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작가의 그림자가 살아가는 법 71화
흑마법사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확신한 이후로 시안의 움직임이 변했다.
비검을 머리 위에 돌려놓고 가만히 자리 잡고 들어오는 리자드맨을 잡던 그가, 적극적으로 치고 나가 경기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시안! 학생들은 대피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도중에 곳곳에서 교관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는 교관이나.
“시안! 알티마가 얘기했는데 혹시 이거…….”
학생들, 알렌과 마주치기도 했다.
역시 이 녀석도 대피하지 않았을 줄 알았다.
주변에 듣는 귀가 있어서 말끝을 흐리는 그였으나 시안은 뒤 내용이 충분히 추측이 되었다.
“아마도. 지금 놈이 숨어 있는 곳을 찾는 중이야.”
“정말? 단서라도 찾았어?”
“아니.”
순간 화색이 도는 알렌에게 시안이 부정의 말을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닥치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수상한 곳이 없나 찾아보고 있다.”
“으음…….”
“너는 어때. 놈을 탐지할 방법이라도?”
“아니 나도 없어.”
시안과 알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 순간 뜻이 통한 두 사람이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정반대 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단서 하나 없이 무작정 탐색하는 일이다. 같이하는 것보단 흩어지는 쪽이 훨씬 유리하다.
‘라비.’
‘웅…….’
도중에 계속해서 라비에게 물어보고 있었으나 특별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푹!
앞을 가로막는 리자드맨을 베며 시안이 경기장 내를 빠짐없이 관찰했다.
‘웅!’
서걱!
동시에 머리 위에선 라비가 움직이는 비검이 와이번을 잡고 있었다.
맨 처음, 시안이 직접 사념을 보내 조종할 때만큼 날카롭게 쓰러뜨리고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와이번 1~2마리 정도는 무리 없이 쓰러뜨리고 있다.
애초에 와이번이 뭘 해도 검인 라비는 타격을 입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쫓아가 벨 뿐이었기에 와이번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리자드맨도 와이번도 순조롭게 베어가곤 있었지만, 그래도 시안은 초조하기만 했다.
‘단서는…….’
아무리 뒤져보아도, 눈이 빠져라 관찰해도 단서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숨어 있는 사람도 없고 수상한 아티팩트 따위도 발견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피 웅덩이에선 리자드맨이, 공중의 검은 게이트에선 와이번이 쏟아지고 있다는 데도.
“카악―!”
또 한 마리의 리자드맨이 달려든다. 단서도 없는 마당에 끝없이 달려드는 녀석들에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시안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검을 휘둘렀다.
캉!
그런데, 그 검이 막혔다.
시안이 그 자리에서 움찔 멈췄다.
“카칵!”
그를 비웃듯 리자드맨이 고성을 울리더니 핏빛 창을 마구 찔러왔다.
슉! 슈슈슉! 캉!
시안이 검을 회수해 놈의 창을 쳐냈다.
그러나 몇 번이고 다시 찔러온다. 하나하나가 급소를 노리는 날카로운 일격.
지금까지의 리자드맨과는 전혀 달랐다.
‘우, 우웅! 웅웅!’
그 와중에 라비가 다급한 사념을 보내왔다.
힐긋 고개를 들어보니 와이번 한 마리에 고전하는 라비의 모습이 보였다.
그 와이번의 몸놀림 역시 이제까지와는 달랐다.
수월하게 쓰러뜨려오던 마물들이 갑자기 강해진 이 상황에서.
시안은 오히려 눈을 빛냈다.
‘단서다.’
갑자기 돌변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령 뒤에서 누군가가 지원 마법을 걸어주었다든지 하는.
그걸 찾아내면 흑마법사의 위치에 대한 단서를 잡아낼 수 있다.
그런 생각에 시안이 오러를 끌어올렸다.
검은 오러가 그를 감싼다.
그러나 그것은 바깥으로 퍼지지 않고 온전히 시안의 안에 갈무리되었다.
‘감각 쪽을 집중해서.’
근력이나 순발력 같은 부분보단 시각과 청각을 포함한 감각을 중점으로 강화한다.
상대가 강해졌다곤 하나 그래도 쓰러뜨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적을 압도하기 위한 힘이 아닌 단서를 놓치지 않기 위한 감각이었으니.
“카락!”
휘익―!
강화된 리자드맨의 창대가 단두대처럼 떨어져 내린다. 침착하게 그걸 피하며 시안이 검을 찔러갔다.
키릭. 결코 빠르다고 볼 수 없는 그 속도에 리자드맨이 한껏 입꼬리를 올렸다.
휙!
비웃음을 보내며 기세등등하게 창을 찔러오는 리자드맨.
그런 것엔 아랑곳하지 않고 시안이 놈과 라비가 상대하고 있는 와이번을 관찰했다.
‘특별한 기운의 흐름은 없군.’
실시간으로 지원마법이 들어가는 것 같은 모습은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한 번 걸렸을 때 여러 시간 동안 지속이 되는 형태의 마법일 가능성이 있다.
