 신문에 모든 이들이 웃었다.

어떤 이들은 루피엘이 불쌍하다고 가여워했지만 대부분은 카리엘을 축복해 주었다.

매일 고통받던 카리엘의 모습을 알기에 지금의 모습을 순수하게 축복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축복은 고작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깨졌다.

「어쩌면 폐하께선 신혼여행이 아니라 출장을 가신 것일지도?」

군부와 선이 있던 기자가 과거의 잔재들에 관한 정보를 듣고 올린 기사.

제국민들도 알 권리가 있었기에 발표했던 과거의 잔재들에 관한 정보들, 그것을 토대로 추정한 바에 따르면 카리엘은 이번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주요 위험지역을 직접 다녀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 기사가 나온 지 몇 시간 뒤에 군부는 이 사실을 인정했다.

“아…… 폐하께선…….”

“지금이 제일 행복할 때인데…….”

모두가 안타까웠다.

앞으로 결혼 생활 동안 지금보다 행복한 시간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기에.

그런 소중한 시간마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축제 같았던 제국민들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이런 사람들의 반응과 달리 카리엘은 나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세리엘에게 말했던 것처럼 황후와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데 주력한 것이다.

전쟁 기간 동안 서대륙을 돌아다녔던 기억을 떠올리며 괜찮았던 곳들을 중심으로 신혼여행 루트를 짰고, 나름 아이라도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하는 카리엘의 바람과 달리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결국 외가인 루미너스 자치령에 도착하고 말았다.

“폐하를 뵙습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제는 장인어른이 된 자치령주와 서로 인사한 카리엘은 그들이 준비한 호화로운 식사를 대접받으며 나름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도작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서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세리엘이 찾아왔다.

“폐하.”

“후…… 그래. 줘 봐.”

두툼한 보고서를 받은 카리엘이 한숨을 쉬면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몇 분 후, 어째서 세리엘이 다급히 찾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신대륙만의 문제가 아니었네.”

“……예.”

신대륙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를 점령한 거대한 뱀.

하지만 신대륙에는 이러한 존재가 적어도 셋 이상은 존재한다는 보고였다.

이것뿐이었다면 세리엘이 이렇게 다급하게 찾아오지 않았을 거다.

“남부 섬들은 물론이고, 동대륙과 서대륙도 이런다라…….”

오딘을 비롯한 가장 강력한 과거의 잔재들을 지웠지만, 그때문일까?

도망친 과거의 잔재들이 자신들이 ‘신’이 되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그동안 조용했던 것은 세력을 키우고 힘을 모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것뿐이라면 괜찮았다.

역사상 가장 강력할 거라 추정되는 현재의 이그니트라면 서대륙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과거의 잔재쯤은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수상한 기운이라…….”

보고서 말미에 적힌 수상한 기운.

지옥의 기운도, 마기도 아닌 전혀 본 적 없는 기운이 주변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현상이 왜 이제야 발견될 걸까?

그 이유는 과거의 잔재들 때문이었다.

몇몇 과거의 잔재들이 수상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곳에 자리 잡고 그 기운을 모조리 흡수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뤄 왔던 것이 문제였나?”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그니트를 위해 애써 미뤄 두었던 문제들.

그것이 지금에 와서는 더 큰 문제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랜드 마스터를 비롯한 대부분의 마스터들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고, 기사들과 마법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병사들 역시 휴식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일단 내가 직접 가 보긴 해야겠네.”

“……준비할까요?”

곧바로 준비하려는 세리엘을 잠시 바라보던 카리엘이 나직이 말했다.

“며칠만…… 며칠만 더 있다 가자.”

“……예.”

카리엘의 간절한 부탁에 세리엘이 헛기침을 하면서 작게 대답하고는 물러났다.

“후…….”

한숨을 쉬면서 하늘을 바라본 카리엘.

은퇴하려고 할 때마다 일이 터지는 느낌.

이쯤 되면 누군가가 자신이 은퇴하려고 할 때마다 일 더미를 던져 주는 느낌이다.

“……착각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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