실시간보다 단서가 적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 마나 패턴을 살펴보면 보이는 것이 있을 테니.
캉!
그렇게 머릿속을 정리해 가며 시안이 리자드맨을 상대했다.
그러던 중.
‘응?’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카락! 카아아!”
순간 멈춘 시안을 보곤 리자드맨이 눈을 빛내며 달려든다. 그 입가엔 이미 승리했다는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콰지지지직!
“칵……?”
시안의 검이 리자드맨의 창을 완전히 박살 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놈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콰직!
두개골을 박살 내며 그의 검이 놈을 양단한다.
갈라진 리자드맨의 시체가 털썩, 땅에 엎어졌다.
승리하였다는 감흥 따윈 딱히 없이, 시안이 놈의 시체를 발로 밀어 옆으로 돌려보았다.
그 시체의 목덜미 부근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비늘?’
그건 비늘이었다.
다만 놈의 몸을 빼곡히 덮고 있는 다른 비늘과 다르다. 그 하나의 비늘은 다른 비늘과 다르게 거꾸로 자라나 있었다.
시안이 고개를 들었다.
‘우, 우웅-!’
아무리 쫓아가도 잡히지 않는 와이번을 보며 라비가 울상을 짓고 있다.
놈의 움직임을 잠시 살핀 시안이 직접 사념을 보내 비검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서걱!
강화 와이번의 목이 떨어지기까지 조금의 시간으로 충분하였다.
피를 흩뿌리며 떨어진 와이번의 목을 시안이 두 손으로 집어 들었다.
그리고 옆을 살피니.
‘……여기도 있군.’
아니나 다를까, 리자드맨과 똑같이 거꾸로 난 비늘이 보였다.
시안이 눈을 빛내며 인근의 리자드맨을 모조리 사냥했다. 라비 역시 와이번의 목을 위주로 떨어뜨리고 다녔다.
그렇게 열 개체 이상의 목덜미를 확인했다.
거꾸로 난 비늘은 방금의 강화된 개체 말고는 나 있지 않았다.
‘이거다.’
단서를 찾았다.
그리고 동시에 용의자도 떠올랐다.
아까 한창 돌아다니며 보았던 교관들과 학생들. 개중에는 교관도 학생도 아닌 사람도 있었다.
“큭! 총장님!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듭니다! 총장님! 제레흐 총장님!”
한창 밀리고 있는 구역에서, 학생들의 앞을 막아주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 남자.
피가 잔뜩 튄 갑옷을 입고 오러를 두른 검을 휘두르고 있는.
시안이 당장에 그곳으로 뛰었다.
“자, 자네도 학생인가! 내 뒤에 숨게!”
“…….”
그에게 다가온 시안이 남자의 목덜미를 보았다.
그곳엔 상처라도 났는지 사각형의 밴드가 붙어 있었다. 강화된 개체들과 완전히 동일한 위치에.
아닐 가능성도 있긴 했지만, 확인해보지 않을 수도 없는 일.
“제 오해였다면 사죄하겠습니다.”
“뭐라고?”
시안이 그에게 다가가 착, 밴드를 단숨에 떼어냈다.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파래지더니 황급히 손으로 목덜미를 감추었다.
두꺼비 같은 커다란 손이 밴드가 자리했던 곳을 모두 가린다.
하지만 밴드가 떨어지고 그 짧은 사이, 시안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일순간 보았던 그의 목에는, 거꾸로 난 비늘이 하나 자라나 있었다.
“알렌! 여기다!”
그가 큰 목소리로 알렌을 부르며,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도시의 수비대장 켈른을 향해서.
* * *
“이 꼬마 놈이!”
켈른의 얼굴이 순식간에 흉악스럽게 변해갔다.
그의 머릿속은 이보다 복잡할 수 없었다.
목에 있는 역린(逆鱗)의 존재를 어떻게 알아챈 거지? 설마 몇몇 풀어놓은 강화된 개체를 맞닥뜨린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보통은 이런 비늘 같은 거에 신경 쓰진 않을 텐데!’
그의 생각대로 리자드맨이나 와이번의 비늘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는 사람 따윈 없었다.
실제로 강화된 리자드맨이나 와이번은 시안이 상대한 것 외에도 몇 개체 더 있었다.
그러나 그걸 쓰러뜨리면서 역린의 존재를 알아챈 이는 이 경기장에 단 하나도 없었다.
시안을 제외하고는.
“역시 네놈이군.”
시안이 눈을 번뜩이며 검을 휘둘렀다.
켈른이 검을 들었다. 그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학생 주제에 날 방해해!”
켈른의 검에 오러가 깃든다. 선명한 푸른빛의 검기. 검사에게 있어 하나의 경지라 불리는 그 기술.
‘일단 죽인다!’
검을 쏘아내며 켈른은 시안의 죽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켈른은 하이나이트 중에서도 중급 이상의 실력을 지녔다.
이 정도면 중소규모 영지에선 기사단장을 맡을 정도의 실력이다. 그렇기에 에버웨일의 수비대장도 맡을 수 있었던 거고.
그러나.
채앵!
“뭣……!”
시안의 검에 켈른의 검이 부러졌다.
허공에 비산하는 자신의 검 조각을 보며 켈른의 머리가 순간 하얘졌다.
검이 부러져?
오러에 둘려 있던 내 검이?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시안의 검으로 향했다.
‘……!’
그곳에 피어오르는 검은 오러.
허공에 떠 있는 검은 게이트와 같은 불길한 검정이 아닌, 밤하늘과 같이 안정감이 느껴지는 검은 기운.
학생이 오러를 쓴다는 사실에 그가 멍해졌고.
“알렌! 일단 가둬놔!”
“어!”
어느새 이쪽으로 달려온 알렌이 푸른 불꽃을 피워올렸다.
이제 막 도착하여 자초지종도 모르는 그였으나 시안의 말에 일말의 의심도 없이 불꽃을 흩뿌렸다.
[ 정화구역, 쇄(鎖) ]
켈른을 중심으로 불꽃이 피어올라 육면체의 관을 만든다.
청류옥의 힘을 쓰지 않았기에 데릭 교수의 때처럼 거대하지는 않았지만, 켈른 하나를 가두기엔 충분한 크기였다.
“무슨 일이야?”
“너네 갑자기 왜 그래!?”
갑자기 아군 사이에서 인 소란에 사람들이 찡그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힘을 합쳐 이 위기를 타파해야 하는 이때 대체 무슨 짓을 벌이는 건가?
그런 얼굴들이었다.
“이 사람이 이 사태의 범인입니다!”
알렌이 모인 사람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그 말은, 당연하게도 매우 큰 파장을 일으키며 퍼져 나갔다.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교관과 학생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교관이 알렌에게 물었다.
“범인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지? 알아듣게 설명해 보거라.”
“그건…….”
알렌이, 옆에서 켈른을 계속 감시 중인 시안을 바라보았다.
범인이라고 소리치고 보았지만 사실 알렌은 그가 왜 범인인지 모른다.
그걸 알고 있는 건 이 자리에서 시안뿐이었다.
으득.
‘쇄’ 안에서 이를 갈며 이쪽을 바라보는 켈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시안이 간략히 설명했다.
강화된 리자드맨과 와이번의 존재.
그들의 목덜미에 나 있는 거꾸로 된 비늘.
그리고 그것과 완전히 동일한 위치에 켈른 역시 비늘이 나 있다는 것.
“정말이야?”
“중간중간 훨씬 강한 개체는 분명히 있었어.”
“사람 목에 비늘이 나 있는 것도 평범한 일은 아니긴 한데…….”
믿을 만한 근거는 있다.
하지만 완벽한 증거라고 보긴 어려웠다.
켈른의 목덜미에 확실히 비늘처럼 생긴 게 보이긴 하지만, 비늘이 아니라 그냥 피부병 같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던 와중.
시안은 다른 의미로 머리가 복잡했다.
‘제레흐 총장. 왜 움직이지 않지?’
자신이 추측한 것이 맞다면 범인을 찾으면 제레흐는 움직여야 했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는 지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양손으로 지팡이를 짚은 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뿐.
사람들은 켈른을 보며 혼란스러워하고, 시안은 제레흐를 보며 혼란스러워하고.
그러던 중, 제레흐가 중얼거렸다.
“오는가.”
그가 중얼거리는 것을 본 것은 유일하게 제레흐를 신경 쓰고 있던 시안뿐이었다.
그 직후.
쿠구구구구궁!
땅이 흔들리며 대기가 떨려온다.
도시 바깥, 초원에 펼쳐진 마법진이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도시를 감싸듯 설치된 그 마법진에서 몇 개나 되는 빛이 올라와 나선으로 뭉치며 저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곤.
쿠르르릉―!
하늘이 흐려진다.
어느새 검게 물든 먹구름이 태양 빛을 가리고, 푸른 하늘이 어둑한 잿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 이건 뭐야!”
불온한 바람이 불어온다.
당장에 폭풍이라도 불어올 듯 날씨가 변하기 시작했다.
“웨더 컨트롤인가!?”
“그런 대마법을 쓴단 말입니까? 대체 누가요?!”
“저도 모르죠!”
날씨를 바꾸는, 전장을 일시에 뒤바꾸는 대마법 중에 하나.
몇몇 마법 교관이 그런 마법이 아닐까 추측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날씨가 바뀐 것은 그저 자연스럽게 동반되는 현상일 뿐.
아득한 고대.
거인이 살아 있던 시절에서 따져 봐도 고대라 불러야 할 정도의 먼 옛날.
이른바 신화라 불리던 그 시대.
‘신화시대의 패자(霸者)인 그들은, 그저 그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든다.’
제레흐의 눈이 깊숙이 침잠하였다.
왜 갑자기 옛 고서에서 보았던 그 기록이 떠올랐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사라지지 않던 시선의 정체도.
잿빛의 하늘, 그 구름이 걷히며.
[마룡왕이 지상을 주시합니다.]
거대하고 아득한, 길게 갈라진 샛노란 눈 하나가 나타났다.